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07
제509화
“아빠! 나왔어!”
유재이는 힘차게 대장간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녀의 활달한 목소리가 울리는 것과 달리 대장간은 조용했다.
규칙적으로 울리던 철 두드리는 망치 소리도,
높은 화력으로 인한 뜨거운 열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평소와는 극명하게 다른 모습 때문이었을까?
재이는 문득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녀의 두 발이 천천히 대장간 작업실로 몸을 옮겨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녀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이는 작업실로 들어가게 됐다.
“아빠. 거기 있어…?”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아빠를 불렀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고요한 침묵이 그녀를 반긴다.
또한, 그 침묵이 형상화한 듯이 덩그러니 놓인 망치가 재이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항상 지니고 다니던 귀수산 등껍질 망치였다.
씻을 때도, 식사할 때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 때조차도 품에 챙기던 물건이었다.
그러므로 그 망치는 재이가 원했던 확인이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어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확신할 수 있는 확인이.
“아빠….”
재이의 입에서 걱정스러운 부름이 새어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 부름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대장간에 없었다.
풀썩….
목표를 찾아가지 못한 부름이 공기 중에 흩어지듯 재이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
고요한 침묵이 대장간에 내려앉은 채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닮은 사람을 봤다는 목격 사례도 전혀 없었기에, 재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이렇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야….”
재이는 걱정을 바로 부정했다.
등교할 때만 해도 밝게 인사를 건넸던 아버지가 학교를 다녀오고 나니 사라졌다….
그냥 받아들이기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상황.
자연스럽게 그녀는 어떡하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작 학생이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으나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재이는 그녀가 어떤 길을 걸으면 될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대장장이 유지성’이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든 그는 분명히 대장장이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자신도 그처럼 대장장이로 살면 될 일이었다.
그리하면 언제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즐겁게 배우고 누구보다 잘할 줄 아는 것이 그 기술이기도 했으므로.
덥석.
재이는 그간 덩그러니 놓여 있던 망치를 손에 쥐었다.
“……!”
망치는 오랜 세월 다룬 듯이 그녀의 손에 꼭 맞았다.
아버지의 것이기에 그럴 리 없었는데도.
“설마….”
그 이유를 재이는 금세 알아차렸다.
그녀의 아버지 유지성이 제 딸의 손에 딱 알맞게 망치를 조정하고 떠난 것이었다.
“아빠….”
재이는 망치를 고쳐잡았다.
그러고는 머릿속에 망치를 그녀의 손에 딱 맞게 조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럴 시간 있었으면 메모나 남기고 떠날 것이지…!”
불평을 투덜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그러나 길을 찾은 사람이 누구나 그렇듯 밝았다.
***
“…….”
재이는 상념에 빠져 몇 분간 조용히 있었다.
앨릭스 협회장은 그런 그녀를 채근하지 않고 매너 있게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 침묵이 3분쯤 더 흐르고 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생각이 맞아요.”
“음.”
앨릭스 협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재이의 입에서 나온 긍정의 말은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하지만 이어 덧붙여지는 말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 시작할 땐 분명 그랬죠.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이젠 아니라는 거요?”
“이 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거든요. 수정이부터 시작해서, 남산 아저씨와 해체업자 아저씨들. 그리고….”
톡톡톡….
대장장이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을 나열하던 순간, 재이의 머릿속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를, 재이는 언젠가부터 편하게 여겼고 좋아하게 됐다.
어쩐지 옛날 그녀의 아버지가 망치질하던 소리와 유사하게 들렸던 탓이다.
사실 두 소리는 음도 세기도 간격도 전부 달랐다.
그렇기에 그저 휘발된 추억으로 인해서 착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도운이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소리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톡톡톡….
“아무튼,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
“그러니까, 뭐…. 대장장이를 하는 게 그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음, 음. 청춘이로군.”
앨릭스가 재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뜬금없는 소리에 재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청춘’이라는 단어가 왜 나온단 말인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보기 좋다는 소리니 그리 눈을 찌푸리며 보지 마시오.”
“…….”
재이는 말문이 막혔다.
앨릭스 협회장부터 뒤에 서 있는 로미네와 일리스까지, 그들은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TV 드라마를 보고 감동한 시청자들 같아 보여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황당한 마음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본론으로 돌아와 줬으면 싶은데요?”
“아. 이거 실례.”
그리 말하며 앨릭스 협회장 일행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또 흡족한 듯이 웃던 미소도 천천히 거뒀다.
아까처럼 진지한 얼굴이 된 것을 본 후에야 재이는 본론을 말했다.
“그러니까, 난 크라우드가 아버지에 대해 뭐라고 떠들어도 무너지지 않아요.”
“그렇소?”
“네.”
“미안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소.”
“뭐라고요?”
재이는 눈을 찌푸렸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믿지 않는다고 하니 기분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앨릭스 협회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많이 봐왔거든. 매정하고 차갑게 말하다가도, 제 가족들이 정말로 공격당했을 때 여지없이 무너지던 헌터들을.”
“…난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럴 자신도 있고.”
“자신? 글쎄. 당신은 이미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을 텐데.”
앨릭스 협회장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재이는 작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J.Y.대장간 앞에 크라우드의 버섯이 나타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물었고, 조롱 섞인 비웃음과 함께 정보를 들었었다.
“재이 씨.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아버님은 크라우드가 아니었어요.”
“잠깐 함께 일하긴 했지만요.”
“8년 전 그한테도 스카우트를 제안했거든요. 재이 씨랑 다르게, 아버님은 그걸 받아들였고요.”
“당연히 죽였죠.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그 말들을 들은 재이는 평온을 유지하지 못했었다.
앨릭스 협회장의 말처럼 여지없이 무너졌던 거다.
당시 일대 길드의 헌터 ‘심윤진’이 타이밍 좋게 순간이동 마법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실드 마법 바깥으로 나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홍수정의 기억을 읽었다면, 그날 일 또한 당연히 읽었으리라.
“…….”
“단언하지. 당신은 또 그럴 거요.”
“아니….”
재이는 부정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는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엔 그렇지 않을 거다.
-라는 생각은 그저 자기 생각일 뿐이었다.
그의 말대로 재이는 또 그럴 가능성이 컸다.
이미 한 번 무너졌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또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앨릭스 협회장이 운을 뗐다.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동시에 따듯했다.
“거래를 받아들이시오. 우리가 당신을 지켜줄 테니.”
“지켜주겠다고요…?”
“그럴 재주가 되거든. 아까도 말했듯이 세계 헌터 협회장인지라.”
그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자신만만한 태도 때문이었을까.
재이는 그라면 정말로 자신을 지켜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나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도운은 분명 싫어하겠지만, 한재임과 이성훈 대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둘이라면, 크라우드가 퍼뜨릴 루머에서 그녀를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앨릭스 협회장의 생각은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혹시 백운천을 믿고 있다면, 그러지 마시오. 그건 그들을 과대평가하는 거니.”
“과대평가라고요?”
“백운천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오. 그들은 분명 대단하지. 어떻게 그런 인재들이 모였을까 싶을 정도로…. 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지만.”
“……?”
그의 중얼거림에 재이는 의문이 생겨났다.
백운천은 어릴 적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이들이 모인 길드였다.
그런데 앨릭스 협회장의 말은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방금 생겨난 의문을 묻고 싶었으나, 그가 말을 잇는 것이 한발 빨랐다.
“안타깝지만 그들로서는 무리요. 당신이 백도운 애인인 한.”
“그게 무슨… 아.”
“깨달았나 보군. 그렇소. 저번과는 달리 세상은 이번엔 백도운의 말을 믿지 않을 거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세상을 구한 남자의 말이니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당신도 알지 않소? 세상이 꼭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던가?”
“…….”
재이는 반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좋은 쪽으로만 흘러갔다면,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또 유지성이 크라우드가 수백 년 동안 꿈에 그렸다던 숙원(宿願)인 헤미스파이리움을 개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내 말은 다르지.”
“다르다고요…?”
“내 말엔 공신력(公信力)이란 게 있거든.”
“아….”
앨릭스 매그너스.
세계 헌터 협회장인 그는 세계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런 일에 관해서는 그의 말이 도운의 말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다.
설령 도운이 블랙 드래곤을 토벌해 세상을 구했다고 한들….
공신력 있는 단체의 장(長)의 발언이란 그런 것이었다.
재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어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그와 거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거래를 확정하기 전에 먼저 물어볼 것이 있었다.
“당신은 뭘 원하는데요…?”
“음?”
“공신력 있는 세계 헌터 협회장이 나한테서 원하는 게 뭐냐고요. 지켜주는 대신 바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그야 물론 있지. 그런데….”
앨릭스 협회장은 뜸을 들였다.
재이의 생각을 읽으려는 것처럼 눈을 응시했다.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픽.
그가 웃음을 가볍게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요?”
“…….”
당연히 정말 몰라서 물어본 것일 리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세계 헌터 협회장이 그녀에게 바랄 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딱 하나밖에 없었다.
“뭐, 뻔한 것 아니겠소? 당연히….”
슥….
앨릭스 협회장이 오른손을 뻗었다.
이어 두꺼운 다섯 개의 손가락들을 꽉 오므렸다.
“당신이 우리가 보유한 헤미스파이리움을 개조해주길 원하오.”
역시나….
재이는 예상했던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헤미스파이리움 개조….
즉, 앨릭스 협회장이 원하는 것은 바로 헤미스 캐논이었다.
블랙 드래곤에게 데미지를 입힌, 그 가공할 위력의 병기(兵器)를.
“…….”
재이는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
과연 저 손이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 수 없어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