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70
제572화
“어서 오세요. ‘미완(未完)의 세계’에.”
버섯이 인사를 건넸다.
미완의 세계라….
잿빛의 대지만 있는 이곳과 썩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놈이 입을 열었다.
“아까워서 어쩌죠? 조금 늦으셨어요.”
“늦었다고?”
“네.”
탁.
버섯이 대답하면서 손으로 헤미스파이리움을 짚었다.
헤미스파이리움엔 이미 열쇠가 꽂혀 돌아가 있었다.
아바돈을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작동한 것이다.
“곧 그분께서 건너오실 겁니다.”
“…….”
버섯의 말을 듣고 헤미스파이리움을 바라봤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다른 차원의 존재를 소환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엄청나게 방대한 마나가 필요할 텐데….
그 어디에도 ‘마나 저장고’는 보이지 않았다.
버섯은 대체 방대한 마나를 어디에서 끌어올 셈인 걸까?
그런 의문을 가졌을 때였다.
쿠구구구…!
갑자기 대지가 울렸다.
헤미스파이리움 때문인가?
그리 생각하고 바라봤지만, 그것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대지가 울린 이유는….
[세계수가 당황합니다.] [공간이 ‘복사(複寫)’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새싹이가 땅 울림의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그와 동시에,
“헉! 땅이…!”
“새로운 대지가 생겼어…?”
태천이와 도희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잿빛 대지가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탓이다.
땅 울림을 제외하면 전조 증상이 없었기 때문일까?
새로운 대지가 생기는 모습은 마치 컴퓨터 파일을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하는 듯했다.
원래 대지와 새로 생긴 대지가 부딪치지는 않았는데, 새로 생겨난 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얼씨구. 자꾸 늘어나잖아?”
“대체, 도대체 뭐를 위해서 이러는 거지…?”
그 현상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컨트롤 키와 V 키를 마구 연타한 듯이 계속 반복됐다.
저걸 어떻게 막아야 하지?
공간이 복사되는 걸 막을 수 있기는 한가?
당황스러운 탓에 의문만 자꾸 떠올랐다.
그때, 버섯이 굉장히 얄미운 태도로 말했다.
“궁금해요?”
“뭐?”
“갑자기 왜 공간이 복사되는 건지 가르쳐 드릴까요?”
“하하….”
어이가 없네.
대체 누가 가르쳐 달라고 하겠는가?
저렇게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얼굴로 말하는데.
역시….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만이 놈이 털어놓게 할 유일한 방법이리라.
그리 생각하고 손가락에 따스한 손길을 썼다.
그런데,
“가르쳐주면 좋지?”
태천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놀랍게도 있었던 거다.
싹수 노란 얼굴을 한 버섯에게 순수하게 가르쳐 달라고 말할 인간이.
태천이 복사되는 세상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왜 복사되는 건데?”
“…….”
“이봐?”
“…….”
“뭐야. 갑자기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거야?”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문이 막힌 버섯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그건 태천이를 보는 버섯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약 올리려고 한 말에 순순히 가르쳐달라고 할 줄은 몰랐겠지.
우리도 몰랐으니까.
그때였다.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버섯을 어루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우린 이 공간의 존재 의의를 알게 되었다.
[세계수가 관찰을 끝냈습니다.] [세계수는 보고 있었으면서 깨닫지 못했었다고 자책합니다.] [이어 마나 저장고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고 설명합니다.]눈앞에…?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는 공간들뿐이었다.
설마, 저것들이 전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저 미완의 세계들이 바로 헤미스파이리움을 작동하기 위한 저장고였다고 설명합니다.] [헤미스파이리움이 완전히 작동되고 나면 게이트는 자연히 소멸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하…!”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저 공간들이 전부 마나 저장고였다니….
“알아차리셨나 보네요.”
“뭐, 그렇지.”
“도운 씨가 스스로 깨우쳤을 리는 없고…. 역시 세계수가 가르쳐준 건가요?”
“말하는 것 좀 보게. 너 왜 그렇게 단정 짓는 건데?”
“오. 그럼 스스로 깨달으신 건가요?”
“당연히 새싹이가 가르쳐줬지.”
“…….”
버섯이 심기가 불편한 듯이 입술을 비튼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놈을 내버려 두고 새싹이가 가르쳐준 것을 도희와 태천이에게 설명했다.
두 사람은 적잖게 놀랐다.
“저것들이 다 마나 저장고라고요?”
“얼씨구. 그럼 저걸 일일이 없애야 하는 거냐?”
“그게 가능할까요?”
“음…. ‘가르강튀아’를 소환하면 가능할 것도 같아.”
“아. 그렇네요. 그거라면 가능하겠어요….”
도희의 긍정에 태천이는 바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두 사람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가르강튀아라면 저 공간들을 없애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공간이 복사되는 현상 자체는 막을 수 없다고 해도.
파아앗…!
태천이를 도울 생각인지 도희도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마 빛의 성역을 전개할 생각이겠지.
“……?”
마법을 캐스팅하던 도희가 나를 돌아봤다.
의아함을 느낀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한 것에.
“오라버니.”
“응.”
“지금 왜 가만히 있는 거예요?”
“으음…. 저 공간들을 없애는 게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에 부합하지 않아서.”
“네?”
“난 저것들을 없애고 싶지 않아.”
“……?”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반면, 태천이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또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가르강튀아 소환을 그만뒀다.
역시 태천이다.
“태천 오라버니…?”
“난 도운이 생각에 찬성이야.”
“찬성한다니. 오라버니가 무슨 생각을 한다고 그래요?”
“너무하네? 나도 생각이란 걸 해.”
“하….”
물론.
그 생각이 도희가 원하는 쪽은 아닐 것이다.
도희도 그걸 예상했는지 내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럼 말해봐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말하면 화낼 것 같은데….”
“말하지 않으면 안 낼 것 같아요?”
“아.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네?”
“…….”
파르르.
도희의 눈꺼풀이 떨렸다.
곧 화를 터뜨릴 듯하다.
그러기 전에 설득해야겠다.
타당한 근거를 들면서.
“난 저대로 내버려 둬서 아바돈을 건너오게 할 생각이야.”
“뭐라고요?”
“그렇게 건너온 아바돈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줄 거고.”
“…….”
도희는 기막힌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런 얼굴을 참 많이도 봐 왔다.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얼굴 말이다.
“아니…. 저걸 막으면 건너오지 못하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굳이 뭐하러 넘어오게 해서 싸워요?”
도희의 의견은 지당했다.
복사된 공간들을 없애 아바돈이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상책이었다.
그런 후에 버섯을 제압하면 아바돈은 이 세상의 수족(手足)을 전부 잃게 된다.
건너올 방법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혹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다시 해야 할 테니 건너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니까.”
“……!”
“도희야. 난 어차피 아바돈이랑 결판을 내야 해.”
“…….”
내 말에 도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결판을 내야 한다는 말을 긍정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이해한다.
어느 동생이 오빠가 위험한 일을 하겠다는데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도희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고 아바돈이 마족인 이상,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했다.
“전대 세계수는 내게 ‘뿌리 내리기’ 스킬을 줬어.”
“…….”
“그 스킬을 준 이유는 너도 짐작할 테고. 내가-”
“새싹이를 위그드라실에 이식(移植)하길 바라는 거겠죠.”
“맞아.”
세계수가 있어야 할 세상에 세계수를 돌려보내 주는 것….
그걸 바라기 때문에 뿌리 내리기 스킬을 준 것일 터였다.
[세계수 키우기]를 통해 ‘성역’이라는 장소를 창조한 것도 다 그것을 위해서였겠지.“난 전대 세계수의 그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야.”
“왜요? 그냥 이번에 아바돈이 건너오지 못하게 막고 다음에 이식하면 안 돼요? 우린 안전하잖아요.”
“그러면 전대 세계수에게 진 빚을 갚을 수가 없잖아.”
“빚? 오라버니가 무슨 빚을 졌다고 그래요?”
“기억 안 나? 전대 세계수가 관리인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난 이 자리에 없었어. 광운(狂雲)이었으니까.”
“아….”
도희가 작게 탄식을 흘렸다.
전대 세계수가 날 관리인으로 선택하지 않은 시간선을 떠올린 것이다.
그 시간선에서 나는 도희를 잃고 태천이를 만나지 못해 광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엔 도희가 버젓이 살아있고 태천이가 마주하고 있다.
또 나를 기다려주는 여자도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진 빚은 꼭 갚아주는 성격이잖아?”
“주로 복수이긴 하지만요.”
“그건 그렇지.”
도희의 말에 바로 긍정했다.
은혜를 갚는 일보다 복수를 갚는 일에 열정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걸 반박하는 것은 내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리라.
“아무튼. 말이 길어졌는데, 이러나저러나 난 아바돈과 싸워 결판을 내야 해.”
“인정해요…. 하지만, 꼭 지금일 필요는 없잖아요?”
“응?”
“앞으로 새싹이는 더 성장할 테고, 따라서 오라버니도 더 강해질 테니까요. 그러니 나중에-”
“그건 아니야. 도희야.”
태천이가 끼어들었다.
나도 막 도희의 말을 반박하려고 했었던 타이밍이었는데….
그가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 잠자코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어차피 싸울 거라면 지금 싸우는 게 좋아.”
“어째서요?”
“어째서냐니. 내가 같이 있잖아.”
퍽…!
태천이 자신만만하게 제 가슴을 쳤다.
호기로운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퍽 믿음직스러웠다.
도희도 그리 생각했는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의 내용은 조금 어두웠다.
“그럼, 제가 문제네요….”
“응? 네가 왜?”
“그야 전 아바돈과 싸울 실력이 못 되니까요….”
도희가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실력이라….
그 말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그동안 도희도 꾸준하게 성장하긴 했지만, 나나 태천이에 비할 바는 못 됐으니까.
헤미스파이리움을 통해 아바돈이 건너오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좋을 터였다.
지금 상태로라면, 말이다.
웃음이 나오는걸.
“후, 후, 후.”
“……?”
“내가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예상하고 준비한 게 있다고 말한다면, 믿어줄래?”
“아뇨? 당연히 못 믿죠.”
“…맞아. 그냥 우연의 일치야.”
조금 속상한걸.
빈말로라도 믿을 수 있다고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그래서요? 뭘 준비했는데요?”
도희가 재촉했다.
시무룩한 척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믿어주지 않은 건 속상했지만.
후후….
궁금하시다면 가르쳐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도희야. 우리가 오늘 어딜 갔었더라?”
“오늘이요? 그야 홍유릉 게이트에… 잠깐만요. 설마, 오라버니…?”
“그래. 맞아. 사실-”
“우담화를 꼬불친 거예요?”
“…….”
꼬불쳤다니….
대체 우리 도희가 저런 상스러운 표현을 누구한테 배운 거지?
[세계수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날 보긴 왜 봐?
나 아니야.
……아마도.
[세계수가 관리인을 지그시 바라봅니다.]흠, 흠!
아니라니까 그러네.
“오해야, 도희야.”
“오해라고요?”
“그래. 정부와 협회는 내게 ‘협회가 탐색한 위치에 있던 우담화들’을 뽑아주길 원했잖아.”
“그래서요…?”
“이것들은 ‘협회가 탐색하지 못한 위치에 있던 우담화들’이야!”
뿅. 뿅. 뿅.
인벤토리에서 우담화들을 꺼냈다.
신선한 우담화 세 송이가 허공에 떠올랐다가 손바닥에 안착했다.
도희가 그 우담화를 가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오라버니.”
“응?”
“그게 꼬불치는 거예요….”
“어라, 정말?”
어째서…?
이유를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