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89
제89화
“여기야.”
한진환이 차를 몰고 온 곳은 강남 양재였다.
방향으로 봐선 경부고속도로를 타려는 듯하다.
아마 부산의 기버를 큰 목표로 삼은 것 같다.
물론, 내려가는 동안 겸사겸사 다른 지역의 길드들도 없앨 생각일 거다.
전국의 마약 유통 길드를 전부 없애는 게 이번 퀘스트의 목표였으니까.
조수석에서 내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는 헌터 랭킹 1위라는 위명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귀여운 차를 타고 다녔다.
옆면에 ‘EV’ 표시가 그려져 있는 경차다.
“뭘 그렇게 봐?”
“이거요.”
EV 표시를 가리켰다.
그걸 보고는 그가 킥킥 웃었다.
웃기는….
“양심이 있긴 한 겁니까?”
번개의 마나를 소유한 사람이 전기 에너지로 굴러가는 차를 몬다.
과연 그 전기 에너지는 어디서 얻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을 구할 수 있었다.
한진환이 웃는 낯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양심이 있으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재밌지?”
“재미있긴 한데, 이거 법적으로 문제 되는 거 아니에요?”
“자, 실없는 소린 그만하고.”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말을 돌린다.
그 모습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구만, 이거.
뭐,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해도 이런 일을 그에게 따질 사람은 없겠지.
이런 일로 랭킹 1위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아까 강남에선 네가 다 처리했으니까….”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건물을 바라본다.
4층짜리 건물은 외견으로는 평범한 제약 회사 같다.
물론 평범한 제약 회사는 아니다.
저 건물에서 만들어지는 건 마약이었으니까.
그것도 일반 마약은 비교할 수도 없이 환각성이 강력한 능력자용 마약.
“이번엔 내 차례인가?”
한진환이 나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잔뜩 묻어나 있다.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 라…. 그 말을 들은 건 8년 전 중국에서 만난 영감탱이 이후 처음이야.”
“영감탱이?”
“있어. 신선인 척하는 능구렁이 영감탱이.”
신선인 척하는 능구렁이 영감….
누굴 말하는 건지 알겠다.
리롄제.
중국의 S급 헌터를 말하는 게 분명하다.
누가 A+급 헌터 아니랄까 봐 말하는 사람도 남다르다.
“확인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봐.”
“……!”
뒤돌아서는 한진환의 몸이 하얗게 변한다.
순식간에 온몸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온 거다.
내가 광합성 모드를 썼을 때처럼.
마치 하트 브레이크라도 쓴 것처럼.
그 때문에 그는 검기를 두른 무기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진환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허….”
대신,
우르르… 꽝!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번개가 연달아 치는 소리만 연달아서 들려왔다.
뒤늦게 그 소리가 눈앞의 4층 건물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한진환은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속도….
그 속도는 곧 위력으로 치환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다.
괜히 ‘뇌제’라는 멋들어진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저게 시스템이 바뀐 이유….”
원래 헌터 등급은 A급 S급밖에 없었다.
한진환은 A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했지만, 그렇다고 S급이라고 칭하기엔 부족했다.
그런 이유로 시스템이 바뀌어야 했다.
헌터 한 명을 위해 세계 최초로 ‘A+’라는 등급이 만들어진 것이다.
“백도운!”
한진환이 나를 불렀다.
그는 옥상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분도 채 걸리지 않고 한 길드가 전멸한 거다.
“어때? 그 눈으로, 내 실력 확인했어?”
그렇게 묻고는 씩 웃는다.
힘을 쓰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장난기가 잔뜩 묻어난 얼굴이다.
확인했냐고?
했고말고.
“덕분에요.”
그 실력을 볼 순 없었지만 확인할 수는 있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했다.
저 남자가 바로 15년 동안 한 나라에서 1위로 군림하고 있는 헌터였다.
두근두근한걸?
“좋아. 그럼 바로 출발해 볼까?”
한진환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탁….
빠직!
갑자기 그의 몸에서부터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힘을 미처 추스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주변으로 뿜어진 번개 줄기 중 하나가 내 뺨을 때렸다.
“……!”
“이런, 괜찮아?”
그것 때문에 세계수의 나무껍질이 발동됐다.
파스스…!
안타깝게도, 나무껍질은 그것을 전부 버티지 못했다.
나무껍질이 겨우 추스르지 못한 마나에 의해 허무하게 깨진 것이다.
“…괜찮습니다.”
걱정스럽게 묻는 그에게 대답했다.
오랜만에 느낀 고통은 왠지 색달랐다.
가지치기에 의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어차피 회복되니까요.”
“오. 꼭 나무 같네…? 능력과 관련돼 있나 보지?”
고통을 참아 내며 눈을 뜬다.
“뭘 또 그렇게 노골적으로 떠 보는… 어라?”
“……?”
시야에 홀로그램 창이 떠 있다.
[광합성 에너지 12%]갑자기 이게 왜 떠?
퍼센티지는 또 왜 이러고.
하루에 1%씩 오를까 말까 했던 거였는데?
설마… 한진환의 번개에 닿아서?
“이봐, 왜 그래?”
한진환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빠직!
그저 손을 올렸을 뿐인데, 어깨 부분의 옷이 타 버렸다.
당연히 나무껍질도 바로 발동됐다.
이번엔 깨지지 않았다.
대신 하얗게 빛이 내뿜어졌다.
이 빛 뭔데?
“이거… 설마 정전기입니까?”
“미안해서 어쩌냐? 내가 힘을 쓰고 나면 이래.”
“괜찮습니다, 비싼 옷도 아닌데. 좀, 불편하겠습니다?”
“불편하지. 혼자 다니는 이유가 다 있는 거라고.”
“하긴, 이래서야 혼자 다닐 수밖에… 어라?”
“아까부터 왜 그래?”
[광합성 에너지 13%]방금 정전기 때문일까?
에너지가 1% 더 차올라 있었다.
번개의 마나가 몸에 닿을 때 에너지가 차는 게 확실하다.
어째서?
빛의 마나라면 모를까.
번개의 마나가 광합성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궁금증이 내 검지를 절로 움직였다.
홀로그램 창을 클릭하자 새로운 창이 떠오른다.
[광합성 에너지(리히텐베르크)]리히텐베르크?
이게 뭔 소리야?
***
유혜주는 플라스크를 바라봤다.
그 속에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보랏빛 액체가 있었다.
불순물이 전혀 없기 때문일까?
저번과 똑같은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액체는 그 빛깔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대로였다.
“역시 문제는 불순물이었어….”
끼익.
문 열리는 소리에 유혜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흘 전에 왔었으면서 또 뭐야?”
“나도 반가워.”
“…앞으로 몇 달 정도는 발도 들이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신경질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우재는 소파에 가 앉는다.
등을 기대고 탁자 위에 두 발까지 올리는 여유작작한 태도.
그 모습을 본 유혜주는,
“개새끼…!”
분개하며 소파로 가 앉았다.
그녀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러면 이럴수록 연구 결과만 늦게 나온다는 거, 확실히 알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서울.”
“뭐?”
“대전, 대구, 부산.”
“……찍고?”
그 말에 공우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유혜주를 쳐다봤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는 여유로운 태도는 여전했지만, 방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얼굴에서 느긋함이 지워졌다.
대신 황당함이 떠올랐다.
“뭐. 그 노래 부르려던 거 아니었어?”
“그럴 리 있겠어?”
“아, 그럼 뭔데!”
유혜주는 공우재처럼 소파에 등을 기댔다.
소파 사이에 놓인 탁자에는 네 개의 발이 올려졌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본다.
질문하지만, 질문 속엔 궁금함이 담겨 있지 않다.
그걸 알면서도 공우재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다음으로 경상도, 전라도.”
“……? 갑자기 지역 얘기는 왜 하는 건데. 지도라도 갖다 줘?”
“그곳들에서 브이피와 바바를 유통하던 놈들이 전멸했다.”
천장을 올려다보던 고개가 내려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부산이 당했다고? 누구한테? 부산엔 기버 놈들이 있잖아?”
“정부.”
“정부우?”
“그래. 하는 짓을 보면 마치 국내 마약 관련 조직들을 전부 소탕하려는 것 같아.”
“…흥. 오바야. 그놈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벌써 전부 잡아들였겠지. 무엇보다 여기엔.”
“여기엔?”
유혜주는 공우재를 쳐다봤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공우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 있잖아.”
“오. 의왼데. 내 평가가 제법 높군?”
“당신, 내가 본 쓰레기 중에선 가장 강하거든.”
“쓰레기라….”
“그 많은 쓰레기 중에서 왜 여기를 선택했겠어?”
그 질문을 받은 공우재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빙빙 돌린다.
“이런 갑갑한 장소를 만드는 걸 허락해 줘서?”
“…당신이 있어서야. 보호받을 수 있을 거 같았거든.”
“그 믿음을 지켜 주지 못해 아쉽군. 지금 상황은 나로서도 무리야.”
“당신으로서도?”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면… 그래. 서지혁 정도는 돼야겠지.”
“서지혁이라면…. 천칭?”
유혜주가 눈을 찌푸렸다.
천칭 길드의 서지혁은 A급 헌터 3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것으로 유명해진 남자다.
핵심은 ‘A급 헌터 3명을 쓰러뜨렸다’가 아니다.
A급 헌터 3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는 것.
바로 그것이 핵심이었다.
현재 상황은 그런 강자여야만 빠져나갈 수 있는 열악한 상황이라는 걸 의미했다.
“한진환이 나섰어.”
“미친…!”
유혜주가 입을 떡 벌렸다.
그 모습을 보곤 공우재는 킥킥 웃었다.
“미친놈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써?”
“닭 노는 곳에 소가 들어왔으니까.”
“소?”
그는 고개를 돌려 방 한가운데를 바라봤다.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인 책상 한쪽에 바이올렛 파우더가 놓여 있었다.
“아….”
“바이올렛 파우더. 크라우드 놈들이 제작한 마약. 하지만… 그 정체는 능력자용 마약 같은 게 아니지.”
“인간의 괴물화….”
“그래. 그런 걸 정부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지 않겠어?”
유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우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약 같은 게 나돌아다니는 걸 용인해 줄 리 없었다.
두 사람은 정부가 언젠가 그것을 통제하리라는 것을 예상했다.
그렇다고 설마 그 한진환이 나설 줄은 몰랐지만.
“…잠깐만. 근데 당신 왜 이렇게 여유 부리고 있어?”
“여유? 아니, 이건 여유가 아니야. 자포자기지.”
“자포자기라니….”
그런 사람치곤 얼굴이 웃고 있다.
손짓 발짓도 평소처럼 느릿느릿하다.
그 때문에 유혜주는 그가 자포자기한 게 아니라 여유롭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난관을 헤쳐 나갈 방법이 있는 사람처럼.
“한진환이 나섰어. 이건 도망치는가 치지 못하는가의 문제가 아니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지. 그래서.”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뭐를?”
“네가 만들 새로운 약. 난 그 약에 모든 걸 걸기로 했어.”
“…….”
꽈앙!
“힉!”
“천둥….”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우재는 그 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금세 알아차렸다.
한진환이 이곳에 온 것이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길래 충청도로 갈 줄 알았더니. 바로 강원도라…? 그렇군.”
“……?”
“목표는 너였어.”
“나?”
“아마 네가 브이피를 제작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천재는 이래서 고달프다니까….”
유혜주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공우재도 마찬가지다.
공격을 받고 있다면, 조직의 리더로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문을 향해 걸어갔고, 문을 열기 전 브이피와 각종 실험도구를 챙기는 유혜주를 돌아봤다.
그녀가 책상 서랍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냈다.
그러다 문득 공우재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뭘 보고 서 있어? 그건 1인용일 텐데.”
“시간을 벌어 주겠다고? 악당한테도 의리는 있다, 이거야?”
“의리…. 낯선 단어네. 아까도 말했지? 네가 만들 약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고.”
“그랬지.”
“우리의 거래를 잊지 마, 유혜주.”
“…걱정하지 마셔. 약속은 지킬 테니까.”
“그거면 됐어. 아!”
“……?”
“한 가지 묻는다는 걸 깜빡했군.”
“뭔-”
꽈앙!
또다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제멋대로 날뛰어 주시는데….”
“공우재.”
“아. 미안. 질문은 별거 아니야. 그저 궁금할 뿐. 나는, 재활용되는 쓰레기인가?”
“…미친놈.”
유혜주는 얼굴을 찌푸렸다.
험상궂게 보일 정도로 찡그린 얼굴을 보며 공우재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저놈도 제정신은 아니라니까.
“다음 기회가 있길 바라.”
“그 말을 듣고 싶었어.”
“바이 바이.”
나긋한 인사와 함께 스크롤을 찢는다.
스크롤에서는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고, 빛이 사라지면서 유혜주도 사라졌다.
그는 그녀가 떠난 자리를 멀거니 바라봤다.
“…….”
끼이익.
문이 열렸다.
문을 연 건 공우재가 아니라 바깥의 사람이다.
공우재는 한진환이 문을 열었다고 판단해 방 안쪽으로 뛰었다.
뒤를 돌아보면서,
“이곳에 온 걸 환영….”
인사를 하려다가 멈췄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한진환이 아니었다.
호기심이 담긴 순진무구한 얼굴.
긴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듯한 꽁지머리.
“…월광의 검사.”
“오. 날 알아?”
“환영한다, 백도운.”
“흠…. 네가 여기 주인이냐?”
도운이 방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돌아보며 묻는다.
공우재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내가 이곳의 주인이다.”
“…….”
그 대답에 도운은 주변을 돌아보던 것을 멈췄다.
눈이 공우재를 바라봤다.
이어 고개도 그를 향했다.
똑바로 바라보면서, 도운은 웃었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찾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