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62
62화
검진복을 입은 윤상준이 오늘의 일정표를 보고 있었다.
“첫번째로 바로 혈액 검사하고, 다음은 엑스레이. 위, 대장 내시경까지 다 끝내려면 진짜 하루종일이겠네.”
윤상준은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위, 대장 내시경까지 하라고 하시는거지? MRI 촬영은 안해서 다행이긴 하네.”
검진 일정을 잡을 때 옆에서 연신 잔소리를 하던 김진태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했다.
윤상준은 탈의실을 나서며 커터칼에 베였던 손가락을 앞, 뒤로 살폈다.
언제 상처가 났었냐는 듯 매끈했다.
실제로 써보기는 처음 수겸을 만났을 때 편의점에서 해보고는 처음이었다.
‘신기하기는 하단 말이야. 이게 문제가 될 거였으면 내가 지금까지 썼던 사람들한테도 이상 증세가 있었겠지.’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겠지만, 누구보다 힐링 포션의 효능과 안전성을 알고 있는 윤상준이었다.
수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 힐링포션을 사용했을 때, 예전엔 상처치료제라 지칭했지만, 윤상준은 내심 걱정이 되어 본인이 치료했던 환자를 몇 번이고 찾아갔었다.
‘표면상 병문안이었지만 말이지.’
환자 본인은 고통에 기억 못하지만 분명히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부위를 만져도 보고, 살펴도 보며 몇 번을 확인했었다.
결과는 제로였다. 부작용이 생긴 경우 말이다.
득만 가득하고, 실은 하나도 없는 물건. 그게 바로 수겸의 힐링 포션이었다.
띵동-
윤상준의 채혈 차례였다.
“네~ 갑니다.”
윤상준은 소리가 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윤상준이 차례 차례 검진을 받는 동안 박희원 역시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 있는 그대로 찍은 영상 맞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굳은 자세와 딱딱한 말투로 박희원이 답했다.
박희원 앞에 있는 사람은 홍연119 안전센터의 센터장이요, 옆에서 함께 보고하고 있는 사람은 김진태 팀장이었다.
물론 좌, 우로 각 팀의 팀장들도 함께 참석하고 있는 중이었다.
박희원이 이런 자리에 참석하게 된 명목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봤다는 것과 증거자료로 제출된 영상의 촬영자였다.
“그러니까 조작은 없다? 오늘이 만우절도 아니고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닐테지. 분석 결과는?”
회의실 가장 모서리 쪽에 앉은 한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살폈다.
“우선, 인체에 해가 될 만한 독성 물질은 없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구성 성분을 분석했는데 70퍼센트가 물, 29퍼센트가 식물성 성분, 나머지 1퍼센트는 데이터에 없는 성분으로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박광규 센터장은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알 수 없다는 것이 제공된 표본 샘플이 부족해서 그런건가?”
“아닙니다. 모든 데이터에 대입해봐도 똑같은 성분이 없어서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미확인 물질입니다. 몇 번을 다시 확인해봐도 분석이 안된답니다.”
“일단 오케이. 여기까지 내용들은 참고해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지. 모두가 알다시피 힐링 포션은 우리 센터에만 전달된 것이 아니지. 서울 지역 각 구별로 1곳의 안전센터에 전해졌는데, 이것에 대한 논의가 내일 있을 예정이야. 여기에서 밝힐 우리 센터의 입장이 오늘 회의의 안건이야.”
박광규가 의자 테이블에 팔을 괴었다.
“일단 팀장들 의견부터 들어볼까?”
박광규가 양 옆을 쳐다봤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고, 똑같은 이야기를 인터넷 글에서 봤다면 안믿었을 겁니다. 그런데 대원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는데 믿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니지. 아니야. 눈 앞에서 다들 똑같이 봤다는데, 이제 믿고, 안 믿고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야. 그 이후 단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지.”
박광규가 바로 옆에 앉은 죄로 제일 먼저 답을 한 팀장에게 말했다.
이러니 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질 않았다.
자리에 앉은 모두가 가만히만 있어도 반절은 간다 전략인 듯 했다.
“흠. 의견이 쉽사리 안나오니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보지. 내게 처음으로 힐링 포션을 보고한 김진태 팀장은 처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지?”
“칼자루 없는 칼이라 생각했습니다.”
박광규를 포함한 모두가 김진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말이지?”
박광규가 되물었다.
“아직은 손가락에 발라봤을 뿐이지만, 함께 있던 메모 그대로 믿는다면 효과는 탁월하죠. 아니, 탁월이란 표현도 부족합니다. 기적에 가깝죠. 그런데 출처 불명, 구성성분 미확인의 물건을 우리 119가 공식적으로 구조활동에 사용한다? 이건 신중해야 합니다.”
김진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또박 또박 말했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십시오. 만약에 힐링포션을 사용하면 살릴 수 있을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사용을 하지 않아서 사망에 이르면 이건 우리 존재 이유와 정반대인 상황 아닙니까. 이건 이거대로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김광규는 팔짱을 낀 채로 김진태의 발언을 곱씹기 시작했다.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칼을 쥔 우리는 손이 베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쪽이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칼자루 없는 칼은 아예 못 봤으면 못 봤지, 한 번 본 이상 못본 척 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김진태가 발언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또 다시 정적이었다.
“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외로 침묵을 깬 건 박희원이었다.
“박희원. 앉아! 지금은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김진태였다.
소방 공무원도 엄연히 직급이 있고, 체계가 있는 집단.
센터장과 팀장들만 참여한 회의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고 모두가 발언권을 가지는 건 아니었다.
‘실수했나?’
박희원도 그걸 모르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의견에 힘을 주고 싶은 마음에 무리수를 던졌다.
“죄,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박희원은 겨우 용기를 냈지만, 김진태의 화난 얼굴을 보니 그새 기가 죽고 말았다.
“아니야. 회의에 참석했으니, 의견을 들어봐야지. 다시 말해 봐.”
박광규는 손으로 박희원을 가르키며 말했다.
‘기회야.’
박희원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던지자는 각오를 했다.
“우리 119의 존재 목적이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 아닙니까. 힐링 포션은 그 목적에 딱 맞는 물건이구요. 사람 살리는데 뭐가 중요합니까? 백날 피, 땀 흘려가며 구조활동하면 뭣합니까.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서, 전문의가 없어서 길 위를 떠돌다가 돌아가신 경우를 여기 계신 모두 겪어 보지 않으셨습니까?”
윤상준이 처음 힐링 포션을 썼을 때 장면이 떠올랐다.
“전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제발 5분만 더 버텨달라고. 살 수 있다고 외쳐도 어디 신이 도와줍니까? 아무도 안도와주더군요. 그런데 힐링 포션으로 단 5분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바로 제가 믿는 신이 될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박희원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제 눈 앞에서 허무하게 돌아가시는 일만 없앨 수 있다면 뭐든 할 것 같습니다.”
“찬성합니다.”
박희원이 물꼬를 트자 같은 의견인 사람들은 손을 들어 동조했다.
“저는 반대입니다.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일만 번 좋은 결과가 있다가 딱 한 번 힐링 포션으로 인해 사고가 난다면 우리는 모든 비난을 뒤집어 써야 할겁니다. 힐링 포션의 제작자는 신원 미상이거든요. 책임은 온전히 우리가 져야 하는데, 이게 걱정됩니다.”
물론 모두가 찬성인 것은 아니었다.
결국 돌고 돌아 박광규의 의견만이 남은 상황.
박광규가 앞에 놓인 500ml 생수를 들어 벌컥 들이마셨다.
탁-하고 생수 통을 내려 놓고도 한참을 말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잠시 뒤
“모두의 의견을 잘 들었어. 훗날 지금의 결정을 후회할 지도 모르겠네. 솔직히 자신이 없어. 헌데, 우리 센터의 입장은 허가로 가겠네. 난 일단 눈 앞의 요구조자는 돕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거든.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져서 소송을 당할지언정 일단 살려야지. 안그래?”
“맞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답했다.
“오케이.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모두들 고생했어.”
박광규는 시간상으로는 길지 않았지만, 힘든 회의였던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시간이 흘러 일주일 뒤.
수겸과 윤상준 그리고 박희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오늘의 메뉴는 치킨에 맥주였다.
“그래서 저희 센터를 포함해서 총 3개 센터에서 우선 사용하고, 이 후에 부작용이나 우려되는 점이 없다고 하면 점차 확대한다고 하더라구요. 실제 현장투입은 몇 번의 테스트 후 다음 주에 시작되고, 증거 영상은 상시 촬영하는 것으로. 이렇게 정리된 상황입니다.”
“와. 진짜 감사해요. 두 분 덕에 일이 쉽게 됐네요.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네요. 상준씨랑 희원씨 도움 없었으면 그냥 유야무야 됐겠는데요.”
수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특히 이 친구가 고생했죠.”
윤상준이 옆에 앉은 박희원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아니에요.”
오늘은 수겸과 박희원이 처음 만나는 날.
박희원에게 힐링 포션을 만든 수겸은 흡사 마법사 같은 존재였다.
누가 됐든 제작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도, 박희원에게는 상상 속의 인물, 소설 속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오늘 처음 뵙는데 치킨이라 죄송해요. 다음엔 더 맛있는 걸로 드시죠. 오늘은 이거라도 많이 드세요.”
수겸이 치킨이 담긴 접시를 박희원 쪽으로 밀며 말했다.
“치맥만한 메뉴가 어딨습니까. 하하.”
박희원은 포크로 큼직막한 가슴살을 푹 찍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얼마나 떨렸는지 아십니까. 와!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박희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알겠으니까 그만 해. 너무 공치사를 바라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어.”
몇 번 박희원의 앓는 소리르 받아주던 윤상준이 박희원에게 괜한 핀잔을 했다.
“하하. 고생하신 건 맞으니까요. 그나저나 검진 결과는 어땠어요?”
“당연히 아무 문제 없죠. 저희가 한두 번 써봤습니까. 훨씬 더 많은 용량을 사용한 경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예전에 부작용이 있던 버전에서도 후유증은 없었어요.”
윤상준은 처음 수겸이 만들었던 상처치료제를 말했다.
“그건 진짜 좀 아프긴 했어요. 그쵸?”
수겸이 눈을 찡긋거렸다.
“네. 그래서 더 쓰기 힘든 점이 있긴 했는데, 이제는 사용할 때 통증도 없으니까요.”
“그러게요.”
수겸은 맥주를 들이켰다.
“근데 저희가 현장 영상도 찍고, 필요할 경우에 너튜브에 업로드도 할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윤상준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수겸에게 물었다.
옆에서 신나게 치킨을 먹던 박희원도 포크질을 멈추고 수겸을 쳐다봤다.
“익명이니까요. 두 분 말고는 힐링 포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당분간 밝힐 생각도 없구요.”
“그러면 언제쯤?”
“필요할 때가 오겠죠. 일단 이름 값 먼저 올릴려고 그래요. 너무 제 잇속만 챙기는 말투였나요? 하하.”
수겸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이래나 저래나 수겸씨가 정말 많은 사람을 구한 건 사실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할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저희도 그냥 봉사활동으로 119 하나요. 다 월급 받으면서 하는건데. 쑥쓰러워하지 마세요.”
윤상준이 사뭇 진지하게 수겸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하하. 이제 배 좀 채울까요. 이러다 희원씨가 다 먹겠어요.”
박희원은 그새 닭다리 하나를 앞접시로 옮기고 있었다.
“하하핫. 두 마리 시켰으니까 다리는 3개 남았답니다. 크흠. 우리 짠이나 한 번 할까요?”
“그러죠. 짠!”
“짠!”
셋은 새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맥주잔을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