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61
제563화
“…….”
“…….”
도희는 나이가 지긋한 의사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겨 먹으려고 노려보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검사한 결과를 듣고 싶어서 저러는 거였다.
어련히 말해줄 텐데.
오히려 저렇게 노려보면 더 말하기 힘들지 않나?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희는 계속 의사를 쳐다봤다.
의사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말을 이었다.
“전부 정상입니다.”
“정상이라고요?”
“네.”
“큰일이네요….”
“네…?”
의사가 황당하게 반문했다.
정상이라는 대답에 오히려 걱정하는 보호자를 어떻게 봐야 좋을지 의문인 듯했다.
십분 이해한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나와 재이, 그리고 태천이와 무기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도희를 바라봤다.
아니. 내가 정상이라는데 왜 큰일이야?
“우리 오라버니는 절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거든요….”
“아.”
“분명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예요. 특히 머리라던가, 뇌라던가, 멘탈이라던가.”
“음….”
“있지 않았나요?”
“하, 하하….”
의사는 대답 대신 머쓱한 웃음만 흘렸다.
도희의 말이 농담이란 걸 깨달았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 듯했다.
그때, 의사에게 구원자가 찾아왔다.
바로 태천이었다.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아닙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의사는 태천이가 만들어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재빠르게 인사를 한 후 간호사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병실을 나간다.
도희를 계속 상대하지 않는 게 능사라고 판단한 게 분명하다.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머리가 아주 비상한걸.
저 정도는 해야 의사를 하나 보다.
탁.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자마자 도희에게 따졌다.
“머리가 어쩌고 멘탈이 저째?”
“오래된 생각이었을 뿐이에요.”
“뭐…?”
도희의 입에서 익숙한 말이 나왔다.
오래된 생각이었다고?
“오라버니의 머리를 한번 검사해보고 싶었거든요.”
“…….”
“정상이라서 다행이네요.”
도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기분 탓이겠지?
어쩐지 목소리와 태도에서 다행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건.
오히려 의사를 향한 불신과 의심만 느껴지는 건….
그렇게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
내가 오늘 병원에 들러 검사를 한 것은 비밀이었다.
크게 다쳤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에 온 것이 알려지면 세상이 조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즉, 병문안을 올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나 싶어 문을 쳐다보자 곧이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정중한 태도를 형상화한 듯했다.
“도운 씨. 저 우연후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만나 뵙고 싶은데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우연후….”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 순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도 알게 됐다.
이곳 병원이 그의 아버지이자 일대 그룹의 회장인 우찬성의 것이지 않나.
병원의 주인에게까지 비밀이 유지될 리 없었다.
오히려 비밀이 유지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물론, 알게 됐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도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내게 언질을 주었다.
“뭘 바라고 찾아온 게 분명해요.”
“그렇겠지.”
“쫓아낼게요.”
“뭘 또 그렇게까지 해?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
“왜?”
“오라버니가 언제부터 아는 사이를 그렇게 챙겼다고요?”
도희가 투덜거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얼굴이라고 챙겨주는 성격이었다면, 백운천 녀석들과 사이가 데면데면하지도 않았으리라.
“솔직히 말해봐요. 다른 뜻이 있는 거죠?”
“없어. 그런 거.”
“없다고요? 정말로?”
“정말로 정말.”
-은 당연히 거짓말이다.
없을 리가 있나.
난 이제부터 도희의 등쌀에 떠밀려 푹 쉬게 될 것이 분명했다.
예상컨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겠지.
도희가 만족할 때까지 적어도 나흘은 넉넉히 쉬어야 하리라.
그래도 만족하지 않으면?
당연히 쉬는 기간이 늘어나게 되는 거다.
도희의 마음과 기분에 따라 일주일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주일 동안 병실에 틀어박혀서 도희의 감시를 받으며 [세계수 키우기]나 해야 한다는 건데….
그걸 어떻게 참겠는가?
절대 못 참지.
즉, 내게 무언가를 바라고 찾아온 우연후는 병실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였다.
“거짓말-”
“들어와요!”
도희는 내 동생답게 금방 거짓말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연후의 입실을 허락했으니까.
“으으…!”
도희가 불만스러운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우연후만 직시했다.
그런데,
“실례하네.”
나를 찾아온 사람은 우연후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인 우찬성 회장과 함께였다.
즉, 병원에서 벗어날 확률이 커졌다는 뜻이었다.
일대 그룹의 회장이 직접 움직일 정도라면 그 사안이 절대 작지 않을 테니까.
히히…!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도희에게 숨기면서 우 씨 부자를 환영했다.
“오랜만이네요.”
“그렇구먼. 그간 잘 지냈나?”
“보시다시피요.”
환자복을 흔들며 대답했다.
그걸 보고 우찬성 회장은 껄껄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자네 아픈 거 아니지 않나.”
“흠…. 의사가 다 말해줬나 보죠?”
“저런.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의사 선생께서 환자의 건강 상태를 남에게 말해줄 리가 없지 않나. 그거 불법이네.”
“…….”
보통이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우찬성 회장은 평범한 남이 아니었다.
병원 내부에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주인이었으니까.
내가 비밀리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처럼, 환자 몸 상태가 어떤지 알아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으리라.
“내게 식은 죽을 먹는 취미 따위 없네.”
“……!”
깜짝 놀랐네.
누가 보면 독심술이라도 있는 줄 알겠어.
“단지 저 친구들 때문에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야.”
우찬성 회장은 내 옆을 가리켰다.
이어 그리 짐작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자네가 크게 다쳤다고 보기에 저 친구들은 너무 잠잠했거든.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척척 잘해나갔지. 평소처럼.”
“음…. 그게 내가 멀쩡할 거라고 짐작한 이유라고요?”
“그렇네. 천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하얀 성녀는 절대 그럴 스타일이 아니지 않나. 안 그런가?”
그러면서 그는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마음 같아선 우찬성 회장의 말에 반박하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크게 다쳤을 때, 그들은 정말로 그랬으니까.
태천이는 백운천의 마스터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해나갔었고, 도희는 만사 제치고 내 옆에만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고, 그만큼 도희도 성숙해졌지만….
글쎄.
그때의 태천이처럼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찬성 회장이 다음으로 재이를 보며 말했다.
“재이 양도 크게 다친 애인을 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지.”
“애인….”
재이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애인’이라는 단어가 민망한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한 달 동안 잠적한 이유는 뭐 같습니까?”
“하얀 성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명상 중이라고 공표했지.”
“그랬죠.”
“안타깝지만, 자넬 아는 사람 중에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거네.”
“…….”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긍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굳이 수긍해봐야 도희 마음만 더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지금도 불만 가득한 얼굴로 우찬성 회장을 보고 있는데 말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세계수의 압도적인 성장 때문이겠지.”
“……!”
“높이 두 배. 둘레 네 배. 세계수가 그 정도로 자라났는데, 관리인인 자네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을 리 없지 않나. 압도적인 성장을 추스르는 데 오래 걸린 거겠지.”
“…….”
“마지막으로, 아프지도 않은 자네가 오늘 병원에 온 것은… 아마 사랑하는 동생의 등쌀 때문이겠지.”
“헤에….”
“어떤가? 내 추론이.”
“박수라도 쳐 드려요?”
짝짝짝.
감탄을 담아 손뼉을 세 번 쳤다.
정말이지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회장다운 추론이었다.
픽…!
우찬성 회장이 웃음을 흘렸다.
“반응을 보아하니 맞췄나 보군.”
“정확하게요. 아. 병원에 온 이유는 어떻게 맞췄습니까?”
“나도 우리 딸내미 등쌀에 매년 건강검진을 하거든.”
그리 대답하면서 우찬성 회장은 턱 끝을 들었다.
이 타이밍에 이런 식으로 딸 자랑을 한다고?
하여튼 웃기는 양반이라니까.
“아. 참고로 우리 딸은 지금 주한과 함께 ‘A등급 북한산 인수봉 게이트’에 들어가 있네.”
“…안 물어봤습니다.”
“그런가?”
“네. 궁금하지도 않고요.”
“흠. 아쉽군….”
“…….”
아쉽긴 개뿔.
이 인간이 갑자기 암살을 하려고 해?
조금 전에 재이한테 ‘애인’이라고 한 건 뭐였냐고.
음. 화제를 돌려야겠다.
“그래서요?”
“응?”
“날 찾아온 이유 말입니다. 인사나 하려고 들른 건 아니잖아요?”
“아. 그랬지, 참.”
“…….”
이 깜빡했다는 반응은 뭐지.
설마 별거 아닌 거기만 해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대했던 내 마음을 배신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주겠어.
[세계수가 관리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제멋대로 기대한 건 관리인인데 왜 배신인 거냐고 따집니다.]어쨌거나 나를 기대하게 했잖아.
우찬성 회장은 이에 대해 책임질 의무가 있어.
[…….]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가로젓습니다.] [관리인의 억지에 실망합니다.]새싹이 네가 실망해도 어쩔 수 없어.
저 양반은 책임져야 해.
그렇게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우찬성 회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가 내게 한 부탁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네가 만나줬으면 하는 친구가 있네.”
“친구요?”
“내 오랜 지기지. 조그마하게 약방을 하는 친구인데,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더군.”
“흐음….”
설마 날 찾아온 이유가 만남 주선일 줄은 몰랐네.
우찬성 회장의 오랜 지기, 라….
어쩐지 ‘조그마한 약방’이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 ‘백도운’이 아니라 ‘금지온’을 만나고 싶은 것이라네.”
“……!”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지온은 내가 정체를 숨기고 일대 길드와 홍유릉 게이트에 진입했을 때 사용했던 이름이었다.
원래는 ‘따듯한 손가락’으로 짓고 싶었지만….
헌터 자격증에 그렇게 쓰여 있으면 누가 봐도 위조라는 걸 알아볼 것 같아서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정체를 숨겨야 하는 메스트에게 건네주었고,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었다.
아무튼.
금지온을 만나고 싶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친구분께서 S등급 영약을 채집하고 싶은 겁니까?”
“그렇네.”
“채집해서 뭘 하려고요?”
“그건 말해주지 않았네. 자기가 직접 만나서 얘기하겠다던데.”
“흐음….”
우찬성 회장의 친구가 원하는 S등급 영약을 채집해준다….
이 정도로는 어려울 것 같다.
내가 퇴원하도록 도희를 납득시키기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도희를 바라봤는데, 의외로 도희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뭐지?
도희가 우찬성 회장을 불렀다.
“우찬성 회장님.”
“왜 그러시오?”
“친구분이 하신다는 약방이요.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말하지 않았군. ‘바이오’. 그게 그 친구가 하는 약방의 이름이오. 어울리지도 않게 영어로 지었지.”
“…….”
이 인간이 지금 장난하나?
‘바이오’라면 우리나라에서 10위 안에 드는 길드잖아.
10년 전에 농사 전문인 ‘파르메스 길드’랑 함께 홍유릉 게이트에 진입해 우담화를 찾아냈던 길드이기도 하고.
길드 마스터인 ‘이동수’의 채집 스킬이 A등급밖에 되지 않아서 만지지도 못하고 돌아왔었지만.
아무튼, 그런 길드 마스터를 ‘조그마한 약방 주인’이라고 하는 인간이 어딨어?
“헤에….”
그 순간이었다.
도희의 입에서 구미가 당긴 소리가 나왔다.
성공을 알리는 소리였다.
허락을 받고 당당히 병원에서 탈출… 아니,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