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91
91화
복도 옆쪽으로 난 통로로 끌려가니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어떻게 된 구조인지 모르겠어. 경매를 진행한 곳은 2층. 거기엔 분명 올라가는 계단은 없었는데.’
수겸의 생각대로 이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가는 건 무대 뒤쪽 통로로 가는 방법뿐.
의심 없이 안에서 보면 2층이 전부일 것이라 착각하게 되는 구조였다.
툭.
멈칫거리는 수겸을 등 뒤에서 리하오란이 거칠게 밀었다.
“허튼짓할 생각하지 마.”
“수겸아. 일단은 따라가자. 말투가 엄청 격앙되어 있어.”
박동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수겸에게 말했다.
둘의 뒤에는 동철과 최철민이 두 손을 포박당한 채 끌려 오고 있었다.
“형, 죄송해요. 어떻게든 해결해 볼게요.”
“아니야. 여기에 네 책임이 어딨겠어.”
그렇지만 박동현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위로 올라간 다음엔 공안들은 수겸과 일행을 분리시켜 철문에 자물쇠가 달린 방 안에 격리를 시켰다.
“이러면 내 말은 어떻게 알아들으려고?”
그동안 통역을 해 준 박동현마저 옆 방에 함께 넣어 버렸기에 수겸이 물었다.
“내가 하면 되지.”
거구의 사내 리하오란이 허리를 숙인 채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리하오란의 한국어는 유창한 수준은 아니지만, 수겸과 대화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너 한국말 할 줄 아냐? 근데 왜 숨겼어?”
“그래야 이동하면서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아까 그랬지? 여기에 네 잘못은 없다고.”
리하오란은 수겸이 박동현과 나누었던 대화도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야. 전부 네 책임이야. 너 때문에 네 친구들이 저런 수모를 당하는 거라고. 하하. 알겠어?”
“이게 왜 내 책임이냐. 너희들 때문이지. 안 그래?”
“뭐, 어찌 됐던 네가 여기 끌려온 이유가 궁금하지?”
리하오란은 의자를 끌어당겨 수겸의 앞에 앉았다.
“앞으로 딱 3년이다. 3년만 우리 중국을 위해 일해라. 협조만 잘해 준다면 그사이 지내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도록 해 주겠다. 원한다면 귀화를 선택해도 좋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지게 해 주겠다.”
리하오란이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수겸에게 제안했다.
“하! 이거 참 신박하네. 이 짓을 해 놓고 너희를 위해 일을 하라고? 너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냐?”
수겸은 어이가 없었다.
“아, 내 한국어에 문제가 있나 보군. 난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야. 음… 무슨 단어가 좋을까? 그렇지. 명령. 그래, 명령이라는 단어가 맞겠네.”
리하오란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을 하다가 답을 내고는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새끼. 너, 내가 만든 약을 먹을 수 있겠어? 나를 믿을 수 있겠냐고.”
“괜찮아. 사형수한테 실험을 하면 되니까. 우리가 원하던 효과가 나오지 않으면 네 친구들이 아파지겠지. 손가락, 발가락이 한 마디씩 짧아질지도 몰라. 한 사람의 손가락은 총 28개 마디. 발까지 생각하면 엄청 많겠지? 게다가 세 명이니까 우리가 3년 동안 지낼 만큼은 될 것 같은데?”
“…….”
수겸은 잔혹한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선은 힐링 포션이라고 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철컥―
그때 철문을 열고 장치엔이 냅다 뛰어와 수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개새끼. 죽여 버리겠어!”
마비가 풀리자마자 뛰어온 장치엔은 잔뜩 흥분해 얼굴까지 시뻘게진 상태였다.
“진정해라. 앞으로 써먹을 일이 많은 놈이니까.”
리하오란이 장치엔의 팔을 덥석 잡으며 말렸다.
“너까지 왔냐? 이제 다 왔어?”
수겸이 팔로 입가를 쓱 닦으며 일어섰다.
“아직 태도가 비협조적이군.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눈빛부터 자세까지. 앉아!”
리하오란은 수겸의 다리를 걷어차고는 의자를 가리켰다.
“크흡.”
무릎 쪽을 걷어차여 순간 다리가 풀릴 뻔했지만 수겸은 버텼다.
“안 되겠군. 네 친구 중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본보기가 필요하긴 하겠네.”
리하오란이 천장에 달린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튕겨서 사인을 보냈다.
잠시 잠깐 시선이 수겸이 아닌 카메라로 쏠린 사이.
그때 수겸이 목걸이 브로치를 매만졌다.
‘형태 변환.’
수겸이 경매장을 찾기 전날 밤 방 안에서 씨름하던 것.
수겸이 준비한 건 동전 크기의 얇은 원판 두 개와 콩알보다도 작은 시약.
수겸은 형태 변환 마법진을 활용해 두 원판을 작은 공간만 비워 둔 채 붙였다.
그리고 시약을 넣은 후에 다시 빈틈없이 붙였다.
마지막 단계는 다시 시약을 빼낼 때를 대비해 형태 변환 마법진 자체를 브로치 위에 새기는 것.
수겸은 간밤에 작업한 대로 브로치를 만진 채 마나를 불어 넣었다.
장치엔과 리하오란은 갑자기 터져 나온 푸른빛에 순간 당황했다.
수겸이 마법진을 발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
그사이에 반응을 할 수는 없었다.
톡.
수겸의 손 위에 짙은 밤하늘처럼 새까만 구슬이 떨어졌다.
수겸은 새까만 구슬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비볐다.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비비면서 마나를 입힌다는 느낌.’
수겸이 만들어 낸 시약은.
마나와 접촉함으로써 효과가 나타나고, 하독 방식은 피부 접촉이다.]
수겸이 불어넣은 마나로 효과가 발동되었기에 수겸만은 완전 면역 상태가 되는 독약이었다.
수겸은 작업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장치엔의 목 뒷덜미를 덥석 잡은 후, 뒷걸음질 치던 리하오란의 손을 낚아챘다.
“아무것도 안 보여.”
“리하오란! 어딨어?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순식간에 장님이 된 둘은 꽥꽥 비명을 질러 대며 공포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수겸은 문 옆에 서서 누군가 들이닥치는 걸 대기했다.
탁―
문이 확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수겸은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제일 먼저 들어오던 사람이 곧바로 방향 감각을 상실해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부터 장내는 개판이 되었다.
자기는 같은 편이라고 소리를 치고, 조심하라는 말을 아무리 해도 중독된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순식간에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 당황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것이 분명한 공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겸은 그로 인해 생긴 틈을 노렸다.
동료가 내지르는 주먹을 피하는 사이 빈틈이 생기는 즉시 수겸이 달려들었다.
중독된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수겸이 행동하기는 점점 더 쉬워졌다.
수겸이 납치되어 끌려온 3층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형! 동현이 형! 동철! 어딨어요?”
수겸이 소리쳤다.
“여기! 우리 다 같이 있어!”
박동현이 수겸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해 왔다.
철컥.
다행히도 박동현 무리를 가둔 공간은 걸쇠로만 잠겨 있을 뿐 자물쇠가 있진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너는 괜찮아?”
박동현이 수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저한테 오지 마세요. 위험해요. 일단 빠져나가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동철이었다.
동철은 예전에 보았던 석상처럼 굳은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동철의 마음속에서 공포를 넘어서 경외로움이 샘솟았다.
“수겸 씨. 이 사람들은…….”
제일 격렬하게 저항하던 최철민은 아직도 회복이 덜 된 건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상태였다.
“설명은 나중에요. 지금은 탈출해야 해요. 출발합시다. 동철 씨, 지금은 제가 먼저 갈 테니까 철민 씨를 챙겨 주세요.”
중간 이후부터는 되레 공안들이 수겸을 피하는 상황이 되었다.
수겸이 지나온 길에는 좀비처럼 허우적거리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포에 짓눌린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면 누구도 섣불리 덤빌 수 없다.
그리고 드디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 다다르고, 수겸은 거침없이 길을 뚫었다.
‘이제 더 이상 가진 것도 없는데, 밑에 놈들이 많으면 어쩌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수겸은 걱정했다.
“강수겸 씨!”
2층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 섰는데 그때 수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희 요원들이에요!”
여전히 축 늘어져 동철에게 기대어 있는 최철민이 말했다.
수겸이 문을 벌컥 열었다.
“여, 여기요!”
“찾았다. 모두 위로 올라와!”
수겸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이제야 오세요. 이럴 거면 뭣 하러 같이 왔나요.”
“죄송합니다. 중국 공안 측에서 저희 국정원 요원을 찾아내 별것도 아닌 이유로 체포하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중국은 허투루 계획을 짠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수겸과 함께 들어온 국정원 요원들에 대해서도 미리 파악하고 작전 당일에 잡아 두는 치밀함까지.
다만 간과한 것은 수겸의 연금술이었다.
‘덕분에 살았지만.’
“일단 떠나시죠.”
“아, 안 돼요! 제 물건이… 위에 있어요.”
수겸은 놓고 나온 용염삼을 떠올렸다.
“위험합니다. 일단은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 * *
쉬고 싶은 생각이 한가득이었지만, 느긋하게 호텔에 들어가 쉴 틈은 없었다.
국정원 요원들은 그 길로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저희 출국을 막으면 어쩌죠?”
“그렇게까진 못할 겁니다. 본인들이 한 짓이 있으니까요.”
국정원 요원이 좌, 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걸 생각하는 놈들이 그런 짓을 했을까요?”
“수겸 씨가 탈출을 했으니까요. 그대로 잡혔다면 무슨 짓을 했는지 세상이 알 수 없었겠지만, 수겸 씨가 탈출했으니 대놓고 행동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제는 국가 단위의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하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국정원으로서는 면목이 없는 일이었다.
다만 수겸은 중국에 온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나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탈출한 건 다행이지만.’
그때 수겸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 CIA에서 왔습니다. 찰리라고 불러 주세요.”
찰리는 수겸에게 악수를 청했다.
“경매가 중요한 것 같아 때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대화를 청하려 했지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더군요.”
찰리가 통역을 부탁한다는 듯 수겸 옆에 서 있는 국정원 요원을 쳐다봤다.
“알아듣습니다. 능숙하진 못해도 영어는 조금 하거든요.”
예상외로 수겸이 영어로 답을 하자 찰리는 놀란 눈치였다.
“오! 좋네요. 저는 수겸 씨와 친구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앞으로 서로 도울 일이 많지 않을까 해서요.”
“그렇습니까? 제가 워낙 험한 일을 겪어서 그런지 한국이 아닌 굳이 중국에서 만나려 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수겸의 말투는 다소 공격적이었다.
“한국 정부에서 수겸 씨를 만나게 두질 않거든요. 수겸 씨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수겸 씨가 타 국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막고 있습니다. 그나마 해외니까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고 나서 수겸이 옆에 있던 국정원 요원을 보니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이 보였다.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득이 될 부분이 있나요? 일방적으로 부탁하는 건 아니고요?”
찰리가 생각할 때 미국 정부를 상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이렇게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생각하기 나름이죠. 오늘은 우리의 첫 만남으로 남겨 두고 다음을 또 기약할게요. 눈빛이 너무 따갑네요.”
“네, 그럼 이만. 이제 안면을 텄으니 할 말 있으면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 주세요. 우리는 친구니까요.”
수겸이 웃으며 틈을 열어 주자, 찰리는 빙긋 웃었다.
“친구, 좋네요. 그러면 이건 친구가 된 기념으로 주는 선물로 받아 주세요.”
찰리가 전해 준 건 손가방 하나였다.
“이건!”
그건 수겸이 놓고 온, 수겸이 중국에 온 이유였던 용염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