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08
제510화
“…….”
유재이는 앨릭스 협회장의 손을 내려다봤다.
저 손으로 움켜쥐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고민하느라 선뜻 입을 열지 못했던 거다.
두꺼운 오른손을 보던 재이가 질문을 던졌다.
“…헤미스 캐논으로 뭘 하려고요?”
“음? 새삼스러운 질문이로군. 당연한 것 아닌가?”
“그 당연한 거, 들어야겠어요.”
“흠…. 다른 토벌대원들이 말하기를, 그것은 무려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에 견줄 만큼 위력이 엄청났다더군.”
“…….”
재이는 말을 삼켰다.
직접 만들고 발사 시험도 해봤지만, 사실 전대 세계수의 굵은 나뭇가지를 저장고 삼아 발사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헤미스 캐논을 만든 그녀도 풀 출력의 위력이 얼마나 될지 정확히 계산하지 못했다.
충분한 도움이 될 거라고는 계산했으나, 설마 드래곤의 브레스에 견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걸 갖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
앨릭스 협회장이 대답했다.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이 그득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재이는 그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런 대답을 하는 사람 치고 탐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오히려 다른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숨기려고 딴소리를 하는 표정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재이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당연히 앨릭스 협회장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
“…….”
“…….”
“…후우.”
그 짧은 눈싸움의 승자는 재이였다.
앨릭스 협회장이 한숨을 내쉬면서 꽉 움켜쥐었던 손을 푼다.
이어 그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비(對備)하려는 거요.”
“무엇을 대비한다는 거죠?”
“최악의 상황을.”
“……?”
“이를테면….”
앨릭스 협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초,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못했었다.
비단 그만이 가정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건만, 그는 자신은 했었어야 했다면서 후회하고 있었다.
그 후회를 통해 그는 이번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정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천천히 말했다.
“백도운이 크라우드에게 패배한다던가.”
“……!”
“혹은 다른 드래곤들이 세상을 뒤엎으려고 한다던가, 하는 일들…. 난 그런 일들을 대비하려는 거요.”
“도운은 크라우드한테 지지 않아요. 다른 드래곤 님들도 세상을 뒤엎으려고 하지 않을 거고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앨릭스 협회장은 재이의 말을 순순히 긍정했다.
그 또한 도운이 크라우드에 패배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는데 핵심이 된 인간이지 않은가.
아무리 상대가 마족의 권속이라고 한들, 세계수를 저렇게 소환하는 도운이 패배하는 모습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가정을 하는 거죠?”
“생각은 생각일 뿐이니까.”
“……?”
“나는 단 한 번도 그위친이 살해당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소.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았지.”
“……!”
“하지만 그는 죽었소. 도운 덕분에 정령으로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됐지만…, 죽은 건 죽은 거요.”
“…….”
재이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위친이 정령이 됐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땐 놀라웠었다.
역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며 감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리된 연유를 알게 되자 마냥 놀라고 감탄할 수만은 없었다.
설마 크라우드가 마족의 힘을 빌리고 헤미스파이리움을 이용해 그위친을 죽일 줄이야….
그녀는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바로 지금.
도운이 크라우드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처럼.
“…….”
“…그리고, 드래곤들.”
“그분들은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 거예요.”
“확신할 수 있소?”
“네. 확신해요.”
“…세계수 관리인인 백도운이 없다고 해도?”
“무슨…?”
재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앨릭스 협회장이 말한 ‘백도운이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거다.
“리 선생이 말해줬소.”
“뭘요?”
“함께 만났을 때, 레드 드래곤은 백도운을 정중하게 대했다더군. 그 이유는 그가 세계수 관리인이기 때문이었을 테니, 그린 드래곤 또한 태도가 같았겠지.”
“…….”
재이는 알루키노르와 만났을 때가 머릿속에 떠올라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반말로 자신을 대하던 알루키노르는 무기에게 어떤 설명을 듣고 나서 태도를 완전히 바꿨었다.
그리고 그건 무기도 그랬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신을 홍수정의 “우리 재이는 도운 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예요!”라는 외침에 머리를 낮춰 시선을 맞췄었다.
무기도 그렇고, 알루키노르도 그렇고.
과연 도운과 어울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정중하게 대해주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대답은 ‘아니’였다.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해도 백도운은 인간이오.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
“…설마, 그 사람이 없는 미래를 걱정하는 건가요?”
“그렇소.”
세계수 관리인 백도운이 없는 미래.
레드 드래곤을 찾아가 지기가 됐다는 리롄제가 없는 미래….
과연 그 미래에서도 드래곤들은 얌전히 있을까?
안타깝게도 한 번 최악을 상상하기 시작한 앨릭스 협회장의 머릿속엔 최악의 상황이 너무나도 잘 떠올랐다.
그런 이유로, 그는 조금 전 재이에게 물었던 질문에 스스로 대답했다.
“난 확신할 수 없소.”
“…….”
“가장 큰 걱정은 인간들이긴 하지만….”
“네?”
재이가 바로 반문했다.
드래곤들을 걱정하던 사람이 갑자기 ‘인간들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하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블랙 드래곤을 토벌했잖소. 분명 다른 드래곤들도 토벌해야 한다는 머저리들이 나타날 거란 말이지….”
“아아….”
그녀는 탄식을 흘렸다.
안타깝게도 “그럴 리가 없다”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다음은 레드 드래곤이라느니, 그린 드래곤은 심해에 있으니 알맞지 않다느니….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떠들어대는 머저리들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아니, 인터넷에서는 벌써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세계 헌터 협회장으로 있는 한 그런 멍청한 짓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을 거요. 하지만….”
“당신이 협회장 자리에 없는 미래엔 어떤 미친 짓이 벌어질지 모르죠. 그분들을 토벌하러 간다거나 하는….”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지른 놈들 따위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
“늘, 힘없고 선량한 피해자들이 문제죠.”
“그래. 내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오.”
“후우….”
재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앨릭스 협회장 일행들도 마찬가지여서, 관리소장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사이좋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말한 대로 잘못을 저지른 놈들만 피해를 받는다면 그들도 걱정하지 않았을 거다.
문제는 재이가 말했듯이 죄 없는 선량한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드래곤들이 바보들을 말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실망하고 분노한다면…?
끓어오른 분노를 표출하고자 보금자리에서 나와 인류를 향해 발톱을 들이민다면?
앨릭스 협회장은 그런 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재이 양이 만든 헤미스 캐논은 최후의 보루(堡壘)가 될 것이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또 다른 바보들이 나타난다면요?”
“또 다른 바보들이라….”
그는 그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이해했다.
헤미스 캐논으로 드래곤을 토벌하려고 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
재이는 바로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앨릭스 협회장은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고찰해둔 방법이 있소.”
“들어보고 싶은데요.”
“물론 가르쳐드리지. 우선, 이 프로젝트는 소수 관련자만 알게 비밀리에 진행할 거요.”
“당연하네요. 그리고요?”
“헤미스 캐논을 보루가 될 장소에 마법으로 고정할 생각이오.”
“위치를 고정한다….”
재이는 그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헤미스 캐논을 옮길 수 없게 고정한다면, 확실히 무기로는 쓸 수 없을 터였다.
그가 말한 대로 보루로 쓰이리라.
“위치는 결정했나요?”
“아직이오. 후보지들만 추려봤는데, 현재 우선순위가 높은 곳은 그위친의 숲이오.”
“그위친의 숲이요?”
“그라면 바보들의 멍청한 짓을 막아줄 테니까.”
“아.”
재이는 탄성을 흘렸다.
그위친이라면 능히 그의 말대로 해줄 것이었다.
장점은 또 있는데, 바로 그위친이 정령이어서 시간의 걱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헤미스 캐논이 있는 그위친의 숲….”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굳이 한 가지 문제점을 꼽자면, 그위친의 숲이 위치한 장소가 문제였다.
재이는 바로 그 문제를 물어보았다.
“미국이라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피하기 쉽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요?”
“일단 워프 게이트를 활용해볼 생각이오. 전 세계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순 없겠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죠.”
“그 말대로요.”
“흐음….”
재이는 고민스러운 듯이 팔짱을 꼈다.
어떡하면 좋을지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앨릭스 협회장의 제안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빠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
“…….”
앨릭스 협회장은 고민에 빠진 그녀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민할 만한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바로 결정하길 바라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한 얘기들은 전부 그가 가정한 최악의 상황일 뿐이었다.
가정이란 것은 사실 그저 가정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소.”
“그래요?”
“지금 제안한 거래에 바로 확답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소? 얼마간 생각해 보고 결정해주시오. 아, 물론.”
“……?”
“긍정적으로 대답해주길 간절히 바라겠소.”
“하하….”
드륵.
앨릭스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가 끝났음을 말 대신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재이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그때, 그가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참. 다른 이들에겐 비밀로 해주시겠소?”
“비밀로요? 아….”
재이는 되묻다가 그런 부탁을 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바로 조금 전 그가 이 프로젝트를 소수 관련자만 알게 비밀리에 진행할 거라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대답은 그리했지만, 재이는 이곳에서 나눈 대화를 도운한테 전부 다 말해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숨길 수도 없었다.
파티 한가운데에 소환된 새싹이가 대화를 전부 엿들었을 것이기에.
심지어 지금쯤이면 백도희와 이태천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도운이라면 새싹이에게 전해 들은 것을 그 두 사람에게 바로 알렸을 가능성이 컸으므로.
그리고,
“…라는데?”
그녀의 짐작은 반쯤 정확했다.
현재 도운은 관리소장실의 대화를 새싹이를 통해 전달받고 있었고, 당연히 그 정보를 함께 있던 도희와 태천이에게 알렸다.
다만, 재이가 짐작하지 못한 것은 현재 도운이 백운천 회의에 참석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에 남아 있던 박건영, 서인철, 김보민 세 사람까지 참석한 회의에.
“어떻게 생각해?”
도운에게 모든 정보를 들은 태천은 자연스럽게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한재임을 바라봤다.
한재임이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도희를 제외한 백운천의 모든 간부에게 해당했다.
심지어 도운까지 그랬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군.”
“다른 꿍꿍이? 그래? 난 그럴듯하게 들리던데….”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은 그와 비슷하게 생각한 듯이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딱 한 사람.
간부 중에서 한재임처럼 깊은 고민을 하는 도희만이 가만히 있었다.
한재임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보기에, 앨릭스 협회장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다른 거야.”
“다른 거? 드래곤이 분노한 거면 최악 맞지 않나?”
“최악 맞아. 하지만, 그건 ‘미래의 최악’이지 ‘현재의 최악’이 아니야.”
“현재…. 그럼 현재의 최악은 뭔데?”
“…….”
한재임은 태천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안 해?
백운천 간부들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할 때쯤,
“저놈….”
한재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운을 가리키면서.
“……나?”
하지만 그에게 지목당한 도운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