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8
제58화
스마트폰에서 흰빛이 뿜어졌다.
신성한 것이라도 되는 양 스마트폰을 공손하게 침대에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고개도 높이 쳐든다.
흰 병실 천장이 보인다.
마음 같아선 태양을 보고 싶었는데.
뭐, 천장이든 태양이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일주일 동안 내가 화면을 두드렸던 수고가 보상받았다는 사실이다.
“크라우드?”
머릿속에서 태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바눔이라는 이름의 암살자를 제압했던 날 아침에 있었던 대화였다.
당시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크라우드와 사이가 틀어졌다고? 벌써 2명이나 죽였어?”
“어젯밤에 온 암살자까지 합쳐서 3명이라고요?”
“도운아…, 게네 제정신 아닌 놈들이야.”
“세상 전복이 목적인 미친놈들이에요!”
도희와 태천에게 크라우드에 관련해 설명했다.
날 찾아온 암살자를 설명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크라우드를 이미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몇 번 정도 맞부딪친 적이 있는 것 같다.
정복征服이 아니라 전복顚覆이 목적이라고?
“크라우드와 관련됐었다면 우리한테 바로 얘기를 했어야죠!”
도희는 화를 냈다.
화를 내는 얼굴엔 나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변명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변명만 할 수 없는 거다.
난 변명하지 않고 따져 댔다.
“크라우드 좀 아는 것 같다?”
“말도 마. 그 새끼들 완전 독종이야. 그냥 물러가는 법이 없-”
도희가 말하는 태천의 어깨를 때린다.
태천이 도희를 쳐다보는데, 도희는 나만 보고 있다.
나의 여동생아.
사랑스러운 여동생아.
“너희도 나한테 말 안 했네?”
“……!”
“그게, 그게요….”
“그럼 나도 너희에게 화내도 되겠네?”
왼손을 옆구리에 올리며 말했다.
도희와 태천이는 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자기들은 크라우드 같은 놈들과 싸웠던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으면서, 나는 말했어야 한다?
이런 괘씸한 녀석들을 봤나.
“무승부로 넘어가자.”
“그래요! 오라버니 얘기하려고 온 거잖아요. 네?”
태천이와 도희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움츠러든 모습이 귀여워서 봐줬다.
그런 후 우리는 앞으로 대비할 일들을 의논했다.
김무연을 죽이는 게 촬영됐으니 대비해야 했다.
“다행히 여론전에서 이겨서 우리 이미지는 나쁘지 않아요.”
“재임이가 고생 좀 했지.”
“…흥, 아이가이온이 워낙 이미지가 나빠서 그런 거죠. 그 사람이 고생은 무슨 고생?”
“너무 그러지 마. 재임이 착해. 성실하고. 도운이랑 연관되면 멍청해져서 그렇지.”
“그게 싫은 거예요, 그게.”
도희가 째려보자 태천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말을 돌리고자 정부와 협회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정부와 협회는 우리에게 우호적이야. 피해자로서 정당방위를 주장하라더라.”
“애초에 정당방위 맞잖아.”
“그러니까 우호적인 거지. 재판에서 무죄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대.”
A급 길드의 다툼이다.
지켜보는 게 아니라 도와주겠다고 했다?
“거래했구나?”
“이래서 눈치 빠른 백도운은 싫어.”
“뭘 요구했는데?”
“혜화에 있는 낙산공원 게이트 독점권 반납.”
전에 이 대리에게 들은 적 있는 곳이다.
A등급 게이트로, 성급하게 독점권을 따낸 게 아닌가 걱정했었다.
그런 만큼 분명 어떠한 목적이 있었던 곳이었을 텐데….
“얼마 전에 따낸 데잖아. 필요했던 거 아니야?”
“그랬는데, 이젠 필요가 없어졌어.”
필요가 없어졌다?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도희는 미소까지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희는 아는 눈치다.
“말해 줄 생각은 없고?”
“오라버니는 몰라도 돼요.”
“너무하네.”
시무룩한 척해 보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빙긋 웃은 낯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저렇게 되면 내가 뭐라고 하든 말해 주지 않을 거다.
나도 이따금 저런 낯을 해 보이기 때문에 잘 안다.
“하아….”
이어 머릿속에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의 주인은 도희와 태천이 떠나고 찾아온 유재이의 것이다.
그녀는 평상시와 달리 추레한 옷차림을 하지 않았다.
화장한 것인지 눈썹은 평소보다 진해 시원스러워 보이고, 붉은 입술은 생기가 넘쳐 보인다.
어두침침한 계통의 옷들도 색깔이 다 바뀌었다.
한층 밝은 모습은 화사하게 예뻤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지만, 병문안을 온 사람다운 모습은 아니다.
결연한 얼굴에서는 전투에 나서는 전사의 그것마저 느껴졌다.
“…….”
“걱정돼서 찾아왔더니, 게임이나 하고 있고.”
유재이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을 번갈아 두드리는 내 검지와 중지를 향했다.
기분이 살짝 나빠 보여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근데 오늘 어디 가?”
“뭐?”
“아름답게 하고 왔길래.”
“…안 가.”
살짝 웃으며 대답한다.
예쁘다는 말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늘도 그 여우 같은 지지배 있을 것 같아서 차려입고 온 거야.”
여우 같은 지지배?
갑자기 유재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특히, 내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가져온 물건이 쌓인 곳을 유심히 쳐다봤다.
과일주스, 고급 과일 세트, 중급 힐링 포션 등등.
“저번이랑 똑같네. 아직 안 왔나 보지? 흥, 그럼 됐어.”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뭐야, 나 기절해 있는 동안 무슨 일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지연과 심윤진을 본다.
그녀들은 아하하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아니, 웃지만 말고 상황을 설명해 줘야지.
그들은 끝까지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금방 유재이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재이가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우채연이 자기 오빠와 함께 찾아왔다.
“걱정 많이 했어요, 오빠.”
“네? 오빠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우채연은 내 옆에 앉아 사과를 깎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나는 ‘이게 다 무슨 일이냐?’라고 묻듯이 우연후를 쳐다봤다.
그도 나처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동생을 보고 있었다.
사과를 다 깎은 우채연이 내게 사과를 건넸다.
“여기요.”
“아, 네, 고맙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도운 오빠.”
그러면서 가느다란 손으로 내 어깨를 툭 친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몬스터를 쓰러뜨리던 아이는 어디를 가고 웬 여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어라, 여우?
아, 유재이가 말했던 여우가 누군지 알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어렴풋이 예상이 갔고.
그래서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입고 온 거였구나?
“도운 오빠?”
“잠깐, 그쪽 오빠와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자리 좀 피해 줄래요?”
“네에?”
그 말에 우채연은 제 오빠를 쳐다본다.
우연후는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해서요, 좀 부탁합시다.”
“…알겠어요.”
다행스럽게도 우채연은 순순히 물러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문을 닫고 나간다.
5초 후, 우연후와 나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왜 저러는 겁니까?”
“도운 씨가 탐이 나나 봅니다. 파티원으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아요.”
“나를요?”
“강하고, 머리도 제법 잘 돌아가고, 얼굴도 그만하면 괜찮고, 인간관계도 좋고, 더군다나 생명의 은인이기까지 하잖습니까. 탐날 만하죠.”
“괜찮다니, 잘생겼다고는 하지 않네요?”
“거울 갖고 와 드려요?”
“…쳇.”
혀를 차니 그가 피식 웃었다.
그의 웃음은 그리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평소처럼 진중한 얼굴로 변했다.
“재이 씨 말이 맞았습니다. 열쇠는 아무나 만들 수 있더군요.”
“크라우드가 유재이를 노리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아, 그 고철 더미들은 기계 장치였습니다.”
“기계 장치?”
“정확하진 않지만, 발사대 같아 보였습니다.”
“발사대라면, 무기일 수도 있겠군요?”
“네.”
상자 속에 있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했다.
유재이를 시켜 만들려던 열쇠 제작도.
어떤 무언가를 발사하는 발사대.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바이올렛 바이올런스.
마지막으로,
“마법석은 뭐였습니까?”
“평범한 마법석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A급 헌터 10명분의 마나가 응축돼 있더군요.”
굉장한 양의 탁한 마나가 응축된 마법석.
마법석은 발사대의 연료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뭘 발사하려는 걸까.
열쇠는 뭘 열려고 하는 거고?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아, 참. 태천이와 얘기를 한번 나눠 볼래요?”
“음?”
“이번에 크라우드에 관해 말했거든요. 태천이도 그놈들과 적대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아하. 그렇게 하죠. 그런데….”
“……?”
“그 게임 재미있습니까?”
우연후는 내 오른손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진지한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손을 보고 어이가 없는 듯했다.
빙긋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우 씨 남매는 VIP 병실의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있다가 떠났다.
그날 이후 입원해 있는 일주일 동안 손님 몇 명이 더 찾아왔다.
이 대리와 최기우가 한 번씩 왔는데, 별말 없이 얼굴도장만 찍고 떠났다.
김재식은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 병문안을 대신했다.
나는 그들 모두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맞이했다.
즉,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퇴원하는 날 드디어 스마트폰 화면이 하얗게 빛났다.
“…뭐 하냐?”
함께 퇴원하기 위해 아침 일찍 와 준 태천이 묻는다.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팔을 쳐든 내 꼴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그럴 만하다.
나 같아도 웬 사람이 이러고 있으면 왜 저러나 싶을 거다.
“기쁨의 세레모니.”
“하아…. 뭔데. 이번엔 또 뭐 나와서 그러는 건데.”
태천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한다.
아마도 내가 랜덤 박스에서 좋은 걸 뽑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좋은 일이 있는 건 맞지만, 랜덤 박스에서 무언가를 뽑은 건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가오는 태천이에게 화면을 내밀었다.
“짜잔.”
“뭐야, 나무잖아?”
화면에는 어린나무가 자라나 있다.
푸른 줄기는 이제 갈색빛을 띤다.
네 개의 이파리는 길고 짧은 가지로 변했고, 가지에는 몇십 장의 이파리가 자랐다.
그렇다.
우리 새싹이가 드디어 ‘어린나무’가 된 거다.
[세계수가 성장했습니다!] [‘조금 자란 새싹’ 상태에서 ‘어린나무’ 상태가 되었습니다!] [세계수 성장에 따라 모든 스킬의 효과가 어린나무 상태로 강화됩니다.] [캐릭터 창과 스킬 창을 열어 관리인 백도운 님의 상태를 확인해 주십시오.]“보이냐? 이 늠름한 모습이!”
“늠름…. 굳이 따지자면 귀여운 거 아니냐?”
“귀엽고 늠름하다고 하지, 뭐.”
“그게 같이 쓰일 수 있는 표현인가?”
[업적 달성!] [백도운 님은 세계수를 어린나무로 성장시켰습니다. [그 업적을 인정받아 보상으로 S등급 스킬 ‘관리인 교본 제2권’을 드립니다.] [관리인 교본 제2권은 바로 우편함으로 전송됩니다.] [또한, ‘이벤트 던전 입장권’을 드립니다.] [이벤트 던전 입장권은 바로 우편함으로 전송됩니다.]이벤트 던전 입장권?
아마 몬스터 웨이브를 막았던 그곳을 뜻하는 것 같다.
그 이벤트를 통해 인벤토리와 솔방울을 얻었으니….
솔방울을 또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정 공방에 가기 전에 이벤트를 하고 가야겠어.
인벤토리를 또 받으려고 하는 건 욕심이겠지?
“캐릭터 창.”
이파리 하나당 마나가 5만씩 증가했었다.
새싹이가 어린나무가 된 지금은 어떨까.
가지에는 몇십 장의 이파리가 자라 있다.
[캐릭터 창] [백도운 – 세계수 관리인] [타이틀 – 세계수의 동반자] [HP – 100%] [MP – 200만260] [SP – ∞] [상태 – 마나 과다증]당황스러워서 눈을 껌뻑였다.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창을 들여다본다.
200만이라는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마나 과다증?”
상태 칸이 시선을 끌었다.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현재 관리인은 신체 수준에 비해 마나가 너무 많습니다.] [마나 과다증을 해결하려면 신체 수준을 올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을 시 마나가 제대로 순환하지 않는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지금 당장 가지치기하기를 권합니다.]뭐? 그걸 또 하라고?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알고 하는 소리야?
[세계수 어린나무는 가지치기는 즐거운 거라며 정정을 요구합니다.]그렇지 않아, 새싹아.
가지치기는 굉장히 아픈 거란다.
사람에게는.
“…어라?”
새싹이는 새싹이 아니었다.
어린나무가 되었다.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