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06
제508화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고 사흘이 지났다.
그런데도 베르동 협곡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벌 성공 파티는 현재진행형이다.
오히려 프랑스 정부까지 발 벗고 나서서 첫날보다 훨씬 더 크게 치러지고 있었다.
토벌에 관련이 없는 구경꾼들까지 모여드는 추세여서 혼잡스럽기까지 했다.
이번 토벌의 핵심 전력으로 알려진 도운과 그가 소환한 세계수 또한 여전히 파티 한가운데에 ‘어린나무’라는 형태로 소환돼 있었다.
그 세계수를 게이트 관리소장실에서 바라보던 앨릭스 협회장이 로미네에게 물었다.
“백도운. 그 친구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백운천 간부들과 함께 회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의 중이라고?”
“네. 내용까지는 알아내지 못했-”
“대단하군….”
“대단하다고요?”
앨릭스 협회장의 중얼거림에 로미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그가 무엇 때문에 감탄하는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톡….
그가 노크하듯 유리창을 두드렸다.
창 너머로 보이는 세계수를 가리킨 것이다.
“세계수 말이네. 오늘로 사흘 내내 소환돼 있지 않았나.”
“그래서요?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 않나요. 어차피 마나가 회복되니 계속 소환할 수 있는 건데.”
“…….”
앨릭스 협회장이 고개를 돌려 로미네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로미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아닌가요…?”
“아니지. 소환이란 그런 게 전부가 아니거든. 밀러를 보게.”
“밀러님이요?”
“그녀도 정령이 된 그위친을 소환할 수 있지. 그런데, 몇 시간 만에 정신력을 다 소모해서 소환을 유지할 수 없었지 않았나.”
“아….”
“반면.”
톡.
앨릭스 협회장이 다시 유리창을 두드렸다.
“백도운은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을 소환하고 있네. 심지어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단순히 마나가 회복되고 있어서 계속 소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겠나?”
“네….”
설명을 들은 로미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울렸고, 두 사람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왔나 봐요!”
“음….”
로미네의 조용한 외침을 들으면서 앨릭스 협회장이 바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옷차림이 빠르게 정리되는 모습을 지켜본 로미네가 OK 사인으로 엄지를 치켜든 후 문을 열었다.
끼익….
문 바로 앞엔 초록빛의 머리가 잘 어울리는 일리스가 서 있었고, 다시 한번 노크를 하려고 했는지 손등을 내보인 채였다.
그러나 앨릭스 협회장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아르보르 카풀루스’라는 이름의 검을 만들고,
이번 블랙 드래곤 토벌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알려진 병기 ‘헤미스 캐논’을 개발한, 대장장이 유재이를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유재이 대장장이! 어서 오십시오!”
앨릭스 협회장은 그녀를 환대했다.
정중한 존댓말을 쓰는 것도 놀라운데, 버선발로 맞이하듯 다가가 유재이의 손을 맞잡기까지 했다.
그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보면 당황할 정도였다.
그렇다.
문고리를 붙든 로미네와 유재이의 뒤에 선 일리스가 황당한 눈초리로 앨릭스 협회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 어색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유재이도 평소와 달리 별로 익숙지도 않은 존댓말을 썼다.
앨릭스 협회장이 넉살 좋게 웃으며 소파를 가리켰다.
“하하! 편하게 앉아서 대화 나눌까요?”
“그러시죠….”
그리 대답하면서 재이는 소파에 앉았다.
그녀가 앉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앨릭스 협회장은 맞은편에 가 앉았다.
“그런데… 솔직히 놀랐습니다.”
“뭐가요?”
“혼자 오실 줄 몰랐거든요.”
“……?”
“사실 백도운과 함께 올 줄 알았습니다.”
“대장장이 유재이…를 찾는다고 들었는데요?”
재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대장장이 유재이를 찾는다더니 백도운의 이름이 나오자 기분이 나빠진 듯했다.
자존심을 건드린 건가.
그리 생각한 앨릭스 협회장은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그렇습니다만…. 나와 백도운은 아는 사이고, 그와 재이님은 애인 사이니 서로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죠.”
“애인은 무슨….”
재이는 얼굴을 붉혔다.
“손님 찾아 왔다며 옥상으로 올라가선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그러나 부끄럽고 민망함을 느껴서 붉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낮은 목소리에서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마음이 느껴졌다.
“흠, 흠!”
앨릭스 협회장은 당황하여 헛기침을 두어 번했다.
방금 그녀가 말한 ‘옥상 손님’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좋은 시간을 방해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빼앗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무튼…. 전 재이님이 한재임이나 이성훈 대리라도 함께 올 줄 알았습니다.”
“어, 조금 놀랍네요.”
“갑자기 뭐가 말입니까?”
“세계 헌터 협회장님이 이성훈 대리를 어떻게 알아요?”
“…뭐, 백운천과 이래저래 여러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면 알게 모르게 담당자들의 이름을 알게 됩니다. 백도운 팀의 유일한 팀원이기도 했고.”
“아. 맞다…. 성훈 씨 원래는 그 사람 팀이었지….”
“음?”
“별거 아니에요. 일하는 거 보면 한재임 팀원 같거든요.”
재이는 손을 휙휙 휘저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앨릭스 협회장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일을 처리하려고 연락하고 만났던 이성훈 대리는 정말 그래 보였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생각하고 있기에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 친구 얘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그러죠. 저도 그러는 편이 더 좋으니까.”
“이렇게 따로 모신 것은….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헤미스파이리움과 그것을 개조해 만드신 헤미스 캐논 때문입니다.”
재이는 조용히 팔짱을 꼈다.
더 들어보겠다는 제스쳐에 앨릭스 협회장은 말을 이었다.
“우선 헤미스파이리움에 대해 말해볼까요. 사실, 우리도 그것을 입수해 갖고 있습니다.”
“……!”
“당연히,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한 열쇠 제작도도 한국 정부로부터 공유받았죠.”
“열쇠를 만들어서, 헤미스파이리움에 꽂아봤다는 소리겠네요.”
앨릭스 협회장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무언의 긍정이라는 것을 아는 재이는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이미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그리고요?”
“실패했습니다.”
“…….”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장장이들이 열쇠를 만들었지만 헤미스파이리움을 가동하지 못했죠.”
“…….”
“네. 현재 그것을 가동한 것은 유재이 님이 만든 열쇠가 유일합니다.”
거기까지 말하고서, 앨릭스 협회장은 은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까와 비슷한 미소였는데도 불구하고, 유재이는 어쩐지 어깨를 짓눌리는 듯한 무게감을 느꼈다.
상위 게이트에 진입한 헌터들이 느낀다던 마나 압박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혹시, 재이 님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몰라요.”
“모른다….”
앨릭스 협회장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이의 모른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그녀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모른다고 말했던 이유를 덧붙였다.
“확신할 수 없으니, 모른다고 해야겠죠.”
“추측하는 바는 있다는 거군요.”
“아무래도 이상하니까요.”
“무엇이 말입니까?”
“크라우드가 먼 한국까지 찾아와 굳이 내게 열쇠 제작을 맡겼던 것. 그리고 내가 만든 열쇠로만 헤미스파이리움이 가동된 것….”
“…….”
“그 이유는… 아마도….”
재이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추측한 사실을 타인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나 성질이 똑같은 탓이겠죠. 당신 아버지. 헤미스파이리움을 만든 대장장이 유지성과.”
“……!”
재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앨릭스 협회장을 바라봤다.
앨릭스 협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가 추측했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
그녀는 앨릭스 협회장과 그의 심복들을 돌아봤다.
세 사람의 시선을 찬찬히 마주하자 후회가 밀려왔다.
앨릭스 협회장이 말했던 대로 ‘다른 사람과 함께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백도운.
그 이름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아났다.
짐작건대, 그녀가 지금 이름을 부르면 무엇을 하고 있든 도운은 당장 달려 와줄 터였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쳤다.
아버지가 떠난 이후 혼자인 상황은 그녀에게 익숙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죠?”
“수정 씨가 가르쳐줬습니다.”
“헛소리.”
“흠…?”
“수정이가 그걸 말했을 리가 없어.”
재이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답지 않게 높임말을 쓰던 말씨도 사라졌다.
“말했을 리가 없다…. 그녀를 퍽 믿는 것 같군요?”
“믿어.”
“흐으음….”
“당신, 수정이한테 무슨 짓 했어?”
그리 묻는 재이의 눈빛은 매서웠다.
친한 친구에 대한 걱정이 분노로 표출된 것으로, 조금 전까지 도운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앨릭스 협회장은 항복이라도 하듯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그저?”
“신체가 닿았을 때 상대의 기억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친구를 옆에 앉혔을 뿐입니다.”
“그건 범죄잖아.”
“글쎄요. 해석의 차이가 있을 것 같군요.”
“하…!”
재이는 기가 막힌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해석의 차이라는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기가 막히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듯이 앨릭스 협회장은 말을 이었다.
“물론, 재이 님이 그리 생각한다면 협회를 찾아가 신고하면 될 일, 입니다만…. 공교롭게도 내가 협회장이군요. 그것도 세계 헌터 협회장. 하하.”
“그래서?”
“음?”
“지금 날 협박이라도 하려는 거야?”
“설마…. 그러려던 거면, 내가 이렇게 정중하게 대할 것 같나?”
그 순간 앨릭스의 말투가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에게서 풍기던 분위기 또한 방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무거웠다.
재이는 그가 정말 스스로 말한 대로 정중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앨릭스 협회장은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린 후 말했다.
“…거래하자는 거요. 거래.”
“거래…?”
“앞으로 크라우드가 뭘 할 것 같소?”
“그야 백도운을 죽이려고-”
“서로 천적 관계니 그건 당연한 거고.”
“…….”
재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앨릭스 협회장의 질문을 다시 고민해 보았다.
크라우드는 앞으로 무엇을 할까.
그 질문의 정확한 답을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크라우드도 아닌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다만.
앨릭스 협회장이 그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는 이유로 한 가지를 추측해냈다.
“나를, 노릴 거라는 뜻인가요…?”
“그렇소. 정확히는 당신을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려고 하겠지.”
“정신적으로?”
“이를테면, 당신 아버지가 크라우드의 주무기인 헤미스파이리움을 개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는 식으로.”
“이제 와서요?”
재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라우드는 그 정보를 지금껏 알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세상에 알릴 거라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까진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이젠 아니기 때문이오”
“어째서죠?”
“당신이 헤미스파이리움을 개조해 헤미스 캐논을 만들었으니까. 헤미스 캐논은 현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무기이고.”
“아….”
“이제 와서, 써먹을 만한 정보가 된 것이지.”
“…….”
재이는 고개를 천천히 떨어뜨렸다.
이어 머릿속에 아버지의 얼굴을 뭉게뭉게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눈과 코와 입이 정확히 그려지지 않았다.
“…난 괜찮아요.”
“괜찮다?”
“사진을 보지 않으면, 이젠 얼굴을 제대로 그려낼 수도 없는 사람이에요.”
“…….”
“그런 인간 때문에… 내가 괴로워할 리 없잖아요?”
“그렇소?”
“당연히-”
“그렇다면 당신은 왜 대장장이가 됐소? 왜, 지금도 하고 있는 거요?”
“……!”
재이는 말문이 막힌 얼굴로 앨릭스 협회장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의 질문을 되짚었다.
왜 대장장이가 되었느냐고?
그야 당연히….
당연히….
“…….”
재이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