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월간 아르케.
수겸이 아르케 멤버들의 도움 없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연금술로 만든 시약을 한 달에 하나씩 세상에 내놓는 프로젝트.
첫 번째 제품은 숙취해소제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해독제였다.
단, 한 알이면 깨질듯한 두통과 향수마냥 지나가는 길을 따라 풀풀 풍기는 알코올까지 한 방에 날아가는 약.
첫 시작이라 큰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 반쯤 재미삼아 선택한 아이템이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분명 숙취해소제를 접한 기업들의 반응은 기대한 바와 같았다.
독점 판매권을 얻고 싶다던가, 이미 제품화까지 했다면 콜라보라도 하고 싶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너무 효과가 좋으니 조금이라도 더 달라는 반응.
여기까지는 흡족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이슈가 되지 못했다.
기껏해봐야 숙취해소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술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지만, 숙취해소제가 이슈가 되기에는 너무 가벼웠다.
‘처음이니까.’
애초에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기에 수겸은 실망하지 않고, 다음을 준비했다.
“이제 큰 거 간다.”
이번에야말로 수겸은 자신있었다.
모두가 놀랄 것이라고.
수겸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익명으로 물건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며, 윤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난 뒤.
『수겸씨! 잘 지내셨어요?』
“저야 잘 지내죠. 하하. 요새 통 연락이 없으셔서 전화 한번 해봤습니다. 주무시고 계셨나보네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방금까지 자다 일어난 듯 했다.
『어젯밤 근무서고 이제 일어나려던 참입니다. 지난 번에 근처 지나갈 일이 있어서 편의점 가보니까 안계시더라고요.』
“그러셨어요? 요새는 하는 일이 좀 많아서 편의점에 거의 없어요.”
수겸은 스피커폰 모드로 바꾸고 포장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랬군요! 좀 염치가 없지만, 치료제가 다 떨어지긴 해서 찾아갔거든요.』
“왜 자꾸 그러십니까. 그게 염치가 없다뇨. 저를 대신해서 좋은 일에 써주시는데.”
『대가 없이 주기만 하시니 그러죠. 대신 저한테 주신 치료제는 단 한 병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수겸씨 덕분에 정말 많은 분들이 무사할 수 있었어요.』
방금 잠에서 깬 사람과 하기엔 조금 무거운 대화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근데 저도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수겸은 손에 쥐고 있는 유리 앰플병을 전등에 비춰 보았다.
황금빛이 은은하게 베어 있는 붉은 시약이 들어 있는 앰플병.
이번 월간 아르케의 대상은 바로 상처 치료제였다.
『그럼요! 무엇이든 제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수겸은 앰플 사이즈에 맞춰 구멍이 뚫린 스티로폼에 손에 들고 있던 앰플을 꼽은 후에 말했다.
“연기를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수겸은 개구쟁이마냥 웃음을 지으며 윤상준에게 말했다.
***
119구급센터는 전국 어딜 가나 조용한 날이 없다.
맛잇게 익은 라면을 먹다가도 응급상황이 생기면 출동하는 것이 다반사.
홍연119 안전센터 역시 예외일 순 없었다.
출동 1건을 마치고 복귀한 윤상준과 박희원은 식당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눴다.
“역시 다 불었네요. 그냥 다시 끓일까요?”
박희원이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들며 말했다.
면은 이미 불대로 불어 입에 넣기도 전에 툭툭 끊어져버렸다.
“흐음. 난 그냥 먹자에 한 표. 머피의 법칙 같은거라. 끓이면 또 나갈 것 같아. 국물이라도 좀 남은게 어디야?”
윤상준은 진지하게 고민을 한 번 하더니 숟가락으로 면을 꾹 눌러 국물을 퍼먹었다.
둘의 부모님이 이 장면을 보면 절로 눈물이 날 상황이었다.
어찌 저찌 배를 채우고 있을 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죠? 아까 말씀하신게 오늘이에요?”
“응. 잘할 수 있겠어?”
“잘해야죠. 그 분의 부탁인데.”
아직 배가 덜 찼는데도 윤상준과 박희원은 미련없이 남은 라면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조금 긴장되네.”
윤상준이 손에 난 땀을 옷에 슥슥 닦으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소방서 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은 출입문 바로 앞이었다.
다 큰 성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유심히 보고 있는 모양.
“뭔데요? 저도 말해주세요!”
사람들 틈을 파고드는데 실패한 박희원이 소리쳤다.
“퀵이 하나 왔는데, 내용이 좀 이상하네. 뭔가 있긴 한데 처음 보는거야.”
동료 소방대원이 뒤를 돌아보며 박희원에게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대체. 이게 설명이야 뭐야?”
궁금한 건 박희원 뿐만 아닌 모양이었다.
고단한 일상에 이런 재미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지 하나 둘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보여줘!”
“뭔데 그래? 내용 본 사람은 뒤로 좀 빠져봐!”
쉽게 정리가 되지 않자, 보다 못한 김진태 구조1팀 팀장이 외쳤다.
“자자! 다들 진정하고 상자 이리 내놔. 내가 대표로 읽어줄게. 애들도 아니고 이게 뭐야?”
역시 직급이 깡패였다.
말 한마디에 상황을 정리한 김진태의 손에는 스티로폼이 들어있는 상자와 메모지 한 장이 쥐어 있었다.
“자, 그러면 글부터 본다? 하여튼 초딩도 아니고.”
김진태는 별의 별짓거리를 다 하고 있다는 듯 생각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소방관 여러분.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소방대원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함께 보낸 스티로폼 박스의 뚜껑을 여시면 총 50개의 유리 앰플병이 있을 겁니다.
그 안에 든 것은 ‘힐링 포션’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작명 센스는 없다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힐링 포션은 외상 바르면 빠르게 지혈이 될 뿐만 아니라 상처 치료까지 할 수 있는 치료제입니다.
또, 섭취도 가능한데 섭취 시 체력 회복 및 경미한 내상에 도움이 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면, 또 추가로 더 필요하다고 하시면
간단한 후기 영상을 너튜브에 올려주시고, 아래 태그를 함께 달아주시면 확인하겠습니다.
#힐링 포션 #연금술 #리카르도]
김진태가 글을 다 읽자 반응은 여럿으로 갈렸다.
“무슨 개소리야?”
“오! 이거 몰래카메라 같은건가? 어디 카메라 없는지 찾아보자!”
“이거 진짜야?”
반응은 여러개였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진짜일리가 없다는 것.
그 때 누군가 말했다.
“우선 까보죠? 물건 보고나서 미친놈이라고 욕을 해야지. 사람 일 누가 압니까?”
윤상준이었다.
윤상준이 수겸에게 부탁 받은 것.
그리고 윤상준이 박희원에게 협조를 부탁한 것.
그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수겸은 월간 아르케의 두번째 아이템인 상처치료제, 힐링 포션을 서울 각 지역의 소방서로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래도 사람 목숨이 오고 가는 상황에 확인도 되지 않은 약물을 쓰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다.
그 때 떠오른 사람이 윤상준.
인맥 둬서 뭣하겠는가. 써먹어야지.
수겸이 만든 시약들은 모두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건 한번도 안 써본 사람은 많지만, 한번만 쓴 사람은 없다는 것.
처음 진입장벽만 넘으면 모두가 효과를 알아주고, 가치를 인정해줄 것이란 생각이었다.
윤상준과 박희원의 역할은 그 장벽을 강제로 무너뜨리는 것.
인체에 무해할 뿐더러 설명 그대로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도 안쓰면 어쩔 수 없지.’
하여튼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소방서 내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누구도 이걸 실제 상황에 써보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는 상황.
“말로만 떠들어서 뭣합니까. 장난이다 싶으면 그냥 버리면 되는거지.”
평소에 잘 나서지 않는 타입인 윤상준이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니 모두가 쉽사리 반대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래. 보기나 해보자. 가만히 있으면 졸리기나 하지. 재미삼아 보는거지머.”
김진태가 윤상준의 말에 동조하자 박희원이 그새 가져온 커터칼로 스티로폼을 해체했다.
수겸이 메모에 적은 것처럼 한 줄에 10개씩, 5줄. 총 50개의 힐링 포션이 질서정연하게 스티로폼에 꽂혀 있었다.
“일단 첫 인상만 봐서 맛은 좋겠다. 딸기 쥬스 같네.”
김진태가 그 중 하나를 뽑아 들고는 감상평을 남겼다.
“근데 이거 독이라도 들었으면 어째? 여러 가능성을 봐야지.”
김진태가 돌연 표정을 굳힌 채 모두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테스트 해보자니 겁이 나고, 안하자니 좀 궁금하기도 하고.”
인간이 그렇다.
위험한 것 같은게 더 궁금하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김진태가 정색을 하며 얼굴로 하지마, 하지마라며 말하고 있지만 사실 여기 있는 모두가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주 잠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용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앗! 따가워. 야! 박희원. 왜 커터칼을 다 넣고 쥐고 있었어.”
모두가 윤상준을 쳐다봤다.
좀 전에 스티로폼을 해체했던 박희원은 커터칼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박희원 앞에 서 있던 윤상준이 모르고 손을 움직이다가 살짝 삐져나온 칼날에 찔린 모양이었다.
‘개연성 따위 개나 주자.’
119 대원이 손에 쥔 커터칼 간수도 제대로 못한다고?
‘내 알바인가. 일단 보여주자.’
상황을 전부 알고 있는 박희원은 당황한 표정을 열심히 지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피 난다. 쓰읍.”
윤상준은 남들은 알 수 없게 피를 쥐어짜며 은근슬쩍 힐링 포션이 담긴 스티로폼 박스를 향해 걸어갔다.
뽀옥!
밀봉된 앰플의 뚜껑을 여는 소리가 맑고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어?”
“상준아?”
“윤상준!”
누군가는 은근한 기대감을, 누군가는 걱정을 실은 채 윤상준을 불렀다.
“진짜 조금만 써볼게요. 무슨 일 생기면 처치핼 줄 사람이 적어도 10명은 있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하하.”
김진태가 윤상준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채 닿기도 전에 앰플은 기울기 시작했다.
똑. 똑.
붉은 빛깔의 액체가 윤상준의 손가락을 향해 떨었다.
“잠시만요! 비켜주세요.”
박희원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누가 파트너 아니랄까봐 죽이 척척 맞았다.
윤상준은 어릴 적 장수풍뎅이 한 마리를 잡아다가 채집통에 넣고 다닥다닥 붙어 관찰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모양새가 딱 그랬으니까.
‘내가 장수풍뎅이 신세이지만.’
윤상준은 일부러 더 잘보이게 손을 쭉 내밀었다.
경미했지만 분명 피가 나던 손가락이 힐링 포션이 흡수되면서 실시간으로 아물고 있었다.
“오오!”
“미쳤다∙∙∙.”
벌어졌던 피부가 아문 것이 보이자 윤상준이 손가락에 남아 있던 피를 슥 닦아냈다.
그리고 완전히 아문 손가락을 모두를 향해 내밀었다.
“이거 쩌는데요?”
“커트.”
박희원이 동영상 녹화를 스톱하겠다고 말을 했다.
김진태의 표정은 전보다도 더 심각해졌다.
“희원아. 방금 동영상 한번 보자. 잘 찍혔냐?”
김진태가 박희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을 달라는 뜻이었다.
박희원이 휴대폰을 건네 주자 아예 TV에 연결해서 다 같이 봤는데, 좀 전에 직관을 한 사람 역시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진태는 생각했다.
‘어쩌면 119 대원 10명보다도 더 가치있게 쓸 수도 있는 물건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보고는 해봐야겠어.’
가능성을 보았는데, 그걸 무시하고 덮어버린다면 어쩌면 그것 역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준아. 너는 정밀검사 한 번 받아서 결과서 제출하고, 희원이는 방금 동영상 나한테 제출해. 그리고 누가 방금 상준이가 개봉한 앰플 하나랑 밀봉된 앰플 하나씩 들고 검사실에 검사 의뢰 해. 누가 할래?”
김진태가 손가락으로 윤상준과 박희원을 가르키며 지시사항을 내렸다.
“제가 하겠습니다!”
연신 ‘와!’ 를 남발하던 구급대원이 손을 번쩍 들어 자원했다.
“오케이. 그러면 급한 건이니까 최대한 빨리 해달라고 하고. 모든 항목에 대해 분석 해달라고 해. 모두 내가 센터장님께 보고할 때까지 외부에 비밀로 하고.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통제 불능처럼 보이던 이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