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유독 뭐라도 할까 싶으면 계속 다른 일이 생기는 날이 있다.
띠링-
띠링-
평소에는 오라고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오지 않더니, 오늘은 줄기차게 손님이 들어왔다.
수겸이 짜증나는 포인트는 그래봐야 술 한 병, 과자 한 봉지, 담배 한 갑 사간다는 점이다.
“아저씨, 이번에 거북칩 새로운 맛은 없어요?”
“사장님. 이거 왜 4캔 만천원이에요? 만원 아니었어요?”
거기다 질문은 왜 이렇게 하는지.
평소의 수겸은 손님들에게 한없이 따듯한 남자였지만, 오늘은 차가운 도시 남자였다.
“예. 없어요.”
‘제발 빨리 좀 나가라. 다 가버려.’
어느새 편의점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돈은 안되고 수겸이 계획했던 시약 제조는 못할 정도로 딱 귀찮을 정도로 이어진 손님 러쉬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밤공기도 쇨 겸해서 편의점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을 쭉쭉 하며 인근에 오가는 사람이 있는 지 확인했다.
확실히 이제 인적이 끊긴 듯 했다.
“이제 시작해볼까.”
시약 제조의 과정은 이랬다.
약초들은 모두 모아 마나 추출에 용이하도록 1차 마법 가공을 한다.
이후, 품고 있는 마나 양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것은 가루 형태로 만들어 수액과 혼합한다. 그 다음의 것은 그냥 가루로만 만들어 둔다.
세번째부터는 모두 가루로 만들어 물에 넣은 다음 침전물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잘 섞는다.
처음의 것은 본 재료이고, 두번째는 효과를 끌어내는 촉매제, 마지막 것은 효과 유지를 위한 보존제 역할이었다.
수겸이 각각의 재료를 분류하고, 가공하고, 각각 포장까지 마친 시간은 새벽 6시가 조금 덜 되었을 때였다.
“다행히 집중력 안 끊기고 잘 했네. 잘 된 것 같다.”
여기서 수겸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그가 집중을 잘 했다는 건 그 동안 아무도 손님이 오지 않았다는 점.
역시 망한 편의점임에 틀림없었다.
타이밍 좋게 수겸이 정리까지 다 끝냈을 때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사장님 여기 한약도 팔아요?”
수겸은 코가 마비되서 그런지 느끼지 못했지만, 편의점 안은 한의점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약재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 냄새가 좀 나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방금 한약을 데워서 먹었더니.”
“아니에요. 죄송까지야.”
손님은 물건을 고르러 갔고, 수겸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작했다.
***
교대 후 집에 온 수겸은 몸을 깨끗이 씻고 자리에 앉아 식탁 위에 놓여진 유리 병 3개를 살펴 봤다.
하나는 가루가 섞여 질퍽하고 끈적한 느낌이 나는 수액, 하나는 바싹 마른 가루, 하나는 불투명한 색깔의 물이 들어 있는 병이었다.
수겸은 지난 밤의 작품들을 감상한 후 미리 사둔 연금술 기구를 순서대로 배열해서 방바닥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 부분은 리카르도가 전수한 지식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제부터는 한 치의 실수도 있으면 안된다고 했지.”
보통은 고체 형태를 대상으로 했던 물질 변환은 실패해도 다시 한번 도전할 여지가 있었는데, 시약 제조는 한번 시도하면 돌이킬 수 없는 분야였다.
“온도는 125도를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지.”
수겸은 앞에 놓인 정밀 온도계를 만지며 말했다.
수겸은 과학수업에서 쓰던 알코올램프의 전문가 버전인 실험용 랩버너에 불을 붙였다.
그 위에 수액과 섞은 첫번째 재료를 담은 증류용 플라스크를 고정시켰다.
열이 가해짐에 보통의 물처럼 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색이 변하면서 성질 변환을 이루고 있었다.
수액이 끓으면서 기화한 증기는 증류관에 모였다.
머리 속 지식백과에 따르면 모인 증기에도 상당한 마나가 있어, 허투루 날려보내는 건 낭비라고 한다.
“이건 이제 온도만 천천히 올리면 되고.”
그 다음은 간단한 분류상 세번째인 가루와 물을 섞은 용액 차례였다.
이번엔 완전 반대로 차갑게 만들어야 한다.
수겸은 냉동고에 유리병을 넣고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이건 20분간만 냉기에 노출 시키고 5분동안 빼내고, 다시 한번 더 반복하랬지.”
이제 남은 건 두번째 가루 형태로만 만들어 둔 약초였다.
“이건 한번에 3그램씩만 넣어야 하니까 미리 소분해 두고.”
이제 세팅은 끝났으니 순서대로만 하면 가 완성 될 것이다.
수겸은 잠깐 자리에 일어나 자기 집 광경을 쳐다봤다.
“민환이가 지금 이 꼴을 보면 무슨 말을 하려나. 아마도 너튜브 데뷔하냐고 지랄하겠지.”
따라야 하는 절차가 한 두개가 아니라서 수겸이 헛소리를 할 시간도 없었다.
대충 3시간쯤 지났을까?
이제 수겸은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있었다.
냉기가 흐르는 물 혼합액에 주재료인 수액 혼합액을 조금씩 나누어 부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수액 혼합액은 한번에 퍼지지 않고 덩어리 진 채로 하강했다.
그러다 툭.
막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물 혼합액 사이에 퍼져나갔다.
“신기하네. 이거.”
중간 중간 약초 가루를 뿌리고 섞는 것의 반복이었다.
밑바닥이 평평한 3리터짜리 플라스크를 절반쯤 채운 시약은 우유처럼 불투명한 하얀색이었다.
“휴우. 이제 진짜 끝이다.”
수겸은 이에 땀을 닦아내며 마지막의 마지막 단계로 마법진을 그리고 그 위에 플라스크를 올렸다.
확실히 물질 변환을 할 때보다는 더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번 실수를 해 새로운 스크롤을 펼쳐 그린 다음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아!”
힘에 부친 지 기운을 짜내듯 기합소리를 내며 마나를 유도했다.
이내 마법진에서 빛이 나며 드디어 수겸의 첫번째 시약 제조가 끝이 났다.
결과물인 시약을 보니 신기하게도 빛이 바꼈는데, 하얀색에서 붉은색이 되었다.
그리고 금가루가 같이 섞인 것처럼 빛에 비춰보니 반짝 반짝 빛나는 붉은색이었다.
“완성은 했는데, 이걸 어떻게 테스트 해본담.”
수겸은 혼잣말로 고민하다가 싱크대에 꽂힌 과도를 한번 보고, 자기 손을 한번 봤다.
“하아. 이건 좀 아니지 않을까.”
이미 그 방법을 떠올린 이상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수겸은 절뚝절뚝 걸어가 과도를 집어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해도 효과 확인은 되니까.”
그러면서 과도를 오른손에 잡고 왼손 검지 손가락 끝을 살짝 베었다.
“앗 따가워!”
상처가 톡 하고 터지고 새빨간 피가 베어 나오기 시작했다.
수겸은 피가 침대에 흐를 것 같아 휴지로 한번 닦은 다음 미리 조금 덜어낸 시약 를 손가락 끝에 살짝 부었다.
치이익-
이상하게 타는 소리같이 들린 건 수겸의 착각일까.
1초 뒤
“으아아아악! 치료제라며! 이게 왜 아픈건데!”
수겸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에 깜짝 놀란 수겸의 눈 위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사용자인 수겸은 그걸 읽을 여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상처 치료제의 부작용]– 시약 제조 과정 상의 실수, 재료 상태 등과 같은 이유로 시약 결과물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회복 효과 저하, 회복 과정 중의 고통, 일시적 마비 등이 있다. 통증 유발의 경우 마나 유도 과정에서의 실수인 경우가 많다.
‘이 새끼는 맨날 늦어. 미리 말 좀 해주면 덧나나.’
어느새 머리 속 지식을 하나의 인격처럼 생각하기 시작한 수겸이었다.
예상치 못한 고통에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통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해봐야 3초에서 5초정도.
다만 억울한 건 과도에 베인 순간 느낀 통증보다 더 심하다는 점이었다.
어찌 됐든 수겸은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손가락.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정도로 즉각적인 효과라면 연금술이 없는 이 세상에선 부작용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자체로 기적처럼 느껴질 것이다.
수겸은 결과를 확인 하자마자 플라스크를 집어 들고 욕조로 향했다.
바지를 벗고 절뚝이는 다리를 욕조 안에 넣었다.
‘아플 수 있으니까 미리 준비하자.’
혹시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눈을 꼭 감고 플라스크를 기울였다.
조르륵.
하지만 다리에서 고통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엔 아팠으면 좋았을텐데∙∙∙∙∙∙.”
수겸은 실망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집 정리를 마치고 수겸은 지침에 따라 5미리짜리 작은 유리병에 상처치료제를 나눠 담았다.
보통의 외상은 5미리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쓸 일은 없겠지만, 만든 걸 어디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다쳐봐야 어딜 다치겠어. 혹시 모르니까 잘 싸서 한 두개만 들고 다니면 좋겠네.”
수겸은 평소에 매고 다니는 가방 안쪽에 유리병이 깨지지 않도록 잘 포장해서 넣고는 나머지는 책상 서랍 안쪽에 박아 넣었다.
수겸은 집안 정리를 마치고 때 늦은 점심 식사를 하려고 나왔다.
오늘은 메뉴는 기사식당에서 파는 불백정식이었다.
“이모님. 불백 하나요.”
“예.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항상 손님들로 붐비는 기사식당답게 대충 아무데나 앉는 시스템이었다.
수겸이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 밑반찬을 먹는데 대여섯쯤 되는 무리의 단체 손님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우, 사고가 꽤 크게 났던데?”
볼록 배가 튀어나온 남자가 말했다.
“어디에서?”
“너도 봤냐? 대충 4중, 5중은 되겠더라.”
“고속도로도 아니고 왜 그렇게 달렸다냐.”
동시다발적인 대답들이 튀어나왔다.
수겸은 콩나물 반찬을 집어 먹으면서 라디오 듣듯이 아저씨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여기 오기 전에 대학교 사거리에서 났어. 이유야 나도 모르지. 근데 소리가 장난이 아니긴 하더라.”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이 친절하게 각각의 질문에 대해 한번에 대답했다.
“내가 바로 뒤에서 봤는데, 무조건 급발진이야. 아니면 말이 안되는 속도라니까.”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남자가 말했다.
“쯧쯧. 그거 블랙박스 있어도 인정받을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
“안됐네. 안됐어.”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할텐데.”
또 다시 제각각 사고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곧 다른 주제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남의 일이다 보니 잠깐 언급하기 좋은 가쉽거리에 불과했다.
수겸 역시 주문한 불백정식이 나오자 좀 전의 이야기는 잊고 식사에 집중했다.
“잘 먹었습니다. 이모님.”
“그려. 총각. 오랜만에 왔지? 자주 와.”
성의없이 손님을 받던 이모님이 수겸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하하. 기억하시네요. 자주 올게요.”
“한동안 매일 왔으니까 기억하지. 그렇게 오다가 갑자기 안오면 섭섭해.”
“알겠어요. 다음에 또 뵈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연금술을 하게 되면서 더더욱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어진 수겸은 이런 대화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혼자 실험하고, 연금술 연습하다보니까 거의 혼자 지내는 것 같네. 민환이 말고는 만나는 사람도 없고.’
기껏 해봐야 최근에 만난 사람은 고물상 아저씨, 약재 아저씨, 금은방 아저씨들 뿐이었다.
‘가끔은 좀 돌아다니고 해야겠다. 그런 의미로 좀 걷다가 들어갈까.’
수겸은 곧바로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동네를 걷다가 들어갈 생각이었다.
삐뽀삐뽀
아까 들은 대화의 영향인지 수겸이 향하는 곳은 기사 아저씨들이 이야기한 사고 장소였다.
“하필 와도 이런 곳이냐. 봐서 뭘하냐고.”
말과는 다르게 수겸의 시선은 사고현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기 들어오지 마세요!”
“조심하세요. 사진 찍지 마세요!”
“여기부터 이송해줘!”
경찰의 통제 소리, 구급대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전해 들은 대로 꽤 큰 사고현장이었다.
그 때 수겸의 눈에 다리에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방치되어 있는 남자가 보였다.
흐르는 피만 봐도 보통 상처가 아닌데, 다른 환자가 급한지 관심을 받지 못받고 있는 듯 했다.
“여기요! 여기 이 분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수겸은 평소라면 나서지 않았겠지만, 다리를 다쳤다는 점에서 감정이입을 해서 크게 소리쳤다.
“여기 좀 봐달라니까요!”
수겸의 외침에도 아무도 오지 않자, 수겸은 더욱 더 조급해졌다.
‘이러다 다리를 못 쓰게 되면 어떡하지.’
그러다 불현듯 수겸의 머리 속에 스쳐지나간 생각.
‘치료제를 쓰자. 이럴 때 쓰라고 만들었는데 망설이면 어쩌자는거야.’
실험은 본인의 손가락에만 해봤지만 수겸은 수겸이 만든 치료제가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누군가에게 이런 물건이 있다는 것이 들킬까봐 두려웠다.
“으악! 누가 좀 도와주세요! 시발 아프다고!”
망설이는 수겸을 재촉이라도 하듯 다리를 다친 사람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외쳤다.
수겸은 결심을 굳히고 가방 속 유리병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