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92
92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제일 크게 다친 건 최철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동철 역시 무시하지 못할 만큼 전신에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고, 박동현 역시 자잘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수겸 역시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를 만큼 고되고, 상처를 입었지만 일행을 챙길 의무감에 여전히 편히 쉴 수가 없었다.
“힐링 포션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딱 두 병뿐이라…….”
승무원이 수겸이 요청한 대로 힐링 포션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돌아가는 동안은 충분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국적기에는 의무 사항으로 힐링 포션을 구비하도록 규정이 생기면서 비행기 안에서 간절히 필요했던 힐링 포션을 구할 수 있었다.
‘한 병은 철민 씨한테 다 쓰고, 나머지는 나눠서 써야겠다.’
어차피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가는 데는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수겸은 최철민을 치료하면서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너희는 후회할 거야. 이 순간을 말이야. 실수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그렇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거야.’
수겸의 눈에 독기가 서슬 퍼렇게 흘렀다.
* * *
미리 연락을 취한 덕에 공항에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건 일사천리였다.
“저는 형이랑 입원하는 것만 보고 갈게요.”
수겸이 박동현에게 말했다.
“왜? 너도 많이 다쳤잖아. 검사라도 받아야지.”
“이걸 들고 무슨 검사를 받겠어요. 불안해서 그냥 집에 갈래요.”
수겸이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보였다.
“그거야 부탁하면 되지. 여기 중국 아니고, 대한민국이야. 걱정은 하지 말고 맡기고 같이 가자.”
박동현이 재차 만류했다.
“아니에요. 저는 집에서 힐링 포션으로 치료하면 될 정도예요. 그리고 빨리 작업을 시작하고 싶어서 그래요.”
수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계획했던 마나 흡입체를 만들 생각뿐이었다.
“말린다고 해서 네가 들을 것 같진 않고. 알겠어. 대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병원으로 와. 알겠어?”
박동현이 수겸의 손을 잡았다.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저도 아픈 건 되게 싫어하거든요.”
다음 날.
박동현과 동철의 병문안을 위해 병원을 찾은 수겸이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 한국 관광객, 공안 당국의 불시 검문에 불응하고 달아나…….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현장에 가득한 현장 사진으로 말미암아 폭력까지 행사한 것으로 보여…….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수겸에 관한 기사가 나온 것이다.
“치사한 놈들이 자기들이 먼저 사람 납치하고, 협박한 건 쏙 빼놓고 적었네? 이거 나도 기자 회견이라도 한 번 해야 하나? 아오, 녹음이나 녹화를 못 한 게 천추의 한이다. 한이야!”
수겸은 박동현이 찾아 준 기사를 읽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니까! 내가 오죽 억울하면 너한테 보내겠니.”
“다음에 만나면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의 입을 꼭 찢어 버릴 겁니다. 지금 심정은 중국인이라고 하면 누가 톡 치기만 해도 곧바로 집어 던질 것 같아요.”
“동철 씨는 진짜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진짜로 그러면 안 되는 것 알죠? 우리도 같은 사람이 될 순 없으니까요.”
박동현의 옆자리에 있던 동철 역시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가 문을 쳐다봤다.
병원에서 푹 쉬었을 텐데도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최철민이었다.
“수겸 씨 오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여기 인사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새 오셨네요. 몸은 어떠세요?”
“힐링 포션은 처음 써 봤는데, 그거 물건이긴 하더군요. 최소 몇 군데는 골절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멀쩡합니다.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문제이지만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이거는 뭐 다른 방법 없나요?”
수겸이 기사가 띄워진 휴대폰 화면을 최철민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벌써 보셨네요. 기사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에 정식 항의를 넣은 상태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니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가 기사를 멋대로 써냈고, 그걸 수습하려고 꾸민 일이라고 했어요.”
“되게 뻔뻔하네요. 원래도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진 않았는데, 이제 중국 쪽에는 완전 정이 떨어졌어요.”
수겸이 미간을 찌푸렸다.
“수겸아, 혹시 중국 쪽에서 너한테 무슨 부탁을 하면 절대 들어주면 안 된다. 알겠지?”
평소 수겸을 말리거나 중재하는 역할을 했던 박동현까지도 악을 쓰며 말했다.
“당연하죠. 절대로요. 아! 철민 씨 그 CIA 요원, 찰리는요? 바로 돌아갔다던가요?”
“네. 그 길로 바로 귀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외국과 일을 한다면 상대 나라는 정해졌네요. 미국이요.”
“찰리 그 친구는 제 역할을 다 한 셈이군요.”
* * *
마나 흡입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수겸이 배운 연금술은 물질 변환과 시약 제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금속을 가지고 순수한 금을 만드는 것은 물질 변환이고, 어웨이큰이나 힐링 포션을 만드는 건 시약 제조의 영역.
지금까지는 이들을 각각 활용했다면, 이제 하고자 하는 작업은 두 개의 분야를 동시에 활용하는 것.
‘세세한 부분은 몇 번이고 설명을 봤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집에 오는 차 안에서도 수겸의 눈동자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마나 흡입체에 대한 내용을 읽고, 읽고 또 읽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A급 이상 품질의 약초, 순수 광석이라고 했지. 약초는 생고생을 해 가면서 구했으니까.”
수겸은 신줏단지 모시듯 고이 모셔 놓은 용염삼을 쳐다봤다.
이제 남은 건 순수 광석.
‘순수 광석은 너무 쉽지.’
탄소로만 이루어져서 보석 중에 유일하게 순수 원소 결정체인 것.
“다이아몬드.”
수겸이 찾아낸 해답은 다이아몬드였다. 그리고 돈만 있다면 다이아몬드는 너무 구하기 쉬웠다.
그리고 수겸에게 더 이상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시간 뒤.
수겸은 테이블 위에 놓인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용염삼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외에 준비한 건 스크롤과 마나 잉크.
“이제 시작해 볼까?”
수겸은 목을 빙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는 준비를 마쳤다.
마나 흡입체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특수한 가공을 마친 약초 성분을 순수 광석에 조금씩 흡입시키는 것.
결국 메인은 약초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가였다.
“마법진을 이용해서 약초의 마나 친화력을 더 끌어 올리는 것이 첫 단계. 그다음에 약초가 품고 있는 마나를 이끌어 내고 형태 변환으로 가루 형태로 바꾸라고 했지. 일단 여기까지 해 보자.”
수겸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효율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스크롤 위에 마법진을 그렸다.
힐링 포션을 만들 때 쓰는 마법진보다는 두 배는 더 복잡한 도식이었다.
마법진을 그려 내는 데에만 30분이 걸리고 간신히 첫 단계를 시작했다.
휘이익―
마법진이 가동되고 수겸의 집 안에 퍼져 있는 마나가 마법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겸의 앞머리가 흩날려 시야를 방해했지만, 수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진에만 집중했다.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힐링 포션도 먹고, 마나 포션도 먹고 그야말로 약발로 버텨 가며 수겸은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중 제일 힘든 건 가공이 끝난 약초 물을 다이아몬드에 흡수시킬 때였다.
‘딱 3분 40초 동안만 푹 잠기게 넣었다가 빼라는 건 도대체 뭐야.’
혹시나 악영향이 있을까 봐 1초도 틀리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타이머를 보면서 작업하는 건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 지금 수겸의 손에는 초록빛을 은은하게 빛내는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완성이다!”
완성된 마나 흡입체를 보면 일반인들 눈에는 에메랄드빛이 나는 다이아몬드와 다름이 없었지만, 수겸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수겸에게는 분명히 보였다.
은은하게 흘러 들어가는 마나의 길이.
흡입체가 마나를 끌어당기는 동안 분명히 주변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이걸 이제 약초밭에 두면 주변에 마나 양이 늘어나니까 자연스럽게 축적 속도가 빨라진다 이거지. 그러다가 흡입체에 마나가 가득 차면 마법진으로 추출을 하면 되고.”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수겸이 마법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마법을 할 줄 알게 되면 이렇게 모인 마나를 또 다른 곳에 전이시켜 재활용할 수 있겠지만, 수겸으로서는 마법진으로 마나 소멸을 시키는 수밖에 없는 것이 아까운 점.
‘어쩔 수 없지.’
“이걸 어디에다가 설치해야 하지? 베스트는 인삼밭에다가 하는 건데 치안이 영 불안하단 말이지?”
‘그러면 다른 곳? 차라리 눈앞에서 지켜보게 집 안에 둘까?’
그렇지만 그건 안전한 대신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약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집이 안전하다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이고.’
수겸은 고민 끝에 원래 계획대로 박동현이 있는 이천 땅에 첫 마나 흡입체를 두기로 했다.
“보안은 어쩐다. 혼자 해결하기에는 애매한데.”
그렇지만 수겸은 국가에서 보호하는 인재. 도움을 청할 곳은 차고도 넘쳤다.
“인맥은 써먹어야 제맛이지.”
* * *
‘진작 왜 이런 걸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엄청 위험했는데.’
병원에서 퇴원한 박동현이 완전히 봉쇄된 밭을 보면서 한 생각이다.
닿는 즉시 감전이 되는 전기 펜스, 그와 동시에 출동하는 사설 경비 업체.
24시간 녹화되고 있는 CCTV까지 있어서 어느 누구도 박동현이 관리하고 있는 밭은 넘보지 않을 터였다.
“내가 따로 해야 할 건 없고?”
박동현이 수겸에게 물었다.
“예. 특별히 하실 건 없고, 딱 지금처럼만 부탁드려요. 모든 게 완벽합니다.”
수겸은 문득 밭의 전경을 살폈다.
“처음엔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 곧 마무리가 되겠네요. 언제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해서 직접 쓰겠냐고 투덜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수확의 시기네요.”
밭에 심은 약초들만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수겸이 연금술을 하면서 목표로 했던 마나 흡입체의 완성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이제 흡입체로 우리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고품질의 인삼이 자라나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거예요.”
수겸은 박동현에게 말하는 것인지,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떤 희망?”
박동현도 밭을 응시하며 물었다.
“만드는 방법만 알 뿐, 재료가 없어서 만들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만약 그중에 딱 한 종류라도 실제로 만들어서 쓸 수 있게 되면, 설사 그게 1년에 딱 한 개를 만들 수 있더라도 아예 희망이 없는 것보다 좋은 것 아닐까요?”
“이게 끝이 아니었구나.”
박동현은 힐링 포션, 어웨이큰처럼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럼요. 이제 시작이에요. 아니다. 시작은 좀 오버인 것 같고, 중간쯤은 왔다고 하시죠. 하하하.”
분위기를 잡다가 수겸이 이내 굳은 얼굴을 풀고 웃음을 지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기대가 된다. 그리고 행복해.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말이야.”
박동현의 말에도 수겸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수겸이 박동현을 쳐다봤다.
“형.”
“응?”
밭을 살피던 박동현이 수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들 도와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 걸 알지만, 누구보다 형에게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수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해가 산등성이로 넘어가며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수겸은 아무래도 감성에 취한 듯했다.
“뭐야. 닭살 돋게 왜 그래. 나도 네 덕분에 하루하루 재밌게 보내고 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
“하하. 진짜예요.”
“아! 너 나보고 열심히 일하라고 돌려 말하는 거구나!”
박동현은 수겸을 너무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