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14
제516화
“그냥 해보니까 된다라….”
리롄제가 겨우 알아들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아까까지만 해도 험상궂었던 얼굴이 평소처럼 돌아왔는데….
인상이 워낙 나쁜 영감이라서 그런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 덜해진 정도랄까?
“바로 그것이, 천부적인 재능의 힘이긴 하지….”
“흠? 생각보다 평온하네요?”
사실, 그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지랄을 해댈 줄 알았다.
표정이 워낙 썩어들어가기도 했고.
그런데 리롄제의 기분은 차분하고 평안해 보였다.
이 영감이 이럴 양반이 아닌데 말이지.
리롄제가 피식 웃더니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질문을 던졌다.
“왜. 이 노부가 지랄이라도 할 줄 알았느냐?”
“…….”
음, 어떻게 알았지?
정확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휙….
리롄제가 검지를 흔들었다.
투명하게 변했던 것이 원래의 손가락으로 되돌아왔다.
“내겐 그걸로 지랄할 자격이 없느니라.”
“……?”
이건 또 뭔 소리지.
자격이 없다니?
리롄제가 혀를 차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굉장히 재수 없는 말을 입에서 지껄여댔다.
“이 노부가 하늘이 내린 재능의 가장 큰 수혜자거늘.”
“얼씨구?”
“어찌 타인의 재능을 시기하겠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으냐?”
“절씨구….”
너무 황당하니 기가 막힌다.
그러니까….
리롄제는 지금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천재이기 때문에 나를 질투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런 재능 하나쯤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와아, 사람이 어쩜 저렇게 재수가 없을 수 있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저 눈이 정말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다.
[…….]새싹이도 황당했는지 말 줄임표를 보내왔다.
아마 무기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다.
에너지를 순환하느라 꼬리를 물고 있지 않았다면, 분명 시니컬한 어투로 한 마디 쏘아붙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방석 위에 있는 무기를 바라봤다.
「…….」
무기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리롄제에 관한 관심이 전혀 없는 눈빛이었다.
그래….
바로 저것이 내가 취해야 할 올바른 행동이리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영감탱이와 더 말을 섞어 봤자 뭘 하겠는가?
배려심 깊은 어른으로서 자리를 피해 주어 혼자서 잘난 점을 더 맛보고 즐길 수 있게 해주자.
[세계수는 관리인에게 좋은 생각이라며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새싹이의 긍정을 받으며 무기를 목에 걸었다.
이어 앨릭스 협회장이 선물한 방석을 인벤토리에 넣고 옥상 문으로 걸어갔다.
“음? 어딜 가는 거냐?”
“…….”
그런 내게 리롄제가 질문을 던져왔다.
당연히 무시하고 옥상을 빠져나갔다.
물론,
“고약한 놈. 인사도 없이 어딜 가는 것이냐?”
리롄제는 금방 뒤따라 나와 내 옆에 섰다.
함께 있고 싶지 않은 티를 팍팍 드러냈는데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 건물은 왜 하필 엘리베이터가 하나여서는….
“후우우….”
“아침부터 웬 한숨 질인 게냐.”
“그걸 몰라서 묻는 거예요?”
“껄껄껄…!”
리롄제는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턱에 자란 흰 수염이 마치 화살표처럼 웃으며 떨리는 울대를 가리키는 듯 보였다.
혹시….
이런 게 신의 계시 같은 건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뜬금없이 웬 계시냐고 관리인에게 질문합니다.]아니, 지금 내 눈에만 그런 거야?
저 수염이 리롄제의 울대를 후려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한테만 그렇게 보여?
진짜로?
저렇게 절호의 기회라고 외치고 있는데?
띵!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아닌지 새싹이에게 대답을 듣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리롄제가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라탔다.
아….
내 절호의 기회가 날아갔어….
***
“……?”
1층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앨릭스 협회장이 배치한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리롄제 이 영감이 기절시키고 어디 딴 데 숨겨놓은 건가?
“뭘 그렇게 보는 게냐?”
“여기 있던 직원들 어디 있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저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는 곳에 리롄제가 찾아왔다?
단언컨대 대부분 사람이 나처럼 의심할 것이다.
리롄제가 눈을 찌푸렸다.
“불쾌하군. 네놈이 지금 노부를 의심하는 것이냐?”
“그럴 만하다고 보지 않습니까?”
“쯧쯧쯧….”
리롄제가 혀를 찼다.
뭐지?
날 바라보는 눈에서 한심함이 느껴지는걸.
[세계수는 직원들은 무사하다고 전합니다.] [현재 건물 바깥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바깥에 있다고?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세계수는 손님들이 찾아왔다고 전합니다.]갑자기 웬 손님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바라봤다.
건물 문에는 불투명한 유리가 달려서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마나들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냐?”
리롄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황당한 마음을 뱉어내기 위한 것일 뿐,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놀랍기 그지없군…. 세상에 이렇게 둔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S급 헌터라는 놈이.”
“둔한 게 아니라 신경을 쓰지 않은 것뿐이거든요?”
“헛소리. 어떻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저 기척들을 못 알아차린단 말이냐?”
“뭐, 보시다시피….”
“…흥!”
내 대답에 리롄제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았다지만 못 알아차리는 게 가당키나 한 거냐고 나무라는 듯했다.
하지만… 나도 조금 억울하긴 했다.
내가 아무리 날카롭게 긴장해서 주변 상황을 파악하려고 해봐야 새싹이에게 비할 바가 못 되지 않나.
그렇기에 이런 일들은 전부 새싹이에게 맡겨 놓았는지 오래였다.
당연히 새싹이가 먼저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차리는 게 늦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빤히 바라봅니다.] [지금 자신을 탓하는 것이냐고 질문합니다.]뭐?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니.
곡해해서 듣지 말아 주라.
방금 한 말은 편안함에 속아 손을 놓아버린 나 자신을 탓한 거라구.
[…….]정말이란다, 새싹아.
다음부턴 너한테만 맡기지 않을게.
새싹이에게 변명한 후 다급하게 리롄제에게 질문을 덧붙였다.
“그럼, 잘나신 영감님은 저들이 왜 모여 있는지 압니까?”
“그야 당연히….”
리롄제가 어깨를 으쓱 올린다.
당연히?
“나도 모르지.”
“뭐요?”
“갑자기 찾아온 것을 노부가 어찌 알겠느냐?”
“…….”
“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순 모여든 게 의아하긴 하다만.”
일순간에 모였다고?
시간 약속을 한 게 아니라면, 어떤 일 때문에 모여든 것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그런데….
그 어떤 일이 대체 무엇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
“나가서 물어보면 알게 되겠죠.”
“그렇겠지.”
아무래도 처음인 것 같다.
리롄제와 의견이 바로 맞아떨어진 것은.
나와 리롄제는 바로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
“…….”
“…….”
“…….”
수십 명의 시선을 마주하게 됐다.
도희와 태천이를 포함한 백운천 간부들,
리우이호를 앞세운 리롄제의 제자들,
그리고 앨릭스 협회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 헌터 협회 직원들까지….
아침 댓바람부터 이 많은 사람이 왜 모인 걸까.
심지어 다들 급하게 나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리 선생. 그리고 백도운….”
앨릭스 협회장이 세 무리의 대표인양 걸어 나왔다.
또 두꺼운 팔을 벌려 이곳에 모인 이들을 가리킨다.
“두 사람 모두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한 얼굴들이군요.”
“그야 정말 모르니 그런 것 아니겠소?”
“흠…. 그렇습니까? 그럼, 도운. 자네도 모르겠나? 정말로?”
“어, 말하는 거랑 분위기를 봐선 나랑 영감님 때문인 것 같기는 하네요.”
“하, 하…!”
앨릭스 협회장이 세찬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헛웃음 속에 ‘대체 왜 모르는 거냐’라는 질문이 담긴 것 같은데….
아마 단순히 기분 탓으로 그리 느껴지는 건 아닐 거다.
휙.
앨릭스 협회장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친구들이 왜 저렇게 서 있는 것 같습니까?”
앨릭스 협회장의 질문에 나와 리롄제는 다시 건물 앞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봤다.
내 시점을 기준으로 백운천은 오른쪽에, 리롄제의 제자들은 왼쪽에, 그리고 협회 직원들은 그사이에 껴있었다.
어쩐지 백운천과 리롄제의 제자들이 대치하듯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라?
대치(對峙)하듯이?
“설마….”
“노부가 이 애송이랑 싸우는 줄 알았다는 건가?”
“하하. 설마 그랬겠습니까.”
“…….”
참 신기하지?
분명 아니라는 말을 했는데.
방금 내 귀엔 앨릭스 협회장의 말이 “그래,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줄 알았다.”라고 들렸다.
리롄제도 그랬는지 허허 웃기만 했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하자면, 나와 영감님이 싸우는 줄 알고 모였다는 거죠?”
“…그런 셈이지.”
“나 원 참…. 대체 나와 영감님을 어떻게 보고 그런 오해를 하는 겁니까?”
“…….”
대답하지 않는 앨릭스 협회장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불평과 불만이 잔뜩 담긴 얼굴은 살벌해 보였는데, 놀랍게도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저들은 앨릭스 협회장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이곳에 모인 거였다.
그런 오해를 하지 않았다면 부랴부랴 오지도 않았겠지.
말인즉슨, 도희와 태천이도 똑같이 그런 오해를 했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너희 둘까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게 실망했다는 듯이 쳐다보지 말아 줄래요? 이건 전부 오라버니 탓이니까.”
“야. 내가 뭘?”
“오라버니 평소 행실을 생각해 보면 알 텐데요. 우리가 이러는 게 전혀 이상하지가 않아.”
“옳소!”
“얼씨구….”
어이가 없네.
평소 내 행실이 뭐 어때서?
“모르는 척하는 얼굴 한 대 때리고 싶네, 진짜.”
“옳소…!”
“…넌 자꾸 도희 말에 맞장구칠래?”
시어머니보다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도희보다 옆에서 맞장구쳐대는 이태천 저놈이 더 거슬렸다.
절대로 도희한테 뭐라고 말 못 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태천이 목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역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이었다.
“옳은 소리만 하는데 어떡해, 그럼.”
“옳기는 뭐가 옳은데.”
“헐. 양심 있냐?”
“그럼 없겠냐.”
“있으면 가슴에 손 얹고 말해봐. 너 우리가 지금 오바한 것 같아?”
“뭘 그런 걸 시키냐, 너는.”
“양심 있으면 해봐. 못하겠지?”
“…….”
사람을 이렇게 못 믿어서야.
하라면 못할 줄 알고?
난 바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내 양심에 따라 대답했다.
“그래. 너희가 오바한 거라고 생각해.”
“…….”
“됐냐?”
“…와. 실망이다, 백도운!”
“뭐?”
“너한테 양심이 티끌만큼도 없었을 줄은 몰랐어!”
“…….”
대체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아무리 그래도 양심은 있을 줄 알았는데…! 널 믿었는데!”
그러더니 이태천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비탄과 비통에 빠진 조각상이 따로 없는 모습이 되었다.
보통 때처럼 몇몇 여성이 그런 태천이를 보고 숨을 들이켰는데….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가슴에 손 얹고 말해보래서 했더니만, 그걸 안 믿으면 어쩌자는 거야?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던 거잖아.
“……”
고개를 돌려 리롄제를 쳐다봤다.
나와 같은 신세일 그가 어떤 마음일지 궁금했다.
“노부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 와준 게냐?”
“네, 그렇습니다….”
“껄껄껄!”
리롄제가 기분이 좋은 듯 웃어젖혔다.
반면 리우이호와 진호우는 뭐 씹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리롄제를 위해 달려왔다지만, 그들도 우리 백운천 놈들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온 것이지 않나.
제자들의 그 생각을 저 천년 묵은 능구렁이가 모를 리 없었다.
지금까지 리롄제가 보여준 행동으로 예상해보건대….
아마 저 영감은 오늘부로 제자들을 쥐잡듯이 잡을 것이 분명했다.
“……어라?”
가만 생각해 보니….
착각이긴 했지만, 백운천 놈들은 내가 리롄제와 싸우는 줄 알았는데 한달음에 달려 와준 거였다.
반년 전이었다면 죽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썼을 놈들이 말이다.
아니, 한재임은 오히려 제발 빨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냈을지도 모른다.
“…….”
허, 참!
나 원 참…!
[세계수가 뚝딱거리는 관리인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