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콜록. 콜록.”
수겸이 연거푸 기침을 하며 손으로 먼지를 날렸다.
수겸이 여자를 살리기 위해 센터에 뛰어 들어온 뒤로 상황은 1초 단위로 훅훅 바뀌었다.
센터의 사람들이 잡혀 있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칼리아가 죽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잭의 장난기 어린 행동에 사람이 죽어 나가고, 트럭이 치고 들어와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수겸이 예측하고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수겸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것을 느꼈다.
“어때? 내 말 듣길 잘했지? 너 아까 거기 그대로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잭은 박수를 치다가 폴짝 뛰어 계단 아래로 다시 내려왔다.
사뿐히 한 걸음.
잭이 방금 아무렇지 않게 건너뛴 건 트럭이 깔아뭉갠 간호사 한 명의 팔이었다.
또다시 폴짝.
소리를 낸 건 자기가 아니라며 두 번째 줄을 지목한 사람의 하반신.
잭은 수겸의 코앞에 섰다.
“내가 왜 너를 살려뒀는지 알아?”
잭이 수겸의 볼을 찰싹 쳤다.
“너는 저들처럼 한순간에 죽이기엔 내가 성에 안 차. 최대한 고통스럽게, 길게 죽음을 맛보게 해야 내가 분이 풀릴 것 같아.”
수겸이 이가 부서져라 꽉 깨물었다.
퍽.
수겸은 힘껏 쥔 주먹을 잭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키키킥.”
잭이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총을 쥔 여럿이 수겸의 옆으로 다가왔다.
훈련받은 요원처럼 절도 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위협감만은 충분했다.
‘스토니를 먹으면 아마도 총알은 충분히 커버가 될 것 같은데.’
문제는 확신.
살면서 총을 처음 본 수겸으로서는 총에 대한 공포감은 당연했다.
‘혹시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스토니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수겸이 잠시 잠깐 망설이는 동안 수겸의 뒤에서 잭의 부하가 검은 복면으로 수겸의 시야를 덮었다.
“너는 나와 함께 가야겠어.”
잭이 수겸의 팔을 붙잡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부하에게서 주사기를 받아 들었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넌 지금 미국 정부 시설을 테러한 거라고.”
수겸이 힘이 없는 목소리로 경고를 했다.
“키키. 그러니까 지금 도망가지. 켄싱턴 같은 곳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고. 설마 아무 생각도 없이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봐? 조금 잠잠해지면 다시 들어오면 돼. 물론 그때는 이름이 바뀌겠지만? 하하.”
잭이 무너진 벽을 향해 걸어갔다.
후두둑.
조금 건드렸더니 벽은 허물어졌다.
잭이 허리를 숙여 벽을 피해 밖으로 나가자 잭의 수하들이 수겸을 끌고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으윽. 머리야.”
눈을 뜬 수겸은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운 느낌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끌려온 것까진 알겠는데 무엇을 타고,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어.’
수겸은 문득 자기의 팔이 묶여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컴컴했다.
수겸은 벽을 더듬어가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끼익.
생각보다 문이 무거워 수겸은 몸이 통과할 정도만 겨우 밀어 발을 내디뎠다.
“어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냥 허공이었다.
수겸은 겨우 중심을 잡고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시야를 멀리 내다보니 보이는 건 바다뿐.
아래를 보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컨테이너네.”
실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물용 선박 위에 실린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었던 것이다.
선박 위에 적재된 컨테이너 중에서 가장 높고, 다른 컨테이너로 이동하지 못하게 제일 끝에 위치해 있는 것이었다.
흡사 낭떠러지와 같은 곳이었다.
“죽으라는 건지, 뭔지 모르겠네.”
수겸의 혼잣말이 들렸던 걸까.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철컹.
수겸은 무슨 일인가 싶어 살폈다.
그런데 열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바깥쪽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았는데, 수겸이 있는 컨테이너 바닥이 올라오며 아래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게 아닌가.
수겸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려와.”
그사이 어웨이큰의 효과가 떨어져 영어가 영어로 들리는 수겸이었다.
“어, 내 옷.”
미리 어웨이큰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찾으니 외투 자체가 없어졌다.
외투가 문제가 아니고 그 안에 있던 시약들이 문제였다.
‘일단 움직이자. 그렇다고 여기서 버텨봐야 답도 없으니까.’
수겸은 문이 열린 곳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곳이지?”
아래로 내려간 수겸이 제일 먼저 한 이야기다.
컨테이너라함은 애초에 규격이 있는 것이라 조금 전 수겸이 있던 곳과 동일한 면적이어야 했다.
그게 맞는 것인데, 지금 이곳은 말만 안 한다면 그냥 평범한 집이라 착각할 정도로 넓은 면적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다가 식탁, 의자와 소파까지 없는 게 없어서 집이랑 다른 부분이 전혀 없었다.
조금 전 고개를 내밀어 밖을 봤을 때도 분명히 바로 밑에 있는 것도 컨테이너였다.
“왜? 네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라 이상한가? 하긴 나 같아도 놀랄 것 같긴 해.”
수겸에게 말을 건 건 역시나 잭이었다.
잭이 앉아 있는 소파 밑에는 아무렇게나 주사기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잭의 눈동자는 선명한 상태였다.
“나랑 말장난이라도 하고 싶으면 내 옷이라도 내놔.”
수겸이 한국어로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 말을 이해 못하나 보네. 뭘 달라고? 아! 아까 먹은 걸 찾아?”
잭은 이미 수겸의 외투를 뒤진 모양이었다.
수겸이 찾은 어웨이큰이 잭의 손아귀 위에 있는 걸 보니 말이다.
잭이 망설임 없이 수겸에게 어웨이큰을 휙 던졌다.
수겸은 자신이 본 최악의 미친놈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상황 파악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해야 했다.
‘살아 나가야 하니까.’
“이제 됐지? 아까 밖에 본 것 같았지만, 지금 여기서 네가 탈출할 방법은 없어.”
“어. 이거 어디로 가는 배야?”
제일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멕시코로 가는 배지. 이미 미국령은 거의 다 빠져나왔어.”
“컨테이너까지 개조하고 밀입국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것도 미국에서 말이야.”
“내가 말했잖아. 내가 세운 제국이라고.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적어도 내 땅 안에서는.”
이놈 머릿속에는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개념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걸까?
“미친놈.”
“칭찬 고마워. 나는 그 말이 제일 좋더라. 내 광기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말이지.”
“할 말이 없게 만드네. 날 잡아서 뭘 할 셈이야.”
“너? 거기에 대한 답은 여러 개지. 우선 첫째로 네놈 때문에 시작된 미국의 마약 배척 작업은 올스톱이 될 거다. 한다고 해 봐야 네가 없어지면 길어도 한 달이나 할까? 이미 이것만으로 내 입장에서는 성공이지.”
잭은 어떨 때는 감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이성적으로 답을 했다.
수겸은 말을 하기 전 잠시 고민했다.
‘저놈의 논리를 깨야 내가 사는 길이 열리나, 아니면 수긍하고 인정해줘야 할까?’
종잡을 수 없는 사내라서 방법이 서질 않았다.
어쩌면 살아날 길이 없기 때문에 방법이 나오질 않는 것은 아닐까.
“멍청한 새끼네. 어차피 다 제조법에 따라서 만드는 건데 내가 없다고 중단이 될까 봐? 게다가 내가 만들어 둔 약만 해도 이미 6개월 치야, 이 무식한 놈아.”
수겸은 어차피 답도 없으니 마음이 내키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하하, 그런가? 그러면 그건 내가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네. 두 번째 이유도 좀 중요하긴 한데, 지금 네 태도를 보니 성공하긴 힘들겠군.”
“뭐지?”
“너, 나를 위해서 일을 좀 하자. 돈이 필요하다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을 주고, 여자가 좋으면 어떤 여자든 네 앞에 데려다줄 수 있다. 권력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오로지 날 위하기만 한다면 내 제국 안에서는 네가 2인자가 될 테니까 말이야.”
“이건 좀 식상하네.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대체. 너는 세상에 돈, 여자, 권력 말고는 없는 거야?”
“아니, 마약이 있는데 그건 네게 먹힐 것 같지 않아서. 혹시 그쪽이냐?”
“말을 말자.”
“넌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쓸모 있는 인간이야. 네가 약을 만드는 방법을 연금술이라고 부른다지? 내가 볼 때 내가 마약을 만드는 것과 너의 연금술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닥쳐. 개소리도 작작 해야 듣지.”
수겸은 마약 제조와 연금술을 비교하는 발언에 모욕감을 느꼈다.
이것보다 더한 치욕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야, 들어봐. 너와 나, 우리는 결국 어떤 성질을 끌어내는 점에서 똑같아. 다만 난 마약 쪽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일 뿐. 그러니까 너도 관심사를 조금만 돌린다면 즐겁게 나와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닥치라고 했다. 주둥아리 부숴버리기 전에 그 입 다물어.”
수겸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네 기술만 더해진다면 더 완벽한 제국이 만들어질 텐데. 보아하니 더 말을 해봐야 의미도 없겠군. 그렇다면 넌 내게 쓸모가 없어지는 셈인데 괜찮겠어?”
잭의 눈빛이 돌변했다.
“너는 원래도 쓸모없는 인간인데 괜찮겠어?”
수겸은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이대로 하하 호호 웃으면서 끝낼 새끼가 아니지.’
수겸은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을 매만졌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 게 없는 평범한 은색 팔찌.
딸깍.
아주 미세하게 난 돌기를 누르니 그 사이로 콩알보다 작은 크기의 환약들이 굴러 나왔다.
근력 강화제에다가 스토니였다.
이 순간을 위해 한국에서 미리 설계해온 팔찌였다.
아니, 정확히는 이런 일이 생길 건 몰랐지만 만약을 대비해 준비한 것이었다.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에 비행기만 타고 넘어갔다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겠지.’
잭 일행은 여태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수겸은 망설임 없이 입에 털어 넣고는 아까 봐둔 곳으로 달려갔다.
아일랜드 식탁 앞에 있던 스탠팅 의자였다.
의자의 다리를 쥐고 식탁을 향해 휘둘렀다.
이내 부서지는 의자.
일부는 부러지고, 일부는 너덜거리는 상태가 되자 수겸은 다리 한쪽만 두고는 죄다 뜯어 버렸다.
“너 너무 미개해. 우리는 총이 있는 현대 사회라고. 그런 몽둥이를 들고 덤비려고? 한국인은 전부 너 정도 수준인가?”
잭은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손에 총을 쥐고 있었다.
아직도 앉아 있는 걸 보니 여전히 여유가 있는 듯했다.
수겸은 이번엔 반지 아랫부분을 꾹 눌렀다.
그러자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그걸 쥐고 있던 의자 다리에 슥슥 발랐다.
흡사 코팅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걸 보니 너희는 인터넷도 안 하는 머저리 같은데?”
‘좀 쫄리긴 하는데. 어차피 이제 뒤도 없어.’
수겸은 냉소를 지었다.
수겸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총을 들고 장전하고 있는 잭의 부하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