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이승준 대리의 영업 신념은 ‘누구에게든 최선을 다해 친절하자. 언제 그 사람이 고객이 될 지 모른다.’ 였다.
그래서 오늘 처음 본 윤상준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혹시 키는 저랑 비슷하시고, 다리를 조금 절뚝이시는 분을 아십니까? 교육장 안에서 봤으니까 분명 점주분들 중에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아, 한쪽 다리 저는 분은 딱 한분이죠. 수겸씨 말씀하시는거네요.”
제 3자가 봤을 때 이유라도 들어봐야 하지 않나 싶겠지만, 이승준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 사내였다.
“수겸씨요? 혹시 어느 지점분인지도 아십니까?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윤상준은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분이라 잘 알죠.”
***
수겸은 본사 건물을 빠져 나와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휴우. 못 쫓아오겠지? 아까부터 찾는 소리가 안들리긴 했는데. 식겁했네.”
흡사 영화에서 추격 장면을 찍는 느낌이었다.
‘왜 쫓아왔을까? 분명 마지막에는 어디서 봤는지 확실히 기억난 눈치였단 말이지. 혹시 그 때 내가 회복제로 치료해준 남자가 손해배상청구라도 했으면?’
수겸이 사용한 치료제의 효과는 확실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수겸은 길가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남자를 구해줬는데, 인공호흡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졌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는 인터넷 기사가 떠올랐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하니까 봇짐 내놓으란 격이지. 에이. 설마 그럴까? 아니면 무슨 일이지. 내 정체를 알아내서 내가 연금술에 대해 말할 때까지 고문이라도 하면 어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있었다.
어찌 됐든 수겸은 무사히 도망친 후 곧장 편의점으로 향했다.
역시나 오늘 밤에도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역 1위 편의점 점주 장세봉과는 달리 말이다.
***
수겸이 오늘 들어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손님 한 명이 들어왔다.
‘이 놈의 편의점은 그렇게 손님이 안오다가 일 좀 하려고 하면 한 명씩 온단 말이지.’
“어서오세요.”
수겸이 방금 들어온 손님을 쳐다 보자 카운터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아무래도 담배 손님인 것 같았다.
“담배 드릴까요?”
수겸이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담배는 됐고, 이거 하나 주세요.”
손님이 집은 건 카운터 앞에 놓인 껌 하나.
“아, 예. 300원입니다.”
“네. 여깄습니다.”
손님이 동전 세 개를 건냈다.
수겸이 동전을 집어 가려는 찰나, 갑자기 손님이 수겸의 손을 덥썩 잡았다.
“맞으시죠? 그 때 홍연대 사거리 사고 현장이요.”
“허억!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빨리 손 놔요.”
진심으로 식겁해서 수겸이 소리쳤다.
“대답해주실 때까지 안 놓을 겁니다. 이래 뵈도 제가 운동을 꾸준히 해서 힘에서 밀리지 않을겁니다.”
“아니, 딱 봐도 힘 쎄보여요. 이거 놓고 말씀하시라구요.”
수겸의 말대로 수겸의 손을 잡고 놔주지 않는 손님, 윤상준은 사실 딱 봐도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윤상준은 수겸이 성질을 내자 조금 기가 죽어서 손에 힘을 뺐다.
“댁이 누구신데 다짜고짜 뭘 말하라고 해요. 이것도 영업 방해입니다. 경찰 불러요?”
“영업 방해까지야. 아, 알겠습니다. 저는 119 구급대원이에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윤상준이 마지못해 손을 놓았다.
“사장님. 이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저는 분명 다친 사람을 봤는데, 그 사람은 안 다쳤더라구요. 피를 무진장 많이 흘렸는데, 까진 상처 하나 없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 날 혹시 보신 게 있으시다면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내가 원인이고, 그 사람이 결과인데 아직 전부 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윤상준은 모르겠지만, 방금 한 말이 수겸이 필요한 정보의 전부였다.
“아, 그거 때문에 쫓아오셨구나.”
수겸은 안심하고 능구렁이 같은 연기를 시작했다.
“전 진짜 그 날 밤에 잠 한숨 못 잤습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요.”
“저도 사실 뭘 본 건 아니에요. 누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쓰러지길래 도와줘야 하나 생각하면서 현장에 서 있었던거죠.”
“그렇습니까∙∙∙∙∙∙.”
윤상준은 실망한 티가 무척 많이 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누가 갑자기 쫓아오니까 도망간거죠. 사람이 본능적으로 그러잖아요. 쫓아오면 도망가는 거.”
“네∙∙∙∙∙∙.”
수겸은 카운터에서 나와 냉장고에서 캔커피 하나를 꺼내 윤상준에게 건넸다.
“이거라도 하나 드세요. 이건 제가 쏩니다.”
“감사합니다.”
윤상준은 캔커피를 따서 마시면서 말했다.
“사실 저는 그 때 무언가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어떤 일이요?”
“한번에 다친 사람을 낫게 하는거요. 왜 만화나 소설에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하. 마법 말씀이세요?”
연금술사 수겸은 마법을 떠올린 윤상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철이 없어 보이나요. 근데 저는 제가 헛것을 본 건 아니라고 확신해서요. 무슨 그 환자는 다리 관통상이었는데, 겨우 설득해서 엑스레이까지 찍어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더라고요.”
“그것 참 신기하네요.”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구급차에서 사람이 죽는 일 따위는 없지 않을까요? 응급 수술이 되는 병원을 찾아서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다가 길 위에서 죽는 일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윤상준은 트라우마가 있는 듯 본인이 겪은 특정 사건에 대해 말하는 듯 했다.
“그런 일을 겪으셨나 봐요.”
“네. 사실 얼마 전에요.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는데∙∙∙∙∙∙. 죄송하게도 그렇게 되셨죠. 사실 저만 겪은 일도 아니구요.”
“유감입니다. 현장에 계신 분께 들으니 훨씬 더 와닿는 부분이 있네요.”
“그렇죠. 그래서 남들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싶어서 온건데∙∙∙ 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윤상준이 고개를 푹 떨궜다.
“아니에요. 제가 도움이 됐다면 좋을텐데. 아무튼 말씀하신 빨간 약의 주인을 찾길 바랍니다.”
“빨간색이요? 전 색은 말씀 드린 기억이 없는데. 아직 누구한테 이야기 한 적도 없고.”
윤상준이 눈을 번뜩이며 수겸을 쳐다봤다.
“네, 네. 그런 치료제는 다 빨갛지 않나요? 소독도 되는 것 같고. 하하”
수겸은 아차 싶었다.
“사장님이죠? 목격자 아니고 사장님이 한 거죠? 그쵸?”
윤상준은 촉이 왔는지 확신을 가지고 연달아 질문을 했다.
“무슨 소리에요? 또 시작이시네. 이만 가봐요. 저도 일 좀 하게.”
수겸은 상황 종료를 시키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윤상준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아니요. 저는 사장님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여기 계속 있겠습니다. 편의점 손님이 물건 고른다는 데 그게 영업 방해는 아니겠죠?”
윤상준은 팔짱을 낀 채로 수겸을 쳐다 봤다. 어림도 없다는 눈빛이었다.
수겸은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윤상준을 투명인간 취급 했다.
“보자, 제육 도시락 10개, 돈까스 도시락 10개∙∙∙∙∙∙.”
도시락, 삼각김밥, 음료, 과자 발주 넣은 모든 품목 수량 체크를 마치고 매대 진열까지 마쳤건만 윤상준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일부러 질질 끌면서 해서 한시간도 넘게 미동도 없는 걸 보고 수겸은 질리다 못해 공포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진짜 그러고 있을 거에요?”
“네. 말씀하기 전까지는요.”
“말은 했잖아요. 다만 상준씨가 안 믿을 뿐이지. 저보고 어쩌라는거에요.”
“진실을 말씀해주세요.”
윤상준은 간곡하게 청했다.
수겸은 윤상준의 앞에 서서 눈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코 앞에 서서 눈을 바라보면 회피하기 미련이건만 둘은 5초, 10초가 지나도록 서로를 보기만 할 뿐이었다.
수겸은 윤상준의 진심을 파악하기 위해서.
윤상준은 수겸의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
수겸은 윤상준 옆을 지나가 카운터 안 쪽 의자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겸은 자문자답을 했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나.’
‘분명 구급대원은 맞아. 환자를 잃은 경험? 그건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긴 하지.’
‘그렇다면 이 사람이 원하는 바에 스스로 공감하나.’
‘치료제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건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위험해질 수 있나.’
‘어쩌면 치료제를 노리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 수 있어. 그렇다고 내가 호신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리스크를 안는 것과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는 것. 두 개의 가치를 비교하면∙∙∙.’
수겸은 결심을 굳히고 윤상준을 불렀다.
“상준씨. 제가 상준씨를 믿어도 될까요?”
윤상준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럼요. 어떤 경우라도 제가 수겸씨를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면 몇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뭐든지요. 말씀만 하세요.”
“첫째. 절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수겸은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둘째. 절대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셋째. 앞으로 제가 부르기 전까지 편의점에 찾아오지 않는다. 어때요? 어려운 조건은 아니죠?”
“네. 문제 없습니다. 다시는 제 눈 앞에서 누군가 죽지 않을 수만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윤상준은 눈을 부릅 뜨고 말했다.
수겸이 느끼기엔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 같은 분위기 같았다.
“알겠어요. 근데 이게 주의사항이 좀 있습니다.”
“어떤거죠?
윤상준은 언제 꺼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수첩을 꺼내 받아 쓸 준비를 했다.
“적으실 것까진 없고요. 음∙∙∙∙∙∙. 그냥 직접 해보죠. 그게 빨라요.”
수겸은 가방에서 종이에 잘 감싸진 유리 병 하나를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 놓았다.
“이게 상준씨가 생떼를 써가며 찾으려고 했던 물약입니다. 상처 치료제죠.”
“오오∙∙∙∙∙∙.”
윤상중는 머쓱한 지 머리를 긁적였다.
“준비 됐나요?”
수겸이 연필 꽂이에 있던 커터칼을 꺼내며 물었다.
“무슨 준비 말씀이세요?”
“실습이라니까요. 치료하는 걸 실습하려면 당연히 먼저 다쳐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손 끝만 살짝 벨거니까.”
“그런 말씀이셨군요. 알겠습니다. 필요하다니 해봐야죠.”
윤상준이 검지 손가락을 내밀자 수겸은 커터칼로 손 끝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베었다.
“쓰읍∙∙∙∙∙∙.”
윤상준이 신음소리를 내며 손 끝을 쳐다 봤다.
조금씩 베어 나오는 피를 보다가 수겸이 말했다.
“이제 치료를 할건데 주의할 점이란 게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조금. 아니, 많이 아파요. 생각보다 훨씬.”
“119 활동하면서 수도 없이 다쳐봤습니다. 아픔을 참는 데 이골이 났어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해보죠.”
수겸은 대답과 동시에 유리 병 마개를 살짝 열어 윤상준의 손 끝을 향해 살짝 기울였다.
치료제는 상처에 닿자마자 곧바로 흡수가 되었다.
“으악!”
수겸이 예상한 것과 다를 것이 없는 비명 소리가 편의점 내부를 가득 채웠다.
잠시 후
“헉. 헉. 수겸씨 말대로 정말 생각보다 훨씬 아프군요. 근데 이것 보세요.”
윤상준은 치료해준 수겸에게 자랑하듯 손가락을 펼쳐 보여주었다.
“치료 잘 됐네요. 이제 아시겠죠? 이걸 함부로 썼다가는 고맙다는 소리보다 원수 소리를 들을 겁니다. 그게 제가 도망친 이유구요. 그러다 소송 거릴까봐.”
“직접 해보니 이해가 되네요. 그런데도 저한테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상준씨의 마음이 느껴졌을 뿐이에요. 사람 많이 살려 주세요.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살려야죠. 한번 지켜봐 주세요. 수겸씨의 이 치료제가 정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겁니다.”
윤상준은 수겸이 건네 주는 병을 받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