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71
제473화
파아앗….
원장 아줌마가 블랙 드래곤 토벌 건에 관한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등 뒤쪽에서 흰빛이 내뿜어졌다.
도희와 태천이가 순간이동 마법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
뒤를 돌아보니, 도희가 옥상에 있는 면면을 빠르게 훑더니 눈을 찌푸렸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읽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선수를 쳐야겠지.
휙!
아줌마를 향해 검지를 내뻗었다.
그런데,
“…….”
나보다 아줌마가 더 빨랐다.
그녀의 검지가 이미 날 향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을 하기 위함인지는 뻔했다.
아줌마는 본인이 스스로 말한 대로 날 키운 사람이었으므로.
“백도운이 여기서 지랄, 아, 아니. 난동 부리려고 했어!”
“…….”
도희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 순간, 옆에서 안지민이 딸꾹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참 많은 감정이 담긴 딸꾹질이었으나 터무니없는 광경을 봤을 때 느끼는 황당함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안지민이 봐야 하는 광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젠 내 차례였으니까.
“들어봐, 도희야. 아줌마는-”
“너 그거 정말 말할 거야?”
“자신을 해치려고 했어!”
아줌마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끝까지 말했다.
딸꾹! 꿈틀…!
안지민의 딸꾹질이 들려오는 가운데, 도희의 한쪽 눈썹이 불만을 드러내고 싶은 듯 꿈틀거렸다.
그런 도희를 아줌마가 불안하게 쳐다봤다.
물론 나도 그녀와 똑같았다.
자기보다 어린 애한테 서로의 잘못을 이르는 이 비겁하고 비열한 순간이 참 괴롭기 그지없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딸꾹, 딸꾹….
안지민의 딸꾹질이 점점 잦아들었다.
“최희석 선배님….”
그렇게 1분 정도 흘렀을까?
도희가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좀 놀랍다.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쏟아질 줄 알았는데….
“선처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건 안 되겠군.”
최희석이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럴 만했다.
원장 아줌마가 누구인가?
칠죄종, 음욕의 마녀다.
날 포함해 S급 헌터를 제외하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네 인물 중 하나이다.
실력이 숨긴 이가 또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만약의 경우이니 차치하고.
아줌마 같은 인간을 헌터 협회 옥상에 계속 세워두는 것은 절대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다.
물론, 최희석에겐 그녀가 누군지 따위는 그리 중요치 않으리라.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네.”
“…….”
그에게 아줌마는 그저 한진환의 죽음을 고정해 죽인 살인자일 뿐일 테니까.
겉으로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서, 최희석이 속으로 느끼고 있을 분노가 별것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배님. 그녀는 우리 백운천 간부 모두를 키우신 분이에요.”
우리 도희는 그 분노를 이해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엔 아줌마를 향한 도희의 걱정이 너무 앞선다.
최희석이 한진환과 오랜 세월을 함께 했듯, 도희도 아줌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니까.
“오늘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면, 다들 많이 슬퍼하겠죠?”
도희가 은근한 협박을 이어나간다.
“…….”
“어쩌면… 제대로 싸우지 못할 정도로요.”
“……!”
최희석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도희가 블랙 드래곤 토벌을 두고 협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모양이다.
아줌마가 그런 도희를 불렀다.
“도희야.”
“응, 언니.”
“……!”
도희의 바로 이어진 대답에 아줌마가 말문이 막힌 듯 눈을 크게 떴다.
나와 태천이의 반응도 비슷했다.
도희는 내가 하트 브레이크를 쓰고 거의 죽다 살아난 이후로 아줌마를 ‘언니’라고 지칭한 적이 없다.
늘 깍듯하게 존댓말을 붙여가며 ‘원장 수녀님’이라고 불렀다.
나와 태천이를 오빠가 아니라 ‘오라버니’라고 부르게 됐던 것처럼.
그런 도희가 갑자기 옛날과 같이 언니라고 편하게 불렀으니, 아줌마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휴…. 저러니까 나랑 아줌마가 서로 잘못했다고 일러바치지….
“시끄러워요.”
그리 말하면서 도희가 날 째려본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억울해서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바라보는데, 도희가 말을 덧붙인다.
“방금 속으로 나 욕했잖아요.”
귀신이네, 진짜.
“누구보고 귀신이래.”
“…….”
너 보고요.
예전에도 그러더니, 이 정도면 진짜 독심술 배운 거 아닌가….
어이가 없네, 정말?
“나는… 괜찮아, 도희야.”
내가 황당함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아줌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말을 이었다.
괜찮다는 말을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싶은 듯 싱그러운 미소까지 짓는다.
“이대로 재판을 받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응. 언니 마음 충분히 이해해.”
도희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고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마냥 긍정하며 동의하지도 않았다.
이해한다는 건 그저 그뿐인 말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슬픔을 느끼는 건 변하지 않아.”
“도희야….”
“아주 슬퍼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겠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분명히.”
“후우….”
아줌마가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한숨 속엔 곤란함이 전혀 담기지 않았는데,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녀가 한재임을 통해 전언을 전한 것은 이런 미래를 이미 보고 어떻게 대처할지도 생각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방법은….
“……!”
슥….
아줌마가 두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저 자세는 아까도 보았다.
내게 자해할 거라고 협박할 때의 자세다.
아줌마가 미쳤나.
도희랑 태천이 앞에서까지 저런다고?
애들 애 떨어뜨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건가.
팟!
바로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다.
“아줌마, 멈춰.”
“……?”
아줌마가 심장에 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갸웃거린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반응에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저렇게 의아해한다는 건 그녀가 본 미래에서 내가 가만히 있었다는 뜻인데….
그게 말이 되나?
지금처럼 막으려고 나서는 게 나다운 행동이건만.
“역시… 도운이 그 모양이어도 네가 세계수 관리인이긴 하네.”
저게 갑자기 뭔 소리래?
아니, 그보다 그 모양은 무슨 모양인데.
“내가 본 미래보다 일찍 도착한 것도 그렇고, 방금처럼 오해한 것도 그렇고…. 미래를 확실하게 볼 수가 없네.”
“흠…?”
확실하게 볼 수 없다, 라….
내가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이렇게 나서는 미래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이런 적이 없었다는 뉘앙스인 걸 보면, 그 이유는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기 때문인 것 같고.
“오해라고?”
“응.”
“…그럼 두 팔은 왜 들어 올린 건데?”
“이러려고 그랬지.”
슥….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아줌마가 두 손을 더 들어 올렸다.
가슴을 지나쳐 올라가 머리 부분에 도달한 그녀의 두 손은….
휙, 휙.
봉인 마법을 폭발시키려고 했을 때 이리저리 휘몰아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옥상에 부는 바람 때문에 가지런하게 모이지는 않았지만, 전보단 확실히 보기 좋았다.
아니, 무슨 머리카락 정리를 이런 어울리지 않는 타이밍에 해?
그럴 필요가 뭐가 있다고.
황당함을 느끼며 팔을 내렸다.
“…누가 봐도 오해할 모습이었잖아.”
“내가 설마 도희 앞에서까지 그러겠니? 태천이도 있는데.”
“내 앞에선 해도 괜찮고?”
“넌 나 못 혼내잖아. 도희는 나 혼내고.”
“…….”
참 잘나셨구만.
나이 앞 자릿수가 다른 애한테 혼난다는 소리를 뭐 잘났다고 평온하게 말하는 걸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빤히 쳐다보는데,
“언니.”
도희가 우리의 잡담을 끊어내려는 듯 아줌마를 불렀다.
그리고 우린 도희의 부름과 동시에 사이좋게 입을 닥쳤다.
나도 그렇고 태천이고 그렇고 아줌마도 그렇고….
왜 우린 도희한테 꼼짝 못 하는 걸까?
우리 중에서 나이도 가장 어린데.
심지어 세 명 모두 싸우면 이길 수도 있는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건 차치해두고서라도.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세 사람에게 있는 일말의 양심 때문인 듯하다고 추측합니다.]일말의 양심…?
그게 무슨 소리야?
[세계수가 관리인을 관찰해온 결과….] [관리인에겐 한 무의식이 기저에 깔렸다고 전합니다.]무의식?
나한테?
[세계수가 그건 바로 관리인 자신보다 도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무의식이 태천과 최 클라우디아의 기저(基底)에도 깔렸다면, 세 사람이 도희에게 꼼짝 못 하는 행동이 이해된다고 덧붙입니다.]어라, 굉장히 그럴듯한 추론인걸?
새싹이 말마따나 도희는 우리 세 사람 모두가 애지중지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우리보다 세상을 올바르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깔렸다?
그 추론대로라면 우리가 도희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해된다.
새싹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처음부터….”
아줌마가 조금 전 도희의 부름에 답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 답은 도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난 도운이만 설득할 생각이었어.”
“뭐라고요?”
도희가 당황스러운 듯 되묻는다.
나만 설득할 생각이었다는 말에서, 자신은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말로 알아들은 듯했다.
아줌마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앞서 말했듯 아줌마는 도희를 애지중지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었는데.
나만 설득할 생각이었다는 것은,
“도운이만 설득하면, 도희 네 바람대로 될 거였으니까.”
그런 뜻이었다.
도희가 그녀의 말에 의문을 가지고 중얼거렸다.
“내, 바람대로 된다고요…?”
“응 이제 곧 전화가 올 거거든.”
“……?”
아줌마의 말에 도희와 태천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애애앵!
스마트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그 벨 소리는 마치 사이렌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스파트폰의 주인은 놀랍게도,
“…실례합니다.”
안지민이었다.
뭔 벨 소리가 저래?
“이건 꼭 받아야 하는 전화여서.”
그리 말하면서 안지민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도희에게 블랙 드래곤 토벌을 빌미로 협박받는 상황에서 발신자를 확인도 하지 않는다?
그건 벨 소리를 통해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알았다는 뜻이다.
본인이 말한 대로 이런 상황에서도 받아야 했다는 뜻이고.
대체 누구기에 벨 소리를 저따위로 해놓은 걸까….
톡.
공손하게 “네”,“네” 대답하던 안지민이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내밀었다.
– 안녕들 하십니까….
스마트폰 너머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귀찮은 듯한 그 목소리는 나도 아는 목소리다.
“조우민 협회장…?”
나처럼 발신자의 정체를 알아차린 도희가 중얼거린다.
– 남의 집 옥상에서 그만들 하시고 내려오시죠.
“내려오라고요?”
– 그럼 계속 대치하고 있을 겁니까?
“…….”
도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계속 대치하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었다.
– 부탁하신 대로 선처해드릴 테니, 지금 바로 협회장실로 내려오십시오.
얼씨구…?
지금 옥상엔 우리를 제외하면 최희석과 안지민뿐이다.
통신기는 없었고, 통화가 연결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우민 협회장은 도희가 최희석에게 했던 말을 알고 있었다.
즉, 그에게 우리 새싹이처럼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못마땅하게 바라봅니다.] [대체 언제까지 엿들었다고 표현할 것인지 불만을 토로합니다.]뚝.
새싹이가 불만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더 할 말은 없다는 듯 조우민 협회장의 통화가 끊겼다.
“…….”
“…….”
“…….”
다들 안지민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조용히 바라봤다.
제 능력으로 이미 이 상황을 봤던 아줌마를 제외하면, 다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듯했다.
물론,
“안 가고 뭣들하고 섰어?”
나는 바로 움직여 옥상 문을 향해 걸어갔다.
초대를 받았으면 가줘야 인지상정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