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수겸은 생각했다.
‘연금술을 좀 더 편하게 사용할 순 없을까? 사람들 이목을 안 끄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생각해보라.
갑자기 한 남자가 종이 한 장을 바닥에, 혹은 책상 위에 쫙 펼쳐서 거기에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마법진을 그린다면?
거기다 거기에서 빛이 터져 나오는 것만 해도 놀랄 노자인데 없던 물건이 짠 하고 나타나면 수겸은 그 장소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금 연성처럼 물질 변환은 그렇다 치더라도 형태 변환만 할 수 있어도 도움이 많이 될텐데.”
수겸이 턱을 매만지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상상했다.
어딘가 캠핑을 갔는데, 포크를 두고 왔다면?
느닷없이 비가 오는데, 주변에 상점이 없다면?
이 모든 상황을 연금술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진짜 편할 것 같은데.”
그 때 수겸의 눈 앞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금술 간소화]– 연금술 숙련도에 따라 절차를 간소화 할 수 있다.
– 중급 이상의 실력부터는 대상의 한 부위만 맞닿아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스크롤만으로 연금술을 할 수 있다. 다만, 스크롤이 작아진만큼 마법진을 정교하게 그릴 수 있는 실력이 제반되어야 한다.
– 고급 이상의 숙련자의 경우 스크롤을 생략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바닥에 그리는 식만으로도 연금술을 펼칠 수 있다.
“이 새끼가 또?”
또, 친절한 듯 불친절한 녀석이 정보를 알려주었다.
수겸은 한참 고민을 한 뒤에야 알려주는 백과사전이 괘씸했지만, 고민했던 부분이 가능한 것을 확인해 희망에 부풀었다.
‘숙련되면 이 짓도 그만이겠네.’
그러면서 수겸은 방금 전까지 수액을 정성껏 바른 스크롤을 내려다 봤다.
수겸이 벽에 걸린 시계를 한번 보고 말했다.
“어우, 늦겠다. 이제 나가야겠네.”
수겸의 집은 흡사 자재 창고가 되어 갔다.
한쪽에는 철이니 뭐니 해서 고철들이 쌓여있었고, 한쪽엔 건조 과정 중인 스크롤이 널부러져 있다.
수겸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여기저기 쌓인 물건들을 못본 척하고 밖으로 나갔다.
***
수겸은 본사 건물 앞에 서서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아. 가기 싫다. 돈도 안되는데 이런 교육 받아서 어따 써먹냐.”
수겸은 휴대폰 속 안내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CV리테일 특별 교육 안내의 건』
이러이러한 이유로 교육을 하니 모두들 꼭 참석하라는 내용이 써져 있었다.
내용을 보니 오늘은 수겸이 운영하고 있는 지점이 속한 서대문구 중 몇 개 동만 추려서 교육을 하는 듯 했다.
‘하긴, 편의점주가 얼마나 많겠어. 다 모을 수도 없겠지. 그러면 아마 인근에 붙은 동끼리 묶어서 한다는건데∙∙∙’
불현듯 수겸의 머리 속에 떠오른 면상들이 있었다.
수겸은 제발 그 새끼만은 만나지 않길 바라며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입장은 10분 정도 뒤부터 부탁드립니다. 앞 쪽에 비치된 안내 책자와 음료수 챙겨주세요!”
본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교육 책자와 음료를 챙겨 들고는 창가 쪽에 붙어 입장 시간을 기다렸다.
그 때 누군가 수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 사장님! 오셨네요. 잘 지내셨죠?”
수겸의 지점을 담당하고 있는 이승준 대리였다.
“야, 이 새∙∙∙.”
수겸은 평소 습관대로 이승준에게 막말을 하려다가 이승준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는 행동을 취하자 말을 하다 말았다.
“에이. 여기 본사 건물 안이에요. 남들 듣습니다.”
이승준은 오늘따라 더 살갑게 굴었다.
아무래도 영업직인 본인도 점주와의 관계가 좋다는 걸 보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오늘은 참는다. 근데 이건 왜 교육이야, 아니 교육이에요? 특별 교육은 또 처음 들어봐서요”
“요새 미성년자들이 술 사고, 담배 산다는 뉴스도 많이 나오기도 하구요. 최근에 금천구 쪽 편의점에서 불이 한번 났어요. 뉴스 보셨을 수도 있겠다. 여튼, 그 때 제대로 대처를 못해서 사람도 다치고 피해도 커졌거든요.”
“아, 전에 기사 본 것 같긴 하네요.”
수겸은 어색한 존댓말로 답했다.
“해서 여차 저차 서비스 질 향상 교육도 하고 안전 교육도 하려고 하나 봐요. 저희도 죽겠습니다. 점주님들은 한번 참석이지만 저희는 매일 이 짓을 반복한다고요.”
이승준이 앓는 소리를 하니 수겸은 배알이 꼴렸다.
“그래도 대리님은 월급도 많이 받으시고, 저처럼 야간 근무도 안하시잖아요?”
“하하. 그건 그렇죠. 점주분들이 고생이 많으시죠 항상. 아 저기 다른 지점 분들도 오시네요. 장 사장님!”
이승준이 말을 돌리려고 다른 지점 사람을 불렀다.
근데 하필 그 사람이 수겸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연하대학교 캠퍼스지점 점주 장세봉.
볼에 있는 새까만 점이 인상적인 장세봉은 서대문구 지점 중 매출 1위 편의점의 점주다.
“아이고. 이 대리님 여기 계셨네. 이게 누구야? 강 점주님이 아니세요?”
장세봉이 반갑게 이승준과 수겸에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요새 바쁘시죠? 이렇게 바쁜 분을 교육이랍시고 오라가라 하네요. 죄송해요.”
이승준은 과연 영업직이 천직인 것 같았다.
사근사근하게 적당한 수위의 아부성 발언을 내뱉으며 장세봉의 기분을 맞춰주는 걸 보니.
“예. 안녕하세요.”
반면 수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바쁜 건 여기 야간을 직접 뛰시는 강 점주님이 바쁘시죠. 하하.”
장세봉이 수겸을 가르키며 말했다.
수겸과 장세봉이 만난 건 수겸이 편의점 개업을 하고 3개월이 채 안된 시점.
둘은 지역 편의점 점주 모임에서 처음 서로를 만났다.
그 때는 수겸의 지점 역시 꽤 매출이 잘 나온 상태라 한껏 자신감이 차 있었을 때였다.
“아휴. 저는 진짜 죽겠네요. 왜 편의점을 열어서. 또 인건비는 왜 그리 비싸요? 알바들 월급 주려고 일하는 것 같다니까요.”
장세봉이 인상을 찌푸리다 못해 얼굴이 썩어가는 표정을 하며 하소연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희도 똑같아요.”
다른 점주들이 장세봉의 말에 동조하며 다 같이 앓는 소리를 할 때 수겸이 말했다.
“그래도 저희 지점은 인건비는 나오긴 하던데. 혹시 새로 나온 푸키몬 빵 발주 넣으셨어요? 그게 잘나가요. 미끼 역할도 잘해서 그 빵 사러 왔다가 다른 것도 꽤 사가구요.”
수겸은 도움을 준답시고 이것 저것 조언을 했다.
마치 자기가 제일 잘 나가니 내 말만 잘 따라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아 그러시구나. 강수겸씨라고 했나요? 강 점주님은 편의점 연지 3개월쯤 되셨다고 하셨죠?”
장세봉이 물었다.
“네네. 이제 3개월인데 아직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하.”
수겸은 장세봉의 말투가 바뀐 것도 느끼지 못했다.
점주들 모임이 끝나고 함께 참석했던 점주 하나가 수겸 옆으로 다가왔다.
“수겸씨. 아까 수겸씨한테 이름 물어본 사람이 우리 지역 1등이야.”
“네? 근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지?”
수겸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제서야 본인이 너무 나댔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데서는 다 앓는 소리하고 나 죽네 하는거야. 수겸씨는 아직 경험이 적어서 몰랐겠지만, 다음엔 조심해. 괜히 밉보일 수 있으니까.”
“네∙∙∙∙∙∙.”
수겸에게 조언을 해준 사장님의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6개월 뒤 다시 점주 모임에 나갔을 때 수겸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강 점주님. 괜찮아요? 그 동네 요새 유동인구 확 줄었다고 하던데. 이러다 사장님이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인건비 아끼면 돈은 가져가긴 하시겠네.”
장세봉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수겸을 놀리듯 물었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알만한 분이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지금 놀리시는 거에요?”
수겸도 한참 예민할 때라 그걸 참지 못했다.
“놀리기는. 점주님 너무 예민하시네. 아이고, 미안해요. 됐죠?”
이런 싸움에서는 먼저 화낸 사람이 졌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패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수겸은 떠오르는 과거를 머리 속에서 지워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하려고 애썼다.
“잘 지내셨죠? 요새 점주 모임도 못나갔더니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게요. 점주님도 인건비 아낀답시고 너무 직접 근무 하지 마세요. 그러다 몸 망가져.”
‘아니면 적자다. 이 새끼야.’
수겸은 아까 받아둔 음료수의 뚜껑을 열어 벌컥 벌컥 마셨다.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음료수와 함께 집어 삼키기 위해서였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이러다 병원비가 더 나오겠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던 찰나에 안내 직원이 공지를 시작했다.
“모두 이제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뒤쪽에 앉지들 마시고, 앞쪽부터 채워주세요.”
수겸은 자리를 얼른 파하고 싶어서 장세봉에게 인사했다.
“그럼 교육 잘 들으시고, 다음에 뵙죠.”
“강 점주도 고생해요. 다음 모임에는 꼭 나와요.”
휙 하고 돌아서서 교육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조차도 얄미웠다.
‘딱히 괴롭힌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밉지?’
수겸은 일부러 자리를 띄워 앉으려고 잠깐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앞쪽부터 앉으라는 직원의 말은 무시한 채 장세봉은 뒤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점주 모임에서 봤던 몇 명과 함께 있는 걸 보고 수겸은 자연스럽게 앞쪽 의자로 걸어갔다.
“잠시 후 교육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교육은 서비스 교육을 시작으로 법률 교육, 안전 교육 순으로 진행되면 제일 마지막 순서는 소방 교육입니다. 총 2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사회자의 목소리를 듣자 마자 졸린 건 과학일까?
수겸은 반쯤 수면 상태로 듣는 둥 마는 둥 교육을 들었다.
“마지막은 소방 교육입니다. 이번엔 특별히 서대문 소방서에서 지원을 나오셔서 교육을 해주십니다. 이찬희 소방교님과 윤상준 소방교님이십니다.”
짝짝짝.
소개 멘트 후에 자연스럽게 박수가 이어졌다.
그 순간 수겸은 잠에서 깨어나 무대 위에 서있는 두 명의 소방관을 응시했다.
두근 두근
갑자기 수겸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왜 이러지? 어, 어라. 저 사람 어디서 봤더라?’
무대 위에 서 있던 윤상준 역시 수겸과 마찬가지였다.
무대 위에 서서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하던 순간 왜인지 모르게 눈에 들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저 남자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둘 모두 마음 속 궁금증은 해결하지 못한 채 교육이 시작됐다.
“∙∙∙∙∙∙이상으로 교육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알려드린 내용을 잘 기억 해두셨다가 필요할 때 쓰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앞으로도 시민분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119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상에 선 두 소방관 중 이찬희가 먼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얼마 전 환자 이송을 하던 과정에서 사망을 하신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누군가가 제 때 인공호흡을 해줬더라면, AED를 사용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어쩌면! 살 수 있었을 분이셨습니다.”
윤상준이 힘을 주어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오늘 알려드린 내용을 잘 기억하셔서 도움이 필요한 분에게 꼭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119도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상준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수겸은 교육이 끝나자 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절뚝.
절뚝이며 걷는 수겸의 뒷모습을 보고 마침내 윤상준이 깨달았다.
“아! 그 때 그 현장에서! 저기요. 잠시만요!”
홍연대 사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분명 자동차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쳤었는데, 잠시 후 다시 가보니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
환자 당사자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 봤다면 내 착각이었겠지 할텐데 그마저도 동료와 함께 목격했다.
게다가 다리 말고 구르면서 생긴 등의 찰과상을 미루어 보면 분명히 사고 당시 현장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긴 했다.
윤상준은 미스터리를 풀고자 다급히 무대에서 내려와 수겸을 불렀다.
수겸을 부르는 목소리와 뒤 쫓아오는 상황을 겪으니 수겸 역시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사고현장에서 날 본 사람이다. 잡히면 안돼. 도망가자.’
수겸은 빠른 걸음으로 인파 속으로 들어가 무리에 섞여 교육장소를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신거지?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윤상준의 느낌으로는 분명 그 남자는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 때 이승준 대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윤상준에게 물었다.
“소방관님.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멀 찾으시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