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65
제567화
검지를 뻗어 갖다 대자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우담화는 예전처럼 확률 보정을 거쳤다.
90%에서 시작해 5%씩 두 번 증가한 후 가느다란 뿌리를 튕겨 솟아오른 것이다.
허공에 떠오른 그것을 받아들었을 때였다.
“허, 허허…!”
이동수의 입에서 실소가 튀어나왔다.
내가 우담화를 채집하는 모습이 퍽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그가 내 손에 들린 우담화를 보고 한탄을 중얼거렸다.
“손가락을 갖다 댔을 뿐인데 뽑혀 나오다니. 대체 어떻게 한 거요?”
“글쎄요.”
“정말 터무니없는 광경이로군…. 나는 감히 건드리지조차 못했건만….”
“하하….”
이동수는 채집 스킬이 A등급이었다.
우담화는 S등급이니 채집은커녕 만질 수도 없었다.
다 새싹이 덕분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대신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지금 나는 세계수 관리인이자 S급 헌터인 백도운이 아니었다.
A급 헌터인 금지온이 그런 대답을 하는 것은 영 이상했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바라봅니다.]하하하.
속으로 웃으며 이동수에게 대꾸했다.
“어떻게 채집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닐 텐데요?”
“…하긴.”
이동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답을 들을 생각은 접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말한 대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방법 따위가 아니었다.
슥….
손에 든 우담화를 이동수에게 내민다.
그가 아주 귀중한 보물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S등급 영약이니 귀중한 보물이 맞긴 하지만, 그의 태도가 저런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쪽 말대로요….”
이동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우담화를 받아든 두 손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십여 년을 넘게 고대해왔을 테니까.
사랑하는 여인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서 말이다.
비록 남의 손을 빌렸다고 해도.
“지금 중요한 건, 이렇게 싱싱한 우담화가 나의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지….”
그리 말한 후 이동수는 마법 주머니에서 함을 하나 꺼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 함은 우담화를 담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홍유릉 게이트엔 갑작스럽게 오게 된 것일 텐데도 갖고 있다니….
설마 저 함 평소에도 갖고 다녔던 건가?
“…이제 그걸 들고 헌화하러 가겠군요?”
“그럴 생각이오. 그전에 들러서 만날 사람이 있긴 하지만.”
“만날 사람이요?”
“그렇소. 난 가족이 없지만, 그녀에겐 자식들이 있었거든. 이 기쁜 소식을 말해 줘야지.”
“엇….”
자식이 있었다?
그러니까, 자식이 있는 여자를 사랑했다고?
잠깐만. 이거, 설마….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동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런 거 아니오!”
“으음. 원래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고들 하죠. 하지만 실상은 불-”
“거기까지! 정말 아니니 그 말은 삼키시오! 그저 외사랑이었소!”
이동수가 몸을 떨며 부정했다.
마음 같아선 두 손을 마구 휘두르고 싶은데, 우담화를 담은 함을 들고 있어서 그러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부정한 덕분일까?
깊은 오해의 늪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도희와 태천이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가 다급히 부정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눈엔 경멸과 경시가 싹텄을 거다.
“외사랑이었다고요?”
“정확히는 지켜보기만 했지. 무대에 오르지도 않았소.”
“아….”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주시오. 내가 아니라 그녀의 명예를 위해서 부탁하는 거요.”
이 와중에도 이동수는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걱정했다.
이미 죽은 여인의 명예를 위해서 부탁한다, 라….
나이와 날렵한 외모와는 달리 정말 순수한 구석이 있는 양반이다.
우찬성 회장의 오랜 지기라더니, 둘이 닮은 면이 있었다.
그나저나….
“그런데도 자식들을 만나러 갈 정도로 사이가 좋은 겁니까?”
“원래 알던 사이였소. 우리 부모 세대 때부터 이어진 인연이지.”
“아하.”
과연. 소꿉친구로구만?
그냥 남사친이라면 모를까….
가족끼리도 친한 사이라면 선을 긋기는 모호할 거다.
또 자식들과도 만나러 갈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건, 그가 그만큼 처신을 잘해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스스로 무대에도 오르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넘으면 안 되는 선을 절대로 넘지 않았으리라.
“후우….”
우리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동수는 안심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우담화가 담긴 함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고맙소. 그녀의 손자, ‘우현’이가 참 많이 기뻐할 거요….”
“……?”
지금 뭘 들은 거지?
왜 저 이름이 이동수의 입에서 나오는 걸까.
생각지도 못한 이름의 등장에 그를 빤히 바라봤다.
나처럼 도희와 태천이도 당황해 표정이 부지불식간에 변했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이동수가 당황스러운 듯이 물었다.
“다들 왜 그러시오?”
“방금, ‘우현’이라고 했습니까?”
“…그랬소만?”
“그 우현이라는 사람의 성(姓)이 어떻게 됩니까?”
“…….”
이동수는 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끼고 잠깐 상황을 파악하려고 한 것이다.
표정과 함께 분위기가 제법 험악해졌으니 당연히 보일 만한 행동이었다.
여기에서 더 압박하면 아마 그는 입을 다물고 말 터였다.
자기가 아는 우현을 걱정하는 마음에.
“선배님.”
그때였다.
태천이가 나지막하게 이동수를 불렀다.
나와 도희는 가만히 태천이를 바라봤다.
우리는 둘 다 잘 알았다.
이런 순간에 타인을 설득할 사람은 나나 도희가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 태천이가 제격이라는 걸.
“저희는 그저 확인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희가 찾는 사람인지 아닌지.”
“…그럴 필요 없소. 같은 사람이 아닐 테니까. 당신들이 아는 우현과 내가 아는 우현은.”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
“그렇기에,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 말한 후 태천이는 이동수를 빤히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를 설득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진실한 마음만이 여실히 느껴질 뿐으로, 나나 도희가 했다면 설득은 통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바로 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태천이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이 있었으므로.
왜 세상이 그를 천공의 ‘기사’라고 부르고, 그걸 또 인정하겠는가?
거짓을 말하지 않고 항상 진실하게 행동해왔기 때문이었다.
나와는 달리.
늘 진실한 모습만 보여 준 이의 말은 다른 이들의 말보다 강력한 법이다.
“후우….”
이동수가 숨을 짧게 내쉬었다.
태천이의 설득이 통한 거다.
곧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 씨요.”
“아. 그렇군요.”
태천이 싱긋 웃었다.
그 미소가 이동수를 안심시켰다.
서로가 아는 우현이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란 것을 확인한 덕분이었다.
최우현….
설마 이름만 같은 사람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네.
그런데,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도희가 끼어들었다.
성이 다른 것을 확인했는데 왜 그러는 걸까.
의문을 느꼈지만, 우리는 도희를 말리지 않았다.
도희라면 분명히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 테니까.
나와는 달리.
“선배님께서 사랑하셨다는 분…. 그분의 성씨가 어떻게 되죠?”
“성? 그건 또 왜 묻는 거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말씀해 주시겠어요?”
“…….”
이동수는 눈을 찌푸렸다.
성이 다른 것을 확인해놓고서는, 왜 또 물고 늘어지는 거냐.
그리 따지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건 도희였다.
도희 옆에는 나와 태천이가 서 있었고.
우리 앞에서 도희한테 말을 함부로 할 정도로 간이 큰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그 리롄제조차 결딴낼 셈이 아니라면 감히 하지 못할 거다.
아. 스미르노프는 가능하겠군.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녀석이니까.
“그녀는 ‘박’ 씨였소.”
“음…. 조금 공교롭네요.”
“공교롭다? 대체 뭐가 말이오?”
“우리가 찾는 사람의 이름이 박우현이거든요.”
“…하얀 성녀. 지금 억지를 부리려는 거요?”
“설마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글쎄….
억지라고 생각하는 게 마땅하지 않나 싶다.
어머니의 성을 쓴다면 모를까.
왜 한 단계까지 건너뛰고 할머니의 성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도희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찾는 박우현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어요. 아마 어렸을 적에 부모가 아니라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싶네요.”
“……!”
“이름도 할머니가 지어 준 것처럼 말했었고요.”
“…….”
“최우현은 어떻죠?”
“으음….”
도희의 질문에 이동수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그 반응에 알 수 있었다.
최우현이라는 인간도 그랬음을.
그렇게까지 똑같다면, 정말 도희가 예상한 대로 최우현이 박우현일 수도 있겠다.
물론,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할머니를 향한 깊은 애정으로 성을 바꿔 부르다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만. 그저 말로 이럴 게 아니라 사진을 보여 주면 되는 일이잖소?”
“아. 사진을 확인해주실 마음이 있으실지 몰랐거든요.”
“…….”
“마침 잘됐네요. 여기요.”
도희는 마법 주머니에서 한 리스트를 꺼냈다.
차르륵….
거의 끝 페이지까지 넘긴 후 이동수에게 건넨다.
그 페이지엔 아프리카 대륙에서 숲의 기억을 읽으며 봤던 버섯의 용모가 그려져 있었다.
어쩜. 우리 도희는 그림도 잘 그리는걸.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바라봅니다.]덥석.
이동수가 함을 옆구리에 낀 후 도희의 손에서 빼앗아들 듯이 리스트를 집었다.
그러고는 바로 버섯의 몽타주를 확인했다.
확인하는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았다.
“이 자가 박우현이오?”
“네.”
“흥. 그럼 그렇지….”
그가 코웃음을 쳤다.
반응을 보아하니, 최우현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나 보다.
도희의 예상이 틀렸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렇군요….”
도희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나.
평소의 도희라면 방금 같은 상황에서 사과를 전했을 터였다.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릴 게 아니라.
“그럼 이 자는 어떻죠?”
슥….
도희가 손을 뻗더니 리스트를 앞으로 넘겼다.
이동수는 눈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계속 확인하는 것이 불쾌한 듯했다.
하지만,
“……!”
곧 그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역시 그랬군요….”
그 모습을 본 도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어째서? 대체 어째서… 우현이의 사진이 여기 있는 거요…?”
팔랑….
이동수가 리스트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덕분에 그가 확인하고 경악했던 얼굴을 보게 되었다.
리스트엔 그동안 우리가 버섯이라고 생각했던 자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버섯이 자신의 마법으로 조종하던 시체의 얼굴 말이다.
말하자면, 이동수도….
“버섯의 실제 얼굴을 몰랐다는 얘기군….”
“그런 거죠.”
“잠깐만. 실제 얼굴이라니? 이게 우현이가 아니란 거요?”
“그건, 버섯이 조종하던 시체의 얼굴입니다.”
“지금…! 지금, 시체라고 하셨소…?”
“…….”
“우현이가… 시체를 조종했다? 그런 짓을 그동안 해왔다고…?”
툭….
이동수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동시에 손에 쥐어진 리스트도 함께 떨어졌다.
힘겹게 아주 힘겹게… 우담화가 담긴 함만이 그의 옆구리에 간신히 붙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우리는 조용히 지켜봤다.
“우현이가…? 그녀의, 손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