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too many Talents RAW novel - chapter (286)
제293화
293화
협회 본관의 깊숙한 지하.
이제 와서는 협회에 제집 드나들듯 자주 방문했던 정현이었지만, 그런 그로서도 이곳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희 씨는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네. 한 번.”
그와 동행한 지희 역시 이번이 두 번째라고.
사실 S등급이라고 해도 이곳에 드나들 일은 딱히 없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 협회장실
“들어가시죠.”
한 차례의 간결한 문답이 오간 뒤, 정현과 지희를 이곳까지 안내한 남식이 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정현이 물었다.
“이번에는 같이 안 들어가시나요?”
분명 저번에는 그가 문까지 직접 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딱히 들어갈 사람처럼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정현이 문을 직접 열기 싫다는 기상천외한 갑질을 부릴 일은 없었다.
다만 이제까지 자신이 협회에 볼일이 있어 찾아왔을 때 모두 그가 동행했기에 물어보는 것.
그러자 남식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제가 담당하는 S등급 외의 분도 계셔서요. 게다가 7레벨 게이트는 저에게도 비밀 사항입니다.”
“거참 빡빡하네요.”
보안이야 엄중하게 지켜지면 지켜질수록 좋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기술이나 규칙도 아닌, 그저 아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현이 알기로 남식은 협회에서도 상당히 높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남식이 동석조차 하지 못할 정도라니.
‘도대체 얼마나 극비인 거야?’
정현의 표정이 새삼 무거워졌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바위 거미나 잡고 있었던 자신이 이제는 환상의 게이트라는 7레벨 공략을 목전에 두고 있다니.
끼익-
고렇게 그는 문을 열고 협회장실로 들어갔다.
“오, 어서 오십시오.”
그 안에는 정현과 지희를 보고 인사하는 협회장 박태휘를 제하고도 몇 명의 사람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현이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모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저희가 늦게 도착했네요. 죄송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아직 약속 시간은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저희가 일찍 온 거죠.”
정현의 사과에 이렇게 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신세아였다.
정황상 그녀 역시 이번 공략에 참여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서 앉으시죠.”
그리고 지희와 정현이 태휘의 제안에 따라 빈자리에 앉음으로써 이번 공략의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저번 화이트 페이스 때 다들 한 번씩 인사 나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태휘가 운을 떼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정확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정현과 지희.
세아 길드의 길드장 세아 역시 당시 자리했었고.
부엉이와 담벼락은 그때 함께 싸우기까지 했지 않나.
“혹시 저분은······?”
그러나 정현이 모르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것도 세아와 마찬가지로 상석의 태휘 바로 양옆에 앉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자리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지야 않겠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배석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정현이 들어온 뒤 시종 그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보통 만화에서 보면 저런 사람들이 엄청 세던데.’
척 봐도 ‘나 뭔가 있는 사람이오’라고 광고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기에 정현이 조심스레 물었던 것이다.
물론 단정하게 앉은 자세에서 느껴지는 기세도 만만치 않았고.
정현의 질문에 태휘가 하하, 웃으며 답했다.
“아, 그렇겠군요. 이분은 조수지 씨입니다. 한정현 헌터의 굉장한 팬이라네요.”
“네?”
그러나 그 대답이라는 것이 상당히 의외였기에 정현은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헌터가 아니라는 말인가?’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헌터라면 태휘가 ‘씨’라고 부를 리가 없다.
그런데 이곳은 운영과 계장인 남식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자리.
일반인이 앉아 있다고 하기에도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S등급이 분명해 보임에도 담벼락이나 청설모처럼 코드명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이상한 점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조수지예요. 실물이 낫네요.”
“아, 예······.”
능청스럽게 악수를 위해 손을 뻗는 수지.
정현은 얼결에 그 손을 맞잡으면서도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대체 누구야!’
누군가 속 시원히 설명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태휘에게도 정현의 그런 모습을 즐기는 악취미는 없었다.
국민 영웅이 저렇게 당황하다니, 퍽 재미있기는 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자기소개가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수지 씨.”
“그래야겠죠?”
두 사람이 장난스럽게 시선을 교환한 뒤, 수지의 말이 이어졌다.
“협회 본관 1층 김밥집 사장을 하고 있어요.”
정현에게는 그야말로 대충격이었다.
“······?”
그건 지희에게도 마찬가지.
반면, 태휘와 세아, 담벼락, 청설모는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키득키득 웃음을 참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더 오해하잖습니까.”
“아, 그런가? 물론 S등급 바람 마법 특성을 가진 건 맞고요. 코드명을 안 쓰는 건 협회에 정식으로 소속된 게 아니어서예요. 사실 헌터증도 없어요.”
“헐.”
결국 이런저런 장난 끝에 설명을 들은 정현이 짤막하게 어이없다는 감상을 내놓았다.
헌터증도 없다니.
아니, 그건 둘째 치더라도.
“분명 거기 김밥집 이름이······.”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정현도 1층의 김밥집은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었다.
이름이 꽤나 독특한데 또 협회에 있다니 그럭저럭 수긍이 가는 것이어서 뇌리에 남아 있기도 했고.
정현이 확인차 앞자리의 지희를 보며 묻자, 그녀는 살짝 당황하다 조그맣게 답했다.
“······S등급 김밥이요.”
정말 조수지가 그 김밥집 사장이라면 S등급 헌터가 ‘S등급 김밥’이라고 대놓고 장사를 한다는 뜻 아닌가.
“그래도 되는 거예요?”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잖습니까.”
정현이 황당한 마음을 한껏 담아 태휘에게 묻자, 그는 크게 웃으며 답했다.
정현에게 있어 정말 화가 나는 건.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거지.’
이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실제로 들어맞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협회 김밥집 이름이 ‘S등급 김밥’이라고 한들, 보통 그 맛이 S등급이라는 얘기겠거니 생각하는 거지 누가 사장이 진짜 S등급이라고 생각하겠나.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맥이 탁 풀릴 따름이지.
“어쨌든 수지 씨는 이 자리에 엄연히 공략 멤버로 온 것입니다. 그 실력은 제가 보장하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정현을 보며, 태휘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다 이윽고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세아가 거들었다.
“맞아요. 7레벨 게이트 실적으로만 보면 수지 언니가 저보다 훨씬 많은걸요.”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파도 파도 깜짝 놀랄 일밖에 없다.
세아가 누군가.
비록 다른 1세대 헌터들에 비해 훨씬 어린 나이에 각성하긴 했지만 엄연히 대격변 당시부터 활동해 오던 헌터다.
태휘의 말로는 1세대 헌터들이 이제까지 7레벨 공략을 전담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그녀 역시 실적이 적지는 않을 터.
그런데 헌터로 등록조차 하지 않은 수지보다 적다니.
그 설명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설모가 대신했다.
“수지 이모는 7레벨 게이트 공략에만 참여하셨거든요. 거의 빠지지 않고. 사정이 있으셔서 헌터 활동을 하진 않으시지만요.”
“흠.”
앞서 워낙 기상천외한 얘기들을 많이 들은 탓인지 이 정도면 아주 합리적인 이유처럼 들렸다.
‘애초에 그런 거 신경 써서 뭐 해.’
그리고 태휘가 그 실력을 인정한 각성자다.
그 자격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7레벨 게이트가 처음이니까요.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도움드릴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게이트에 관한 얘기를 해 보도록 할까요?”
이제 대충 수지에 대한 설명도 끝났겠다.
태휘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손뼉을 두어 번 치고 자리에서 일어서 서류 뭉치를 들고 왔다.
‘오.’
한 부씩 배부된 서류에는 붉은 도장으로 ‘극비’라는 글자가 크게 찍혀 있었다.
“이번 7레벨 게이트의 이름은 ‘볼리칸 평원’입니다. 위치는 거기 쓰여 있듯이, 강원도 춘천의 야산이고요.”
그렇게 태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원 제한은 6명.
조금 신기하게도 외부 에너지 측정 결과는 5레벨 임무형 게이트 중에서 높은 수준이었다.
“에너지 수치가 상당히 낮은 것 같은데, 원래 이렇습니까?”
정현이 묻자 태휘의 표정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세아나 수지도 마찬가지.
“저번에 7레벨 게이트는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종류가 많다고 말씀드렸죠?”
“예.”
“그래서입니다.”
정현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진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렇군.’
에너지 수치와 게이트의 난이도가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왜 매번 게이트가 생성될 때마다 꼬박꼬박 수치를 측정하겠나.
다시 말해 이번 게이트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
곧 사람, 그것도 헌터에 비하면 너무나 무력한 민간인을 상대하는 임무가 되리라는 추론이 자연스러웠다.
“다행히 일찍 발견해 브레이크까지는 여유가 제법 있는 편입니다. 공략 날짜는 각자 편한 때를 택해도-”
“최대한 발리 들어가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태휘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정현이 의사를 밝혔다.
“최대한 빨리요?”
그 말이 다소 의외였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정현에게로 몰렸다.
“시간 끌어서 좋을 게 없다면요.”
정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확인해 주었다.
“저, 한정현 헌터.”
“나쁘지 않네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태휘는 그를 만류하려는 눈치였지만 이번에는 수지가 끼어들었다.
“수지야.”
“언제까지 우리가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야. 애초에 한정현 헌터나 다른 애들 부른 것도 그런 이유 아니야? 최대한 빨리 처리해 보는 것도 나브지 않을 것 같은데.”
수지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태휘도 답이 궁한 듯 더 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실적에서도 그렇지만, 아마 이번 공략은 수지가 실질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맡은 모양이었다.
다만, 태휘가 영 걸리는 게 있다는 표정으로 세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세아는? 일이 바쁘지 않나?”
“전 괜찮아요. 누구 때문에 어차피 공식 행사도 못 나가서 한가하니까.”
“크흠.”
세아의 대답에 태휘가 헛기침을 뱉었다.
왜 그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정현은 이윽고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긴, S등급 관리 체계를 만든 게 협회장님이라고 했지.’
S등급의 외부 노출을 극도로 제한하는 대한민국의 관리 제도.
그 기틀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태휘였다.
대한민국 최고로 손꼽히는 세아 길드의 수장이면서도 신세아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손에 꼽는 이유였다.
물론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한 것이겠지만 태휘로서는 찔릴 수밖에.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현은 여러 사정이 겹쳐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했다.
보통의 S등급들은 이름이 알려져도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협회 소속 헌터들처럼 아예 코드네임으로만 살아가야 했을 테니까.
“그럽시다. 그럼 일정은 최대한 빨리 잡는 것으로 하고. 그래도 경험이 있는 수지 씨와 세아 길드장이 다른 헌터들을 잘 이끌어 주길 바랍니다.”
이 자리를 길게 끌어 봐야 자신에게 불리할 뿐이라고 생각했을까.
태휘는 어쩐지 급하게 미팅을 마무리하려는 듯했다.
헌터의 전설이라는 그가 저렇게 급한 모습이라니.
정현으로서는 제법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7레벨 게이트 공략은 성공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얻지 못합니다.”
물질적인 보수도 S등급들이 받아야 할 수준에 못 미친다.
거액이 움직이면 어쩔 수 없이 그 정보도 새어 나가기 때문.
하지만 태휘가 언급한 합당한 보상이란 그보다 대중에게 공략 실적이 공개되지도, 그에 따른 명예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수지가 아무도 모르게 김밥집 사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저만큼은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사람들을 둘러보며 하는 태휘의 말은 그가 협회장으로서, 그리고 같은 S등급 헌터로서 약속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이었다.
어쩐지 정현으로서는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으나.
“어우.”
“으······”
세아와 수지는 미세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태휘의 시선을 피했다.
이 말이 7레벨 게이트 공략 미팅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고정 발언이라는 것을 정현이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멋진 말이라도 너무 많이 듣게 되면 조금 낯간지러워진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