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81
제583화
“……!”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아바돈의 기억이었다.
세계수의 뿌리가 쓸데없이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다.
털어버리고자 바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바돈의 기억 따위 알게 뭔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삶이다.
굳이 기억해야 할 삶도 아닐 테다.
그 순간이었다.
톡.
검지가 아바돈의 심장에 닿는다.
그리고,
“…….”
순식간에 침묵이 찾아왔다.
폭발이 멈춘 거다.
천천히 허공(虛空)을 바라본다.
들끓는 어둠을 뿜어내던 아바돈이 있던 자리였다.
즉, 놈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하긴….
자폭한 놈의 형체가 남아 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
다만, 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체도 남기지 않고 죽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끝이 너무나 허무했던 탓일까.
내가 정말로 아바돈에게서 승리한 것인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내게 확신을 주고 싶은 것처럼….
[‘등급 측정 불가 전대 세계수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퀘스트 내용 – 축하드립니다! 세계수 관리인 백도운이 드디어 마족 ‘아바돈’을 처치했습니다.] [성공 보상 – 전대 세계수의 열매.] [퀘스트 보상받기를 클릭하면 보상이 우편함으로 보내집니다.] [보상받기를 클릭하시겠습니까?] [(YES / NO)]“하, 하하…!”
웃음이 천천히 나왔다.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조금씩 실감이 갔다.
우리가 드디어 아바돈을 처치했음을….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그 어디에서도 혐오스러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새싹이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굳이 아바돈의 마나를 탐색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음. 그럼….
“이만 돌아갈까? 모두에게로.”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다들 관리인을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전합니다.]다들, 이라….
그것참 감개무량한 말이네.
작년만 해도 날 걱정하는 건 도희와 태천이뿐이었는데.
***
“…….”
병원에 입원했다.
칠갑산을 내려오자마자 도희가 끌고 온 탓이다.
최희석과 배수현이 여러 가지 묻고 싶은 얼굴로 다가왔지만, 도희가 칼같이 차단했다.
날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잠자코 따랐다.
580시간, 그러니까 24일 만에 돌아온 것이었으니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나였더라도 도희와 비슷하게 행동했겠지.
더 심했을 수도 있고.
“정말 이상하네요….”
툭.
도희가 던지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내 검진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오라버니 정신이 또 멀쩡하다고 나왔어요.”
“…….”
어이가 없네.
지금 이상하다는 게 내 정신이 멀쩡하단 거였어?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에요.”
“저번부터 그 근거 없는 확신은 대체 뭐야?”
“근거가 없다고요?”
“그럼 있어?”
“너무 많아서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인데요.”
도희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태천이가 하하 웃었다.
도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듯이.
저 앞잡이 자식…!
“오라버니.”
도희를 노려볼 수 없어서 태천이를 노려볼 때였다.
도희가 날 불렀다.
아까와 달리 진지한 목소리였다.
“아바돈. 확실히 죽은 거죠…?”
“응. 확실하게 죽었어.”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아예 없는 거예요?”
“없어. 새싹이가 확인했고, 전대 세계수가 발주한 ‘아바돈 처치 퀘스트’도 완료됐거든.”
“그럼 확실하겠네요….”
도희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심한 듯이 미소도 살짝 지었다.
그런 거였나….
지금 도희는 아바돈이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체를 확인한 것도 아니니 불안함을 느낄 만도 했다.
나처럼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본 것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도운아. 그럼 다 끝난 거 맞지?”
“그래. 그렇대도.”
“좋아! 그럼-”
“파티 벌이자는 말이면 관둬요.”
“어…?”
“오라버니는 쉬어야 한다고요. 장장 580시간 넘게 아바돈이랑 싸웠으니까요.”
“아. 그랬지, 참….”
축.
태천이가 실망해 어깨를 늘어뜨렸다.
사실 내 체력은 온전했다.
580시간 넘게 싸웠다고 해봐야 대부분 기억을 회상했던 터라 지치지도 않았다.
물론, 그런 말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걱정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뭐하러?
“자. 우린 이만 돌아가요.”
도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말을 듣고 태천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나도 그랬다.
도희라면 내 옆에 딱 붙어 있으려고 하는 게 정상이었다.
“원장님한테 보고하러 가야죠.”
“아.”
“겸사겸사 언니와 오빠들한테 혼도 나고요.”
“아….”
태천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어깨를 늘어드렸을 때보다 더 낙심한 듯했다.
아줌마한테 보고하러 간다는 건 알겠는데.
언니와 오빠들한테….
“혼나러 간다고?”
“네.”
“너희를 왜 혼내는데?”
감히.
따뜻한 손길에 어루만져지고 싶은 건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희는 말을 이었다.
“제가 전부 이동시켰거든요. 오라버니가 아바돈이랑 게이트에서 나올 때.”
“……?”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거라면, 도희는 올바른 선택을 한 거였다.
백운천 녀석들로서는 아바돈을 버텨낼 수 없었을 테니까.
뭐, 새싹이 나뭇가지로 제작한 ‘스톨로 카풀루스’를 지녔으니 어느 정도 버텨낼 수는 있었겠지.
그러나 그게 다였다.
“네 잘못 없잖아?”
“그렇죠. 다들 그걸 알고요.”
“아? 아. 아하….”
그러고 보니 그렇다.
애도 아니고, A급 헌터들씩이나 되는 놈들이지 않나.
그 순간 도희가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즉, 말만 혼나러 간다는 거고 정확히는 녀석들 마음을 풀어주러 간다는 뜻이었다.
냉철한 판단이라고 해도 기분은 나빴을 테니까.
나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넘겨 버리겠지만….
도희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지.
하여튼 우리 도희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그런 거니까, 얌전히 있어요. 내일 아침에 재이 언니랑 무기 씨, 그리고 임페일 씨랑 함께 올게요.”
“응. 알았어.”
“…….”
“왜?”
“오라버니가 선뜻 대답하니까 불안해서요.”
“아니. 그럼 어쩌라는 거야?”
얌전히 있기 싫다고 까탈스럽게 대꾸했어야 했나.
그렇게 대답하면 그것대로 불만스러워했을 거면서.
도희가 곤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시라도 붙여야 하나….”
“얼씨구.”
“황당하다는 듯이 굴지 말아줄래요? 다 오라버니 탓이니까.”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
도희가 눈을 흘겼다.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고 따지는 듯했다.
모를 리가 있나.
하하!
“오라버니….”
“응.”
“나 정말 믿고 가요?”
“응.”
“…….”
이 거짓말쟁이.
믿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도희는 병실을 떠날 때까지 불신 가득한 얼굴을 지었다.
뭐….
어쨌거나 감시를 붙이지 않고 떠났다는 점에서는 나를 믿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후우….”
숨을 길게 내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조용한 분위기를 곱씹으며,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화면 속 [세게수 키우기]엔 환희에 차 파티를 하는 엘프들이 보였다.
그들이 먹고 있는 각종 음식도.
“흠, 흠….”
문을 바라봤다.
도희와 태천이가 나가면서 닫은 문은 내일 아침까진 열리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나도 보고는 해야 하잖아…?”
도희와 태천이가 아줌마를 만나러 갔듯이.
나도 세계수 관리인으로서 엘프들을 만나 아바돈을 처치했다는 말을 전해야 했다.
새싹이가 먼저 전하긴 했지만….
직접 전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기쁜 소식은 여러 번 들을수록 좋은 일이고 말이다.
“자, 그럼….”
슥.
화면의 ‘성역 입장’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였다.
『관리인. 동생이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이 바뀐 거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린 드래곤 ‘알루키노르 루모스’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알루키노르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텔레파시(Telepathy)’입니까?”
『그렇소.』
저번에도 느꼈던 거지만, 놀랍기 그지없다.
태평양에 있는 알루키노르와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다니.
“오랜만이네요.”
『오랜만…?』
알루키노르의 목소리에서 의문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그는 수천 년을 넘게 사는 드래곤이었다.
그에게 있어 이 정도는 ‘오랜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시간일 터였다.
그때, 머릿속에 새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레드 드래곤 ‘데이모스 모노스’의 목소리였다.
『루모스. 관리인은 인간이다. 우리와는 시간 감각이 크게 다르지.』
『아. 과연….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반갑소. 관리인.』
“네, 반갑습니다.”
다신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 같던 데이모스까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사실 별일이 있어 연락한 것은 아니오.』
내 의문을 느낀 걸까?
알루키노르가 태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저 인사를 전하고 싶었을 뿐이라오.』
“인사라고요?”
『관리인이 드디어 아바돈을 죽였잖소.』
“아.”
과연….
알루키노르와 데이모스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그들을 곤란하게 여기던 아바돈이 날려 보낸 탓이었다.
심지어 아바돈은 블랙 드래곤과 손을 잡고 자신들의 왕인 ‘디싱 나 토르’를 살해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놈을 죽였으니, 내가 대신 복수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맙소.』
곧이어 두 드래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고맙다, 라….
솔직히 받을 이유가 없는 인사였다.
내가 아바돈을 죽인 것은 세계수 관리인이기 때문이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숨김없이 말하면, 싸우는 동안 알루키노르와 데이모스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우리도 알고 있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데이모스가 말했다.
『관리인은 그저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는 걸 말이오.』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
“음, 그렇습니까….”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할 말 없군.
고맙다는 말을 계속 사양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참. 저도 두 분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할 일이 있었네요.”
『음?』
『관리인이 우리에게?』
“블랙 드래곤 때요. 알루키노르 덕분에 편하게 ‘녹티스 헬리오스’를 파괴했고, 데이모스 덕분에 피해 없이 해골과 원을 쫓아 보낼 수 있었죠.”
『아. 그것이야말로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
『데이모스의 말이 옳소. 그건 그저 우리가 한 방 먹이고 싶었던 것에 불과하오.』
“뭐, 그러셨겠죠.”
어깨를 으쓱 올렸다.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그럴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 방 먹이려고 그랬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이 방금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라고 말이다.
『후….』
드래곤들이 한숨 같은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한 방 먹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면 기분 탓이려나?
반응 때문인지 나도 한 방 먹인 것 같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 맞다. 데이모스. 평소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여한테? 무엇이 궁금하셨소?』
“헤어질 때 했던 말이요. ‘나뭇가지가 열쇠가 되리니’.”
『음.』
“그거, 대체 무슨 뜻입니까?”
『후후….』
데이모스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실로 즐겁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아니.
웃지만 말고 설명을 해줘, 이 양반아.
『곧 알게 될 거요.』
“…….”
『정말로, 곧….』
능청스럽기 그지없는 것 보소.
그렇게 머지않은 일이라면 그냥 말해 줘도 되지 않나?
뭐, 예언 같은 걸 테니까.
말을 함부로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만….
『후후후….』
그럼 저렇게 뭐 있는 것처럼 웃지나 말던가.
사람 궁금하게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