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63
제565화
일대 그룹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전통한식집이었다.
건물 형태도 음식 메뉴에 걸맞게 한옥(韓屋)인 곳으로 조용한 분위기가 썩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곳에 검은 가면을 쓰고 왔으니 제지할 법도 하건만, 나와 김지연을 안내하는 직원을 포함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손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도록 따로 교육을 받은 모양이었다.
우린 곧이어 어느 방 앞에 다다랐고, 안내하던 직원이 간단히 묵례한 후 떠났다.
드르륵.
그런 직원의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이 김지연은 문을 열었다.
“오. 드디어 왔, 군…?”
문을 열자마자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하얗게 센 머리를 위로 올린 날렵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가 바로 바이오 길드의 마스터 ‘이동수’였다.
이동수가 나를 보고서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웬 가면을 쓰고 온 거요? 백-”
“지온.”
“응…?”
“반갑습니다. 금지온이라고 합니다. 식물 채집 전문가죠.”
“…….”
이동수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고는 내 옆에 있는 김지연을 바라봤다.
무슨 상황인 건지 설명해달라는 거였다.
김지연이 어깨를 으쓱 올리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런 설정이래요.”
“설정이라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넘기세요. 그래야 편해요.”
“허, 허허….”
이동수가 당황스러운 듯이 웃음을 흘렸다.
황당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까부터 자꾸 설정이라고 하는 김지연이 참 얄밉다.
충고를 받아들여 도희가 준 머리끈까지 뺏는데….
나만 진심이지.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바라봅니다.] [관리인만 진심인 게 당연하지 않냐고 타박합니다.]“…뭐. 아무튼, 자리에 앉으시오. 그, 지온?”
새싹이가 날 나무랄 때였다.
이동수가 손을 뻗어 제 맞은편을 가리켰다.
나를 지온이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음. 마음에 드는걸?
김지연과 심윤진은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날 백도운이라고 불렀었는데.
물론,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갑소. 한 달 동안 소식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참 다행이오.”
이름만 그렇게 부른 거였다.
이동수는 나를 지온이 아니라 백도운이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었다.
마음에 든다는 말 취소.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걱정했다고 했습니까?”
“그렇소. 내 당신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아.”
그러니까, 이동수는 정확히 나를 걱정한 게 아니다.
내게 부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한 거다.
여러모로 솔직한 양반이로군….
아니꼬운 마음이 들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혹은 부탁의 대가를 불린다거나.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당신이 ‘우담화’를 채집해주길 원하오.”
역시나….
사실 나와 도희는 그가 할 부탁을 예상했다.
10년 전, 이동수가 파르메스 길드와 제휴를 맺고 원정대를 꾸려 홍유릉 게이트의 우담화를 채집하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길드 마스터인데도 불구하고 게이트에 직접 진입하기까지 했었다.
길드 내에서 채집 스킬이 가장 높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재는 것 없이 부탁해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열망(熱望)이 느껴질 정도의 이유라면….
“혹시 가족분들 중에 ‘절맥증’을 앓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절맥증…?”
“아닙니까?”
“아니. 난 가족이 없소. 바이오 길드원들이 내 가족이랄 수는 있겠지만.”
“음…”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는걸.
난 또 우찬성 회장처럼 딸이라도 절맥증을 앓고 있나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열성적인 게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그럼 왜 우담화를 원하는 겁니까?”
“응…? 정말 모르시는 거요?”
“……?”
이동수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 모르냐니….
내가 당신이 우담화를 바라는 이유를 어떻게 알아?
그렇게 대꾸하듯이 멀뚱멀뚱 바라보자 그가 질문했다.
“우 씨 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움찔….
김지연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동수가 말한 “우 씨 놈”이 우찬성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가 우찬성 회장의 오랜 지기가 아니었다면, 김지연은 참지 않고 지적했을지도 모른다.
일대 그룹은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였으니까.
“말하지 않았습니다.”
“허. 그 친구 참….”
이동수가 웃음을 피식 흘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반응을 보아하니, 우찬성 회장은 이유를 알고 있었나 보다.
아마 친구의 프라이버시라고 생각해 말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내가 친구 하나는 잘 뒀군.”
“…아마 우찬성 회장도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응?”
“홍유릉 게이트의 우담화 지도요. 우찬성 회장한테 건네줬잖아요?”
“…그건 오해요. 난 그걸 건네준 게 아니라 팔았으니까.”
“얼마에?”
“…….”
이동수는 입을 다물었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히 팔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가격일 테지.
“…아무튼. 내가 우담화를 채집하길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오.”
그가 말을 돌렸다.
쑥스러운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방금 이동수를 보는 김지연의 얼굴에 감동이 담겼다.
그녀는 그가 우찬성 회장에게 우담화 지도를 거저 줬다는 사실을 몰랐었나 보다.
“그것으로 헌화(獻花)를 할 생각이오.”
“방금, 헌화라고 했습니까?”
“그렇소.”
“…….”
“…….”
헌화는 죽은 이의 영전에 꽃을 바치는 것을 의미했다.
그걸, S등급 영약인 우담화로 하겠다니….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김지연도 당황스러운지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가 뜨길 반복했다.
감동했던 얼굴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무려 바이오 길드의 마스터가 아닌가.
가족 중에 절맥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없다기에 새로운 신약이라도 개발하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우담화를 채집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여인의 꿈이오.”
“뭐요…?”
황당한 소리에 반문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새싹이는 나와는 굉장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두근두근!] [세계수가 이동수의 말에 나뭇가지를 쫑긋 세웁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수의 다음 말을 기대합니다.]설렘을 느껴버린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듯이 이동수가 말을 잇는다.
“난 그걸 대신 이뤄주고 싶은 것이고….”
“대신이라면, 혹시…?”
“그래. 10년 전에 홍유릉 게이트에 직접 들어간 것도 그래서였소. 아시다시피 나의 능력이 부족해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
그런 거였나….
솔직히 말해서 이동수의 말은 어이가 없었다.
사랑했다는 여인의 꿈은 우담화를 ‘직접’ 채집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런 일을 타인이 ‘대신’ 이뤄줘 봐야 기뻐할 리 없지 않은가.
그가 하고자 하는 짓은 순전히 산 사람의 자기만족에 불과한 일이었다.
하지만….
[두근두근!] [세계수가 이동수를 흡족하게 바라봅니다.]새싹이는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동수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때였다.
[A+등급 세계수 퀘스트를가 발생했습니다!]뜬금없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고 엉뚱한 타이밍이었으나, 퀘스트의 내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런 비슷한 타이밍에 받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수의 두근두근!] [퀘스트 내용 – 현재 세계수는 관리인이 이동수의 부탁을 들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동수의 부탁대로 우담화를 채집해주어 세계수를 만족스럽게 하십시오.] [성공 보상 – 세계수의 나뭇가지] [퀘스트 거부 시 세계수가 실망하여 토라집니다.] [퀘스트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 / NO)]역시 ‘두근두근 퀘스트’였다.
오랜만에 받아 보는걸.
예전에 이 퀘스트를 받았을 땐 재이를 만나서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그때도 느꼈던 거지만, 이런 일로 퀘스트를 발주하는 게 참 어처구니없다.
물론,
[YES]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지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새싹이의 나뭇가지가 탐나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이런 거에 약할 뿐이었다.
이런 바보 같고 멍청하고 순진해 빠진 짓거리에 말이다.
하하하.
“좋아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오…! 그게 정말이오?”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홍유릉 게이트의 우담화?
훌쩍 들어가서 슬쩍 채집해오면 그만인 일이다.
지금 출발해도 채집하고 돌아오기까지 1시간도 걸리지 않겠지.
우담화만 잘 자라나 있다면 말이다.
“정말 고맙소!”
덥석!
이동수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움켜잡았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건지 위아래로 마구 흔들기까지 했다.
엄청 좋아하네.
하긴. 10년 전부터 꿈꿔왔을 일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아…. 혹시 한 가지 더 부탁해도 되겠소?”
이동수가 위아래로 흔들던 손을 멈췄다.
한 가지 더?
“염치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이미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한 상황이니까…. 그러니 이 부탁은 거절해도 좋소.”
“그렇다면야. 들어보고 정하죠.”
“그게, 나도 홍유릉 게이트에 함께 들어가고 싶소.”
“함께?”
“당연히 그대를 의심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오. 그저 우담화를 채집하는 순간을 두 눈으로 보고 싶을 뿐….”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동수가 나를 의심해 감시하려는 거였다면, 새싹이의 두근두근 퀘스트고 뭐고 다 엎어버렸을 거다.
그에게서는 진심만이 느껴졌다.
우담화를 채집하는 순간을 보고 싶다는….
그런 거라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한 사람 더 늘어난다고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고.
“좋아요. 그렇게 하시죠.”
“오, 오오…! 참으로 시원시원하시군. 정말 고맙소!”
“그럼… 바로 출발해 볼까요?”
“응? 지금 뭐라고 했소?”
그가 당황스러운 듯이 나를 바라봤다.
방금 내 말에 어려운 점이 있던가?
왜 이해하지 못해서 반문하는 거지?
“당장 가자고요. 홍유릉 게이트.”
“으음….”
“……?”
내 말에 이동수는 머뭇거렸다.
뭐지.
가고 싶다더니, 그새 생각이 바뀌었나?
그때, 김지연이 설명을 덧붙였다.
“홍유릉 게이트는 A+등급이에요. 백-”
“지온.”
“끈질기네, 정말.”
김지연이 눈을 찌푸렸다.
정말 끈질긴 게 누군데?
이 정도 했으면 좀 지온이라고 불러줘도 되잖아.
언제까지 백도운이라고 부를 셈이지.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A+등급 게이트에 겨우 둘이서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응? 난 혼자서 자주 들어갔는데요?”
“후…. 그러셨겠지. 당신은 백-”
“지온.”
“아, 진짜….”
김지연이 나를 째려봤다.
뭐. 째려보면 어쩔 건데?
내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이동수를 불렀다.
“이동수 길드장님.”
“응?”
“헌터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당연히 A급이지.”
이동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다 알면서 왜 그런 것을 묻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도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10위권에 드는 길드의 마스터이니, 당연히 A급 미만일 리가 없었다.
이어 김지연은 나를 불렀다.
“지온 씨.”
지온이라는 이름으로.
백도운이 아니라.
드디어…!
“당신은 헌터 등급이 어떻게 돼요?”
“나도 A급인데요.”
“역시 그렇네요. 잘 들어요. 금지온 씨.”
“……?”
“우리나라에서 A+등급 게이트는 A급 헌터 둘이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법이 있었더랬다.
생각해보면, 내가 홍유릉 게이트에 혼자 진입한 건 A+급 헌터일 때였다.
이런 멍청한….
아주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혹시 지금 당장 가야 하는 이유가 있소?”
“아니요. 없을걸요.”
김지연이 이동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내 의사를 전혀 묻지 않은 대답이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당장 가려고 했던 이유가 정말로 없었으니까.
굳이 따지고 보면, 백도운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쩝….”
이 안타까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드르륵!
방문이 힘차게 열렸다.
“어라…?”
너희가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