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62
제564화
이틀 후 도희의 허락하에 병원을 당당하게 퇴원했다.
평소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눈에 불을 켜고 내가 탈출하려는 것을 감시했을 텐데….
도희는 우찬성 회장이 말한 ‘자그마한 약방 친구’가 우리나라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길드의 마스터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생각을 고쳤다.
부탁을 들어주고 이런저런 영약을 뜯어낼 생각이 만만한 거다.
바이오는 아마 한국에서 우리 백운천을 제외하면 가장 영약이 많은 길드일 테니까.
아니.
그저 대량으로 구매하는 우리와는 달리 전문적인 영역으로 취급하는 만큼 오히려 상등품의 영약을 더 많이 갖고 있을지도 몰랐다.
“백도운.”
재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우찬성 회장이 잡은 약속 장소로 가기 전에 재이네 대장간을 잠깐 들렀다.
그녀에게 받을 것이 두 가지 정도 있어서였다.
“당신이 만들어 달래서 만들긴 했는데….”
그리 말하면서 재이는 ‘검은 가면’과 품질 보증서를 건넸다.
내가 바라는 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자 바로 보증서를 읽었다.
[품질 보증서] [본 보증서는 제품이 J.Y. 정품임을 보증] [제품 이름 – ‘칼리고(cālīgō)’] [제품 등급 – S등급] [제품 설명 – 블랙 드래곤 ‘하르모니아 카무스’의 비늘 조각(S등급)으로 제작한 가면] [내구도 S+등급] [‘+’가 붙은 이유는 자동 회복 효과 때문] [일정 범위 내 마나 압박] [A등급 마법, ‘오블리비오스(Oblivious)’가 부여됨.]칼리고.
블랙 드래곤의 비늘 조각으로 만든 가면은 메스트가 가진 것처럼 ‘인식 혼란 마법’이 부여돼 있었다.
딱 내가 바라던 대로였다.
“혹시 이걸 쓰고 갈 생각인 건 아니지?”
“그럴 생각 맞는데?”
재이의 질문에 바로 대꾸했다.
그럴 게 아니라면, 굳이 이동수를 만나러 가기 전에 받으러 올 필요는 없었으리라.
“…….”
재이가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도희와 무기도 비슷한 얼굴을 지었다.
무기의 경우는 꼬리로 머리를 긁기까지 했다.
이내 도희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이동수는 오라버니와 금지온이 동일인물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 우찬성 회장한테 말을 꺼낸 것도 그래서고요.”
“응. 나도 알아.”
“그럼, 가면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겠네요.”
“당연히 알겠지?”
고개를 끄덕여 도희의 말에 긍정했다.
가면에 부여된 인식 장애 마법은 얼굴 형상을 바꾸는 게 아니다.
진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혼란을 주는 것뿐….
실체를 아는 사람에겐 그저 검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쓰고 가실 거예요?”
“그게 지온이니까.”
“네…?”
“가면은 지온의 아이덴티티야. 중요한 사항이니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
도희가 입을 다물었다.
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게 틀림이 없었다.
하하.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바라봅니다.] [지금 도희의 얼굴을 보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고 질문합니다.]도희 얼굴이 어때서.
귀엽기만 하구만.
[…….]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관리인은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립니다.]새싹이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재이를 바라봤다.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왜 쳐다봐?”
“왜 쳐다보냐니…. 나한테 줄 거 있다고 퇴원하면 오라고 했잖아.”
“아. 맞다.”
“마음에 쏙 들 거라면서 이틀 동안 사람 설레게 만들어놓고서는…. 이 깜빡 잊었다는 반응은 대체 뭐지?”
“내 탓 하지 마. 깜빡 잊게 만든 사람이 너잖아.”
“내가 뭘?”
“…어휴. 됐다.”
재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이 조금 전의 새싹이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주억거립니다.] [재이의 불만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새싹이가 재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이, 그녀는 마법 주머니에서 내게 줄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세계수의 꽃을 아주 작게 형상화한 듯한 외형이었다.
저건 아마도….
“그립톡…?”
“오. 바로 알아보네.”
“어, 음…. 웬 그립톡이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나를 위해 제작해준 것이니, 어쨌거나 고맙기는 했다.
바로 스마트폰 뒷면에 붙여야겠다고도 생각했고.
하지만 고마운 감정과는 별개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에 쏙 들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왜 스마트폰 그립톡을 받고 좋아해야 하는 걸까.
앞으로 더 편하게 화면을 두드릴 수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재이가 말했다.
“스마트폰에 붙인 다음 마나 불어넣어 봐.”
마나를 불어넣으라고?
설마….
“그립톡에 마법 부여했어?”
“응.”
“그러니까, 그립톡에…?”
“응.”
“…….”
대체 무슨 마법을?
이 그립톡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을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스마트폰 액세서리니까 떨어뜨렸을 경우를 대비한 충격 방지 마법이 부여돼 있으려나?
정말 그런 거라면 필요 없는데.
내 스마트폰은 평범한 스마트폰이 아니다.
엘프들에게 무려 ‘성물’ 취급을 받는 물건이 아니던가.
웬만한 충격엔 끄떡도 하지 않는다.
A등급 공격 마법은 당연하고, 아마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에 얻어맞았어도 멀쩡하겠지.
“아, 해보면 알 거 아니야. 어서 해봐.”
표정에서 생각이 읽혔나 보다.
재이가 투덜거렸다.
확실히, 그 말마따나 해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달칵.
그립톡을 스마트폰 뒷면에 부착했다.
이어 그립톡을 톡 두드려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
스마트폰이 내 손을 떠났다.
허공으로 둥실둥실 떠오른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다.
재이가 그립톡에 부여한 마법이 무엇인지를.
“설마, ‘부유 마법’을 부여한 거야?”
“응. 그것도 S등급으로.”
“헐…. S등급? 대체 그 마법을 어디에서 구한 거야?”
“당신이 죽인 블랙 드래곤의 몸에서.”
“아.”
“아무튼. 당신 부유 마법 못 쓰잖아. 앞으로 마족이랑 싸우는 데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제작해봤어.”
어라?
부유 마법을 못 쓰는 나한테 필요할 것 같았다고?
“잠깐만. 이걸로 나도 날 수 있어?”
“…뭐?”
“어…?”
“아니…. 당연한 거 아냐? 그럼 내가 왜 굳이 그립톡에 부유 마법을 부여했다고 생각했는데?”
“어, 누워서 편하게 두드리라고…?”
“…….”
재이가 입을 헤 벌리며 나를 쳐다봤다.
이어 정말 멍청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재이는 정확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세계수는 재이의 생각에 깊이 통감합니다.] [화면 편하게 두드리라고 S등급 부유 마법을 부여한 거라는 괴상한 생각을 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거냐고 질문합니다.] [세계수는 관리인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토로합니다.]내 머리가 그렇게 생각했다. 왜!
새싹이에게 따지던 순간이었다.
툭….
허공에 떠 있던 스마트폰이 떨어져 다시 내 손에 안착했다.
그립톡에 불어넣은 마나가 전부 소모되어 마법이 풀린 거였다.
마나를 불어넣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거 생각보다….
“연비가 별로네요?”
“좀 그렇긴 해.”
도희의 평가에 재이가 긍정했다.
그러고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드래곤의 부유 마법이라서 그런가? 마나 소모가 정말이지 악랄하더라구….”
“아. 하긴 그렇겠네요. 보통 마법과 스킬은 등급이 높을수록 마나를 많이 잡아먹는데, 무려 드래곤의 부유 마법이니….”
“물론 나도 조정해보려고 이것저것 건드려보긴 했거든?”
“잘 안 됐군요.”
“응. 항상 출력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기더라. 그래서, 그냥 그만뒀어. 어차피 쟤가 쓸 물건이니까.”
그리 말하면서 재이는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검지 끝에 서 있는 날 보고서 도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나 또한 그랬다.
세계수 관리인인 나의 마나는 무한하니, 소모량을 걱정해서 출력을 낮출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마나가 얼마나 소비되든지 출력을 높이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재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질문을 던진다.
이미 내게서 대답을 들은 듯한 얼굴이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그립톡에 관한 나의 감상은 분명 그녀가 예상한 대로일 테니까.
“엄청 마음에 들어. 지금 당장 시험비행하고 싶을 정도로.”
“그래? 우후후….”
내 대답을 듣자마자 재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 차올랐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을 것이기는 해도, 직접 들으니 만족감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새싹이가 줄임표 메시지를 보내왔다.
갑자기 왜 그래?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천천히 으쓱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전합니다.]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곧바로 질문했지만, 새싹이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전합니다.]이 메시지를 끝으로 어떤 메시지도 보내오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줄임표를 보낼 리 없으니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새싹이가 말을 해주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왜 그러는 걸까.
한창 의문을 느낄 때, 도희가 끼어들었다.
“안타깝지만, 오라버니 시범비행은 다음에 해야겠어요.”
“응? 어째서?”
“일대 그룹에서 오라버니를 모시고 갈 차가 방금 주차장에 도착했거든요.”
“아하.”
그립톡이 마음에 들어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부터 바이오 길드의 마스터인 이동수를 만나러 가야 했다.
새싹이의 이상한 반응은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우선 만나야 할 사람부터 만나야겠다.
슥.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이어 재이가 이틀 만에 제작해준 가면 칼리고를 얼굴에 썼다.
오랜만에 식물 채집 전문가 ‘지온’이 될 시간이었다.
***
지하 주차장으로 나가자마자 일대 그룹이 보낸 차를 발견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세단으로, 그 앞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서 있었다.
일대 길드 소속의 헌터들인 ‘김지연’과 ‘심윤진’이다.
한때 재이의 경호를 맡겼던 적이 있어서일까?
그녀가 두 여자를 제법 반갑게 반겼다,
“지연 씨! 그리고 윤진이까지. 두 사람 다 오랜만이네요…!”
“아, 네…. 그렇네요.”
“반가워요. 재이, 언니….”
하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재이와 아주 달랐다.
크게 달가워 보이지 않는 모습이랄까…?
반갑다고 말한 심윤진의 시선도 재이가 아니라 다른 쪽을 향해 있었다.
바로 나를 향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
“…….”
내 인사에도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당한 얼굴로 내가 쓴 검은 가면만 빤히 바라봤다.
즉,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 재이와 반갑게 인사하지 못한 것을 나를 쳐다보느라 그런 것이었다.
조용히 5초쯤 흘렀을까?
김지연이 당황스러운 낯빛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여전히, 이상하시네요. 도운 씨는….”
“누구요?”
“네?”
“왜 저를 도운이라고 부르는 거죠? 전 금지온인데요.”
“네…?”
“그리고 사람에게 이상하다는 말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런데… 아니. 네?”
김지연이 멍청한 얼굴로 연신 반문했다.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이런….
확실하게 나를 소개해줘야겠군.
“안녕하세요. 저는 식물 채집 전문가, 금지온입니다. S급 헌터 백도운이 아니라.”
“아…! 알겠다. 그런 설정인 거군요?”
“설정이라니…. 정말이지 당신은 참 무례한 사람-”
“그런데 설정을 잡고 싶었으면 그 꽁지머리부터 좀 어떻게 하시지. 스마트폰만 안 들면 되는 건가요?”
“아.”
아뿔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