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64
제566화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홍유릉 게이트의 관리소 앞엔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협회 소속 헌터이자 최희석의 후계로 점찍힌 안지민이었다.
그가 우리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인사를 건넨다.
가장 먼저 건넨 것은 당연히 나이가 가장 많고 헌터 생활도 오래된 이동수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오랜만에 보는군. 그간 잘 지냈나?”
“신경 써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자네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할 줄 알았군? 내가 해준 게 뭐 있다고. 하하.”
이동수와 짧은 인사치레를 나눈 안지민이 고개를 돌린다.
그의 고개는 이동수 옆에 있던 나를 지나쳤다.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안지민이 홍유릉 게이트가 있는 이곳까지 내려오게 만든 장본인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이태천 헌터. 그리고 백도희 헌터.”
태천이와 도희 말이다.
천공의 기사와 하얀 성녀가 함께 움직였으니, 헌터 협회에서 안지민을 급히 내려보낸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라고는 못 하겠다.
원래라면 최희석이 왔어야 했을 테니.
태천이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 대답했다.
“갑자기 오게 된 거라서요.”
“갑자기, 라….”
안지민이 다시 이동수를 돌아봤다.
우리가 홍유릉 게이트로 온 이유가 그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하긴. 헌터 협회가 이동수의 오랜 목적을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가 태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태천 헌터가 S급 헌터라고 해도 우담화를 채집하진 못할 텐데요? 백도희 헌터도 그렇고….”
“맞아요. 그래서 식물 채집 전문가를 모시고 왔답니다.”
“식물 채집 전문가라면….”
안지민이 태천의 대답에 바로 나를 돌아봤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전문가’라고 소개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습니다. 일대 길드가 찾아냈다던….”
아는 척 말을 하던 그가 말끝을 흐렸다.
또 눈을 크게 떴는데….
어이쿠. 아무래도 알아차린 것 같다.
“잠깐만요. 당신은 어떻게 봐도 백-”
“지온.”
안지민의 말을 끊어냈다.
[세계수 키우기]도 안 하고 있고, 김지연의 조언을 받아들여 머리끈도 풀었건만.어떻게 바로 알아본 거지?
눈썰미가 좋아서 그런가?
툭.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심을 담아 나를 소개했다.
“전 금지온이라고 합니다. 태천이, 아니. 천공의 기사가 소개한 대로 식물 채집의 전문가죠.”
“네…?”
“여기, 헌터 자격증도 있답니다.”
“네?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당황하는 안지민에게 헌터 자격증을 내민다.
받아든 자격증에 쓰인 [금지온 – A급 헌터]를 보고, 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자격증이 어떤 것인지 알아본 거다.
“어? 이거, 설마 위조-”
텁.
안지민이 손으로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는다.
주변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닌 탓이다.
그와 함께 내려온 협회 헌터들과 관리소 직원들의 수만 합쳐도 열댓이 넘지 않나.
그런 곳에서 ‘위조 자격증’이라는 말을 떠들어댈 수는 없었으리라.
안지민이 우리의 귀에만 들릴 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백-”
“지온.”
“후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나한텐 중요해, 이 양반아.
속으로 반박해준 후 말했다.
“뭐…. 두 번째 자격증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위조 자격증이 맞다는 소리군요….”
안지민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위조 자격증이라는 단어를 말할 땐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을 정도였다.
“전 두 번째 자격증이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그걸 세간에선 위조 자격증이라고 한답니다. 도-”
“지온.”
“…….”
“뭐.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죠.”
말문이 막힌 듯한 안지민에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위조 자격증이나 두 번째 자격증이나.
지금 그 명칭을 정의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안지민도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던졌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한 달 만에 다시 활동하는 게 이런 걸 쓰는 일이라니요….”
“그게 흔히 하는 오해예요.”
“오해라고요?”
“네. 난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이러는 거거든요.”
“…….”
안지민이 황당한 듯이 입을 벌린다.
그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려 도희와 태천이를 바라봤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두 사람이 지금 내 말을 해석해주길 바란 듯했다.
해석할 것도 없는데.
도희가 내 중얼거림을 들은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 없다는 거 진심이에요.”
“진심이라고요? 저 말이?”
“네.”
“그런데 안 말리시고 두 분까지 함께 이곳까지 내려오신 겁니까?”
“바로 그게 흔히 하는 두 번째 오해죠.”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오라버니가 마음먹은 짓을 말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
안지민은 여전히 당황의 늪에 빠진 채였다.
아니. 아까보다 더 깊숙이 빠졌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도희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는다.
“어차피 못 말려요.”
“못 말린다니, 두 분도 말입니까?”
“정확히는 저만요. 태천 오라버니는 애초에 말릴 생각이 없거든요.”
“음!”
“그 옆에서 함께 할 인간이니까.”
“음, 음!”
태천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희의 말이 옳다는 듯이.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도희가 눈을 흘겼다.
“그래서, 늘 그랬듯이 편승하러 왔답니다.”
“편승…입니까?”
“네. 이렇게 될 줄 알았거든요.”
도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재이에게 가면을 건네받고 지온으로 가겠다고 한 순간, 도희는 이렇게 될 것을 다 파악했다.
전통 한식집까지 태천이와 함께 온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S급 헌터인 태천이가 함께라면, 홍유릉 게이트가 A+등급이라고 해도 인원에 상관없이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즉. 내가 지온인 상태여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때, 안지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저도 안 된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안 된다고요?”
“네. 몰랐다면 모를까….”
휙, 휙.
안지민이 손에 쥔 헌터 자격증을 흔들었다.
“다 알게 됐으니, 그저 허락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
그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렇지.
최희석의 후계라면 저렇게 나와야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칼리고를 쓰고 있어 내 얼굴을 보지 못할 텐데도 안지민은 알아차렸다.
내게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려나.
“왜 웃으시는 겁니까? 저는 도-”
“지온.”
“후…. 지온 씨의 게이트 입장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안지민은 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내가 자꾸 “지온”, “지온” 거리며 끼어들 때마다 질린 듯이 진저리치긴 했지만.
아무튼, 그의 태도에도 내가 여유로운 것은 전부 도희 덕분이었다.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도희가 이렇게 될 것을 다 파악했었다고.
그건, 바로 지금 같은 순간도 포함이었다.
도희가 평온하게 말했다.
“이미 윗분들이랑 얘기 끝났어요.”
“네?”
“이 식물 채집 전문가께서 정부와 협회에 줄 우담화도 함께 채집해주기로 했거든요.”
“아…?”
안지민이 이해를 할 듯 말 듯 한 탄성을 흘렸다.
즉, 이렇게 된 것이었다.
정부는 내가 가르쳐준 정보에 의해 우담화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건 스켈레톤 로드가 억지로 베어낸 우담화를 갖고 오는 것일 뿐이다.
내가 채집해줄 신선한 우담화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뜻이다.
같은 우담화라고 해도, 상태와 품질이 좋은 쪽을 갖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바로 그때였다.
안지민의 스마트폰이 벨을 울렸다.
“…….”
“…….”
지금 울리는 벨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가.
안지민은 바로 깨달았다.
나를 지온인 채로 입장시켜도 된다는 연락일 터였다.
따로 공문을 보내오지 않은 이유는 ‘위조 자격증 사용 허가’ 같은 걸 공식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곧 스마트폰을 확인한 안지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별로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씀대로군요….”
“그렇죠?”
“후우. 알겠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안지민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허락했다.
최희석처럼 우직한 사람이니 그럴 만도… 아. 과연.
안지민만 내려온 이유가 이거였나?
최희석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윗분들의 말 따위 무시했을 거다.
그는 그럴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내려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도희라면 방법을 찾았을 테니까.
늘 그랬듯이.
“그럼 수고하세요.”
도희가 안지민에게 인사를 건넨 후 게이트의 입구로 걸어갔다.
어째서일까?
분명 나를 위해 애써준 도희인데 얄미워 보이는 이유는….
태천이와 이동수도 그랬는지 당황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만 티가 역력하게 나는 이동수의 얼굴이 썩 웃겼다.
흠….
어쨌든 안지민에게 생각지도 못한 병을 줘버린 꼴이다.
약이라도 줘야 마땅하겠지.
먼저 걸어간 도희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안지민을 불렀다.
“지민 씨.”
“네…?”
“언제 한 번 백운천에 들르시죠.”
“백운천에 말입니까?”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 지민 씨의 새로운 마나에 대해서.”
“……!”
안지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늘 만난 순간 중에서 가장 놀란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내게 ‘새로운 마나’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걸, 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
싱긋.
대답 대신 미소만 지어 보였다.
사실 새싹이가 가르쳐줘서 알았다.
조금 전 관리소 앞에 선 안지민을 보자마자,
[세계수가 감탄합니다.] [안지민에게서 순수한 번개의 마나가 느껴진다고 전합니다.]-라고,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었다.
원래 안지민의 마나는 번개 속성이 아니었었다.
즉, 한진환이 최희석에 남겼던 정수(精髓)가 안지민에게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최희석다운 선택이었다.
그가 사용하지 않고 안지민에게 넘기는 선택을 한 것은 아마 그의 시간보다 안지민의 시간이 더 오래 남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리라.
안지민의 잠재력도 물론 눈여겨봤겠지.
그리고, 아마… 한진환 그 인간도.
아스트라페의 결계가 괜히 번개 속성 마나 소유자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 것은 아닐 테지.
“갚아야 할 빚도 있고 하니까.”
“빚… 말씀입니까?”
“주로 나쁜 쪽을 갚기는 하는데…. 좋은 쪽도 가끔 갚기는 하거든요. 내가.”
“……?”
안지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알아들으라고 한 소리도 아니었으므로 대충 넘겼다.
“꼭 와요.”
툭.
그의 어깨를 두드린 후 지나쳐갔다.
그렇게, 나는 도희를 따라 홍유릉 게이트에 입장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입장하게 된 홍유릉 게이트는,
“……!”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홍유릉 게이트는 원래 울창한 숲이 펼쳐진 곳이었다.
그 숲에는 냉기와 독기를 품은 안개가 심하게 깔렸었고.
그런데….
“숲이 사라졌잖아…?”
울창했던 숲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숲을 구성하던 나무들로 건축한 듯한 건물과 울타리들만 서 있었다.
숲이 사라진 탓일까?
강제로 한 치 앞만 보게 하던 냉기와 독기를 품은 안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는 나를 보고 이동수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몰랐소?”
“이게 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개발한 거요.”
“개발이요?”
“그럴 가치가 생겼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소.”
“아.”
과연….
예전에 우담화는 못 먹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주기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됐으니, 정부와 협회가 개발하는 거였다.
오늘처럼 내가 들어가는 날에는 신선한 우담화를 얻을 수도 있었고….
슥.
건물을 둘러싼 울타리 너머를 바라봤다.
울타리 너머로는….
“길도 생겼네….”
“방금 물어보고 왔는데, 스켈레톤 로드의 왕성까지 이어진대요.”
“왕성까지? 설마 우담화가 자란 곳까지도 이어진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요? 대신 여길 벗어나면 안개는 다시 짙어진대요.”
“헐….”
무섭네.
가치를 발견했다고 이렇게 달라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