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입찰을 부추기는 사회자의 말에 수겸은 조바심이 났다.
“3,500만 위안 없으십니까? 하나, 둘…….”
사회자가 셋을 외치기 전, 번호판 하나가 올라왔다.
‘또 3번이네.’
수겸은 앞쪽 좌석에 앉아 있는 3번 남자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3번 역시 수겸을 의식하고 있는지 수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시선을 마주친 둘.
3번 남자는 아직 여유롭다는 듯 씩 웃더니 이내 다시 사회자를 쳐다봤다.
얼굴을 보니 이 사람은 전형적인 중국인이었다.
지금까지 가격을 올린 건 수겸과 방금 호가를 한 3번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가 돋보이는 남미 계열의 사람이었다.
‘분명 저 사람은 철민 씨가 말한 멕시코 쪽 사람 같은데. 근데 어쩌자고 가격을 올리는 거지?’
수겸은 고민도 할 것 없이 사회자가 입을 떼자마자 다음 호가에 번호판을 들었다.
“72번분. 4,000만 위안 감사합니다. 이제 4,500만 위안입니다.”
사회자가 손짓으로 수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멕시코 사람은 빠져야겠다 싶은지 번호판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중국의 것을 뺏길 순 없지.”
3번 번호판의 주인, 중국인이 뭐라 나불대더니 보란 듯이 팔을 쭉 뻗었다.
이제 다음 가격은 5,000만 위안. 한화로 따지면 90억이었다.
‘후우… 대한제약에서 계약금까지 받아 두길 잘했다.’
수겸이 손을 들었다.
수겸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
“다음은 5,500만 위안입니다. 5,500만. 5,500만. 하나, 둘.”
사회자가 카운트를 시작하고 수겸은 3번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제발. 제발.’
수겸은 믿지도 않는 신까지 찾으며 기도를 했다.
아무래도 이전 입찰 금액이 영혼까지 끌어모은 돈이었던 듯했다.
‘뭐라 말했는지는 몰라도 허세였나 보네.’
“셋.”
땅. 땅.
마침내 사회자가 경매의 끝을 알리기 위해 나무로 된 진행 봉을 두드렸다.
“최종 낙찰자는 72번. 축하드립니다.”
수겸은 양팔을 치켜들었다.
‘됐다!’
짝짝짝―
수겸의 세리머니에 주변에서 박수를 치며 축하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입찰을 받으신 분들께서는 무대 뒤쪽 통로를 쭉 따라가셔서 지불 절차를 마무리해 주시고, 물품을 수령해 가시기 바랍니다.”
“수겸아, 저기 뒤쪽으로 오라고 하네. 거기서 물품 수령하는 것 같아.”
박동현이 다가와 사회자의 안내를 해석해 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수겸은 박동현 뒤쪽에 주루룩 서 있는 일행들을 향해 간단한 감사 인사를 했다.
“저는 그냥 서 있었습니다만. 하하.”
최철민이 멋쩍은 웃음을 짓는 와중에 경매 주최 측 직원이 수겸에게 다가왔다.
“물품 수령을 위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워낙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자리를 이동하게 해 드렸습니다.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원은 극도로 공손한 자세로 수겸에게 말했다.
역시나 박동현이 옆에서 달라붙어서 통역을 해 주었다.
“바로 이동하실까요? 보니까 제 앞에 낙찰받은 사람들도 들어가는 것 같네요.”
수겸은 무대 옆에 있는 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안내 직원이 앞장을 섰고, 그 뒤로 수겸, 박동현, 동철, 최철민 순으로 걷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마자 이어지는 복도.
긴 복도 중간중간 옆으로 빠지는 통로가 있었고, 복도의 끝에는 다시 문이 있었다.
‘저기가 사무실인가?’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수겸의 생각대로 제일 끝쪽 방이 맞았는지 직원은 손짓으로 방향을 안내했다.
최철민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좌, 우, 뒤를 살폈다.
동철 역시 한껏 긴장한 상태.
둘의 긴장감이 수겸에게까지 전해져 절로 손에 땀이 베어 나왔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밖에서 대기할 테니 편히 다녀오시길.”
철컥―
안내 직원이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는 수겸이 들어갈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방 안에서 수겸을 맞이한 사람은 포마드 스타일로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한 남자였다.
“아, 오셨군요. 우선 낙찰 축하드립니다. 하하.”
“됐고, 어서 물건부터 보여 주세요. 입금은 바로 가능하니까요.”
마음이 급한 수겸은 1초라도 거래를 빨리 끝내려고 했다.
“왜 그렇게 서두르십니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걸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몸보신으로 드실 만한 나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박동현은 일부러 본인이 해석하지 않고, 말한 그대로를 수겸에게 전했다.
“실례니까 그만 물어보세요. 그냥 물건이나 팔면 됐지.”
이쯤 되니 수겸도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사족이 너무 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군요. 강수겸 씨. 우리 중국의 약초를 당신의 잘난 연금술에 쓰려고 하나 보네요.”
“응?”
아무리 중국어를 모르는 수겸이더라도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발음하는 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쾅!
수겸 일행이 들어왔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커억.”
문 앞에 서 있던 최철민이 등 뒤에서 벌컥 열린 문에 밀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철민 씨!”
“사장님. 어서 제 뒤로.”
동철이 다급한 목소리로 수겸을 불렀다.
동철은 그사이 바로 앞에 있던 박동현을 끌어당겨 모서리 구석으로 거의 내동댕이치듯 거칠게 밀었다.
수겸은 방금 전까지 대화를 하고 있던 사내 앞에 있던 가방을 낚아채려 했다.
“너무 욕심이 과해요. 이건 우리 중국의 것. 당신들 나라를 위해 제공할 수 없습니다.”
사내, 중국 공안부 소속 장치엔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X발. 이게 무슨 짓이야!”
화가 난 수겸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동철이 있는 쪽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들어온 공안 소속 무리는 다섯. 그 외에도 문밖에도 대기 중인지 알 수 없는 중국어가 계속해서 들렸다.
“동철 씨. 가지고 있죠?”
“예. 바로 탈출하겠습니다.”
“형도 지금 드세요.”
아직 바닥에 엎드려 있는 최철민을 제외하고 셋은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환약을 곧바로 입에 털어 넣었다.
“개X끼들아. 덤벼.”
동철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건 언어라지만, 뉘앙스로도 상대방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동철의 도발에 공안들이 덤벼 오자 동철 역시 한 발자국 크게 앞으로 발을 내디뎌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쾅!
지금 동철의 주먹은 강철보다도 단단해진 상태.
인간의 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경도였다.
딱 한 방에 한 명이 쓰러졌다.
수겸은 문 쪽을 쳐다봤다.
타다닥. 퍽. 퍽!
어느새 정신을 차린 최철민이 동철과는 다른 스타일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벽을 등지고 싸우고 있어서 포위당하는 건 피했지만, 일행과 떨어져 있다는 것이 부담인 모양이었다.
최철민의 표정에서 조급함이 보였다.
최철민은 마침내 한 명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고 그사이 동철의 옆으로 다가왔다.
“미리 준비해서 다행입니다. 제가 시약은 처음 써 보는데, 효과가 엄청 나군요. 이 정도 주먹질이면 평소라면 주먹을 쥐고 있기도 힘들 텐데 말이죠.”
최철민이 주먹을 굳게 쥐었다.
“뭉개 버려!”
공안부 누군가의 외침으로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다행히 재빨리 구석으로 달라붙어 정면에서 덤비는 놈들만 상대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쿵. 쿵.
한 명이 쓰러지면 다시 한 명이 덤볐다.
한 명씩 상대하면 된다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상대가 추가된다는 것. 최철민과 동철이 상대를 제압하는 속도보다 상대가 방 안에 투입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의 표본.
게다가 수겸과 박동현은 일평생 제대로 된 싸움을 해 본 적도 없는 비전투 인력.
짐을 두 명이나 달고 싸우는 상황에 동철은 점점 열세에 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당신이 만드는 시약도 몰랐을 것 같나요?”
장치엔은 책상 위에 걸터앉아서 수겸을 쳐다봤다.
“당신의 연금술의 첫 번째 약점은 바로 시간이죠. 길게 잡아도 30분만 우리가 잡아 두면 그만이죠.”
수겸이 못 알아듣는 걸 뻔히 아는데도 장치엔은 계속해서 말했다.
“두 번째 약점은 그래 봐야 두 팔 달린 사람이라는 점. 인해전술에는 장사 없죠.”
그건 승자의 미소였다.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내 손바닥 안이라는 듯한 표정.
“크으.”
그 순간 수겸은 동철의 등 뒤에 숨어 장치엔의 면상을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다들 디톡시를.”
수겸이 이를 꽉 깨문 채 말했다.
수겸은 상의 안쪽에 숨겨 둔 작은 유리병 하나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이내 퍼지는 새하얀 연기.
‘이번이 두 번째인가?’
수겸이 사용한 약물은 근육 경직제. 곧바로 반응이 시작됐다.
“헉. 다리가 안 움직여.”
“다들 숨 쉬지 마!”
저마다 생각나는 대로 대처법을 외쳤지만, 유리병이 깨진 시점에 이미 노출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이에요. 이 사이에 탈출을!”
그제야 수겸이 기회를 보다가 소리쳤다.
근육 경직제는 사용 시점에 가장 강한 효과가 나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졌다.
‘5분이다. 5분 뒤부터 새롭게 노출되는 사람은 경직 정도가 떨어질 테니까.’
처음부터 노출된 사람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었다가 서서히 풀리는 반면, 시간이 지난 후 노출된 사람은 경직의 정도가 애초에 낮았다.
수겸은 곧바로 장치엔을 향해 다가갔다.
장치엔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 버린 상태였다. 그야말로 기괴한 형상.
수겸은 장치엔 옆에 있던 가방을 열어 안에 있는 용염삼을 확인했다.
“물건 확인했습니다. 바로 나가시죠. 문밖에 사람들 조심하세요.”
수겸이 말하기도 전에 최철민은 이미 밖을 살펴보고 있었다.
“복도 조용합니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최철민의 계산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정부 요원들.
이대로 밖으로만 나가면 분명히 그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겸과 일행은 최철민을 따라 이내 처음 들어왔던 문으로 달렸다.
팍!
선두의 최철민이 복도를 거꾸로 빠져나와 제일 처음의 문을 부술 듯이 세게 밀었다.
그렇지만 열리지 않는 문.
“잠겼어!”
“제가 해 보겠습니다.”
동철이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말했다.
아직은 스토니의 효과로 온몸이 돌덩이인 상태에서 동철은 있는 힘껏 달리다가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턱!
막힌 소리가 열렸다.
나무 문이었으면 절대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 터.
“쇠라도 심어 놓은 것 같은데요. 어쩌죠.”
수겸이 무언가 쓸 만한 게 없나 싶어 두리번거리는 사이 복도 옆으로 나 있던 통로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그림을 그려 둔 것 같아요. 밖으로만 나가면 되는데. 이놈들 제대로 판을 짰어요. 통신마저 막아 둔 걸 보니.”
최철민이 어느 순간 먹통이 되어 버린 휴대폰을 신경질적으로 몇 번 누르다 이내 다시 집어넣었다.
“더 준비를 많이 해야 했나요?”
“…….”
수겸의 말에 모두가 답이 없었다.
그리고 키가 2m는 족히 넘는 사내가 일단의 무리 사이를 뚫고 걸어 나왔다.
“장치엔 말을 듣길 잘했군. 정말로 그걸 뚫고 나오다니.”
거구의 남자, 리하오란은 박수를 쳤다.
짝짝―
긴 복도에 오로지 리하오란의 박수 소리만 울렸다.
“장난은 여기까지. 강수겸. 이제 우리랑 이야기를 좀 하자.”
수겸이 리하오란을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