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이제 곧 추워지겠다.”
걸어만 다녀도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지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있었다.
바스락.
수겸이 바싹 마른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걸었다.
“그러게요.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옆에서 보폭을 맞추어 걷는 건 조태규였다.
“그나저나 남은 공사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사실 이제 위층은 다 끝났다고 보시면 되고, 아래쪽에 스마트팜 시설만 마무리하고, 사장님이 쓰실 공간만 꾸미면 됩니다.”
“이제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건 저였네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하하. 그래도 끝이 보이는데 마음이 어떠세요?”
“모르겠어요. 뭐랄까요. 좀 신기하긴 하고 기대가 되는 것도 커요. 편의점에 얽매여서 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저랑 사장님이 만나서 이렇게 길을 걷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세무사님 사무실만 생각하면 지금도 마라탕 냄새가 나는 것 같다니까요. 하하하.”
“저는 꿈에도 나옵니다.”
“여하튼 이제 속도를 내볼게요. 끝에 다다랐으니 어서 마무리를 지어야죠.”
끝이 보이고 있었다.
* * *
수겸은 그 길로 민환과 함께 박동현이 있는 이천으로 향했다.
박동현은 오늘도 역시나 밭에서 작물들을 가꾸고 있었다.
“형!”
수겸이 반갑게 손을 크게 흔들며 박동현을 불렀다.
“수겸아! 민환아! 어서 와. 온 김에 거기 장화 신고 잡초 좀 뽑아 주라.”
자연스러웠다.
박동현은 둘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일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알겠어요.”
수겸은 고개를 돌려 보니 장화 두 켤레가 보였다.
딱 둘의 신발 사이즈와 똑같은 장화였다.
“거기 보면 자잘하게 난 잡초들 보이지? 그것만 뽑으면 돼. 하나도 안 어려워.”
“그러게요. 쉬운데요?”
민환이 잡초 하나를 뽑으며 말했다.
“근데 허리가 안 아프다곤 안 했다?”
박동현은 괜스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었다.
“하…하핫.”
노동의 시간이었다.
“누가 곧 겨울이래. 이렇게 땀이 쏟아지는데.”
집에 돌아와 씻고 나온 수겸이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며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아악!”
그때 바닥에 누워 있던 민환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왜?”
“무슨 일이야!”
수겸이 깜짝 놀라 민환을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씻고 있던 박동현이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형!”
사람은 더 큰소리, 더 격렬한 반응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마련.
자연스럽게 박동현 쪽을 쳐다본 수겸이 버럭 화냈다.
본의 아니게 씻고 있던 박동현의 맨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뭐가 생각이 나서.”
민환은 예기치 못한 두 사람의 리액션에 조금 기가 죽은 듯 수그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참. 놀래라. 아, 미안.”
그제야 박동현은 다시 문을 닫고 수겸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야, 무슨 일인데. 뭔데 그렇게 깜짝 놀랐어?”
수겸이 민환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뭘 잊고 있었는지 생각이 났거든.”
“뭔데?”
“아니, 민첩성 향상 물약을 먹고 일했으면 훨씬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
멍청한 놈.
수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 말이었다.
“아앗!”
“너까지 왜 그래?”
그때 박동현이 속옷까지는 입은 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욕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작업시간을 엄청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걸 깜빡했네요.”
“아 그래? 그건 좀 있다가 다시 이야기해주라. 난 일단 옷 좀 입을 테니까 놀고 있어.”
박동현은 본인의 방으로 향했다.
“만들면 뭐 하냐, 병신아. 으이구. 죽 쒀서 개 주지 말고 우리도 좀 먹자.”
민환이 자신에게, 또 수겸에게 하는 소리였다.
“내일은 한 번 약을 먹고 해보자. 너 가지고 다니지?”
“응. 가방에 있어. 항상 풀세팅해서 가지고 다니거든.”
“좋았어. 어라 근데 걔는 어딨냐?”
“누구? 아아. 십억이?”
“어… 어. 십억이…….”
민환이 말끝을 흐렸지만 수겸은 개의치 않았다.
“어딨더라. 잠깐만.”
수겸이 의지로 부르자 구석에 있던 십억이가 수겸에게로 다가왔다.
꿀렁―
곧바로 수겸의 팔을 타고 올라와 어깨에 자리를 잡은 십억이를 보고는 민환이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정체를 모르겠다.”
“나도 몰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서 아까 무슨 이야기인데?”
옷도 입고 로션도 바른 박동현이 둘 옆으로 와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 만든 시약이 행동을 엄청 빠르게 해주는 건데 그걸 먹고 일하면 얼마나 빠르겠어요? 슈슈숙.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을 거예요.”
민환이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아아. 난 또 뭐라고. 그거야 내일도 일할 테니까 바로 시도해보면 되지. 우리 간만인데 맥주나 한잔할까?”
“좋아요. 진짜 맛있겠다.”
“저도 좋습니다!”
둘의 대답에 박동현이 냉장고에서 캔맥주 세 캔을 들고 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주는 과자였다.
치익― 탁!
캔맥주 따는 소리가 너무 청량했다.
“그래서 오늘은 갑자기 왜 온 거야? 나야 너희들이 오면 반가워서 좋긴 한데 갑자기란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박동현이 과자 한 조각을 집어 들며 물었다.
“전에 말씀드린 때가 이제 와서요. 다시 상경하시는 건이요.”
“아아. 그것 때문이구나. 근데 내가 가서 도와줄 일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
“왜요?”
“그거 스마트팜이라며. 그러면 어차피 기계로 다 하지 않아?”
“아니에요. 그냥 물주고 빛 쏘여주고 하는 것만 기계로 하는 거지. 나머지는 똑같아요.”
수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가. 난 그래서 어차피 여기 밭을 없앨 것도 아니니까 계속 지금 스타일대로 농사지을까 했지. 난 도시보다 시골이 좋긴 하거든.”
“그래도 올라오시면 저희도 있고 함께 하니까 좋지 않을까요?”
박동현의 미묘한 뉘앙스에 민환이 나서서 수겸을 도왔다.
“그것도 좋지. 근데 여기도 그리 외롭거나 하지 않아서… 난 올라갔다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게 걱정이 돼.”
“그러면 왔다 갔다 하는 건요?”
“왔다 갔다?”
“네. 사실 형이 힘들어서 그렇지 제 입장만 생각해서 말씀드리면 여기도 형이 관리해주시면 좋긴 하거든요. 스마트팜은 형 말대로 하루종일 붙어 있을 필요는 없어서 시간이 남긴 할 거라서요.”
“그래?”
“저는 형이 좀 쉬기도 하고, 다시 서울 생활을 하고 싶으실까 봐 그랬죠.”
“그런 거라면 나는 좋아. 사실 이곳 분들이랑 정도 많이 들어서 섭섭해하셨거든. 전에 내가 한번 말 꺼냈다가 이장님은 눈물까지 흘리시더라고.”
“그랬구나. 저희도 계속 오며 가며 와서 도울게요. 오늘처럼요.”
이쯤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아서 수겸은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우리 짠이나 할까요?”
“좋지.”
“그러면 위하여!”
셋은 맥주가 튀어나올 만큼 세차게 캔을 부딪쳤다.
* * *
다음 날 수겸은 인삼 재배시설을 둘러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위에 달린 마나 흡입석을 살펴본 수겸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수겸아.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어.”
수겸의 뒤에서 박동현이 다가왔다.
“네?”
“대충 한 달 됐나? 거기서 나오는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마나요?”
“응. 그게 좀 약해진 것 같아. 이게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느껴지는 게 좀 약해진 것 같아.”
“네?”
뭔가 이상했다.
“형, 그걸 느낀다고요?”
수겸이 좀 전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이유와 조금 전 박동현의 말에 놀란 이유는 어찌 보면 같았다.
그건 바로 마나 흡입석의 용량이 다 찼기 때문.
“마나 흡입석 용량이 다 되어서 이제 예전처럼 주변 마나를 확 빨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박동현은 마나 흡입석에서 나오는 마나가 약해졌다고 했지만 정확하게는 흡입석이 빨아들이는 마나가 줄어들어 마나의 유동이 줄어든 것이었다.
근데 그걸 느낀다니?
“형 마나를 정확하게 느낀 거네요?”
수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인재가 여기 있었네!”
“응? 내가?”
학창 시절에도 인재, 똑똑한 아이라는 평가를 들어보지 못한 박동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맞아.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형이었구나.”
처음 박동현을 만난 날을 떠올려보면 박동현은 처음부터 마나가 깃들어 있는 나무들 찾을 수 있었고, 그 이후로도 수겸이 원하는 대로 적당한 양의 마나를 품은 약초를 선별할 수도 있었다.
수겸은 퍼즐 조각이 맞춰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형은 근데 어릴 때부터 기운이 좋은 나무나 약초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수겸은 일부러 박동현이 알아듣기 쉽게 마나라는 단어를 빼놓고 물었다.
“내가 처음 약재를 만진 게 중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였으니까… 14살쯤이었거든.”
“와, 진짜 어릴 때부터 일을 하셨네요.”
“응.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었으니까. 그때는 일이 아니고 재미 삼아 하기도 했지. 아무튼 그때도 왠지 느낌이 이건 좀 좋아 보이는데? 라고 하면 아버지가 맞다고 하셨었지. 엄청 신기하다고 나는 약재상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까지 말씀하셨어.”
“처음부터 그러셨구나.”
타고난 인재였다.
“그리고 많이 접하다 보니 점점 실력도 늘고 자신감도 늘었지.”
“이제 알겠어요. 제가 항상 좋은 약재라고 말하는 것들이 마나를 많이 품은 것들이라는 건 형도 알고 계시죠?”
“그건 알지. 몇 번 말해줬으니까.”
“형은 아무래도 마나를 느끼는 것에는 타고난 것 같아요. 그러면 조금만 노력하면.”
“노력하면?”
“노력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형은 저처럼 연금술을 할 수도 있겠어요.”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이었다.
‘만약 누군가 마법진을 가동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내가 믿는 문제는 그다음이니까.’
그런데 만약 박동현이 제2의 연금술사가 된다면?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
“내가? 이 나이에 뭘 배운다고?”
“형 나이가 어때서요. 그리고 형이랑 저랑 그렇게 막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았나.”
“저 믿어 보세요. 제가 생각한 것이 있으니까 서울 올라오시면 바로 시작해보죠.”
뭘 더 해보기에는 여기는 지금 농사가 한창인 밭 한가운데였다.
“그, 그러자. 수겸이 네 말이니까 일단 해보기나 할게.”
박동현은 갑자기 진행되는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 그 이야기는 이쯤하고 오늘은 다른 일을 좀 해볼까?”
수겸이 하려는 건 새로운 마나 흡입석을 만들고 용량이 가득 찬 흡입석 자리에 교체 투입하는 것.
“이걸로 뭘 할까나?”
좋은 사용처가 있을지 고민해볼 문제였다.
수겸은 우선 현재 설치된 마나 흡입석을 케이스에서 빼내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흐음. 고민이 되네. 뭔가 좋은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수겸은 케이스를 다시 닫으며 고민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때 박동현이 공포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수겸을 불렀다.
“수, 수겸아! 큰일이야!”
“네? 왜요?”
박동현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수겸이 고개를 돌린 순간
수겸은 지금까지의 고민이 필요가 없어졌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