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42
제443화
마인 길드 두 사람의 신체를 정화하는 작업은 금방 끝났다.
윤건은 김서준이 그랬던 것처럼 고통을 감내했던 반면, 조주현은 퍽 웃긴 꼴을 보여 주었다.
고통에 기절했었던 놈은 그 고통 때문에 깨어났는데, 우습게도 다시 고통에 울부짖다가 기절했다.
그리고 그걸 정화 작업 내내 반복했다.
“…조주현은 천재다.”
기절한 조주현을 쳐다보는 우리에게 윤건이 대뜸 말했다.
나를 포함해 다들 짜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심지어 채정연은 황당한 목소리로 “저딴 게…?”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쟤도 기절했었던 것 같은데….
“천재기 때문에….”
윤건이 민망한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시 흘러나온 ‘천재’라는 단어는 조주현의 기절한 꼴 때문에 빛이 바래고 말았다.
“지금껏 다쳐본 적이 없지.”
“아.”
“아마 가장 크게 다친 게 어릴 적에 넘어져 다리가 쓸린 게 다였을 거다.”
“…즉, 고통에 익숙하지가 않다는 거군요.”
“바로 그거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이걸 여러 번 했는데, 그동안 기절하고 깨는 걸 반복하는 놈은 처음 봅니다.”
“흠, 흐흠…!”
“익숙해지는 게 좋겠습니다.”
민망함이 헛기침으로 튀어나오는 그에게 충고했다.
천재라서 다쳐본 적이 없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우물 안 개구리란 거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엔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 같은 존재들이 있으니까.
눈앞에서 구불거리고 있는 무기도 그런 존재 중 하나고.
윤건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런데… 자네가 말한 문제는 이것으로 다 해결된 건가?”
“네.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허어….”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윤건은 믿을 수 없는 듯 제 몸을 훑었다.
주먹을 꼭 쥐어보고, 팔과 다리를 여러 번 돌려보며 확인한다.
또 그의 전매특허인 화염을 맹렬하게 내뿜기도 했다.
그에게서 뿜어진 붉은 화염이 염석도 전체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세계수가 더 이상 역겨운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또 윤건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한 불꽃의 마나에 감탄합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윤건이 솔직한 목소리로 감탄을 주절거렸다.
“놀랍군. 평소보다 마나 순환이 잘 되고, 흐름도 훨씬 잘 느껴져.”
그야 그렇겠지.
세계수의 마나로 마나 회로를 구석구석 훑었으니까.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던 것들이 씻긴 듯이 사라졌으니 전보다 순환이 잘 되는 건 당연했다.
마땅히 그가 뿜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도 올라갔으리라.
제 몸 상태를 확인한 그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테지.
“…고맙다.”
윤건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내심 모르는 척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휙, 휙.
손을 휘저었다.
“됐습니다. 공짜로 해준 것도 아니고.”
“…글쎄, 공짜나 다름없을 텐데?”
“……?”
“자넨 사실 마호가 필요 없지. 그런 것 없이도 나와 주현에게 했던 것처럼 동료들을 강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야.”
“…….”
그 생각은 틀렸다.
내가 두 사람의 몸을 개조할 수 있었던 건 이미 개조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서준 일행과 지상욱의 몸을 바꿨던 것도 그래서였고.
내가 한 것은 마족에게 영향받지 않는 몸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못하는데요?”
“…….”
솔직한 대답에도 윤건은 미심쩍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뭐,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한텐 윤건의 말처럼 백운천 녀석들을 강하게 만들 방법이 있기는 했다.
그 방법이란, 바로 흐레이스와 임페일에게 했던 것처럼 녀석들을 세계수의 권속으로 만드는 것이다.
함부로 떠들어댈 말은 아니니 입 다물고 있을 거였지만 말이다.
“…….”
“…….”
무엇보다, 그 방법엔 두 가지 정도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
세계수 권속으로 만드는 일은 마인 길드의 시술처럼 신체를 개조하는 것 정도가 아니다.
인간을 권속이라는 존재로 완전히 바꿔버리는 일이었으므로 말 그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
흐레이스의 번데기 마법이 없었다면, 애초에 뱀파이어 로드인 임페일에게조차 시도하지 않았겠지.
그 짓을 그저 재능 좀 있는 인간일 뿐인 백운천 녀석들에게 한다?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안타깝지만 살아남아 권속이 될 확률은 0에 수렴할 거라고 추측합니다.]내 생각도 그래.
새싹이의 계산에 긍정하며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설령 엘릭서와 번데기 마법이 굉장한 효율을 보여 몇 명의 권속화가 성공했다고 해도… 두 번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세계수의 권속이 됐을 때 인격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흐레이스는 마족의 권속이었던 주제에 내게 존댓말을 꼬박꼬박하고 재이에게 잘 보이려고 뇌물까지 바쳐댄다.
그런 행동을 백운천 녀석들이 내게 한다고 생각해 보자.
내 말에 토를 달지 않는 한재임.
나를 “관리인님”이라고 공손하게 부르는 최희주.
내게 잘 보이려고 선물을 주는 서인철.
부르르…!
상상했더니 몸이 덜덜 떨리고 소름이 돋는다.
어서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야겠다.
“…진짜 못합니다.”
“그래, 알았다.”
방금까지 미심쩍게 바라보던 윤건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건 내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거 아는데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것 같으니 넘어가 줄게.
딱 그런 말을 하는 듯한 얼굴이다.
어이가 없네….
그런 거 아니라고 다시 반박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뒀다.
믿을 생각이 없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바꿀 필요성도 못 느끼겠고.
그리 생각했을 때, 윤건이 문득 떠오른 듯 말했다.
“…아. 염치없지만, 한 번만 더 도와줄 수 있겠나?”
“뭘요?”
“우리 길드에 나와 주현이 말고도 신체를 개조한 친구들이 몇 명 더 있거든.”
“아아.”
그런 거라면야.
어려운 일도 아닌 데다가 마족의 권속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궁금한 점을 묻기는 했다.
“많아요?”
“아니. 네다섯 명 정도가 전부야.”
“금방 끝나겠네. 한동안 길드에 있을 예정이니, 그분들 길드로 보내면 됩니다.”
“이른 시일 내에 마호와 함께 보내도록 하지.”
“네.”
“그리고….”
윤건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선의를 베풀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고맙다.”
“…….”
‘공짜로 해준 것도 아니니 됐다’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아까 그대로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을 또 하면 아까와 같은 상황만 되풀이될 뿐이겠지.
음, 슬슬 돌아가야겠다.
고마움을 전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상황 속에 있으니 슬슬 닭살이 올라올 것 같았다.
“돌아갈 건가?”
“그래야죠. 왜요?”
“고마운 마음도 있고 해서, 맛있는 거나 같이 먹을까 했지. 매운탕 잘하는 집을 알거든.”
“…끌리는 제안이긴 한데, 동생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
집에 안 들어간 지도 벌써 나흘째다.
도중에 연락이라도 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동안 태천이하고만 짧게 정보를 주고받았을 뿐이다.
심지어 한진환이 남의 집 옥상에 번개 모양 피뢰침까지 박아넣고 가지 않았던가.
슬슬 우리 도희의 인내심이 바닥날 때가 됐으니 돌아가야 했다.
“동생… 아. 그러고 보니, 자네 동생한테 약하지?”
“아닌데요? 착한 오빠로서 동생의 말을 잘 따르는 겁니다.”
“…….”
“뭐요.”
“아니….”
윤건은 내 말이 웃긴다는 듯 피식 웃었다.
“보통 오빠는 동생의 말에 잘 ‘따른다’라고 표현하지 않지.”
아뿔싸.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난 ‘잘 따르는’이 아니라 ‘잘 따라주는’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가 절레절레 젓습니다.] [도희의 말을 듣지 않는 선택지는 없는 거냐고 지적합니다.]듣지 않는다?
그거 넌 할 수 있고?
그리 반문한 순간, 새싹이는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자기도 못하면서 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김서준 일행이 다가왔다.
“수고하셨어요.”
“굉장했어, 백 형!”
“…….”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는데요. 아. 같이 올라갈래요?”
손으로 무기를 가리키며 제안했다.
김서준과 황시열이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얼굴을 했다.
채정연은 무서운 듯 눈치를 살폈지만.
「…….」
무기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꼬리를 으쓱했다.
심드렁한 허락에 김서준이 후후 웃고, 황시열이 깡충깡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들의 해맑은 모습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아쉽네요….”
“……?”
“사실, 저희도 이곳에서 할 일이 있어서 온 거거든요.”
“아하….”
생각해 보니, 그들도 윤건과 거래할 것이 있어서 온 게 당연했다.
위버멘쉬 핵심 전력인 저 세 사람이 중간 다리 역할만으로 이곳까지 내려오는 건 시간 낭비고 인적 낭비였다.
고개를 끄덕인 후 무기에게 올라탔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게요.”
“고마워요. 아, 일이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굳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하자 김서준이 싱긋 웃었다.
결과가 좋길 바라긴 했지만, 딱히 궁금한 건 아니었다.
뭐… 김서준이 태천이도 아니고.
연락하겠다는 이유가 있겠지.
그리 생각했을 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김서준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기대해도 좋대?
***
“그게 정말이에요?”
집으로 돌아와 염석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도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던 듯 흰 손으로 갸름한 턱을 쓸며 고민에 빠져든다.
1분쯤 흘러 고민을 끝낸 도희가 말했다.
“마호(魔壺)…. 개량해야겠네요.”
“그래야지.”
뭐하러 몬스터 따위를 개조 재료로 쓴단 말인가?
우리에겐 영약과 세계수 관련 재료들이 가득한데.
“문제는 재이가 한창 바쁘다는 건데….”
재이는 지금 열심히 헤미스파이리움을 개조하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을 만들라고 했던 말 때문일까?
뭘 만들고 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완성되면 블랙 드래곤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기에 기대하고 있다.
그녀가 제작한 장비들은 늘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보여 주었었고.
이따금 아르카 때처럼 제작한 자기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수정 언니도 마찬가지예요.”
“수정 씨도?”
“네.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고 각종 포션을 제조하고 있거든요.”
“아하.”
그렇다면 홍수정한테 맡기는 것도 넘어가야겠다.
아이템 제작도 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전문 분야는 포션 제조였으니 더 잘하는 걸 맡기는 게 좋다.
심지어 그녀가 제조한 포션 덕분에 도희는 자기 실력 이상으로 빛의 성역을 펼치지 않았던가?
분명 이번에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
그나저나 재이도 홍수정도 안 된다면….
“프타 대장간에 들러야 하나….”
“전 반대예요.”
“왜? 우연후라면 믿을 수 있잖아.”
“그 기생오라비는 믿을 만하죠. 하지만 대장간 직원들은 아니에요.”
“아아….”
도희의 의심대로다.
과연 새로운 아이템의 제작법을 알게 된 대장장이가 개량하는 것만으로 끝낼까?
마호를 자기 스타일대로 몰래 제작해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반대하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문제는 곧 있으면 블랙 드래곤과 싸워야 한다는 것.
먼 미래보단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는 게 옳다.
“…그렇죠.”
말도 안 했는데, 도희는 내가 하려던 말을 알아차리곤 수긍했다.
후우,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할 수 없죠. 우연후에게-”
부르르.
도희의 말을 끊어내듯 오른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김서준이었다.
일 끝나면 전화하겠다더니 이제 끝났나 보다.
중요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지만, 기대해도 좋다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미안. 전화 좀 받을게.”
“네.”
톡.
도희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수신 버튼을 눌렀다.
통화가 연결되자 김서준은 “여보세요?”라는 말도 없이 바로 사과를 전해왔다.
“미안해요, 도운 씨. 생각보다 일이 늦게 끝났네요.”
“괜찮아요. 그런데….”
“아, 네.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네요.”
“도운 씨. 마호를 개량할 생각이시죠? 그거, 우리에게 맡겨보지 않을래요?”
이게 무슨 미친 소리래?
내 경계심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는지 김서준이 하하 웃고 말했다.
“사실 방금 우리 위버멘쉬 길드도 마호를 얻어냈거든요.”
“……!”
“당연히 문제점을 알았으니 개량할 생각이고요. 그리고 아주 운이 좋게도, 우리 길드엔 천재 아이템 메이커 분이 계시죠.”
아!
“유혜주…!”
“네. 바로 그런 이름이죠.”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김서준이 씩 웃은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는 웃음처럼 내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S급 일꾼, 아니.
S급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상황이었으니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