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센터 안으로 들어간 수겸이 본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었다.
“수겸…….”
수잔을 비롯해 겁에 질린 채 무릎 꿇고 서 있는 간호사들.
영문을 알 리가 없는 수겸이 일면식이 있는 수잔을 쳐다보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체념한 듯한 수잔의 표정.
수잔은 눈을 이내 감아 버렸다.
“이게 무슨…….”
간호사들은 어떤 포박도 당하지 않아서 도망치려면 언제든지 일어나서 도망칠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몸을 들썩이는 이가 없었다.
그들이 무릎 꿇고 있는 건 좌, 우로 복도가 이어져 있고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 로비 개념의 위치였는데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구두 소리가 수겸의 귀를 파고들었다.
털썩.
수겸은 순간 손에 힘이 빠져 등에 업고 있던 여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동시에 멈춘 수겸의 발.
수겸은 계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수겸은 어느새 땀으로 축축해진 손에 힘을 주었다.
‘일단 나가자. 혼자는 위험해.’
소리를 여전히 의식하며 수겸이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수겸은 보았다.
현관문 사이에 끼워져 있는 유리창 너머에 일그러진 얼굴의 칼리아를.
수겸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옅은 노란색의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백인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칼리아!”
이미 약에 취한 여자가 걱정되었지만, 그 사람까지 챙기기엔 여유가 없었다.
수겸이 타이밍을 보다 뒤를 돌아서 문을 향해 뛰어 가 손잡이를 돌렸다.
턱.
손잡이는 돌아가는데 밖에서 무언가로 막은 듯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시발. 칼리아! 문 열어. 빨리.”
“Sorry.”
칼리아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
무슨 일인지는 다 몰라도 칼리아가 무슨 일을 벌인 건 확실했다.
칼리아는 죄책감에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 문을 열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수겸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하다가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은 칼리아를 흘깃 쳐다봤다.
계단을 다 내려온 백인은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수겸을 향해 걸어왔다.
‘유리창을 깰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저 사이로 손을 집어넣기가 애매하다.’
수겸의 생각대로 유리창은 틈이 좁아서 이걸 깬다고 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기에는 어려운 상황.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겸은 밖으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시선을 옮겨 다가오고 있는 백인을 쳐다봤다.
백인의 얼굴은 분노도, 슬픔도 없는 무표정 그 자체라서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읽을 수가 없었다.
똑똑―
그때 유리창 너머에서 누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수겸은 눈앞의 백인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돌아보기를 망설였다.
그때 백인이 한 손을 들어 바깥쪽을 가리켰다.
자신은 개의치 말고 바깥을 보라는 뜻.
수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얼굴 여기저기에 문신을 한 남자가 칼리아의 뒤에 서서 칼리아의 머리채를 쥐고 있었다.
칼리아는 공포에 질려 몸부림도 치지 못했다.
“수겸…….”
조금 전 들었던 수잔과 똑같은 말투였다.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목소리.
심지어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도.
머리채를 쥐고 있던 마피아가 씨익 웃는다.
“아, 안돼.”
뒷 일을 예감한 수겸이 고개를 내저었다.
칼리아의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이밀어졌다.
“제발. 제발.”
수겸이 아무리 빌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탕!
일말의 자비도,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는 당겨졌고, 유리창은 칼리아의 피로 덮여 새빨갛게 물들었다.
털썩.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지는 칼리아의 몸.
“으악!”
수겸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총을 쏜 마피아는 여기까지가 그의 임무였던 듯 이내 사라지고, 수겸은 분노를 쏘아낼 곳을 찾다가 뒤를 돌아 백인을 노려보았다.
“개새끼야!!”
모든 일의 주동자, 악을 쓰는 수겸을 태연하게 쳐다보는 백인, 잭이 귀를 후벼팠다.
옆집 개가 짖어도 이만큼 무심하진 않으리라.
“쥐새끼는 찢어 죽여야 제맛이거든. 키킥.”
수겸의 분노와는 상관없이 잭이 수겸에게 말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웃음이 나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군. 누구 이놈 말 알아듣는 사람 없어?”
잭은 뒤를 돌아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센터 사람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고개를 아래로 툭 떨궜다.
지금 여기서 눈에 띄면 죽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너!”
잭이 두 번째 열에 제일 끝에 있는 한 남자를 콕 집었다.
그 남자는 고개를 떨구고 있어서 자기가 지목당한 지도 몰랐다.
잭이 고갯짓을 하니 복도 끝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서 지목당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너 피부색을 보니 얘랑 같은 나라 사람 아니야?”
피부색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편견이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알기론 저 사람 말은 한국인데 전 전혀 모릅니다. 전 중국계라 피부만 이렇지 미국 사람이에요.”
남자의 말투가 다급했다.
“그랬나? 알겠어. 그러면 네 말은 네가 쓸모가 없는 인간이라는 소리지? 그러면 혹시 약은 해봤어?”
어린아이와 노는 것처럼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마약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쓸모도 없고, 돈도 안 되는 놈이군.”
잭은 싫증이 난 장난감을 버리려 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남자는 아예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손을 비비며 목숨을 구걸했다.
“죽여. 시끄럽네.”
탕!
총을 쏜 것은 좀 전에 남자를 일으켜 세웠던 잭의 부하.
그는 정말로 쏘냐는 질문도 없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잭의 명령을 듣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무자비하다는 표현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을 듯했다.
“아, 너 혹시 영어로 말할 줄 아냐?”
잭이 갑자기 생각난 듯 수겸에게 질문했다.
당연히 이걸 먼저 물어야 정상이 아닌가.
조금 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수겸은 넋이 나간 채 보고 있었다.
나설 틈도 없이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그사이 한 사람이 더 죽었다.
“이, 이게…….”
“너 영어 할 줄 아냐니까? 저기 뒤에도 동양인 한 명 더 있는데 물어볼까?”
잭이 마지막 네 번째 열에 있는 간호사를 쳐다봤다.
수겸이 품에서 어웨이큰 한 알을 꺼내 입에 넣었다.
미국에 있을 동안 계속 데이비드가 붙어 있어서 불편한 적이 없어서 굳이 먹고 있지 않았던 어웨이큰이었다.
“너 이 상황에 뭘 먹은 거야?”
당연히 이제 모든 영어가 한국어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말해. 시발놈아. 왜 죽인 거야.”
“오! 뭐야, 너 영어를 할 줄 알았잖아? 진작 말을 하지. 괜히 한 명만 죽였잖아. 총알 아깝게.”
“미친 새끼.”
“아참. 이유를 물었나. 죽인 이유? 근데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내가 어디 한두 명만 죽였겠어? 하하.”
잭에겐 그것마저 자랑인 모양이었다.
“칼리아 말이야.”
수겸이 뒤를 돌아 바닥에 버려진 칼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아. 쥐새끼? 당연한 거 아닌가. 빌어먹을 DEA랑 붙어먹다가 다시 켄싱턴으로 돌아와? 그건 자기를 죽여달라는 이야기가 아니겠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무슨 소리지?”
“왜 아직도 너 같은 새끼가 거리를 활보하는지 말이야. 진작 죽여버리던가 감방에 처넣어버려야 하는 놈이 분명한데.”
“하하. 너 보기보다 멍청하구나. 그건 바로 내가 쓸모있는 인간이기 때문이지.”
잭이 양팔을 활짝 벌려 자신의 자존감을 나타냈다.
“끄응.”
그때 잭의 뒤에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신음을 냈다.
잭이 말을 하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누가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거지? 알아서 자수해. 아니면 나올 때까지 한 명씩 죽일 거니까.”
“…….”
어떤 사람이 자기가 죽을 것이 뻔한데 쉽게 나타날까.
당연히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너희들은 인간이 아직 덜 되었구나. 다른 사람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야지. 괜히 아무 죄 없는 사람이 죽게 생겼잖아.”
궤변이었다.
제일 인간 같지 않는 놈이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니 수겸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셋, 둘, 하나.”
그런 수겸은 내버려 두고 잭은 카운트 후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제일 앞 열의 첫 번째 사람의 미간을 쏘았다.
탕! 털썩.
“꺄악!”
“오, 신이시여.”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닥쳐.”
잭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패닉에 빠져서 안 들릴 법도 한데 인간의 생존본능은 강자의 목소리는 바로 듣도록 하는 것 같았다.
잭의 단 한 마디에 모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걸 보면 말이다.
“나와. 너! 혹시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들었나?”
잭이 다음 순서로 앉아 있는 두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저, 저. 제 뒤에서 났어요.”
“그렇지! 나는 못 들었어도 너희는 들었을 것 같았다고. 하하. 그러면 셋을 세는 동안 아무도 안 나타나면 유력한 후보가 숨어 있는 두 번째 줄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면 되겠네.”
잭의 시선이 뒤를 향하고 첫 번째 줄에 있는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두 번째 줄에 있는 사람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저 사람이 다리를 만지면서 소리 내는 걸 봤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아 그래? 거봐. 이렇게 노력하니까 다 되잖아. 괜히 번거롭게 하고 말이야.”
잭이 다시 손으로 총을 만들 때 지목당한 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자신을 가리켰던 남자에게 말했다.
“네가 말했잖아. 내가 뒤에서 똑똑히 봤다고.”
지옥이었다.
조금 전까지 하하호호 웃으며 지냈던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간질하고, 거짓을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 공간 자체가 지옥이었다.
나 대신 저 사람을 죽여달라고.
나는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수겸은 문득 어지러워졌다.
“미친 짓 그만하고 나랑 이야기해.”
수겸이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잠시.”
잭이 손을 들어 수겸을 제지했다.
그리고 하는 건 양손 모두 총 모양으로 해서 두 사람을 향해 겨누는 것이었다.
“탕!”
탕!
잭의 말소리에 맞춰 동시에 발사되는 총.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차피 죽을 걸 모르고. 하하. 아참! 무슨 이야기를 하자고?”
잭이 다시 고개를 돌려 수겸을 쳐다봤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나한테 바라는 건 뭐고.”
“시작은 너희가 먼저 한 게 아니었나? 나의 영역, 내가 세운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먼저 움직인 건 너희들이야. 그리고 누구보다 제일 먼저 나선 건 여기 센터에 있는 이놈들이었고. 안 그래?”
잭은 돌연 표정을 바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거두고, 눈을 부라리며 수겸을 노려봤다.
“너희도 너희 스스로를 위해 행동을 한 것이라면 나도 우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해도 되지 않나? 어때 네 생각은?”
오로지 너와 나, 둘만이 존재하는 세계관이었다.
도덕, 법, 사회적 책임 등은 오로지 네 것과 내 것만이 존재하기에 잭은 당당했다.
“궤변이다. 네가 만든 마약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나?”
“아니지. 아니야. 내가 어디 사람들한테 총을 겨누고 마약하라고 시켰나. 다 제놈들이 좋아서 한 거고, 난 그걸 공급해줄 뿐이야. 아! 물론 몇몇은 총으로 협박하긴 했다. 그건 미안. 하하.”
“완전히 돌아버렸군.”
그때 잭의 부하가 옆으로 다가와 잭에게 속삭였다.
“이제 클라이막스라니까 조금 더 뒤로 가. 옷이 더러워질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잭은 후다닥 뛰어 다시 계단 위로 올라갔다.
우우웅―
굉음이었다.
쾅! 콰가가광!
갑자기 덤프트럭이 센터 벽을 뚫고 들어왔다.
경로는 센터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곳이었다.
벽이 무너지고,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트럭은 벽을 뚫고 반대편 벽에 맞닿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짝짝―
“브라보! 브라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먼지에 숨도 쉬기 힘들건만 잭만은 연신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