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72
제474화
“오.”
다 함께 협회장실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파란색의 긴 침낭이었다.
가죽 소파 사이에 있는 테이블 위의 침낭의 모습은 무척 놀라웠다.
「으음….」
내 목에 둘린 무기가 아연한 듯이 신음을 흘릴 정도로.
무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파란 침낭의 형태는 무기와 똑같이 생겼으니까.
그렇다.
도희가 무기의 외형으로 목도리와 바디필로우에 이어 침낭까지 제작해 판매한 것이다.
평소에 자주 쓰이는 물건도 아닌 침낭까지 제작 판매한 걸 보면….
아무래도 도희는 길기만 하면 전부 무기 이미지를 적용한 듯하다.
다음엔 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겠는걸.
무기가 저게 대체 뭐냐고 묻듯 도희를 바라보았지만, 도희는 뻔뻔스럽게 피하지 않았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왔군요….”
파란 침낭 속에서 조우민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익. 꾸물꾸물….
침낭 지퍼가 열리고 조우민 협회장이 얼굴을 드러낸다.
이어 허물을 벗듯 꿈틀거리면서 빠져나왔다.
사람을 내려오게 해놓고선 이제야 침낭에서 나오다니, 여하간 저 인간도 제정신은 아니다.
침낭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그가 아줌마 앞으로 걸어와 악수를 청했다.
“전 조우민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군요. 음-”
“최 클라우디아…!”
“……?”
“최 클라우디아라고 불러줄래요? 부탁이에요…!”
두 눈썹 끝이 살짝 처진 표정의 원장 아줌마가 다급하게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아하니 옛날 별호로 지칭되는 것이 부끄러운 것 같다.
뭐,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아주 어린 막냇동생 앞에서 음욕의 마녀라고 불리는 큰언니, 라고 생각해보라.
나 같으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거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 듯 조우민 협회장이 피식 웃는다.
그러고는,
“다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 클라우디아 수녀님.”
아줌마가 바란 대로 해주었다.
놀라운걸?
그녀가 음욕의 마녀라는 것도, 한진환과 있었던 일도 들어서 다 알 텐데….
어떻게 저렇게 공손하게 대할 수 있는 걸까.
“이곳으로 와 앉으시죠.”
조우민 협회장의 목소리가 내 고민을 밀어낸다.
뒤쪽의 소파를 가리킨 그의 팔을 따라 다들 소파로 걸어가 앉는다.
아줌마와 도희와 태천이가 오른쪽, 최희석과 안지민이 왼쪽이다.
상석엔 당연히 이 방의 주인인 조우민 협회장이 앉았고, 가장 늦게 움직인 내가 그 맞은편에 앉았다.
나까지 자리에 앉았을 때 조우민 협회장이 바로 말했다.
“일단, 백도희 헌터가 걱정하는 일…. 그러니까, 최 클라우디아 수녀님을 당장 잡아가는 일 같은 건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그야 이미 얘기가 끝났거든요.”
“……?”
“직접 듣는 게 이해가 빠르겠죠.”
스윽.
조우민 협회장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을 톡톡 두드리고 테이블에 내려놓자, 홀로그램 영상 두 개가 떠올랐다.
각각 떠오른 화면엔 교황과 앨릭스 헌터 협회장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건 단순한 동영상이 아니었다.
– 허어…!
– 오랜만이오, 최 클라우디아 수녀.
앨릭스 협회장이 아줌마를 보고 감탄을 흘리고,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이 미소를 지으며 아줌마에게 인사를 건넨다.
즉, 방금 조우민 협회장은 교황과 세계 헌터 협회장 두 사람에게 동시에 통화를 연결한 거다.
다들 놀라는 가운데, 아줌마만 교황을 향해 공손히 인사에 답했다.
“…안녕하세요, 성하.”
– 오…. 이거 놀랍군. 오늘은 높임말을 써주는 게요?
“오늘은, 이라뇨. 제가 언제-”
– 시끄럽게 설교나 할 거면 듣기 싫으니 꺼져, 이 늙은 영감탱이!
얼씨구?
저 말투… 설마….
– 내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 그리 말했던 것 같소만?
“윽….”
모두의 시선이 아줌마를 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교황한테 저런 소릴 했다고? 미쳤나?
그런 생각들이 담긴 시선들을 마주하게 된 아줌마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그녀를 태천이가 안쓰럽게 바라봤다.
물론, 그 동정 가득한 시선이 더욱더 아줌마를 부끄럽게 했다.
아줌마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잡은 두 손가락은 자꾸만 꼼지락거렸고.
“그땐 제가 정말 큰 실수를 했어요….”
– 후후, 괜찮소. 재미있었으니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네요….”
– 자. 그럼 이제 본론을 얘기할까.
본론.
교황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나와 앨릭스 협회장은 ‘조안 프랭크’ 재판소장과 의논을 나눴고, 약식(略式)으로 처리하기로 했소.”
교황이 천천히 말했다.
조안 프랭크는 ‘세계 헌터 재판소’의 소장이었다.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건 그녀가 같은 칠죄종이었던 폭식 에리크의 재판을 맡았기 때문이다.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내가 얼마 전에 붙잡아 앨릭스 협회장에게 넘긴 오만도 그녀가 판결했을 거다.
– 그리고, 최 클라우디아 수녀를 무기징역(無期懲役)에 처하기로 했지.
“…….”
“무기징역…이라고요?”
조용히 듣는 아줌마 옆에서 도희가 묻는다.
또 미간이 깊이 파일 정도로 찌푸렸는데, 옆의 태천이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등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조우민 협회장이 당장 붙잡아갈 거라고 하지 않았던 말 때문이다.
그리 말해서 안심시켜 놓고서 무기징역이라니, 의아해하는 게 당연했다.
도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항소할게요!”
– 항소는 불가하오.
“뭐, 뭐라고요?”
– 우린 항소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소.
“…….”
교황의 말에 도희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꽈악.
주먹을 말아쥐며 조우민 협회장을 째려본다.
사람을 죽이는 눈빛이란 것은 저런 걸 뜻하겠지….
“굳이 불러들여서 한다는 말이 이건가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리고 그건, 본인이 가장 바라고 있고요. 안 그렇습니까?”
조우민 협회장이 아줌마를 바라봤다.
아줌마는 그를 몇 초간 마주 보다 한숨을 내쉬곤 도희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애정 가득한 눈으로.
“그래, 도희야. 그건 조 협회장 말이 맞아.”
“언니….”
“그리고 계속 들어보면 너도 납득하게 될 거야.”
“납득은 무슨! 무기징역을 어떻게 납득해요? 안 그….”
고개를 홱 돌려 윽박지르려던 도희가 멈춘다.
이어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도희의 시선이 향한 곳엔 내 오른손이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검지에.
톡톡톡 톡톡.
톡톡톡….
톡, 톡.
배경 음악처럼 울리던 소리가 멈춘다.
동시에 하나둘 시선들이 내게 모여들었다.
내게 모인 시선들엔 홀로그램 영상 속 인물들의 것도 포함돼 있다.
“아줌마를 기한 없이 감옥에 가두겠다, 라….”
꼴깍….
안지민이 침을 삼켰다.
자기도 모르게 삼킨 침의 소리가 커서, 그는 깜짝 놀라 목을 붙잡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 할 말만 했다.
“그건 당신들 마음인데, 할 수는 있고?”
– …….
“나를, 아니. 우리를 막을 수 있겠어?”
S급 헌터는 그 국가의 전략핵무기나 다름없다.
괜히 S급 헌터를 소유한 국가들이 A급 헌터가 가장 많은 영국보다 강대국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
그런데 백운천엔 그 S급 헌터가 두 명 있고 그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뿐인가?
A+등급 몬스터인 무기와 임페일도 있다.
그런 우리에게서 아줌마를 감금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떤 나라도 그녀를 가둘 감옥을 마련하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난 자신만만하게 교황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게, 사실 막을 수 있습니다.”
조우민 협회장에게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나왔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태도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네.”
“…재미있네. 어떻게?”
정말로 흥미로웠다.
S급 헌터 둘과 A+등급 몬스터 둘에게서 지켜낼 수 있는 감옥.
그런 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그위친의 숲을 상정해둔 건 아니겠지.
그위친이라면 우리 넷이 우르르 몰려갈 필요도 없이 나 혼자라도 충분했다.
부탁하면 순순히 들어줄 테니까.
“바로 그걸,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했습니다.”
조우민 협회장이 발언권을 넘겼다.
다시 자신에게로 넘어온 발언권에 교황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어 우릴 막을 수 있다는 감옥에 대해서 말했다.
그곳은, 내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곳이었다.
또 정말로 우릴 막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 우린 최 클라우디아 수녀를 방주 보육원에 투옥하기로 했소.
“지금, 어디라고…?”
– 음? 내 발음이 이상했나? 방주 보육원이라고 했소만.
“…….”
아니, 지금 장난해?
무기징역이라며.
감옥이라며.
그 말을 듣고 누가 방주 보육원일 거로 생각해?
나만 어이가 없나 싶어 주변을 돌아봤다.
도희와 태천이도 황당함에 입을 쩍 벌리고 있고, 이 미래를 미리 봤을 아줌마만 멋쩍게 웃었다.
“그러게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하…!”
도희가 세찬 헛웃음을 흘린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까?
슥….
굳이 아줌마에게 따져 들지는 않았고, 손을 뻗어 아줌마의 손을 꼭 쥘 뿐이었다.
– 물론 감시는 있을 거요. 자유를 제한받는 등 여러 불편도 감수해야 할 테고.
그야 그렇겠지.
벌을 주기 위한 감옥으로 사용될 장소다.
마냥 편하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리라.
아줌마도 그걸 바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우리 아이들한테 공포감만 조성하지 않으신다면, 어떻든 상관없어요….”
–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우리 교황청에서 직접 사람을 보낼 계획이니까.
교황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교황청에서 사람을 보낸다, 라….
혹시라도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이 의심으로 피어올랐다.
하지만,
“네, 믿어요.”
의심과 달리 아줌마는 신뢰의 뜻을 내비쳤다.
미래를 보는 그녀가 한 대답이다.
내 부정적인 생각이 잘 들어맞는 편이라고는 해도, 그녀가 미래를 보는 것보다 더 잘 맞을 리 없다.
“…그렇다면, 내 일은 끝난 것 같군.”
그때 최희석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줌마는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참 그녀답지 않았다.
뭐, 지은 죄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난 이만 나가보도록 하지.”
그리 말한 최희석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앉은 안지민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 협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부르르 떱니다.] [조용하니 오히려 무서운 것 같다고 전합니다.]원래 분노란 게 그래.
길길이 날뛰기만 하는 분노는 무섭지 않은 법이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굳게 닫힌 문에서 고개를 돌려 조우민 협회장을 봤다.
그의 말대로 걱정하지 않기엔 최희석의 분노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심지어 안지민은 전전긍긍하기까지 했다.
앞으로 최희석이 벌일 일이라도 걱정되는 듯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우민 협회장이 느긋하게 말했다.
“이 순간을 예측한 한진환이 남긴 것이 있으니….”
“한 선배가요?”
한진환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 태천의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이 순간을 예측했다니.
설마 우리 아줌마가 자수할 걸 알았다는 건가?
“그걸 보여주면, 저 친구도 납득할 겁니다. 방금 여러분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우선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당연히 속으로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진환이 남겼다는 것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지금껏 조용히 있던 앨릭스 협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저 인간도 있었지.
너무 입 다물고 있어서 완전히 잊어버렸었다.
“아줌마에 관해 또 할 말이 있습니까?”
– 묻고 싶은 것들이 많긴 하지. 이것저것 도움도 받고 싶은 일도 많고 말이야.
미래를 보는 능력을 이용하고 싶다는 뜻이다.
가당찮은 소릴 하는군.
그딴 걸 내가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가 별로 바라는 일이 아닐 테니까.
– 그런데 지금 그런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네.
거부하려는데, 앨릭스 협회장이 먼저 선수를 쳤다.
없다고?
– 내가 말하려고 한 건 다른 일이네.
“혹시 토벌 이야기입니까?”
– 그건 아니네. 아, 아니. 관련 사안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
“……?”
– 라르바오스. 그곳에 관련해서 말하려고 했거든.
라르바오스, 라면….
블랙 드래곤 토벌 건에 대한 정보를 세상에 퍼뜨린 영국 신문사다.
갑자기 거기 얘기가 왜 나오지?
“그놈들이 왜요? 또 무슨 기사라도 올렸습니까?”
– 그건 아니네.
“……?”
– 그게 사실….
앨릭스 협회장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