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23
제525화
김재식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중간정산, 이라.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자신 있는 거냐?”
“아뇨. 없어요.”
“얼씨구?”
생각지도 못한 즉답이 나왔다.
그런데 왜 중간정산을 하자고 한 거야?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녀석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내가 혼내는 줄 알겠네.
“사실,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확인…? 뭘 확인하고 싶은 건데?”
“형과 저의 차이요.”
“……!”
나와 녀석의 차이.
그걸 확인하고 싶다는 것은 날 얼마큼 쫓아와야 하는지 알고 싶다는 뜻이었다.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헌터임을 증명한 나를 말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내 파티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였고.
“흐음….”
사실 확인하지 않아도 차이는 확실했다.
이제 겨우 A급 헌터가 된 녀석과 다르게 나는 확인할 수 있으니까.
“저기요. 둘만 이해하면 그만이에요? 중간정산이 뭔데요?”
흐레이스가 끼어들며 물었다.
김상철도 궁금했는지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탁, 탁.
베아를 파묻었던 자리를 밟으며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이거 빌려준 값. 내 파티 구성원이 될 만큼 강해지는 거로 지불하라고 했었거든.”
“뭐라고요? 하…!”
설명을 듣자마자 흐레이스가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어 인상을 찌푸린 채로 김재식에게 따져댔다.
“애송이가 꿈도 야무지지. 너 지금 겨우 그 정도 수준으로 중간정산을 논하는 거야?”
“…….”
“헛소리하지 말고 저기 가서 삽질이나 해.”
휙, 휙.
흐레이스는 땅에 박아놓은 삽을 가리켰다.
그런 후에도 신랄한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 네 수준으로는 확인도 못 하니까. 관리인님과 너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라 우주 끝과 땅 차이라고.”
“…….”
“저기, 흐레이스 누님.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김재식이 조용히 수긍하는 듯 보이자, 김상철이 대신 따졌다.
솔직히 흐레이스 말이 심하기는 했다.
아무리 진실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나저나 김상철은 흐레이스를 누님이라고 부르는군?
“심하긴 뭐가 심해? 사실을 말한 건데.”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김상철은 바로 말을 하던 멈췄다.
김상철을 한심하게 보던 흐레이스도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본다.
김재식 또한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서, 흐레이스 말이 맞긴 해. 김재식.”
“그렇겠죠….”
“하지만, 네겐 기대를 품고 있거든.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
“그, 그 말씀은…?”
“하자고. 중간정산.”
“네…!”
김재식이 활기차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우린 중간정산을 하고자 장소를 옮겼다.
사실 말이 장소를 옮긴 것이지 몇십 미터 옆으로 걸어왔을 뿐이다.
꾹, 꾹.
마법 주머니에서 새로운 창을 꺼낸 김재식이 김상철과 함께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보는 창인걸?
아마도 저 창이 녀석이 애용하던 것일 터다.
지금껏 베아는 과분하다고 생각해 별로 다루지도 않았겠지.
“어휴….”
옆에 선 흐레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운동 하는 김재식이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투덜거린다.
“확인할 게 뭐 있다고 시간을 낭비해요?”
“글쎄. 시간 낭비가 아닐 수도 있지.”
“아니긴요? 저런 애송이 따위 뻔하지.”
“뻔하다? 글쎄. 쟤 저래 보여도 무기가 인증한 재능 덩어린데.”
“뭐라고요…?”
“안 들렸어? 무기가 인정한 재능 덩어리라고.”
“말도 안 돼!”
흐레이스가 부정하면서 김재식을 바라봤다.
무기가 보증한 천재인 김재식은,
“앗…!”
덜그럭!
방금 손을 풀 생각으로 뱅글뱅글 돌리던 창을 떨어뜨렸다.
그 모습에 흐레이스의 눈이 짜게 식었다.
“…저딴 게요?”
“그래, 저딴 게. 재능만 따지고 보면, 우리 백운천에서도 상위권일걸?”
“말도 안 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걸까.
흐레이스는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녀가 믿든 말든 사실이었다.
무기는 김재식의 재능을 최희석과 견주었었다.
태천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최고의 탱커라고 불렸던 남자와 말이다.
“저 준비 끝났어요!”
김상철과의 준비운동을 모두 끝낸 김재식이 소리쳤다.
바로 흐레이스를 물렸다.
그녀는 김재식을 아니꼽게 바라보면서 메스트 옆으로 물러났다.
메스트는 무관심한 얼굴로 흰 번데기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앞으로 고생깨나 하겠군.
까딱….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재식에게 검지를 까딱였다.
언제든 좋으니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김재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을 쥔 두 팔에 마나를 불어넣어 초인 스킬을 발동했다.
이어서 창날에 검기를 입혔는데,
“얼씨구?”
김재식이 무기가 인증한 재능 덩어리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계수가 순수한 마나를 느꼈습니다.] [김재식의 검기가 굉장히 순수하다고 설명합니다!]체내의 모든 마나가 순수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만나자마자 나와 새싹이가 느꼈을 거다.
그런데 검기가 순수한 것은….
아마도 자신의 마나 중 순수한 부분으로만 검기를 발현한 듯하다.
“대단한걸.”
감탄이 순수하게 흘러나왔다.
검기가 저 정도로 순수하다면, 곧 평소 때의 마나도 순수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도희와 태천이 그리고 한재임에 이어 김재식이 네 번째인 건가.
아니….
가만 생각해보니, 간부 중에 순수한 마나로 검기를 발현하는 놈은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그저 짐작일 뿐이지만, 왜인지 서인철이라면 해냈을 것 같다.
강해진 것이 확인되면 그만큼 더 일을 부려먹을 확률이 높아지니, 음흉한 그놈이라면 못 하는 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중에 도희와 한재임한테 확인해보라고 해야겠다.
“갑니다…!”
잡념에 빠져 있을 때, 김재식이 소리쳤다.
초인 스킬이 발동된 녀석은 우락부락한 몸으로 내게 돌진해왔다.
그 직선적인 돌격의 힘이 실린 창끝은,
“오…?”
내 바로 앞에서 구불거렸다.
그 모습이 꼭 무기가 허공을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일까?
김재식의 창끝이 내 목에 닿은 모습이 꼭 우리 무기가 적의 목을 물어뜯은 것처럼 보였다.
창끝이 목에 닿은 것을 보며 감상을 전했다.
“하하. 재미있네.”
“…….”
“당황은 왜 해? 너도 네 공격이 내게 통할 리 없다고 생각했었잖아.”
“그야 그렇긴 한데요….”
김재식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통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분명 ‘혹시 또 모른다’라는 헛된 생각도 했을 거다.
순수한 마나로 검기를 발현해냈으니 그리 생각할 만도 하지….
물론 멍청하디멍청한 생각이었다.
저런 거에 당할 나였으면 블랙 드래곤을 토벌할 수도 없었을 거다.
그래도, 뭐.
확실히 강해지긴 했네.
“자. 그럼 이젠 내 차례지?”
“네? 형 차례라니요?”
“확인하고 싶다면서. 그럼 나도 전력을 보여줘야 할 거 아냐.”
“허억…?”
김재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저렇게 놀라고 그래?
마치 그런 말이 아니었다고 소리치고 싶은 사람처럼.
“아니, 아니! 굳이 전력까지 보여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응?”
“전 그냥 평상시의 형과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어요!”
“어라….”
착각이 아니었네?
평상시의 나라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광합성 모드를 쓰지 않은 나와의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으음.
그렇단 밀이지….
“에이, 뭐 어때.”
“……네?”
“보고 나면 다 네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거야.”
“히이익!”
파바밧!
김재식이 엄청난 속도로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전력을 냈다.
각성을 썼다는 소리다.
김재식이 생각했던 것처럼 광합성 모드를 발동한 게 아니라.
정말이지, 난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김재식을 괴롭히는 관리인의 어디가 착한 것이냐고 따져 묻습니다.]아하하.
[…….]아하하 하하하!
***
백도운이 짓궂은 동시에 짓궂지 않은 장난을 치고 있는 시각.
한국 헌터 협회장실엔 방의 주인인 조우민과 협회 소속 헌터 최희석과 안지민이 앉아 있었다.
조우민이 최희석을 바라보며 진중하게 말했다.
“희석. 우리 협회와 정부는 그것을 누구에게 쓸지 결정했어.”
“드디어 결정이 났나. 오래도 걸렸군그래.”
“그간 일이 많았잖아. 오히려 빨리 끝난 편이지.”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래. 누구에게 쓰기로 했나?”
“네가 추천한 사람.”
조우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에게 질문을 던졌던 최희석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예상했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조우민이 말로서 다시금 인정했다.
“당연한 결과였지. 그건 원래 네 거니까. 다른 놈들이 왈가왈부 논하는 게 웃긴 거였어.”
“…….”
최희석은 조용히 있었다.
평소라면 조우민의 말에 겸양한 말을 건넸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조우민의 말대로 그것은 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아주 소중한….
슥.
최희석이 맞은편에 앉은 안지민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축하하네, 지민.”
“선배님….”
안지민이 곤란한 얼굴로 최희석을 바라봤다.
그는 존경하는 선배의 소중한 물건을 정말로 자신이 받아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진정으로 그럴 자격이 있는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송구스러운 얼굴로 맞은편의 선배를 바라보는 것만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그런 지민을 보고, 최희석은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 같은, 마주 보는 이를 안아주는 듯한 따스한 미소를.
“축하하네, 지민.”
아까와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최희석의 차분하고 곧은 목소리는 안지민을 행동하게 했다.
덥석….
이내 안지민은 최희석의 손을 맞잡았다.
“두 선배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자네는 나와 진환의 명성을 보잘것없게 만들어야 하네.”
“예?”
“자네라면 그럴 수 있네.”
“…….”
안지민은 입을 다물었다.
손을 꼭 맞잡고 그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에 진실만이 담겨 있었기에, 갑자기 어깨가 무척이나 무거워졌다.
또 최희석의 소중한 물건을 받기가 싫어졌다.
툭.
그 마음을 읽은 걸까?
최희석의 손이 안지민의 손에서 떨어졌다.
조우민이 최희석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이봐. 그렇게 압박을 주면 어떡해.”
“압박? 글쎄. 이건 앞으로 지민이 받을 중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은 지금 이것보다 훨씬 더 크게 지민을 압박할 테니까.”
“그야 그렇기는 한데….”
슥….
조우민은 안지민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앞으로 귀찮은 일이 다반사일 지민이 진심으로 불쌍했다.
그 눈빛을 읽은 안지민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게 거부권은 없는 거죠…?”
“하하! 이 친구 농담이 많이 늘었는걸.”
“…….”
조우민의 호탕한 웃음에 안지민은 속이 쓰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말이 농담으로 치부되는 상황.
어떤 말을 한들 달라질 것이 없음을 금방 깨달았다.
우웅…!
지민이 안타까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조우민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하아아아아아….”
조우민은 거나한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최희석에게 묻는다.
“백도운…. 그 각성이란 거, 두 팔에만 쓸 수 있다지 않았나?”
“맞네. 도운은 블랙 드래곤을 토벌할 때 두 팔에만 각성을 썼거든.”
“그럼 이건 뭐지?”
홱.
조우민이 제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최희석과 안지민이 볼 수 있게 돌렸다.
화면 속엔 도운의 모습을 담은 위성 영상이 재생됐다.
그 영상 속에서 도운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양팔만이 아닌데.”
“가슴…. 거기에 두 다리에까지?”
최희석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성(覺醒).
그것을 최초로 발견한 남자는 오른팔 하나를 바꾸는데 목숨을 걸었었다.
또 각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된 S급 헌터 리롄제도 손가락 하나만 겨우 바꿨다.
그들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지금도 각성의 부분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도운은 벌써 가슴과 두 다리에까지 각성을 썼다.
블랙 드래곤을 토벌한 지도 이제 겨우 열흘이 좀 지났는데 말이다.
이대로라면 도운이 전신에 각성을 쓰는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을 듯이 보였다.
그야말로 경악할 수조차 없는 경이로운 속도였다.
“…….”
“…….”
“…….”
세 사람은 그저 침묵했다.
휙.
그러다가 조우민과 최희석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 끝엔 안지민이 앉아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힘내….”
“자네라면 할 수 있네.”
“…….”
까마득한 선배들의 기대….
그 기대를 받은 안지민은 갑자기 속이 쓰렸다.
제게 거부권은 없는 거죠?
그 무언의 질문에,
“…….”
“…….”
자연스럽게 무언의 대답이 돌아왔다.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