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80
제582화
새싹이가 게이트를 나왔다가 들어간다.
주변에 모인 이들은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 광경을 당황스럽게 바라봤다.
그 가운데 한재임이 손을 들어 올리며 냉소적이게 말했다.
“혹시 저 짓거리 이해되는 사람, 거수.”
“…….”
“아무도 없어?”
“…….”
조금 전처럼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한재임을 비롯해 모두의 시선이 도희와 태천에게로 향했다.
세상에서 도운의 행동 근거를 가장 잘 파악해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
“…….”
두 사람은 시선에 담긴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다.
도운이 저러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때,
“모두 주목해주겠나.”
최희석이 모두를 불렀다.
옆에 서 있는 협회 직원에게 들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시선이 전부 모이자마자 그가 말했다.
“칠갑산 게이트에서 울릉도 때와 비슷한 파장이 관측됐다고 하네.”
“울릉도 때하고요? 그 말씀은 즉…?”
“그래. 저 게이트가 곧 무너질 거란 소리지. 계산 결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군.”
“얼레…? 그럼 지금 도운이 빼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태천이 게이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여전히 게이트에서 들락날락하고 있는 새싹이의 두 이파리가 ‘X’자로 교차했다.
새싹이의 이파리를 보지 못했는데도 도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요.”
“어, 왜?”
“오라버니는 몰라도 세계수는 게이트가 무너지려 한다는 걸 관찰했을 테니까요. 당연히 그 사실을 전달했겠죠.”
“그러니까, 도운이 알면서도 나오지 않는 거란 소리지?”
“네.”
“…….”
태천이 검지로 목을 긁적였다.
곧 게이트가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나오지 않는 이유.
그것이 궁금한 탓이었다.
“왜 나오지 않는 건데?”
“그야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아서겠죠.”
“싸움이…?”
“생각해봐요. 24일 하고도 4시간 동안 멀쩡하던 게이트가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가 뭐겠어요?”
“음. 글쎄…?”
태천은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보다 다른 데 신경을 빼앗긴 탓이었다.
24일 하고도 4시간 동안.
도희는 도운이 아바돈과 무저갱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굉장히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아바돈이 무너뜨린 거예요. 이것으로 넘어오기 위해서,”
태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희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설명이 옳다는 듯이 새싹이의 이파리가 동글게 말려 ‘O’자가 되었다.
이번에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도운이 아직 아바돈과 싸우는 중일 거라고? 그럼, 저러는 게…?”
최희석이 끼어들 듯이 질문했다.
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세계수가 들락날락하는 건 아마 엎치락뒤치락하는 거겠죠. 아바돈이 게이트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과연. 그렇다면, 지금 즉시 전투를 준비해야겠군.”
“네? 뭘 한다고요?”
“음? 안 들렸나? 전투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네만.”
“아아….”
“왜 그러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희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였지만, 태천을 비롯한 백운천은 바로 알아봤다.
그 미소가 설명하기 귀찮아서 얼버무릴 때 짓는 미소라는 것을.
파아앗!
도희가 바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흰빛이 머리에 둥글게 모여들었다.
또 땅바닥에서 밤하늘을 비출 정도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음…?”
최희석이 당황스러운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빛과 함께 느껴지는 마법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탓이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헌터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고 보았고 또 경험해본 적이 마법이었으므로.
바로….
“왜 순간이동 마법을-”
최희석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한순간에 이 공간에서 사라진 탓이었다.
사라진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부화 협회 소속 인물들을 비롯해 백운천 길드원들까지도 전부 사라졌다.
도희가 순간이동 마법을 써서 한꺼번에 이동시킨 것이었다.
“…….”
“…….”
그리하여 현재 칠갑산 게이트 앞엔 그녀와 태천뿐이었다.
태천이 순식간에 휑해진 주변을 멍하니 돌아보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도희야. 괜찮겠어?”
“뭐가요?”
“애들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거 말이야. 분명히 나중에 한소리 할걸.”
“그렇겠죠. 그런데 그 한소리도 살아있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기 있다간 다 죽어요.”
“그, 맞는 말이기는 한데….”
태천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수긍했다.
말마따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바돈은 강력한 데다가 들끓는 어둠이라는 특이한 성질까지 있었다.
수준에 미달하고 상성이 맞지 않는 자는 버텨낼 수조차 없을 터였다.
물론, 새싹이의 나뭇가지로 만든 무기를 지니고 있으니 어느 정도 버텨낼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정도 버텨내는 것만으로 그칠 터였다.
도희가 살포시 웃으며 태천을 바라봤다.
“뭐. 잔소리는 오빠가 같이 들어줄 거잖아. 그치?”
“…….”
“대답.”
“…….”
도희의 종용에도 태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슬쩍 시선을 피하기까지 했다.
대답하기 싫다는 무언의 반항이었는데, 도희는 그것을 모르는 척했다.
“우리 오빠가 왜 대답 안 할까?”
“후우….”
“한숨은 왜 쉬고.”
“너희 남매는 왜 매번 날 못 끌고 들어가서 안달인데…!”
“으응. 그게 오빠 운명이니까?”
“필요 없거든! 그런 운명.”
태천이 투덜거릴 때였다.
쿠구구구…!
게이트가 흔들리며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 속에서,
“오라버니!”
“도운아…!”
두 사람은 도운의 모습을 보았다.
도운은 24일 전 아바돈과 무저갱으로 들어갈 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렇지 않았다.
도운의 따스한 손길이 아바돈의 가슴을 꿰뚫고 들어가 있었던 거다.
검지 전체를 넘어 손등까지.
저대로 더 찔러 들어가면 이내 심장을 꿰뚫어 아바돈을 죽일 수 있을 터였다.
어떻게 봐도 아바돈의 패색(敗色)이 짙은 상황.
그런 상황이건만 마족에게서는 방대한 마나가 느껴졌다.
S등급에 해당하는 공격 마법을 수백 번 쓰고도 남을 마나였다.
그 모습에,
“…….”
도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꼈다.
아바돈이 저렇게 많은 양의 마나를 품은 채로 게이트를 무너뜨리며 건너오려는 데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을 느끼던 도희는 이내 아바돈의 악의(惡意)를 알아차렸다.
도운의 동생답게 부정적인 생각의 톱니바퀴가 재빠르게 회전한 것이었다.
“자폭(自爆)…?”
“어? 도희야, 방금 뭐라고 했어?”
“자폭이에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바돈은 자폭할 생각이라고요! 오라버니한테 살해당하기 전에…!”
“……!”
도희가 다급하게 소리치는 순간이었다.
균열이 커져 칠갑산 게이트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아바돈의 두 발은 땅을 디뎠다.
『으음….』
그 순간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아바돈이 웃음을 흘렸다.
***
“아바돈은 자폭할 생각이라고요!”
뒤에서 도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바돈을 보자마자 바로 악의를 읽어내다니.
역시 내 동생다웠다.
일이 끝나면 상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려 줘야지.
도희에게 감탄하는 동안 게이트가 완전히 무너졌다.
아주 오랜만에 지구의 땅을 밟았으나 감동을 할 새도 없었다.
아바돈이 흡족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린 탓이다.
놈과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말을 지껄여댔다.
『으음…. 공기가 참 맑은 세상이로군….』
공기가 맑다니….
마족 주제에 무슨 저런 말을 하는 거람.
산의 정기와 가을 정취 같은 것을 느끼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아니면 밤하늘이라서 그런 건가?
어처구니가 없어 바라보고 있는데, 놈은 곧 내가 납득할 말을 해댔다.
『여의 피와 살을 흩뿌리기에 참 알맞겠어.』
“…….”
그러면 그렇지.
긍정적인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아바돈은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으로 즐거운 거였다.
피와 살을 흩뿌린다, 라….
“어차피 죽을 거 곱게 죽지 그래?”
『싫다. 여가 왜 그래야 하지? 위그드라실과 그자도 그러지 않았는데?』
“하…!”
가당치도 않은 말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전대 세계수 페어는 미래를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한 것이지만, 아바돈은 그저 제 죽음에 대한 불만으로 내게 고춧가루를 뿌리려는 것이지 않은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선상에 두고 말해서도 안 되고.
아바돈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통찰로 내 생각을 읽은 거다.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하나?』
“뭐?”
『정말로, 여가 그저 분을 풀려고 이러는 거로 생각하는 거냐?』
“당연하지.”
『아니. 그렇지 않다. 여의 파괴는 새로운 탄생의 초석(礎石)이다.』
“탄생의 초석, 이라고…?”
『그래. 이 세상을 덮칠 파괴에 절망한 이들이 여의 보혈(寶血)을 받아들여 또 다른 파괴를 새로이 낳을 테니까.』
“……하.”
또다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아까와 같은 이유였다.
정말이지 가장찮은 말이었다.
절망한 이들이 자신의 피를 받아들일 거라니.
이어 또 다른 파괴를 새로이 낳을 거라니….
뚫린 입이라고 말 참 함부로 하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휙휙 휘젓습니다.] [더 상종할 가치가 없는 말이니 신경 쓰지 말고 따스한 손길에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아바돈이 폭발을 일으키기 전에 죽이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라고 덧붙입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말대로 저런 말 따위 더 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아까운 짓거리에 불과했으므로 생산적인 일에 힘쓰기로 했다.
나와 썩 어울리는 짓은 아니지만.
그럼, 새싹아.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폴짝!
내 정수리에서 뛰어내린 새싹이가 땅에 뿌리를 박는다.
이어 어린나무 형태를 지나 성체로 몸을 키워나갔다.
새싹이가 칠갑산보다도 커지는 동안 아바돈을 끌고 나뭇가지에 올라탔다.
아바돈의 자폭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무성한 새싹이의 나뭇가지 속에서 폭발한다면 그 영향을 줄일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과연….』
아바돈도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하다.
그때였다.
화악…!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빛의 성역’이 펼쳐졌다.
타이밍이 마치 도희도 그리 생각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데,
“오…!”
밤하늘에 펼쳐진 것은 빛의 성역뿐만이 아니었다.
우르르 쾅…!
백운천 옥상에 꽂혀 있을 ‘아스트라페’가 발동한 번개의 결계 ‘케라우노스’가 하늘 높이 펼쳐졌다.
무기가 나와 함께 건너온 아바돈의 마나를 느끼고 결계를 펼친 것이 분명했다.
이 순간을 예상해 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
우르르…!
천둥소리에 아바돈이 눈을 찌푸렸다.
못마땅한 마음이 절로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새싹이가 소환된 데다가 빛의 성역과 케라우노스가 동시에 펼쳐졌으니….
마족인 놈으로서는 마냥 불편하고 갑갑할 터였다.
반면,
“푸흐흐….”
나로서는 웃음이 나오기만 했다.
놈의 심장을 찌르고자 나아가던 따스한 손길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3분…?
아니.
이 속도라면 1분도 채 안 돼서 아바돈의 심장을 찌를 터였다.
그 순간 세계수의 마나를 듬뿍 주입해주리라…!
그리 생각했을 때였다.
아바돈이 아깝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부족하군….』
“오. 포기한 거냐?”
『그래. 포기하도록 하지. 온 세상에 파괴를 흩뿌리는 것은 말이다.』
“…….”
『대신 절반의 절반에라도 흩뿌려야겠다…!』
아바돈이 결연하게 소리쳤다.
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지금껏 모은 마나가 심장에서부터 폭발하려는 것이었다.
폭발의 위력은 놈의 말마따나 절반의 절반에 파괴를 흩뿌릴 수 있을 정도겠지.
물론,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세계수의 뿌리!”
아바돈의 몸은 이미 세계수의 뿌리로 휘감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또 쓴 것은 혹시라도 폭발이 바깥으로 새어나갈까 걱정된 탓이었다.
새싹이의 나뭇가지 위에서 세계수의 뿌리로 두 번이나 휘감았으니 아바돈의 자폭을 막아낼 수 있겠지….
그리 생각했을 때였다.
투콰앙!
아바돈이 폭발했다.
들끓는 어둠이 사방팔방 뿜어진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세기의 충격이 몸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