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93
93화
한 아이가 개천가를 따라 킥보드를 타고 있었다.
머리칼이 휘날릴 만큼 신이 나서 달리던 아이는 문득 개천가에서 물고기 사냥에 열중하고 있는 새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엄마! 저건 학이야?”
그러고 보니 학처럼 새하얀 자태에 긴 목이 인상적인 새였다.
“학은 아닐 것 같은데, 비슷하긴 하다. 그러게, 엄마도 새 이름은 잘 모르겠네.”
아이는 이내 관심이 없어졌는지 엄마의 대답도 듣지 않고, 다시 달리기에 집중했다.
그러다 이번엔 자전거 도로에 난 꽃이 궁금해졌다.
“엄마! 이 꽃은 코스모스야?”
고개를 휙 돌려 질문을 한 아이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어! 지수야! 앞을 봐야 해!”
전방 주시 의무를 간과한 아이는 결국 울퉁불퉁한 길에 걸려 넘어졌다.
“아얏! 흐어억. 엄마……. 나 피 나는 것 같아.”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애타게 엄마를 불렀다.
“괜찮아? 그러게, 킥보드를 탈 때는 앞을 잘 보라고 했지!”
걱정스러운 마음과는 정반대로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이의 엄마는 본인 다리가 아픈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빨리 집에 가자. 엄마가 이번에 산 연고 바르면 금방 나을 거야.”
엄마는 얼마 전 약국에서 구한 연고 버전의 힐링 포션을 떠올렸다.
‘물량이 풀린 덕에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걸 쓰면 흉터도 안 남는다고 했으니까.’
다행이었다.
엄마는 한 손에는 킥보드를 쥐고, 한 손은 아이의 손을 맞잡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다리를 다친 아이는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너, 그 정도는 아니잖아. 엄살 그만 부려.”
집에 도착한 뒤 곧바로 흐르는 물로 상처 부분의 모래를 씻어 내고, 소독약을 발랐다.
그리고 오늘의 아이템, 힐링 포션 연고를 새끼손톱의 절반만큼 짜서 아이의 상처 부위에 곱게 펴 발랐다.
“지수야. 딱 10분만 있으면 전부 괜찮아질 거야.”
“알겠어!”
그새 진정한 아이는 시계를 쳐다봤다.
과연 효과가 뛰어난 약인 듯했다. 자세히 보니 상처 부위가 회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이거 원래 조금 아픈 거지?”
“응? 지금 아프니? 그런 이야기는 못 들은 것 같은데.”
“처음엔 간지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따가워. 이거 10분 참아야 해?”
아이가 다시 시계를 쳐다봤지만, 시계의 분침은 겨우 두 칸 움직였다.
“쓸린 상처가 낫느라 그런가 보다. 조금만 참아 봐. 알겠지?”
“응. 알겠어.”
그리고 다시 1분.
아이가 엄마의 팔 소매를 꼭 쥐었다. 손에 힘을 너무 꽉 쥐어서 새하얗게 될 지경.
“지수야?”
“음…….”
엄마가 아이의 이마를 보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입고 있는 티셔츠의 등 부분은 땀으로 이미 축축하게 적은 상태.
“지수야!”
“엄마. 너무 아파. 아파.”
꾹 참고 있다가 못 참겠는지 통증을 호소했다. 말로 내뱉고 나니 통증이 더욱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이상해.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119! 119를 불러야 해.”
엄마는 허둥지둥 휴대폰을 찾았다.
* * *
중국행을 마치고, 마나 흡입체까지 만든 수겸은 아주 오랜만에 평화를 만끽했다.
“민환아, 해야 할 것만 하고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이 원래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냐?”
수겸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 너 예전에 편의점 할 때? 그때도 해야 할 것만 하면 됐고, 아무런 일도 없지 않았냐. 예전 기억을 되살려 보자. 어때, 행복해?”
커피 머신으로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던 민환이 놀리는 듯한 말투로 되물었다.
“야! 그때 이야기는 선 넘는 거지. 어?”
“이 새끼야. 네가 지금 행복한 건 그냥 돈이 많아서 그래. 돈 없는데 아무런 일도 없으면 그게 바로 백수란 거다.”
“에라이. 재미없는 새끼. 근데 영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너 요새 책 읽냐. 논리가 탄탄하네.”
느긋하게 민환과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티격태격 싸우는 것. 그것 역시도 수겸이 평화로움을 느끼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때 수겸과 민환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수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느낌이 싸한데?’
수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이찬수, 민환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최하나였다.
“민환아.”
수겸이 민환을 불렀다.
* * *
대한제약의 본사.
수겸과 민환이 함께 회의실에 들어서자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일제히 둘을 쳐다봤다.
“크흠.”
안녕하시냐고 물어보기도 뭐한 상황이라 수겸은 헛기침으로 본인의 도착을 알리고는 곧바로 빈자리에 앉았다.
“수겸 씨도 오셨으니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대한제약 측에선 담당자인 이찬수와 최하나는 물론이고, 마케팅팀, 법무팀, 영업팀 등 거의 모든 팀에서 나온 상태였다.
수겸은 한가득 자리를 채운 사람들을 살폈다.
회의를 진행하는 건 이찬수였다.
“발생한 상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3일 동안 힐링 포션 연고 사용 후 부작용 발생 사례 224건, 디톡시 부작용 발생 160건입니다.”
이찬수가 날짜와 숫자가 배열된 자료 화면을 띄우며 이야기했다.
“간신히 기사는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그것도 한계입니다. 이제 곧 언론 보도가 쏟아질 겁니다.”
마케팅팀의 부가 설명이었다.
수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케팅팀의 설명대로 기사로는 아직 접하지 못했고, 이찬수가 전화로는 이런 상황이라고 설명하진 않았으니까.
“다음은 부작용 부분입니다. 힐링 포션의 경우는 상처 부위에 상처 소독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염증이 발생하는 것이 주요 증상입니다. 디톡시는 가볍게는 소화 장애, 심한 경우 구토, 어지럼증 증상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험은 없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노릇.
다음으로 보여 준 사진은 실제 사례였다.
찰과상으로 쓸린 상처에 누런 고름이 나오고 있었고, 상처 주변은 사진으로 봐도 부어 있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힐링 포션의 경우 심각한 점은 회복이 빠른 것처럼 부작용 진행 역시 급속도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제보에 의하면 분명히 상처 소독까지 완료했지만 연고를 바르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붓기 시작하고 고름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찬수의 목소리가 더욱 낮게 가라앉았다.
“치료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수겸이 질문을 했다.
“다행히 지속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외과적 방법은 필요 없고, 약제들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치료 기간도 일주일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마케팅팀 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품 생산 일자 확인은요?”
“피해자분들께 해당 제품 회수 진행 중입니다만, 현재 확인된 바에 따르면 3주 전 생산 제품부터 시작해 지난주에 생산한 것까지 있었습니다.”
몇 가지의 안건들이 오고 가고 우선 해야 할 일은 파악된 기간 내에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 전량 리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회수된 제품부터 시작해서 원인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최하나가 들고 온 노트에 열심히 적으며 말했다.
“제조 공정뿐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재료 운송부터 완성품 배송까지. A부터 Z까지 모든 과정을 살필 겁니다.”
이찬수가 마지막으로 조사 계획이 빼곡히 적힌 자료를 제시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내일 다시 대책 회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수겸과 민환은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수겸아, 우리가 만든 시약 잘못은 아니겠지?”
“당연하지. 내 연금술은 완벽해. 그럴 리가 없어.”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절대로. 생각을 해 봐. 우리 문제면 같은 날 만들어서 소방청에서 가져간 시약도 문제가 되어야지. 왜 대한제약에서 가공한 제품에서만 부작용이 생기겠어?”
“아! 맞네. 아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아까 보니까 다들 자기네들 잘못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묘하게 널 쳐다보던데.”
“아, 그냥 뒀지. 생각이 있다면 나한테 뒤집어씌우진 못할 테지만 혹시 모르잖아.”
“무서운 새끼.”
민환은 속이 음침한 수겸에게 질렸다는 듯 표정을 짓고는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수겸의 집.
수겸은 아르케 사무실로 나갈 생각은 꿈도 못 꾸고 집에서 칩거를 선택했다.
“사무실 앞은 아주 난장판일 거야. 그치?”
“그건 맞지.”
오늘도 역시나 룸메이트는 민환이었다.
“생각은 했지만, 진짜 시끄럽네. 어째 조용하다 했다. 내가 어제 뭐라고 했더라?”
“아무런 일도 없는 건 참 행복하다고?”
민환이 피식 웃었다.
“그거 진짜 행복한 일이었어. 이제 어때? 인정하냐?”
“어… 나도 진짜 아무런 일도 겪고 싶지 않아.”
“그래도 넌 중국 안 갔잖아. 난 중국도 갔어…….”
수겸은 지옥 같았던 중국행을 떠올렸다. 마치 모래가 씹히는 것처럼 더러운 기분이었다.
“미안.”
민환은 갑자기 전화라도 온 듯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겸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주제는 역시나 수겸에 관한 것.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는 이슈화시키는 것이 너무 쉬웠다.
수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이때다 싶었는지 연금술에 대한 안정성에 대해서 떠들었다.
부작용이 발생한 실제 이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
대한제약의 책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일단 연금술과 수겸을 까고 봤다.
– 과학계에서도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너, 나 할 것 없이 교차 검증을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100%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검증합니다.
수겸은 게스트로 나온 대학교 교수의 발언을 들었다.
– 연금술의 문제는 이러한 교차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혼자 알면 그건 항상 옳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거꾸로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는 거지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긴 한데 타이밍이 틀렸어요. 교수님.”
수겸은 소파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이 타이밍에 저런 발언을 한다는 건 일단 이슈에 편승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수겸은 들개가 떠올랐다.
조금의 빈틈이 보이기만 하면 금세 이빨을 드러내는 들개.
나보다 약해 보인다 싶으면 일단 물어뜯는 족속들. 그게 수겸이 보고 느끼는 언론의 모습이었다.
“지겹다. 지겨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도 지친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보여 주어도 사람들은 믿지 못했다.
이것만 해도 몇 번을 반복했던가.
“그래도 해야겠지. 연금술이 자리를 잡으려면.”
수겸은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TV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상태.
수겸은 이번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제조 과정과 운송 과정에서 사고가 생긴 거야. 제조 과정은 이미 시스템화가 된 걸로 아는데.’
수겸의 말대로 힐링 포션을 이용해 가공하는 과정은 이미 첨단 시설을 활용해 모든 것을 기계가 할 정도로 시스템화가 된 상태였다.
‘거기서 사고가 생길 수 있나? 그게 아니면 운송 과정에서? 차량 설비 문제는 어떻지. 아니야. 특별히 온도 관리를 할 필요도 없는 제품인데 그 외에는 설비 문제일 수는 없어.’
모든 생산 공정에 참여를 했던 수겸은 소파에 누운 자세로도 과정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수겸은 상황 하나씩을 가정하고, 유추하며 가능성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변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