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수겸이 직접 진행했던 라이브 방송과 정인섭이 시작하고 경찰청장이 마무리한 기자회견이 어우러지며 상황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팩트는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실상은 공인이 발언하고 언론이 퍼뜨리면 그것이 팩트가 되는 것이었다.
“어제 기자회견 봤어?”
“응, 걔네 자기네들끼리 싸우고 튀었다고 하더라. 찝찝하긴 해도 일단 테러는 끝난 걸로 봐야 하지 않나?”
“그렇지. 경찰도 이제 안전할거라고 했으니까.”
어느 시민들의 대화처럼 여론은 삽시간에 안정되고, 연금술 제품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인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제 2의 대한 제약을 꿈꾸는 많은 회사들은 테러의 위협이 없어지자마자 수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 중 제일 첫 번째는 동종업계인 칠성제약이었다.
“아이고, 강 대표님.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예전 대한 제약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찾아왔던 칠성제약의 조상호 실장이었다.
“아, 예. 제가 바쁘다고 했는데도 굳이 찾아오시네요?”
처음 조상호를 만났을 때 수겸은 공교로운 타이밍에 그 배후가 칠성 제약이라 생각했다.
‘그 때는 그게 합리적 의심이긴 했지. 그 타이밍에 상대 기업과 계약 중인 사람을 찾아오니까.’
그런데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일개 제약사가 일을 벌이기엔 너무 일이 커지고 있어 칠성 제약에 대한 의심은 거두어졌다.
그런데도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칠성제약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조상호는 첫 등장부터 본의 아니게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하하. 영업의 포인트는 끈질김 아닐까요?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도 자꾸 보면 정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에혀.”
수겸은 웃는 낯짝에 침 뱉기 어렵단는 말 옛 선조의 말씀이 구구절절 옳다는 걸 깨달았다.
“혹시 요새 뭐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시다면 저희 칠성에도 기회를 주십사하고 찾아왔습니다.”
“뭐라도요?”
“예, 뭐라도.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기술력이나 설비는 대한 제약이 저희 칠성을 따라오질 못합니다. 같은 제품을 찍어도 무조건 저희가 더 많이 찍어낼 수 있을뿐더러 대한 제약처럼 배송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건 칠성 쪽도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수겸은 괜스레 대한 제약의 편에 서서 반박을 했다.
“전혀요. 이게 다 허점투성이인 프로세스 때문인데 저희는 어디랑 비교해봐도 우수한 시스템을 갖춘 회사니까요.”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재수 없게 말하지?’
처음 이미지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수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거슬리는 건 ‘절대’ 라는 단어.
‘지나친 확신은 오히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처럼 절대라는 단어를 쉽게 꺼낸다는 것부터 믿기 힘들어.’
수겸은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칠성제약을 마음 속에서 아웃시켰다.
“예,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만 당분간은 새로운 제약사와 계약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드르륵.
수겸은 의자를 쭉 빼며 대화의 끝을 알렸다.
“아, 바쁘시군요. 그러면 다음 주쯤 또 뵐까요?”
“예?”
수겸은 순간 내가 말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제로 내뱉지는 않았나 헷갈렸다.
“아무리 바쁘셔도 식사는 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제가 좋은 곳으로 예약해두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조상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그 뒷모습을 보는 수겸은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왠지 이러다 정 들 것 같아.”
그리고 수겸은 노트북을 켜 메일함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이미 계약이 되어 있는 대한 제약에서는 민환에게 연락하지만 수겸과의 협업을 원하는 곳들은 수겸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도록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걸 민환이에게 설명할 수만 있다면 필터링을 시킬텐데. 그것도 힘이 드니 원.’
받은 메일 +999
수겸은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와, 언제 다 보냐. 아니지, 내가 꼭 다 봐야해? 내 눈에 띄는 것도 본인들 운이지 뭐. 좋았어. 짝수 페이지만 눌러서 보자.”
어떤 영화의 악당처럼 순식간에 봐야할 분량의 절반을 날려버린 수겸은 방금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연금술 제품 생산 제안의 건]제일 첫 메일의 제목이었다.
“내가 뭘 만들 수 있을지 알고 제안을 한다는거지?”
수겸은 의아했지만 첫 시작이니까를 읊조리며 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예예. 잘 봤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시약을 만들 수 있냐는 것에서 한 번 걸리고, 그걸 해냈는데 또 무슨 장치가 필요한 지 여기서 두 번 걸렸다.
그 뒤의 메일들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연금술이라는 것 자체가 알려지지 않아서겠지. 내가 말한 적이 없으니까.”
대중들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마법 언저리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번에 수겸이 볼 페이지는 38 페이지.
“이번엔 이미 시작했으니 끝까지 보고, 다음부터는 하지 말자. 이걸 매일하라면 연금술을 안 하고 말 거야.”
[마나 플로우 조절 장치를 활용한 고농축 마나 치료 시설 제작 제안]“오?”
이번엔 제법 그럴듯한 제목이었다.
“마나 플로우? 이 분은 꼭 만나봐야겠는데. 일단 킵. 일단은 목록 끝까지 보고 오자.”
어차피 그럴 듯한 아이디어도 얻은 마당에 끝까지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수겸도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오. 시간 낭비만 했네. 아니, 왜 나한테 돈을 빌려 달라는거야? 또 뭐더라. 내가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나. 미친 놈들 진짜 많다.”
짜증이 잔뜩 난 수겸은 미간을 찌푸리며 좀 전에 중요 체크를 해둔 메일을 열었다.
* * *
수겸이 메일을 보낸 발신인과 만나기로 한 날.
“어라? 세무사님 계셨네요?”
약속 장소인 아르케 사무실에 들어선 수겸이 사무실 안에 있던 조태규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박동현의 집에도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조태규를 만난 지 적어도 3주는 됐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리 한 식구끼리 이런 인사가 맞는지 몰라도 그동안 잘 지내셨죠?”
“하하하. 저야 잘 지냈죠. 계속 길이 엇갈리더라구요.”
“맞습니다. 제가 사무실에 도착하면 사장님은 방금 전에 나갔다고 하고.”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테러 사건이 일단락되고 전면 중지가 됐던 연금술 제품이 다시 판매되기까지 과정은 단순하게 말 한 마디로 ‘이제 시작!’ 이라고 외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확인하고, 조율하고, 다시 한 번 체크하는 과정이 필요한 일.
조태규의 역할이 바로 그 역할이었다.
수겸이 아무리 믿는다지만 사회 경험 자체가 적은 최영지와 이은호는 할 수 없는 일.
민환 역시 사업을 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조태규만이 적임자였다.
“어제 대한 제약 쪽이랑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제 거의 궤도에 올라섰다고 하던데요?”
“제 예상입니다만, 더 이상 변수가 없다면 한 달 정도면 알아서 굴러갈 정도가 될 겁니다.”
“와우.”
수겸은 진심으로 놀라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실 지금도 거의 신경 쓸 일이 없긴 하죠. 안그래도 그래서 이찬수 팀장이랑 오늘 만나기로 했습니다. 공장 후보들 쭉 보려고요. 후보들 이야기는 들으셨죠? 이찬수 팀장이 전에 이야기 했다고 하던데.”
“네, 맞아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저도 실제로 보진 않았어요. 전 세무사님 믿으니까 꼼꼼하게 봐주세요.”
“제가 전에 쓰던 사무실은 기억나시는거죠? 일단 시키시니 합니다만, 나중엔 직접 보셔야 합니다.”
수겸은 갑자기 마라탕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전에 사무실은 또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으셨으니 그랬겠죠. 하여튼 잘 보고 오셔서 말씀해주세요. 저는 오늘 약속이 잡혀서 같이 가기가 좀 그렇네요.”
“네네. 그럼 이만.”
조태규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사무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수겸은 회의실 안으로 자리를 옮긴 후 오늘 함께 나눌 이야기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똑똑―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수겸은 아무런 의심 없이 손님을 안으로 초대했다.
‘동철씨랑 민환이가 1층에서 한 번 확인한다고 했으니까.’
“안녕하세요. 강수겸입니다.”
수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예. 반갑습니다. 저는 노고산동에서 온 김철수입니다.”
김철수가 수겸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는데, 두터운 손의 감촉은 흡사 돌처럼 딱딱했다.
“일단 안에서 이야기 나누실까요? 아이스 커피 드실래요?”
“좋죠. 한 잔 부탁드립니다.”
수겸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김철수 앞에 내려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제가 보내주신 메일을 봤는데 혹시 한 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바로 할까요?”
“준비되시면 부탁드립니다.”
애초에 회의실에 있는 건 단 둘이었고, 하루를 비운 수겸은 넉넉한 마음으로 발표 시작을 기다렸다.
“안녕하십니까. 노고산동에서 온 김철수입니다.”
짝짝짝.
수겸은 말 대신 박수로 대답을 대신했다.
“혹시 고압산소치료라는 걸 들어보셨습니까?”
“들어는 본 것 같습니다.”
“2기압 이상의 고기압이 유지되는 챔버 안에서 고농도의 산소를 체내에 흡수시키는 치료입니다. 체내 산소 공급량을 늘려서 뇌 조직 손상을 막는다던가, 혈관이 막혀 말초 조직까지 산소 운반이 잘 되지 않는 경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제 생각은 여기에서 시작됐습니다. 흡수를 많이 하기 위해서는 일단 공급이 많아야 하는거죠.”
김철수는 긴장이 됐는지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인 후에 다시 설명을 이었다.
“전에 마나 흡입체를 만드실 때 설명이 대기 중에 떠도는 마나를 끌어온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맞아요. 기억납니다.”
“그렇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라는 것도 공기처럼 인위적으로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걸 인위적으로 조작해 한 공간으로 모은다면.”
“아까 말씀하신 챔버에다가 마나를 모으면 그 자체가 고농축 마나가 모인 공간이 완성되는군요.”
김철수의 말을 수겸이 받아서 문장을 완성시켰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마나라는 것도 역시나 자연을 구성하는 근간. 분명 제가 말씀드린 공간에서 연금술사님께서 만든 시약을 사용한다면 더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수겸이 주목한 포인트는 이것이었다.
시약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 외에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생각대로만 되면 좋을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나가 흐를 통로와 챔버가 중요합니다. 이미 실험을 통해 확인해야 할 사항도 확인했고, 어떻게 설비 구상을 할지도 준비됐습니다.”
“와. 그렇다는 건 실험을 할 마나 흡입체와 자금, 인력만 있으면 즉시 착수 가능하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혹시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떻게 되세요? 동시에 진행하기엔 벅차지 않을까요?”
“아, 회사 그만두고 왔습니다. 어제가 마지막 출근이었습니다.”
“예? 혹시 저와 함께 일을 해보시려고 그만둔 건 아니시죠? 원래 계획하셨던거죠?”
김철수는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 때 수겸은 알 수 있었다.
김철수는 뒤가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