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7
17화
119 구급대원이 된 지 5년 차인 윤상준은 어리둥절했다.
그동안 남들은 일평생 한번도 겪어보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고 자부했지만, 이건 범주 밖의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윤상준의 말대로 자동차 파편이 튀어 다리를 꿰뚫어버린 환자가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디로 간거야. 그 다리로 걷지도 못할텐데.’
윤상준이 함께 출동한 구급대원, 박희원에게 물었다.
“희원아, 아까 다리 관통상 환자 병원으로 이송되셨어? 내가 너한테 처치 맡겼던 환자 말이야.”
발령 받은 지 갓 1년을 넘긴 박희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저도 잠깐 처치 키트를 가지러 갔다 왔는데 그 새 없어지셨어요.”
벙찐 목소리로 답했다.
“에이씨. 누가 환자 앞에 두고 자리 비우래! 얼른 찾아. 맘대로 움직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그냥 둔거야.”
“네! 얼른 찾아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일단 박희원에게 맡기고 다른 환자를 돌보러 고개를 돌렸는데 그 곳에 상준과 희원이 찾았던 환자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저기 있다. 얼른 가자!”
이미 사망자가 한 명 나온 현장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둘러 혼절한 환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환자분.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부욱
동시에 박희원이 바지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헉. 서, 선배님 여기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박희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윤상준을 불렀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 지 몰라! 소독, 지혈 시행하고 얼른 환자 이송하자.”
“그게 아니라. 암튼 여, 여기 좀 보셔야 한다니까요.”
윤상준은 하는 수 없이 환자의 다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환자 다리를 본 순간 윤상준마저 벙찔 수 밖에 없었다.
바지가 피에 절어 있는 걸로 봐서 분명 이쪽 다리는 맞는데, 환자의 다리는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상태였다.
“야, 이분 맞지? 아니지, 여기 바지가 이렇게 피로 흥건한데.”
윤상준이 잘린 바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윤상준이 말을 하다 말고 누군가를 응시했다.
둘이 바지를 찢을 때, 환부를 살필 때. 계속해서 둘을 쳐다보던 한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부터 현장을 보고 있었을거야. 한번 물어보자.’
윤상준이 남자에게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려 하자 그와 동시에 남자가 다급히 뒤로 돌아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남자였다.
“저기요. 잠시만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윤상준의 부탁에도 다리를 절뚝이는 남자는 말을 못 들었다는 듯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선배! 어디 가세요! 환자분 정신 차리셨어요. 빨리 오세요.”
박희원의 말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린 남자가 이내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윤상준 생각엔 아직 환자가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아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을 못한 것인 것 같았다.
“환자분. 여기는 홍연대학교 사거리고, 교통사고가 나서 환자분 다리가 다쳤어요. 아니, 다치셨었어요.”
윤상준의 목소리가 남자에게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윤상준 뒤쪽 방향에 점점 멀이지고 있는 남자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으악! 악마가 틀림없어. 저 새끼를 잡아요. 시발! 잡으라고. 으으.”
남자는 순간 정신을 놓은 듯 침까지 질질 흘리며 소리쳤다.
윤상준은 남자의 반응을 보고 다시 한번 뒤돌아 아까 잡지 못한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절름발이. 키 175센치 정도. 왜소한 체격. 검은색 후드.’
윤준상은 뚫어지게 쳐다보며 인상착의를 기억하려 애썼다.
***
“그렇게 거품물고 쓰러질 줄 누가 알았나. 그래도 효과는 확실하네.”
수겸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저기요. 조금 아플 수 있어요.”
수겸은 다리를 다친 남자에게 다가가 나름의 경고를 했다.
“지금도 아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뭐라도 해주세요. 죽겠으니까”
남자는 수겸이 구급대원인 줄 착각하는 것 같았다.
“전 말했습니다. 잠시만요.”
수겸은 한쪽 팔로 남자의 다리를 눌러서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했다.
움직임이 멈추자 엄지 손가락 만으로 유리병 마개를 톡 하고 까서 남자의 다리 위에 부었다.
파지직-
수겸의 손가락에서 났던 소름끼치는 소리가 이번에도 났다.
“커억. 컥.”
통증이 시작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가 해보니까 금방 없어져요. 조금만 참아요.”
수겸은 얄미울 정도로 가벼운 투로 응원의 말을 건넸다.
“악!”
남자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이내 거품을 물고 픽 하고 쓰러졌다.
단타성으로 비명을 지른 터라 현장에 있던 구급대원들이 소리를 캐치하지 못한 듯 했다.
수겸은 순간 놀래 남자를 겨우 일으켜서 한쪽 팔을 자기 어깨에 올렸다.
어떻게든 구급차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절름발이가 성인 남성을 부축해서 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심지어 남자는 혼절한 상태.
조금 가다가 힘에 부쳐서 남자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다행히 구급대원이 남자를 찾는 것 같은 말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수겸은 조용히 뒤로 빠져나와 과연 치료가 됐을지 살펴보기로 했다.
‘소리 지르는 것 보면 작용한 것 같긴 한데 얼마나 치유가 됐을지∙∙∙.’
구급대원이 남자의 바지를 잘라내자 하얀 다리가 보였다.
일단 보기에는 상처가 없는 것 같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악에 바친 남자의 목소리가 날아와 수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 일단 도망가자.”
***
수겸이 집으로 왔을 때 뉴스는 온통 수겸이 있던 사고 소식을 전하기 바빴다.
『오늘 오후 한 대학교 사거리에서 급발진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으로 인해 다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차량 3대가 전소되고, 사망자 1명, 중상자 4명, 경상자 3명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뉴스를 끝까지 봤지만, 수겸이 치료해 준 사람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휴우. 내가 미쳤지. 왜 거기서 나대가지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간을 돌려 다시 사고현장으로 간다고 해도 수겸은 아마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불백 정식 먹고 오는게 왜 이렇게 빡세냐. 그냥 배달 시켜 먹을걸.”
***
치료제를 만든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오늘도 수겸은 편의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제 삼각김밥 중에는 참치마요만 들여야 하나. 다른 건 죄다 폐기네.”
매대 정리를 하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폐기 제품이 바구니에 쌓일수록 수겸의 표정은 점점 썩어갔다.
“어째 날이 갈수록 장사가 더 안되지?”
손님을 바라는 수겸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았는지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오세요.”
수겸은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시킨 듯 밝고 친절한 목소리 톤으로 인사했다.
“사장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밤 12시에 하기에 어색한 질문이지만, 어쨌든 순금 나라 사장 김만복이 수겸에게 안부 인사를 했다.
“아, 오셨어요? 사장님도 별일 없으셨죠?”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둘의 대화지만, 실상은 탈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금 매도인과 매수인의 만남이었다.
“사장님 물건은 제대로 처분이 됐습니다. 그 사이에 시세도 조금 올랐구요. 요새 금이 좋네요.”
“좋은 소식이네요. 말씀하긴 하셨지만 제 생각보다는 훨씬 빨리 처리가 되네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수겸은 하루 중 처음 진심을 다해 웃었다.
“다행히 저도 업계에 오래 있으면서 쌓은 커넥션들이 좀 있어서 쉽게 처리 됐네요. 하하.”
김만복은 이 와중에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듯 실력을 어필했다.
‘어필하려는 걸 보니 이 사람한테도 꽤 돈이 되는 장사인 듯 한데. 앞으로 계속 써먹을 수 있을까.’
둘 모두 본인의 이득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김만복이 손에 들고 있던 큰 더플백을 카운터에 올려 놓는 것과 동시에 편의점에 누군가 들어왔다.
순간 가방을 아래로 내려 숨기려고 김만복과 수겸이 동시에 가방 손잡이를 쥐었다.
둘 모두 본능적으로 자기 방향으로 가방을 끌어당겼다.
가방은 아직도 카운터 위에 놓여진 상태.
수겸은 김만복의 의도를 무시하고 자기 쪽으로 한번 더 힘을 주니, 김만복이 이내 힘을 빼고 가방을 넘겼다.
턱.
가방을 다급히 바닥으로 내리자 손님이 다가와 물었다.
“멀보루 레드로 하나 주세요.”
“네. 4,500원입니다. 카드 꽂아주세요.”
“네. 결제 되셨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
과묵한 손님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수겸이 뒤따라 나갔다.
주변을 살피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편의점 문을 철컥-하고 잠궜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 새 손님이 오시네요. 평소엔 손님이 더럽게 안오는게 말이죠.”
“하하. 장사 잘 되시면 좋죠.”
김만복이 수겸의 옷에 달린 명찰을 보고 말했다.
수겸은 김만복의 눈빛에서 어떤 의도를 느꼈다.
‘이제 네가 누군지 안다. 네가 어디서 일하는지 안다.’
그 정도는 어차피 수겸도 예상한 바였다.
‘완벽한 익명은 불가능하니까. 어차피 들킬거라면 내가 의도한대로 노출시키는 게 나아.’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금액은 어떻게 되죠?”
수겸은 카운터 위에 더플백을 올려 지퍼를 열었다.
안에 황금이 든 것도 아닌데 진한 황금빛이 새어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이야. 5만원권도 이렇게 모아두니 금 못지 않게 빛이 나네요.”
수겸이 너스레를 떨자 김만복이 눈에 힘을 풀며 말했다.
“앞으로 지긋지긋하게 보실 빛이죠. 아까 말씀드린대로 저희 거래한 당일 기준으로는 3,900만원이었는데 조금 올라서 4,100만원으로 처리했습니다. 그 중 수수료 820만원 떼고, 3,280만원입니다. 한번 세어 보셔도 좋습니다.”
“멀 또 세어봅니까. 말씀하신대로 지긋지긋하게 보면 돈 10만원, 20만원이 대수겠습니까. 잘해주셨겠죠. 영 아니면 다른 업자를 또 찾으면 되니까요.”
수겸은 일부러 강세를 주어 말했다.
‘이 거래의 갑은 나다. 너는 말그대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니 알아서 잘 해라’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여기까지가 수겸이 여러 종류의 범죄 드라마를 보고 예행 연습한 시나리오였다.
어찌 됐든 지금 하는 것은 범법행위. 서로가 서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이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거래의 우위를 점하는 말을 하니 김만복의 눈빛이 다시 매서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수겸은 혹시나 김만복이 예상 외로 덤비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수겸으로서는 육탄전이 되면 무조건 불리한 상황이라 그것만은 피해야했다.
다행히 김만복은 생각을 정리한 모양인지 톤을 누그러뜨리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장님.”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예상한 대로 거래가 끝이 났다.
김만복과는 다음 거래일을 2주 뒤로 정하고, 이번에도 역시나 170돈의 금을 거래하기로 했다.
수겸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운 더플백을 카운터 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하지.’
돈은 한정적인데, 쓰고 싶은 곳은 많았다.
‘우선은 할머니부터 좋은 곳으로 모시고, 몇 달은 병원비를 낼 수 있도록 돈을 좀 빼놔야겠지. 천만원만 빼면 충분할까? 가능하면 작업실도 하나 구하면 좋겠는데.’
지난 번 시약을 만들 때 해보니 온 방에 약재 냄새가 진동을 해 아무리 환기를 해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재료비도 빼야겠지. 금 재료는 당연하고, 다른 시약들도 제조해보고 반복해서 만들어봐야 실력이 늘 테니까. 그러면 재료비도 분명 꽤 들거야.’
다른 건 다 빼더라도 작업실을 구하기 위한 보증금만 생각해도 부족한 돈이었다.
처음 금을 팔 때는 이번 한번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본격적으로 하니 오히려 돈이 부족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연금술로 돈을 버는 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