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벌컥―
여태 잘 버텼던 철제의자가 결국은 밀려나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
“이렇게 얻은 증언은 전부 효력이 없다는 걸 모르십니까?”
게다가 수겸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테러 현장에서 나온 것들과 한수명과의 연결고리는 아직 찾지 못한 상황.
증거와 증언 모두 부족한 상황에 수겸이 이 사단을 낸 것이다.
“수겸씨 때문에 아무런 증거도 못찾고 그냥 풀어주게 됐지 않습니까!”
형사는 참아왔던 분노를 쏟아냈다.
“예. 죄송하게 됐습니다.”
* * *
그리고 2일이 지난 후 결국 경찰은 한수명을 증거불충분을 사유로 풀어주었다.
쾅! 쾅!
한수명이 밖으로 나가고 담당했던 형사는 분풀이를 책상에 했다.
“강수겸, 이 개새끼가 전부 망쳤어.”
형사와의 분노와는 상관없이 그럼에도 작전은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풀어줬지만, 경찰에서는 범죄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미행을 계획하고 있던 것.
많은 수가 붙으면 확실하겠지만, 오히려 발각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도 사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서 투입한 미행조는 셋이었다.
그 중 하나가 경찰서 밖으로 나오는 한수명을 눈으로 쫓던 중 멀찍이 뒤 따라 걷고 있는 수겸을 발견했다.
“저건 또 뭐야.”
한수명은 여기까지는 예상한 듯 연신 주면을 둘러보며 길을 걸었다.
“한수명, 저놈 미행을 떨치는 교육까지 받은 모양인데요?”
횡단보도 빨간 불에 갑자기 뛰어 들기도 하고, 갔던 길을 갑자기 뒤돌아 다시 빠져나오는 것까지.
한수명은 뛰쫓던 형사 하나를 캐치할 때마다 피식 웃었다.
“고생들 하십니다.”
경찰서에서 나오자 이제 말문이 트이는 듯 했다.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기를 2시간.
한수명이 돌연 속도를 내어 뛰기 시작했다.
형사들도 뒤따라갔지만, 이상하게도 행인들이 형사들의 앞길을 가로 막으며 추적을 방해했다.
“비키세요! 지나갑니다!”
덩치가 산만한 남자를 옆으로 제치고 겨우 빠져 나온 형사의 눈에는 한수명이 빠져나간 텅빈 거리만이 보일 뿐이었다.
* * *
“살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형사들이 인파들을 뚫는 모습을 뒤쪽에서 바라보던 수겸이 이를 바득 갈았다.
신의 대리자니, 신의 명령이니 하며 세상사를 초월한 것처럼 굴면서도 잡히기는 싫어서 열심히 도망가는 꼴을 보니 수겸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앞, 뒤가 안맞잖아. 이 새끼야. 위선자 새끼.”
선택적 신념.
수겸이 제일 화가 나는 부분이었다.
거기다 뒤틀리기까지 해서 본인들의 신념들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너희들은 정말 용서할 수가 없다. 갱생이 불가능한 족속들이야.’
수겸은 도로를 건너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전문가들인 형사들도 실패한 미행을 수겸이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 아침에 눈에 뿌린 안약 덕분이었다.
[피부 발색제 – 노랑]– 추적 목적만으로 개발된 시약.
– 피부에 바르면 노란 빛을 끊임없이 발산한다.
– 특수 안약을 넣은 사람에게만 보이며, 잔상은 최대 1시간동안 허공에 남는다.
수겸이 해야할 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빨면서 노란 빛을 쫓는 것이었다.
한수명은 취조 과정에서 말한 것처럼 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여러 경로를 거쳤다.
처음엔 어느 안경점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고 나오기도 하고, 다음은 지하철역에 있는 노숙자, 마지막으론 동네 허름한 한의원까지.
복잡한 루트로 다녔지만 그래봐야 수겸에겐 네비게이션일 뿐이었다.
그리고 서울 변두리에 있는 한 호텔.
수겸은 근처에 다가가지는 않은 채 호텔의 전경을 살펴봤다.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위치만 보면 불륜 커플이나 올 법한 장소.
“하긴 신도가 200명밖에 없는데 무슨 돈이 있겠어.”
한수명을 따라다니면서 수겸이 한 생각은 한 짓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아무리 해외에도 사람이 있다지만, 규모가 커 봐야 얼마나 크겠는가.
‘아무래도 사이비 교주가 무리수를 둔 것이겠지. 본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이미 세뇌를 당한 사람들은 본인들 딴에는 진실된 믿음으로 했겠지만, 교주는 지금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수겸은 준비해 온 것들을 점검하면서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보였겠지. 이름을 알리기엔 더 없이 좋았을거야. 게다가 적당히 스토리만 짜면 신도들에게 말할 건덕지가 생기기도 하고.’
수겸이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어두컴컴했다.
‘엘리베이터는 위험하니까 계단으로.’
탁. 탁.
그 때 꺼져있던 불들이 일제히 켜졌다.
위잉―
방금 전까지 7층에 세워져 있던 엘리베이터가 6층, 5층을 거쳐 1층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휴우―”
시작이란 생각에 수겸은 숨을 내쉬었다.
띵!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문 틈사이를 노려봤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지?”
수겸이 안을 살펴보니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다시 7층이 눌러져 있었다.
“타고 올라오란건가.”
수겸은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고민을 거듭했다.
“흡. 내가 등신이냐. 뭘 믿고 엘리베이터를 타겠어. 빡세도 걷고 말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올라오는 동안 다행히도 어떤 방해는 없었다.
한 숨을 돌리고 난 뒤 계단실 문을 열었다.
“꺄악! 도와 주세요!”
예상치 못한 비명소리였다.
“누가 있는건가?”
7층은 결혼식도 할 수 있도록 로비와 행사장이 마련되어 있는 구조였다.
비명 소리가 들린 건 행사장 안 쪽.
수겸은 주변을 살펴볼 생각도 않고 본능에 이끌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모두가 모였군요. 과연 신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신가 봅니다.”
바이크 헬멧을 여지없이 쓰고 있는 사람이 정면에 설치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양 옆으로 소름 돋도록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열해 있었고, 그 수는 대충 봐도 100명은 되어 보였다.
한수명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 인원이 이 자리에 있는 것.
“무슨 짓이냐.”
위축될만도 한데 수겸은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신의 권능을 흉내내는 자여. 여기 이 어린 소녀를 아는가.”
수겸은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를 살폈다.
소녀 역시 수겸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이 소녀는 악마가 만든 ‘힐링 포션’이라는 저주로 인해 되살아난 존재입니다. 소녀여 가엽구나. 너를 거둬준 악마조차도 너의 존재를 모르다니.”
제사장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 방금 들어온 한수명 이 새끼가 말 안했냐? 그 새끼 어딨어.”
수겸은 단박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 행동으로 수겸이 만든 힐링 포션으로 목숨을 구한 사람을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것이었다.
소방청에서 홍보 목적으로 너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얼굴이 그대로 노출이 되었으니 찾기도 쉬웠을 것이다.
“개새끼야. 너네 형제인지 개새끼인지도 엊그제 그 힐링 포션으로 죽다 살아났다. 그건 어쩔 것이냐.”
제사장은 처음 들었다는 듯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인물을 쳐다봤다.
헬멧 때문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한수명을 쳐다 본 것이었다.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죽음을 각오했지만, 제가 의식을 잃은 사이에 경찰들이 그만…….”
한수명은 음성 변조된 목소리로 주저리 주저리 말을 했다.
“너랑 저 아이랑 무슨 차이냐? 안 그래, 제사장? 뭐해. 저 새끼부터 죽여. 악마와 손잡은 배신자니까.”
“데리고 오라.”
제사장은 손짓으로 명령을 하고, 켜져 있던 카메라도 역시 치우라 명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제 살을 깎아 먹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악마가 말한 것이 사실이긴 한가보구나. 아이야.”
“…….”
한수명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성검을.”
제사장이 손을 내밀자 옆에 있던 사람이 보석이 박힌 단검을 건넸다.
촤악―
동시에 제사장은 머뭇거리지 않고, 한수명의 헬멧 바로 밑 목덜미를 그었다.
파아악!
핏줄기가 솟구치는데 어느 누구도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넘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하아.”
수겸은 마음 속에 있던 줄이,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려고 만든 힐링 포션이 빌미가 되어 누군가가 죽었다.
“너희는 이 세상에 있으면 안되는 족속들이구나.”
수겸은 이 순간 진심으로 악마가 되기로 했다.
“너희들이 살려서 감옥에 보면 죄를 늬우칠까?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을 한다고 해도 내가 너희를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난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본다. 내게 악마라 했나.”
수겸이 걸어 나가며 입고 있던 외투에서 어웨이큰과 근력 강화제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 너희가 원하는 것이 되어줄게. 악마 말이야.”
수겸이 앞으로 뛰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양 옆에 있던 괴한들 모두가 수겸을 잡기 위해 달려 들었다.
누군가는 완력으로, 누군가는 야구 배트처럼 무기를 집어 들었지만 어차피 다 대 일의 싸움에서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건 한정된 인원.
근력 강화제를 먹은 수겸은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 손짓, 발짓만으로도 성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상태.
퍽! 퍽!
주먹을 휘둘러 한 놈을 날려 보내고, 뒤에서 덮쳐 온 이는 팔꿈치로 옆구리를 후려 친 후 그 대로 팔을 잡아 잡아 메쳤다.
쾅!
사람을 몽둥이 삼아 휘두르다가 집어던지기까지.
1 대 100.
누구도 믿지 않을 이야기지만, 오히려 장내를 압도하고 있는 건 수겸이었다.
“하아. 시발. 다 덤벼!”
수겸이 악에 바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렸다.
“모두들 저 악마를 처단하라! 지금 이 순간 신께서 우리를 지켜보신다. 악마를 죽임으로써 신께 우리를 인정하시고 그분의 제국을 세워주실 것이다. 그날이 머지않았다!”
제사장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입만 뻐끔거렸다.
지금 이건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끼리의 싸움이 아니었다.
아무리 몽둥이를 들고, 위협적으로 무장을 했어도 결국은 일반인.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수겸을 보니 전의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결국 신에 대한 믿음 보다는 생존 욕구가 강한 것이다.
“그런다고 너희들이 용서받을 것 같아?”
명령은 제사장이 하고, 실천은 다른 사람이 했더라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가 한 통속이었다.
“이제 끝을 내자.”
한참을 투닥거리던 수겸이 한 가운데 서서 새끼 손가락 정도 길이의 앰플 병을 바닥에 휙 던졌다.
쨍그랑.
아주 작은 병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검정 가루는 금세 행사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지금 너희들이 코로 들이 마신 이 가루는 말이야. 통증을 아주 아주 극대화 하는 효과가 있어. 손 끝에 난 아주 작은 생채기에도 손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 느껴질 거야.”
수겸이 말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가 뚝 하니 멈춰섰다.
“근데 한 대씩은 다들 얻어맞지 않았던가?”
수겸의 말이 시발점이 되었다.
“커헉.”
“끄으윽.”
한두 대 얼굴을 맞은 사람도 있었고, 수겸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최소 멍이라도 들 정도는 타격은 당한 상태.
아수라장이었다.
“제사장!”
수겸은 단상에서 이 모든 걸 보고 있는 제사장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조금 멀쩡해 보이는 놈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너의 신도들이 이리도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다. 제사장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하다 못해 너희 잘난 신께 기도라도 하지 그래?”
“신에게 도전하는 자. 반드시 신의 징벌을 받으리라.”
“시발! 그놈의 신 타령. 이제 그만 하지 그래? 아니면 정말로 너희들 신을 존재한다고 믿는거냐?”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구나!”
이건 수겸 역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진짜로 종교에 미친 놈이었다니.’
“하긴, 그래도 네 죄가 용서받는 건 아니지.”
제사장 앞에 도착한 수겸은 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있는 소녀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 괜찮아. 이것만 먹고 곧장 밖으로 나가. 할 수 있겠지?”
혹시 몰라 디톡시를 건네 준 수겸은 소녀의 손을 잡고 걸어 가 행사장 밖으로 소녀를 내보냈다.
“자, 이제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