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24
제526화
옥상으로 나오자 아스트라페가 보인다.
무기의 되다만 사건 이후로 열흘이 지났고, 그동안 난 저 앞에 앉아서 새싹이를 어루만졌다.
이젠 무기도 자유로우니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그 짧은 사이 습관이 된 거다.
절대 바빠 보이는 도희에게 눈치가 보여서 바깥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절대로, 침대 위에서 빈둥대다가 눈에 띄어 혼날까 봐 도망 온 것이 아니다.
[세계수가 코웃음을 칩니다.] [관리인이 부정한다고 해도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전합니다.]그런 게 아니래도 그러네.
너 형 못 믿어?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그럼 도희에게 직접 말해보길 제안합니다.]응?
그게 무슨-
우웅.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엔 받지 말라는 강렬한 외침이 담겨 있었다.
이런 소리였군….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이내 받는다.
지금 피해 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같은 집에서 사는데, 뭘.
“…여보세요?”
– 오라버니. 또 옥상이에요?
“응. 새싹이 어루만지고 있었어. 절대로 빈둥거린 거 아니야.”
– 흐으응….
“진, 진짜야!”
– 그래요. 그렇겠죠. 믿어요.
정말로 빈둥거리지 않았어야 할 거야.
도희의 “믿어요”라는 말이 내겐 그렇게 들렸다.
“음, 음…. 근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 방금 세계 헌터 협회에서 사람이 왔어요.
“세헌협에서?”
앨릭스 협회장이 크라우드에 관한 정보를 알아낸 건가?
– 드디어 블랙 드래곤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해졌대요. 토벌 성공에 따른 보상도요.
“오. 그랬구나. 내가 요구했던 건? 어떻게 됐어?”
블랙 드래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걸 협의하는 회의에서 나는 한 부위를 달라고 강력히 주장했었다.
바로 블랙 드래곤의 눈이다.
몇몇 회의 참석자들이 내가 왜 하필 눈을 원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었는데….
아무리 깊이 고찰해봐도 알아낼 수는 없을 터였다.
파트리아라는 엘프 장로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고자 선물하려고 한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아내겠는가?
– 오라버니의 요구는….
내 요구는?
***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일리스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계 헌터 협회에서 온 사람은 앨릭스 협회장의 오른팔인 일리스였다.
그가 나를 공손히 가리키며 말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애초에 도운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블랙 드래곤 ‘하르모니아’를 토벌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런 나를 도희와 한재임이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내가 겸양을 떨길 바란 것이다.
어휴, 세상에 바랄 걸 바라야지….
태천이도 나처럼 두 사람이 웃겼는지 키득키득 웃었다.
일리스가 계속 말을 이었다.
“같은 이유로 다른 중요 부위도 백운천에 배당되었습니다.”
“중요 부위라면…?”
“먼저, 눈뿐만 아니라 머리 대부분이 백운천의 몫이 되었습니다.”
“……!”
도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평소랑은 다르게 감정을 숨기지 않은 것인데,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도희가 사용하는 지팡이는 알루키노르의 송곳니로 만든 것이 아니던가.
드래곤의 송곳니로 얼마나 대단한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지는 이곳에서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
“물론, 머리 부속품인 뿔과 송곳니 등을 전부 다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일리스의 말에 우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드래곤의 머리엔 뿔과 송곳니들이 무수히 많이 달려 있지 않나.
하나만으로도 S등급 장비를 제작할 수 있으니….
당연히 그 귀한 것들을 전부 우리에게 넘길 리가 없었다.
여러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이 지금까지 뒤집고 볶고 해서 형평성에 맞게 나눠 가지기로 결정했으리라.
괜히 블랙 드래곤을 토벌한 지 20일이 훌쩍 지난 오늘에서야 일리스가 찾아온 게 아니다.
“그리고, ‘블랙 드래곤의 심장’도 백운천의 몫이 되었습니다.”
“심장을요? 그러니까, 온전히요?”
“네. 그렇습니다.”
“…….”
블랙 드래곤의 심장.
그것도 따로 나누지 않고 온전히 갖게 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도희의 얼굴은 멍했다.
한재임도 다를 건 없었다.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일리스를 빤히 바라봤다.
두 사람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일리스가 씩 웃고는 다시 한번 말했다.
“블랙 드래곤의 심장은 온전히 백운천의 몫입니다.”
“하, 하하…. 믿을 수가 없네요. 당연히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분배할 줄 알았는데요?”
“원래는 도희님 말씀대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만, 도중에 변경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무려 드래곤의 심장 아닌가.
그게 왜 원래 진행대로 되지 않고 도중에 변경됐단 말인가?
도희도 같은 의문을 품고 일리스에게 질문했다.
“왜 바뀐 거죠?”
“이번 토벌에 참여했던 분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수용됐기 때문입니다.”
“의견? 그 말씀은… 밀러와 리롄제가 우리에게 심장을 넘기겠다고 의견을 냈다는 건가요?”
“교황청까지도요. 그야말로 만장일치로 결정이 되었죠.”
“…….”
도희가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문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 모양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교황청과 밀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리롄제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그 영감탱이가 드디어 철이 들었나?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톡.
일리스가 제 가슴에 왼손을 갖다 댔다.
“또 심장이 있는 가슴 부위부터 어깻죽지를 넘어 오른팔까지 배당됐습니다.”
“오른팔까지도요?”
“네.”
“거의 상체 절반인 거나 다름없잖아요.”
“참. 등의 한쪽 날개도 포함입니다.”
“허억….”
일리스의 말에 도희가 가슴을 부여잡는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좋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나온 제스쳐였다.
뭐, 귀엽다는 점에서 한재임보다는 훨씬 나았다.
저놈은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을 어떻게든 참아내려고 콧김을 씩씩 쉬어대고 있었다.
저러느니 그냥 환희에 찬 비명을 질러대는 게 솔직하고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저희 세계 헌터 협회는 백운천 길드에 여러 혜택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혜택? 어떤 것들이 있는데요?”
“음…. 그건 제가 일일이 설명해드리는 것보다는 여러분께서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 말하면서 일리스는 서류 가방처럼 생긴 마법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냈다.
곧 손바닥을 활짝 펼친 것보다 두꺼운 서류가 빠져나왔다.
그걸 보고 도희가 눈을 끔뻑끔뻑 떴다.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보자마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 나와 태천이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게 다 혜택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나 많아요?”
“저희 세계 헌터 협회와 또 제휴를 맺은 전 세계 기업들에서 받으실 수 있는 혜택들을 모아놓은 것이니까요.”
아아….
그런 거라면 저렇게 두꺼운 것도 이해가 갔다.
세헌협과 제휴를 맺은 기업이라면 수백 개 정도는 거뜬히 넘어갈 테니까.
그때, 일리스가 말을 덧붙였다.
“사실, 이건 편히 읽으실 수 있도록 요점만 간추리고 분류해 정리한 겁니다.”
“그게요?”
“네.”
“…….”
알고 보니, 모든 혜택을 모아놓은 게 아니라 요약정리한 거였다.
아무리 도희라고 해도 저런 두꺼운 서류를 보고서는 역시 질린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슥….
도희가 테이블의 서류가 징그러운 벌레라도 되는 양 인상을 찡그리며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봤다.
도희야. 미쳤니?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도희는 고개를 홱 돌렸다.
나 다음으로 바라본 태천이는 어느새 꿈나라로 가 있었다.
서류를 보고 쏟아진 졸음에 패배하고 만 것이다.
결국, 도희는 한재임을 바라보게 됐다.
“…….”
“…….”
우리 길드 내 최고의 모범생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마치 시선을 피하는 쪽이 저 서류를 전부 확인해봐야 하는 내기라도 한 듯했다.
흐으음….
“일리스 씨.”
“네, 도운님.”
“저거 근데 전산화 문서는 없습니까? 저걸로는 관련 혜택 찾는 데만 한 세월이겠는데.”
“당연히 있습니다.”
“잠깐만요.”
“방금 있다고 했습니까?”
한창 눈싸움 중이던 도희와 한재임이 동시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제법 매서웠기 때문에 일리스가 살짝 몸을 움츠러뜨렸다.
“수기로 작성한 문서도 아닌데, 당연히 있지요….”
“…….”
“…….”
정론이었다.
도희와 한재임은 그 사실을 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어이가 없는 듯했다.
그야 눈싸움이나 해댔으니 못 알아차렸지.
일리스가 공손하게 요구했다.
“그, 잠시만 돌려주시겠습니까?”
“…여기요.”
팔랑.
도희에게 서류를 건네받은 일리스가 바로 맨 앞장을 넘겼다.
그러자 ‘백운천 길드 혜택 리스트’라는 문구와 함께 ‘QR 코드’가 보였다.
아마 저 코드를 통해 전산화 문서를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가르쳐주면 됐잖아요?”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을 도희가 한발 빠르게 따졌다.
일리스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자기는 정말로 이러고 싶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듯한 미소였다.
“협회장님께서 시키셨습니다….”
“앨릭스 협회장이 시켰다고요?”
“예. 여러분이 받을 혜택이 얼마나 많은지 두 눈으로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종이로 뽑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하…! 정말이지 ‘악취미 매그너스’라는 별명이 참 잘 어울리는 짓이네요.”
도희가 헛웃음을 흘리고는 기가 찬 듯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졸음에 패배했던 태천이 깨어났는데, 아주 잠깐이었다.
일리스가 다시 내미는 혜택 리스트를 보고 도로 눈을 감았다.
파블로프의 개야 뭐야.
“그런데….”
톡.
일리스가 다시 내민 혜택 리스트를 한번 두드려보았다.
워낙 두꺼워서 그런가?
리스트가 엄청 단단하게 느껴졌다.
이걸 작성한 사람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어쨌든 혜택 이용하려면 어떤 내용인지 알아야 하지 않아?”
“앗.”
“그렇게 생각하면 이 리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
“…….”
힐끔.
도희와 한재임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자기들이 읽고 싶진 않은 것이다.
어쩜 저렇게 책임감이 없는지.
[세계수가 관리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그게 관리인이 할 말이냐고 지적합니다.] [이어 세계수는 그렇다면 책임감 있게 관리인이 읽는 건 어떻겠냐고 질문합니다.]너 어떻게 그런 흉악한 말을 할 수 있어?
새싹이 네가 읽어 볼 테야?
“…….”
잠시 기다려도 새싹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흥. 자기도 읽기 싫으면서 말은 잘해요.
그나저나….
“…….”
“…….”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도희가 계속 한재임이랑 눈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좀 도와줘야겠다.
테이블 위의 혜택 리스트를 챙기며 말했다.
“둘 다 그만하고, 이건 나한테 맡겨.”
“네?”
“뭐라고?”
두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심지어 이태천마저 눈을 떴는데, 내 양손에 들린 서류를 보고서도 다시 잠들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놀란 거야.
“오라버니가 그 리스트를 읽겠다고요?”
“너 미쳤니?”
“네? 그럼 왜 맡기라는 건데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놈을 하나 알거든.”
이 리스트 작성한 사람 말고.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 아.”
“호오.”
도희와 한재임은 금방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한재임은 삼류 악당 같은 비릿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안경알이 빛에 반사되어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습마저 악당 같았다.
도희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 얼굴로 말했다.
“역시 자기 일을 남한테 시키는 데는 오라버니가 최고네요.”
“어?”
“아마 세계 최고일 거예요.”
“…….”
저게 칭찬일 리는… 없겠지.
음. 으음.
에라, 모르겠다.
이 혼란스러운 마음도 함께 담아서 이성훈에게 전달해야지.
“혹 리스트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곳으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일리스는 명함을 하나 건넸다.
처음 보는 이름이 적힌 명함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명함의 주인이 전생에 큰 죄를 저지르고만 인간인 것 같다.
“함께 전달할게요.”
그런 후 혜택 리스트와 명함을 인벤토리에 챙겼다.
곧 저걸 건네받고 좋아 죽을 이성훈을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때, 일리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얼씨구.
“아. 참.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혹시 괜찮겠습니까?”
“부탁이라면, 의뢰인가요?”
“아뇨.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 사실, 제가 한진환 님의 오랜 팬으로 평소 존경하고 있었거든요.”
“아.”
한진환의 팬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도희는 일리스가 뭘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아스트라페를 구경하고 싶다는 거다.
‘마지막 유산’ 같은 거니 구경하고 싶을 만도 하다.
정말로 그 인간 팬이라면 말이다.
“음…. 그게 관광 상품이 아니라서요. 안 될 것 같네요.”
“그건 그렇죠. 이해합니다.”
일리스가 아쉬운 듯이 대답했다.
의외로 거짓말 잘하는걸?
“…뭐 어때.”
“오라버니?”
“구경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훔쳐 갈 수도 없는 물건이고.”
“하지만….”
“괜찮아.”
나를 말리려는 도희를 제지했다.
지금 뭘 걱정하는지 안다.
아스트라페를 훔쳐 갈 수는 없다고 해도, ‘감정’할 수는 있을 테니까.
하지만 도희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일리스는 그런 짓을 하려고 옥상으로 올라가려는 게 아니니까.
설령 그가 멍청하게 그러려고 해도, 내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다.
“후우…. 알았어요. 오라버니 마음대로 해요.”
허락이 떨어졌군.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리스 씨, 갈까요? 아스트라페 보러.”
“오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와 일리스는 자리를 옮겼다.
아스트라페가 있는 옥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