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삑삑삑삑.
아르케 빌딩의 3층, 작업실 문이 열렸다.
“수겸이 왔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겸을 반기는 건 민환이었다.
“어. 언제 왔어?”
“대충 한 시간 전?”
민환은 대답을 하면서도 수겸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흐엑. 왜 이렇게 일찍 왔대.”
드르륵-
수겸은 의자를 끌고 와 민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미리 해둬야 어웨이큰을 더 많이 만들던가, 아니면 빨리 끝나던가 할 거 아니냐. 내가 할 일이니까 해야지.”
“크크. 그건 맞지. 그래도 우리 요새 능률이 좀 오르지 않았어?”
“어. 네가 틈날 때마다 밑재료 준비를 해두니까 나도 먼저 세팅할 수 있으니까 그런듯.”
“맞아. 게다가 이제 한 번에 제작할 수 있는 양이 늘었어. 이제 하루 판매량도 늘려도 될 것 같단 말이지? 하루 300개까지는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확실히 수겸의 연금술 숙련도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게임처럼 레벨이 있다면 매일 레벨 업을 하는 것이랄까?’
같은 재료로 시약을 만들더라도 매번 집중력이 같을 수 없기에 품질이 미세하지만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연금술 숙련도가 오르고, 실력이 좋아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편차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
현재 수준에서 만들 수 있는 시약은 항상 상급에서 최상급 사이의 수준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재료만 받쳐준다면 최상급의 힐링 포션도 만들 수 있다는건데.’
수겸은 본인의 다리를 내려다 봤다.
오른쪽 다리와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근육이 없는 왼쪽 다리.
‘이제 곧 다리를 고칠 수도 있겠어.’
“수겸아. 내가 너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말이야.”
수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말든 민환은 개의치 않았다.
“응?”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지 않겠냐?”
“어떻게?”
수겸의 입장에서도 늘릴 수만 있다면 그게 최상이었다.
‘굳이 조금만 팔 이유가 없으니까.’
“영지랑 은호도 작업에 투입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은데. 무리이려나?”
민환은 조심스럽게 수겸의 의중을 물었다.
아무래도 까딱 하다간 수겸이 비밀로 지키고 싶어하는 연금술의 비밀이 누설될 수 있기에 민환은 수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수겸은 항상 똑같이 반복하던 공정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지금까지 왜 생산양을 늘리지 못했지? 재료는 충분했는데?’
스스로에게 물었다.
‘마법진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스스로 답했다.
대상의 모든 면적이 마법진 위에 닿여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마법진 밖에 있는 물건은 가공할 수 없었다.
‘그러면 마법진의 크기를 키우면 되지 않았나?’
‘그럴 생각을 못했어.’
‘왜?’
‘마법진을 그릴 스크롤이 작았으니까.’
‘이제 스크롤은 필요가 없어졌는데?’
연금술 실력이 향상 되면서 마법진을 꼭 스크롤 위에 그려야 하는 단계를 지난 지 오래였다.
다만, 처음 만들었던 스크롤 크기에 익숙해져 마법진의 크기에 관해서도 역시 고정관념처럼 굳어졌을 뿐.
“아, 그랬구나.”
수겸은 자문 자답을 끝내고 결론을 얻은 상태였다.
“뭐가 그랬어?”
민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민환아. 덕분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수겸은 머리 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한 시라도 빨리 구현하고 싶었다.
‘마법진을 그리는 재료만 찾으면 되는데, 페인트로 될까? 아니야. 마나가 올바르게 유도되지 않을꺼야.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시약 중에 페인트처럼 반영구적인 물질만 있다면.’
수겸의 고민에 정답이 눈 앞에 떠올랐다.
‘진짜 더럽게 불친절하네. 딱딱 미리 알려주면 좀 좋아?’
수겸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허공에 떠오르는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민환아. 지금부터 내가 부르는 것들 메모 좀 해서 구해다줄래? 필요하면 밑에 사람들이랑 같이 구해도 좋고. 최대한 빨리.”
“어? 알겠어. 불러.”
수겸이 급한 말투로 부탁을 하기에 민환은 군말 않고 휴대폰을 꺼내 메모할 준비를 마쳤다.
– 반영구로 상태로 유지되는 시약.
– 마나 주입 시 잉크를 따라 마나가 흐르는 성질이 있어 마법진을 그리는데 적합하다.
– 충전 기능은 없어 마나 공급이 끊길 경우 그 즉시 마법진은 힘을 잃는다.
수겸은 내용을 주루룩 읽었다.
“동물의 혈액, 달걀 껍데기, 청정수, 사파이어. 그리고 꽝꽝 얼렸다가 녹여야 하는데∙∙∙∙∙∙.”
“그러면 액체 질소? 그거면 왠만하면 얼어 붙을거야.”
“오. 좋아. 그러면 그것도 같이 준비해주고, 달걀 껍데기랑 사파이어는 잘게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야 하니까 이왕이면 가루로 만들어서 가져와 줘.”
밑도 끝도 없는 재료들의 향연이었다.
“뭔가 만들려고 하는거지? 알겠어. 일단 최대한 많이 구해올게. 비율은 나중에 맞추자.”
전, 후 상황을 알기 때문에 민환은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고 곧바로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게 성공한다면 대박이다.’
수겸은 기대에 부푼 표정이었다.
“그러면 나도 준비해볼까?”
민환이 밖에서 재료를 구해올 동안 수겸 역시 할 일이 있었다.
.
.
.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난 후.
민환이 돌아왔다.
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는지 지친 얼굴이었다.
“어떻게 됐어?”
“사파이어도 바로 샀고, 나머지 재료도 금방 구했는데 가루로 만드는 일이 어려웠어. 그래도 이거 봐.”
민환이 두 개의 유리 병을 흔들어 보였다.
하나에는 푸른 빛깔의 가루가 들어 있었고, 하나는 백색의 가루가 있었다.
“그 힘든 걸 제가 해냈습니다. 물론, 동철씨가 많이 도와줬어. 그 인간은 왜 가루로 만드는 기계를 가지고 있었던거지?”
민환은 대뜸 의문을 표했지만, 어차피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기에 둘은 금세 다음 스텝으로 나아갔다.
“거기 내가 적어둔 비율로 재료들 배합부터 해 주라. 순서랑 주의사항도 적어뒀으니까 조심하고. 한 방에 갈거니까 여분 생각하지 말고 다 털자.”
수겸은 민환에게 지시를 한 후 신중하게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나 잉크로 만들 때 필요한 마법진이었다.
이번 작업은 수겸 역시 처음이라 어웨이큰을 만들 때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는 속도로 천천히 작업할 필요가 있었다.
작업실은 고요했다.
민환은 땀까지 흘려가며 재료 배합 중이었고, 수겸 역시 입을 앙 다문 채 집중하고 있었다.
“휴우. 다 됐다.”
둘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작업을 마치고 서로를 쳐다봤다.
민환은 수겸이 그린 마법진을 쓱 쳐다보고, 수겸은 민환이 만든 재료를 살폈다.
민환이 구해오고, 배합까지 마친 재료는 오묘한 색깔을 띄고 있었다.
새빨간 피에다가 푸른 빛깔 사파이어 가루를 넣고, 흰색 달걀 껍질까지 섞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의 검정색이긴 한데, 묘하게 색깔이 있네. 이렇게 보면 붉은 기운이 좀 있는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푸른 빛도 좀 도는 것 같고.”
수겸이 고개를 요리 조리 돌려가며 관찰했다.
“이제 하이라이트 부분인가.”
바로 액체질소를 이용해 꽁꽁 얼리는 과정이었다.
“잠깐만.”
수겸의 말을 들은 민환이 후다닥 뛰어가 작업실 문을 열고 무언가를 들고 왔다.
“액체 질소는 위험해서 방호복 입어야 해. 바로 못 구해서 이건 세무사님한테 부탁을 해뒀지.”
둘이 작업에 열중하는 사이 구해서 문 앞에 두고 간 모양이었다.
방호복을 입은 수겸과 민환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게 뭐하는 짓임?”
“그러게.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크크.”
자기 꼴은 생각 못하고 서로를 보며 웃는 수겸과 민환.
둘은 이내 작업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민환이 집게를 이용해 액체질소가 담긴 그릇을 고정하고, 수겸이 장갑을 낀 채로 연금술 재료를 그 위에 부었다.
불과 몇 초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새하얗게 얼어버린 것을 보고 수겸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지금부터는 민환은 관객이었다.
수겸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마법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마법진을 가동하는 과정은 평소와 다름 없었다.
신기하게도 꽁꽁 얼어 한기를 줄줄 흘리던 재료는 어느새 하얀 김을 내더니 뜨겁게 달아올라 종래에는 녹아흘러 다시 액체가 되었다.
불과 몇 초만에 영하의 온도에서 팔팔 끓다 못해 액체가 되는 과정은 누가 봐도 탄성을 자아낼만한 장면이었다.
“후우. 끝.”
수겸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은 머리를 맞대어 결과물을 살폈다.
오묘한 색깔은 여전했지만, 질감은 완전히 바뀐 듯 했다.
“아까는 가루가 섞인 게 보였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잉크네. 우리가 아는 잉크랑 똑같은 것 같은데?”
“그러게.”
민환의 감상평에 수겸이 동의했다.
“바로 다음 단계로 가자.”
오늘의 목표는 잉크를 만드는 것이 아닌 잉크를 활용해 무언가를 하는 것.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겸은 작업실 가운데 있는 작업대를 밀기 시작했다.
“너도 와서 밀어. 전부 바깥 쪽으로!”
끼익- 드르륵-
큰 면적의 작업대여서 그런지 꿈쩍도 않다가 온 몸으로 밀어붙이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끄응.”
그렇게 삼십분을 씨름하며 작업대 뿐만 아니라 여러 물건들 전부를 작업실 구석으로 몰 수 있었다.
“뭐하게?”
운동 부족이 심각한 민환이 땀을 닦으며 물었다.
“있어 봐. 이번엔 스케일이 크니까 말이지. 방금 만든 잉크 좀 전해줄래?”
수겸은 공터가 되어버린 작업실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바닥을 줄곧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구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민환아. 내가 아까 문자로 보낸 것들 좀 꺼내 줄래?”
수겸은 민환이 재료를 구하러 밖으로 나갔을 때 문자로 필요한 물품을 추가했는데, 그걸 가르켰다.
“자, 여기.”
민환이 수겸에게 전해준 것은 붓이었다. 페인트용 붓부터 그림용 붓 1호부터 8호까지.
수겸은 붓을 한번씩 만지더니 제일 면적이 큰 페인트용 붓을 집어 들었다.
잉크에 푸욱 담군 후 제일 먼저 바깥 테두리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수겸이 지금 하려고 하는 건 초대형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었다.
‘어차피 스크롤이 필요없다면 크기를 키울 수 있을만큼 키워보자.’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는 마나 잉크를 활용해 마법진을 그려두면 제작 시간도 단축되고 한번에 생산할 수 있는 양도 많아질 것이란 계산이었다.
수겸은 기하학 무늬는 중간 넓이의 붓으로, 룬어를 그릴 때에는 제일한 작업이 가능한 얇은 붓으로 바꿔가며 작업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필요한 마법진이 총 3개이기 때문에 작업실 전체 면적만한 크기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정도도 꽤 크니까.”
꽤 수준이 아니었다. 지름으로 치면 5미터는 되는 크기의 마법진이었으니까.
장장 3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첫번째 마법진이 완성됐다.
그 사이 민환은 밖으로 나가 간단하게 요기할 것도 사두고, 최대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물건 정리를 했다.
“이게 어웨이큰 만들 때 마지막 공정에 필요한 마법진이지?”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옆에서 마법진을 보아온 짬이 있는지 민환은 모양을 보고 용도를 알아챘다.
“맞아. 어떻게 알아봤냐?”
“내가 좀 눈썰미가 있잖냐.”
수겸은 엎드린 자세로 한참을 있어서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풀었다.
“이제 재료 가공용 2개만 그리면 되겠다. 2개는 좀 작아도 되니까 공간은 되겠는데?”
“응. 최대한 밀었고, 나중에 정리하면 되니까 물건들은 엎어놨어. 바로 할 수 있겠냐?”
민환이 수겸에게 미리 사둔 햄버거를 건넸다.
“시작했으니 마무리하려고.”
수겸은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물면서도 눈은 앞으로 그릴 마법진을 구상했다.
.
지하철이 끊기고, 밤거리를 걷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 쯤.
시간으로 치면 첫번째 마법진을 완성하고 5시간 후, 총 12시간의 작업 끝에
3개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