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73
제475화
– 그 신문사가 망했다네.
“라르바오스가 망했다고요?”
– 아니, 망했다는 말로는 부족하지….
앨릭스 협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는 걸까.
가만 지켜보자 그가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 오늘 자네가 한창 인터뷰하고 있을 때, 급하게 보고가 올라왔네. 라르바오스 신문사에 관련된 것이었지.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전부 살해당했다는….
“허…?”
– 살해당한 이들은 생기를 다 빨린 듯한 모습이었네. 마치 미라처럼.
휙, 휙….
앨릭스 협회장의 말을 듣고 놀라는 내 시야에 허공을 교차하는 손이 보였다.
원장 아줌마가 허공에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하고 있었다.
다른 홀로그램 영상 속 인물인 프란치스코 2세 교황도 그러고 있어서 그런가?
아줌마의 모습이 꼭 수녀 같았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최 클라우디아는 수녀가 맞다고 전합니다.]아. 그랬지, 참.
예전부터 아줌마는 워낙 수녀 같지가 않아서….
기도하는 아줌마 옆에 앉은 도희가 질문을 던졌다.
“범인은요? 잡혔나요?”
– 잡히지 않았네. 하나 예상 가는 놈들은 있긴 하지.
“아….”
도희가 탄식을 흘렸다.
앨릭스 협회장처럼 예상 가는 놈들이 있는 거다.
뭐, 사실 이 세상에 블랙 드래곤 토벌에 관해서 알고 있는 놈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 예상하긴 쉽다.
도희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태천이도 몇 초만 더 지나면 깨닫게 되겠지.
그 전에 도희가 놈들에 대해 말할 테지만 말이다.
“라르바오스 신문사는 크라우드의 것이었겠군요. 일이 틀어지니 입막음을 당한 것이고요.”
– 내 생각도 그렇네.
“후, 정말 놈들다운 짓이네요….”
– 해서, 지금은 건물 전체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중이네. 어떤 단서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야.
“그거 제가 할까요?”
살며시 질문을 던졌다.
어딘가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경우, 나는 다른 이들보다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세상의 누구보다 탐색에 능한 새싹이와 함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텐데도 앨릭스 협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괜찮네. 이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맡겨주게.
“…저라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데요?”
– 알고 있네.
혹시 모르는 건가 싶어 말하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알면서도 내게 맡기지 않는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유가 뭘까.
고민하는데, 그 다른 이유를 도희가 유추한 듯 말했다.
“라르바오스는 영국에 있죠. 혹시 영국 협회장이 오라버니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서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인가요?”
– …그 이유도 있긴 하지.
도희의 추측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국 협회장이 나를 싫어한다고? 왜?
“도희야. 도운이 기억 못 하는 것 같은데.”
“…….”
태천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이 모습을 이미 보았을 아줌마를 제외하고 다들 황당한 표정이었다.
태천이 말과 반응들을 보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긴 했었나 보다.
흠. 이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과거의 나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영국 협회장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휘젓습니다.] [관리인은 백운천에 시비를 건 영국 헌터 협회장에게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영국 협회장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아일랜드를 도와주었다고 전합니다.] [도움은 해골의 은신처가 있었던 A+등급 글렌비 던전을 소탕해주겠다는 식으로 했다고 덧붙입니다.]아아…! 기억났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었지.
그 계약을 체결한 후 아일랜드가 우리 백운천한테 SNS로 감사 인사까지 보냈었고.
떠오른 기억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태천이와 도희가 한 마디씩 소곤거렸다.
“기억났나 봐.”
“설마요. 세계수가 말해 준 거겠죠.”
“아, 그렇겠구나….”
“야. 너희 다 들리거든?”
“그런데 참 웃기는 인간이네요.”
도희는 내게서 시선을 돌려 앨릭스 협회장을 바라봤다.
지금 가장 웃기는 사람은 너 아닐까, 도희야.
이렇게 깔끔하게 날 무시한다고?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따위 알력을 행사하다니….”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 아니겠나?”
“확신이요?”
“한국에 사는 누군가가 오늘 세상에 강한 인상을 새겨주었거든. 절망하던 이들이 보통 때와 같이 살아가도록 할 만큼.”
그리 말하는 앨릭스 협회장의 눈이 나를 향한다.
날 향한 신뢰와 고마움이 담긴 두 눈을 보니, 어쩐지 목 뒤가 가려웠다.
아무래도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지금껏 날 향한 두 눈엔 불신과 미움이 흔했고, 저렇게 긍정적인 감정이 담긴 눈은 별로 없었다.
“흠, 흠….”
어쨌거나,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모양이다.
물론, 세상엔 워낙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으니 아예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반수가 부정적으로 구는 것보단 적은 수가 부정적인 것이 나은 법이다.
희망에 찬 사람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으음….”
도희가 입술을 비틀며 신음을 흘린다.
미간을 찡그리고 팔짱을 낀 모습에서 영국 협회장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블랙 드래곤을 토벌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국에 입국하지 못하게 한다….
그 옹졸하고 모순된 행동을 올바르게 자란 우리 도희가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테지.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고.
– …덧붙이자면, 영국 협회장이 방해해서 맡겨 달라는 것만은 아니네.
“……?”
– 할 수 있다고 해야 할 일인 것은 아니지 않겠나. 난 도운 자네가 블랙 드래곤 토벌에만 신경을 집중해주길 바라네.
“아.”
– 다른 일들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 잘 생각했네.
앨릭스 협회장이 바라는 대로 해야겠다.
지금 당장 신문사를 몰살한 범인이 크라우드 짓이란 걸 확실히 알아낸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크라우드를 처리하는 건 블랙 드래곤을 토벌한 이후에 할 일이었으니까.
놈들의 은신처를 찾을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자… 용건이 다 끝났으면 이제 슬슬 정리할까요?”
– 음.
“다들 바쁘신 분들인데 너무 오래 붙잡아둔 것 같군요.”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조우민 협회장이 끼어들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교황, 세계 헌터 협회장, 한국 헌터 협회장 등등….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블랙 드래곤 토벌 건으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다.
오히려 토벌의 핵심인 나와 태천이가 여유로울 정도인데, 우린 당일 세상에서 가장 바빠질 터였다.
– 인자하신 그분의 가호가 여러분께 있기를….
정리하자는 말을 받아들인 듯 교황이 축복 같은 인사를 건네고 통화를 끊었다.
뒤이어 앨릭스 협회장이 당황한 듯 입을 헤 벌렸다.
교황처럼 축복 같은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것이리라.
당연히 그럴 필요는 없었으므로 그는 용건만 짧게 전했다.
– 이틀 후에 보지…. 물론, 준비가 끝나면 일찍 와도 좋네. 다른 이들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뚝.
홀로그램 영상 통화가 끊겼다.
조우민 협회장이 스마트폰을 집어 들면서 도희를 바라봤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얄밉다.
분명히 입을 열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럼, 여러분도 이제 가시죠….”
그리 말하는 조우민 협회장의 얼굴을 보자 따스한 손길로 때리고 싶은 얄미움이 사라졌다.
그답지 않게 나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을 뿐이다.
“저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해서 바쁘니까.”
“…….”
중요한 일….
그것이 무엇일지, 도희처럼 독심술 같은 짓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직감했다.
그가 처리해야 하는 일은 분명 최희석을 뜻하는 것이리라.
최희석은 한진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줌마가 방주 보육원에 갇히는 것을 납득할 수 없을 테니까.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나처럼 막 나가지는 않겠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최희석도 인간이지 않은가.
스윽….
아줌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해요.”
“아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
“수녀님이 부탁하지 않아도, 원래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
“그렇죠….”
아줌마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는 힘없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협회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뒤를 태천이와 안지민이 바로 따랐고, 도희는 조우민 협회장을 한 번 째려본 후에야 떠났다.
목에 무기가 둘려 있긴 했지만, 단둘이 남게 된 나와 조우민은 서로를 바라봤다.
“…….”
“…….”
“…정말로 괜찮겠어요?”
“괜찮으니, 백도운 헌터는 블랙 드래곤에 집중하십시오….”
“그러시다면야.”
어깨를 한 번 으쓱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조우민 협회장이 아직 할 말이 남은 얼굴로 나를 불렀다.
“백도운.”
사뭇 거칠고 싸늘한 목소리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런 목소리로 말을 했다면, 지금처럼 세상만사 다 귀찮은 사람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설마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연기였던 걸까?
아니면, 그저 진지해야 할 때이기 때문인 걸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경고하는데.”
“…….”
“오늘부로 최 클라우디아 수녀는 방주 보육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아야 할 거야.”
“…그러지 않는다면?”
“아니. 궁금해하지 마. 너도나도 후회만 하게 될 테니….”
“…….”
참 같잖은 협박이다.
아줌마가 방주 보육원을 나왔을 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일까?
부정적일수록 대체로 잘 들어맞는 내 직감이 자꾸만 경고해댔다.
조우민 협회장의 말을 무시하지 말라는 듯이….
그때,
[세계수는 조우민이 허세나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라고 전합니다.]새싹이도 메시지를 보내왔다.
허세와 허풍이 아니다….
즉, 나와 자신이 후회하게 될 거라는 조우민 협회장의 말은 진정으로 진심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바라봅니다.] [관리인의 못된 습관이 머리를 들이미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계수는 나뭇가지로 그 머리를 후려치고 싶다고 전합니다.]…걱정하지 마.
내가 아무리 막 나가는 놈이라도 다른 사람을 문제의 중심으로 밀어 넣는 짓은 안 해.
애지중지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세계수가 다행이라며 기둥을 쓸어내립니다.]뭐, 나 때문에 휘말리게 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세계수가 기둥을 쓸어내리던 것을 멈춥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세계수는 관리인을 향한 의심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하하, 귀엽긴….
검지로 스마트폰 화면 속 새싹이를 쓰다듬듯 문지르며 조우민 협회장에게 대답했다.
“일단, 기억은 해두지.”
“…잘 생각했습니다.”
바라던 대답이었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조우민 협회장은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안지민이 소파 뒤쪽으로 치웠었던 무기 형태의 파란 침낭을 테이블 위에 다시 펼쳤다.
저건 다시 왜 펼쳐?
바로 최희석을 만나러 갈 줄 알았는데….
「으음….」
그가 침낭을 펼치는 모습을 본 무기가 신음을 짧게 흘렸다.
제 몸을 본뜬 침낭을 펼치는 인간이라….
문득 무기 입장에서는 제 가죽을 벗겨 입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생각하니 무기가 조금 안쓰러운걸….
[세계수는 관리인의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칩니다.] [왜 매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투덜거립니다.]새싹이가 보낸 메시지 너머로 조우민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도운 헌터. 이만 나가줄래요?”
“……?”
“침낭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렇게 서 있으면 못 들어가겠잖아요.”
뭐래, 이 미친놈이?
침낭 구멍 막고 서 있는 것도 아닌데 못 들어가긴 뭘 못 들어가.
황당하게 바라보자, 그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보는 눈이 있으니 좀 쑥스럽군요.”
후….
놀고 있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