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이럴거면 그냥 처음 연금술을 배우자마자 다 까서 공개할 걸 그랬나?’
검사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수겸이 한 생각이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가 미개하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니까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되고 결국은 사라질 뿐입니다. 아시겠어요?”
최태민이 벌떡 일어서며 목이 터져라 큰소리로 말했다.
“이게 우리나라 소멸까지 이야기할 정도입니까. 제 말은 너무 상식 밖의 일이니까 한 번에 빵! 하고 터뜨리면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지하다는 거지요. 이건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팩트인데 인정하면 끝인거지요. 인류 역사상 다시는 없을 지 모르는 위대한 일을 그냥 ‘처음 겪는 일’ 이나 ‘신기한 일’ 정도의 정의로 끝내면 안된다니까요. 듣고 계신 우리 연금술사님 기분이 얼마나 나쁘시겠어요.”
“호칭이 여, 연금술사는 좀.”
최태민이 양 손으로 공손하게 수겸을 가르키며 말했으나 듣는 수겸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최태민의 눈빛, 말투, 행동 하나 하나에 수겸에 대한 존경,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언제 봤다고. 우리 인사한지 1시간도 안됐잖아요.’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걸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떡하자는 말이죠? 새로운 기술의 개발, 발명은 모두 이단이고, 처벌해야 하는 대상이란 말입니까?”
최태민의 끝없는 말에 김한경이 질린 듯 손사레를 쳤다.
“일단 흥분을 가라 앉히시고요. 우리 방법을 찾아보자 이겁니다.”
“후우. 생각해보니까 우리 연금술사님의 위대한 업적에 마약이라고 하셨다면서요? 허허. 도태되어야 하는 대상이 여기 계시네.”
최태민은 뒤를 모르는 사내였다.
“과장님. 잠시만 진정하시죠. 검사님도 뭘 알고 하신겁니까? 자, 진정. 진정. 숨 한 번 내뱉으시고.”
“네! 알겠습니다.”
최태민은 수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가 내뱉었다.
“제가 혼자 고민했을 때에는 사실상 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거든요. 검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수겸이 최태민에게서 조금 떨어지며 물었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지금 수겸씨가 만든 어웨이큰은 의료법에 해당되는 의약품도 아니고, 식품위생법에 영향을 받는 식품도 아니거든요. 완전히 새로운 영역입니다. 그러면 정식으로 국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저기 위에 있는 국회의원들이 움직여야 합니다.”
김한경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키며 말했다.
“기사를 막 낼까요? 검사님 아는 기자들 많지 않아요?”
그새 수겸 홀릭이 된 최태민이 김한경을 닦달했다.
“없는 건 아닙니다만, 움직여줄지 모르겠네요. 기사 몇 개 나간다고 해서 곧바로 반응이 있지도 않을 가능성이 커요.”
“아니요. 모두가 절 찾아오게 될 겁니다.”
수겸이 손을 쫙 펼쳐서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무슨 수로요?”
“다만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검사님께서는 저한테 걸린 조사를 조금만 뒤로 미뤄주실 수 있으실까요?”
“머,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어차피 조사 일정 자체를 느긋하게 잡고 진행하면 되거든요. 지금 공판 단계로 넘어간 것도 아니라 제가 조율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나중에 기자분들께 슬쩍 흘리셔서 기사 좀 부탁드릴게요.”
“그 부분은 쉽죠. 평소에도 서로 부탁하는 사이라.”
어느새 수겸을 조사하던 김한경은 없어지고, 수겸과 한 배를 탄 김한경만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수겸의 능력은 김한경에게도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능력이야.’
이왕 돕기 시작했으니 진심으로 수겸을 지원하기로 한 김한경이었다.
“감사합니다. 그 다음은 최 과장님께서는 더 어려운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말씀만 하십쇼.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최태민은 열성적인 자세로 수겸에게 답했다.
“보고서를 좀 적어주세요. 제가 만든 어웨이큰에 대해서요. 필요한 내용은 딱 하나. 두뇌 활동을 활성화 시키는 것은 맞다는 것. 이외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로 하셔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아직 실험을 다 한 것도 아니니까 무해하다는 내용을 쓰기는 힘드실테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완전 무해하다는 내용을 쓰고 싶지만, 말씀대로 실험 내용이 부족하네요. 대신 중추 신경계를 비롯해 두뇌 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실제 실험 내용이 있으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걸로 되시겠습니까?”
김한경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물었다.
“뒤 없이 달려봐야죠. 아마도 되지 않을까요?”
수겸이 웃으며 말했다.
***
수겸이 하려는 것은 일종의 퍼즐 맞추기였다.
곳곳에 퍼져 있는 퍼즐 조각을 모두 모아 모양에 맞춰서 끼우기만 하면 그림 완성이다.
숙취 해소제로 소개한 디톡시 영상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119에서 직접 올린 힐링 포션 사용 영상으로 연금술의 효능을 알린다.
거기다 피부 경화 시약인 스토니로 다양한 직군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미 유명해진 어웨이큰까지.
모든 퍼즐을 모아 제작자인 수겸의 이름으로 짜맞추는 것.
그게 수겸이 그리는 그림이었다.
월간 아르케가 진행되는 몇 개월간 여러 단체에서 수겸이 만든 시약의 효능을 직접 녹화해 동영상으로 제작해왔다.
‘이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지.’
수겸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원작자인 것을 밝히는 것.
제작기가 필요했다.
“쉬운 건 맞는데, 쉴 틈은 없겠구나.”
***
소방청에서 올린 119 구급대원이 바디캠을 착용한 채 찍은 영상은 조회수가 꽤 높은 편이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구해주는 119 구급대원의 모습은 찾아서 볼 만큼 멋있었기 때문.
의외인 점은 스토니를 사용하는 영상이 꽤 조회 수가 높은 것이었다.
단순히 시약을 활용하는 영상에서 끝나는게 아니었다.
『노가다 김씨의 하루.』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브이로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중간 중간에 터지는 투박한 아재 감성에 피식 웃음이 터지는 영상이었다.
거기다 실제로 큰 사고가 날 뻔한 순간에 스토니의 효과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손을 자랑하는 포인트까지 완벽했다.
마지막 남은 건 제약회사의 영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대기업 놈들 진짜 얍삽하단 말이지. 혹시나 모르니까 딱 봐도 신입 사원 같은 애한테 계정 파서 동영상 올리라고 시키고 말이야.”
수겸은 조회수 300을 밑도는 영상을 다시 한번 재생해보면서 혀를 쯧쯧 찼다.
그렇지만 최고 대박은 독기를 품은 대한 제약의 뒷광고 영상들이었다.
애초에 구독자가 많은만큼 재생산되는 영상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짝!
수겸이 박수를 치며 모두를 독려했다.
“자, 우리는 일종의 작업장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방금 보여준 동영상들을 우리 채널에 가져다 붙이면 돼요.”
“어떻게?”
민환이 손을 들어 물었다.
“우리가 영상의 주인은 아니니까 직접 게재할 순 없고, 태그나 댓글을 활용해서 우리랑 연결만 지으면 돼. 처음 시작점만 갖다 붙이면 사람들이 알아서 생각하기 시작할거야.”
수겸이 왼손 검지손가락과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맞대는 시늉을 했다.
“내가 직접 시약을 만드는 영상이랑 효과 테스트 하는 영상들도 올릴 거니까 별 거 안해도 알아서 될 거야.”
“알겠습니다. 일단 시작해보죠. 말로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되니까요.”
조태규가 수겸을 대신해 작업 시작을 알렸다.
***
수겸의 예상대로 반응이 나타나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이틀.
수겸의 연금술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 100만을 넘어서 200만을 향해 치솟았다.
“왔다.”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던 수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수겸이 웃고 있는 이유는 기다리던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 정인섭 비서실.』
“정인섭이 누구더라?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우리 지역구 의원이잖아.”
민환의 질문에 수겸이 답했다.
“그런가? 영 관심이 없어서. 유명한 정치인들은 왠만하면 아는데. 이 분은 딱히 이슈가 없었나본데.”
민환이 걱정하는 건 수겸을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냐는 것이었다.
“괜찮아. 나한테 필요한 건 입법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이거든. 누군가 수면 위로만 끌어올려준다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될거야. 게다가 마이너면 더 열심히지 않을까 싶어. 이번 기회에 스포트라이트 제대로 받으려고 말이지.”
“그건 그렇네. 독기 품고 해주면 우리야 땡큐지.”
시간을 끌어봐야 수겸에게 좋을 것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다음 날.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정장에 손지한 머리로 기품있는 모습까지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수겸의 앞에 있는 정인섭은 흡사 고시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꾀죄죄한 모습에 다 닳아버린 구두까지.
‘괜찮은건가?’
독기를 바랐지만, 이건 정도를 지나친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안녕하세요.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인섭이 악수를 권하며 인사했다.
“저야 말로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제 생각엔 컨택온 곳이 많을 것 같은데요.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닙니까?”
“정말입니다. 의원님이 처음 연락주신거라서요.”
“그러면 제 입장에서 시작은 좋은거군요. 바로 본론부터 시작할까요? 이건 제가 생각한 로드맵입니다.”
정인섭은 10페이지짜리 서류를 수겸에게 건넸다.
서류에는 법안 발안부터 단계별 도입을 위한 준비사항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어제 연락해서 오늘 만났는데, 이걸 언제 만든거야?’
이제서야 정인섭의 모습이 이해되었다.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이 서류를 만들어서 제게 보여주셨다는 건 일단 모든 사실을 믿는다는 걸 전제하신거겠죠?”
“그럼요. 믿고 말고요. 힐링 포션 우선 사용을 논의할 때 저도 자리에 있었을걸요.”
“아, 그래요?”
“네. 제가 행안부쪽에서 일을 하다보니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 이후 힐링 포션이 얼마나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도 보고 받았구요. 아마 그래서 제가 제일 빨리 연락드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네요. 지금도 달리는 댓글들 보면 대부분 조작 의심뿐이거든요.”
“이제 의심을 걷어내고, 세상에 보여주는 일을 같이 해보시죠.”
“여기 서류에 적혀 있긴 한데 가능할까요?”
“그럼요. 우리가 없는 걸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있는 걸 있다라고 주장하는 게 왜 어렵겠습니까? 막말로 보여주면 되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수겸은 정인섭의 확신에 찬 말에 되레 생각이 많아졌다.
‘쉬운 걸 너무 돌아오고 있었구나.’
“보시면 사무실이 허름하죠? 제가 매일 기사에서 언급되는 유명한 정치인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국회의원입니다. 추진력 하나는 기가 막히니까 걱정마세요.”
정인섭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수겸씨만 오케이 하시면 바로 동료 의원들을 만나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려 합니다. 아마 그 사이에 인터뷰도 하시고, 국회 청문회도 나오셔야 할 겁니다. 아무래도 당사자니까요. 마음의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 순간 수겸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서서 본인의 연금술을 시연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준비가 되었는가?
수겸은 대답을 망설였다.
그게 아니라면 다시 숨어서 살 것인가?
‘그건 못 참지.’
순간 흔들리던 수겸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네. 준비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