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74
제476화
콰앙!
커다란 원탁이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원탁 위에 놓여 있던 사진과 서류들이 바람에 휘말린 나뭇잎처럼 나부껴 떨어진다.
그 아래 서 있는 원의 입에서 거친 호흡이 튀어나왔다.
“후우, 후우….”
꽈악….
원은 바닥에 떨어진 백도운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짓밟았다.
밟은 사진을 좌우로 돌려대기까지 하는 발에선 도운을 향한 원통함과 분통함이 느껴졌다.
그 발을 덮듯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세계 헌터 협회가 작성한 도운의 신상 정보였다.
종이 맨 아래엔 오늘 오전 추가된 특이 사항이 쓰여 있었다.
[특이 사항 – 세계수 관리인(?)]팍!
원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종이를 발로 찼다.
고약하게 걷어차인 종이가 팔랑거리며 바로 옆에 떨어졌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그 모습에 원은 입술을 짓씹은 채 손을 휘둘렀다.
달달달…!
원의 손바닥만 한 륜이 나타나 빠르게 돌아가며 종이를 분쇄했다.
달달….
종이를 가루로 분쇄한 륜은 사라지지 않고 허공을 굴렀다.
“빌어먹을…! 겨우 정체를 밝혔을 뿐이거늘, 어째서 블랙 드래곤과 싸워 이긴 듯한 분위기란 말이냐!”
원이 머리가 아픈 사람처럼 검은 후드에 덮인 머리를 부여잡았다.
세상을 침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려던 원의 계획은 아주 간단히 실패했다.
도운이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정체를 밝힌 것만으로 세상은 황당하게도 희망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꼭 블랙 드래곤 토벌에 성공해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전 세계엔 ‘백도운 특집’이라는 단어가 붙은 방송이 줄지어 방영되기까지 했다.
방송의 내용은 대개 비슷했다.
– 도운 형이요?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분이죠.
– 오른팔인 저 지상욱이 여러분께 한 말씀 올리자면, 도운 형님께선 분명 블랙 드래곤을 손쉽게 토벌하고 나오실 겁니다!
– 토벌은 별로 걱정되지 않아요. 도운 형은 해내실 테니까. 그래서 저는 토벌 보다 어떡하면 새싹팀 리더가 될 수 있을지 더 궁금해요.
– 포기하시지, 김재식! 리더는 바로 나! 도운 형님의 진정한 오른팔…, 너희 뭐 하는… 웁웁!
– 실례했습니다.
– 저흰 신경 쓰지 말고 인터뷰 계속하세요~
같은 길드의 후배 헌터들이 인터뷰를 한 장면이 나오거나,
– 오늘 오전, 백도운 S급 헌터가 자신을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밝혔죠.
– 그렇습니다. 직접 세계수를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 그렇다면, 이 500m 정도 되는 길이의 마나 칼날을 뿜어내는 목검 아르카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 …헉! 미스터 제이크. 설마…?
– 그렇습니다. 아르카는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제작한 무기일 거라고 보아야 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도운이 지닌 장비를 정리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볼 수 있는 아르카를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정확한 정보를 다루지 않는 방송이었는데도 전 세계 사람들은 즐겁게 시청했다.
“크으….”
여전히 원이 머리를 부여잡은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원의 머리로는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활기찬 축제 분위기가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도운의 자신만만한 모습 때문에?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다고 한들, 세상엔 그런 게 통하지 않는 부정적인 이들이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 여러 사건 사고가 벌어질 만도 했는데… 세상엔 크고 작은 범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틀어막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느꼈다.
“설마….”
바로 머리를 가로젓는다.
전 세계의 범죄를 틀어막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이한 일은 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원이 의아함을 느꼈을 때, 문이 끼익 열리며 해골이 들어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해골은 벽에 처박힌 원탁과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진 사진과 종이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마음은 좀 편해졌나?”
“…….”
“안 편한가 보군. 그야 그렇겠지. 자네 뜻대로 된 게 하나도 없으니.”
“…비난하러 왔나?”
“별로? 난 누구와 달리 마음이 넓거든.”
해골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방금 내뱉은 누구는 원을 뜻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 백도운을 무저갱으로 끌어들이는 계획이 실패했을 때 원이 책임을 전가하고자 해골을 비난한 일을 탓하는 말이기도 했다.
핏…!
잘근잘근 씹는 원의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달달달…!
허공에서 구르던 륜이 더 세차게 굴렀다.
“…어딜 갔나 왔나?”
“청소하고 왔네.”
“……?”
“세계 헌터 협회가 방금 대대적으로 우리를 공적(公敵)으로 발표했거든.”
“흥. 그래서?”
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세계 헌터 협회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 내내 크라우드를 뒤쫓고 있었다.
이제 와서 공적으로 발표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에 불과했다.
원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 해골이 단조로운 어조로 대답했다.
“전 세계 모든 조직이 우리 흔적을 찾고 있다는 뜻이네. 국가, 국제연합, 헌터 협회, 길드. 심지어 칠죄종 놈들까지….”
“칠죄종? 그놈들이 갑자기 우릴 왜 찾는단 말인가?”
“나도 왜 그런가 싶어 알아봤더니, 놈들이 백도운과 동맹 관계였다더군.”
“뭐라고? 어떻게?”
원이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S급 헌터이자 세계수 관리인인 백도운과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칠죄종이 어떻게 동맹 관계일 수 있는단 말인가?
심지어 백도운은 칠죄종의 폭식과 오만을 붙잡은 전적까지 있었다.
그 때문에 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백도운과 그들이 동맹 관계일 수 있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나태의 산하에 천칭 길드란 곳이 있는데, 백도운이 그곳 마스터와 협의를 맺었다는군.”
“협의?”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협의였다고 한다. 그걸 어기는 순간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이야.”
“저주…의 일종인가?”
“내 짐작도 그렇네.”
“하지만, 백도운이 왜 그딴 걸 체결했단 말인가? 뭐가 아쉬워서?”
“나도 모르지. 다만 유추해보자면, 흥미로워 보였던 게 아닌가 싶다.”
“…….”
원은 입을 다물었다.
흥미로워 보여서 저주의 이능(異能)이 담긴 협의를 맺었다?
세상에 그런 바보 천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있을 리가 없었다.
없는데….
왜일까?
원은 자꾸만 해골의 유추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사 빠진 인간이 바로 백도운이었으므로.
“…아무튼. 그 천칭 길드 놈과 나머지 칠죄종 두 명이 동맹을 체결했네.”
“아아. 그래서 백도운이 칠죄종과 동맹을 맺었다고 말한 거군.”
해골의 말을 이해 한 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끄덕임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관자놀이가 아래로 내려오고 반대로 턱이 살짝 올라갔다.
“그래서? 그것과 청소를 하고 온 게 무슨 상관인가?”
“세계 헌터 협회야 우릴 찾지 못하겠지. 하지만 칠죄종 놈들은 다르지 않나. 우리와 같이 뒤쪽 세계에 발을 걸친 놈들이니….”
“놈들은 우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건가?”
“그렇지.”
“뭘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군. 자넨 칠죄종 놈들이 우리 위치를 알아내 백도운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할 것 같나? 그러기 전에 단서가 될 것을 정리하고 온 거고?”
“바로 그것이네.”
“어처구니가 없군…! 놈들이 대체 뭐가 아쉬워서? 아무리 동맹 관계라고 해도-”
“잘 보이고 싶은 것 아니겠나.”
해골이 어깨를 으쓱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단조로운 어조였다.
그 탓에 원은 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잘 보이고 싶다니?”
“이유는 모르겠으나 놈들은 백도운이 블랙 드래곤을 토벌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네.”
“……!”
“그러니, 붙잡히지 않고자 간이고 쓸개고 다 갖다 바치려는 것이지.”
“그건 이상하군. 건드리지 말자고 협의를 맺었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어떤 일이든 우회하는 방법이 있는 법이지. 더군다나 백도운 옆엔 이태천과 백도희가 있고.”
“…그건 그렇군.”
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백도운이 세계수 관리인으로서 나서기 전까지, 크라우드의 가장 성가신 적 중 하나가 바로 이태천과 백도희였다.
그때의 이태천은 지금처럼 S급 헌터도 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칠죄종 그놈들까지 백도운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로군.”
“의심의 여지가 없네. 심지어 놈들은 자경단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었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놈들이 나서서 다른 범죄 단체를 억누르고 있다는 뜻이네.”
“뭐? 설마, 백도운의 눈치를 살펴 그런 짓까지 하는 건가? 칠죄종이란 놈들이?”
“그런 셈이지.”
“하…!”
원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로 조금 전 누군가가 범죄를 틀어막고 있다고 생각한 찰나였다.
그런데 그게 칠죄종이 벌인 짓이라니 황당하고 가소로웠으며 이름값이 아까웠다.
“누가 보면 백도운이 벌써 블랙 드래곤을 토벌한 줄 알겠군….”
“헛되고 헛된 희망이지.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 그렇겠지….”
원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해골은 오늘 오전에 있었던 백도운의 인터뷰가 원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깨달았다.
해골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께서도 죽이기 꺼린 블랙 드래곤이네. 백도운이 토벌할 수 있을 리 없어.”
“그렇지….”
“…백 번을 양보하고 또 백 번을 양보해 토벌에 성공했다고 한들 문제없고.”
“……?”
“토벌이 끝난 후 모두가 무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 그렇군…. 성공할 리도 없지만,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온전할 리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 흐….”
해골의 말에 동의하며, 원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고민에 빠진 듯 제자리에 멀거니 서 있었다.
해골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어떤 계략을 구상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또 그 계획의 성공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도.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묻지 않았다.
계획이 연달아 실패한 탓일까?
해골이 보기에도 지금 원의 정신 상태는 별로 좋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따지고 묻는 것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터였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
해골의 말에도 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구르는 륜 소리만 대답처럼 달달 울렸다.
“…….”
해골은 원을 내버려 두고 조용히 방을 떠났다.
계획을 구상하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또 잇따른 실패에 이만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였다.
방을 떠나 그가 간 곳은 아일랜드의 글렌비 던전에 있는 지하 은신처였다.
오랜 은신처로 돌아온 해골은,
“윽…?”
불쾌함을 느끼고 신음을 흘렸다.
원은 몸이 찌뿌드드하고 괴로워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그 사태를 파악하는 데는 5초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은신처에 가득한 마나를 해골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건, 해골의 숙적인 세계수의 마나였으므로.
“설마… 설마…!”
해골이 거칠게 내달려 실험실로 내려갔다.
실험실 한쪽 벽을 가득 채웠던 대형 크리스털이 보이지 않았다.
크기가 훨씬 작은 크리스털은 있었으나 해골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윽…!”
거친 신음을 흘리며 해골은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으아아! 백도운…! 백도우우운!”
원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해골이 모시는 마족의 정수로 가득했던 지하는 깨끗하게 텅 비어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맡고 있으면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픈 피톤치드 향뿐이었다.
산뜻한 향기 속에서 해골이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이었다.
“내 네놈을 꼭 죽여 버릴 테다…!”
하나는 원망을 노발대발 소리치는 것이었고,
“빌어먹을, 빌어먹으을…!”
다른 하나는 상쾌한 향기를 뿜어내는 지하 은신처에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해골은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제대로 살펴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줄행랑을 쳤다.
그 추하디추한 모습을,
“…….”
작은 크리스털에 갇혀 죽음을 소망하고 갈망하는 존재가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