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12
제112화
28. 호가호위 (2)
“중요한 건 이 안에 든 걸 언제 사용하느냐, 인데.”
검은 주머니에 든 내용물은 누각을 빠져나오며 이미 확인한 터였다. 송진처럼 꾸덕꾸덕한 액체를 말려 만든 반투명한 고체들이 들어 있었더랬지.
슬쩍 주변을 확인하니 아라진은 이강토를 상대하기 바빴다. 내게 관심이 돌아오기 전,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며 검은 주머니를 뒤집어 깠다.
울퉁불퉁한 돌멩이를 닮은 환약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읍환(嗚泣丸)(B)] [천극환(荐棘丸)(B+)] [염상환(炎上丸)(A)]공교롭게도 환약들은 아라진의 눈처럼 각각 적색, 황색, 청색이었다. 색깔만큼이나 효능도 제각기인 세 개의 환약은 잘만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았으나,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난감한 심정인 한편, 의구심도 들었다. 분명 의원들이 역병 치료제를 개발하던 중 나온 부산물이라고 들었는데. 도대체 어쩌다 이런 걸 만들게 된 건지.
‘시스템에서는 이걸 포션이 아니라 일반 아이템으로 분류했어. 그런 걸 보면 약제술이라기 보단 차라리 연금술의 영역…….’
[어머머, 가호. 어디서 또 그런 이상한 걸 주워 왔니? 아무거나 보면 안목 떨어진다고 내가 그랬잖아!]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시기적절하게 칼리아가 튀어나왔다. 일전에 상당히 무리해 자중하는 중임에도 이런 일에는 빠질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음, 애초에 이곳은 연금술이라는 개념이 없는 세계일 겁니다.”
[그래? 어쩐지 좀 엉터리 같더라. 발상은 기발하고 좋은데 아깝게 됐어, 정말!]명색에 A급도 끼어있건만 칼리아의 평가는 영 신통치 않았다. 사용한 재료도 상품이고, 특성도 잘 추출하였으나 발현 방식이 잘못되었단다.
[살짝만 틀었다면 진짜 재밌는 물건이 됐을 텐데. 이래서 기초가 중요하단 거야.]“그 정도입니까?”
[직접 확인해 보던가. 내가 볼 수 있는 건 너도 볼 수 있다는 뜻이거든.]포션이 아니라 아이템으로 취급되는 것이어서일까.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칼리아의 말대로 연금술 스킬이 없는 내게도 구조가 들여다보였다.
같은 사람이 만든 것인지 세 환약의 구조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었다.
‘전체적인 짜임새는 괜찮은 것 같은데.’
회로의 매듭을 모두 훑어볼 여유는 없었기에 빠르게 칼리아가 지적한 것과 관련 있는 부분만 훑었다. 과연 이 아이템에는 나조차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발현 방식과 재료의 특성이 전혀 조화되지 않네. 차라리 바깥으로 방출하게끔 했다면 이보단 더 나았을 거야.’
아무래도 ‘약’을 만든다는 목적에 집중하다 보니 생긴 문제점 같았다.
이 환약들에 사용된 재료들은 하나 같이 자기주장이 강했다. 그걸 인간의 몸 안에서 부작용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억누르다 보니 재료가 가진 장점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것이다.
“왜 아쉽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네요.”
[그치? 시야를 조금 넓게 가졌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뭐, 그것까지 완벽한 게 진정한 장인이겠지만.]“약이 아니라 공격용 아이템이었다면 정말 대단한 물건이 되었을, 아.”
[얘, 왜 말을 하다 말아?]터무니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가망이 있었다. 칼리아도 있겠다, 아라진의 방해만 없다면 정말로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칼리아, 제 능력으로 이 아이템의 회로를 수정할 수 있을까요?”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판도가 뒤집힐 거다.
‘결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환약들의 등급은 결코 낮은 게 아니야.’
특히 A급인 염상환. 가리개를 고쳤을 때처럼 이 녀석의 등급이 오른다면 S급도 무시하지 못하는 물건이 되리라.
[손을 못 댈 것도 없지. 근데 문제가 한 가지 있어.]“심각한 겁니까?”
[으응, 네 관점에 따라선?]둘째가라면 서러운 마이 페이스인 칼리아가 이런 반응이라니. 애매한 답변에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졌다. 침묵에서 이런 마음이 드러났는지 칼리아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에잇, 방금 한 말 취소! 엄청 심각하고 그런 일은 아니야.]“칼리아 당신이 문제라는 말을 꺼낸 시점에서 예삿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예?”
모노클에 깃든 것은 어디까지나 칼리아의 파편. 기억과 함께 심어 둔 마력이 모두 소모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평범한 모노클로 돌아간다. 언젠가 찾아올 후학을 위해 오랜 시간 마력을 축적해 왔지만, 인챈트의 결과를 억지로 뒤틀면서 생각 이상으로 소모되었단다.
[섭리를 내 편으로 비트는 건 몇 번을 해도 짜릿한 경험이니까 후회는 없어!]“전처럼 사라지거나 그러진 않는 거죠?”
[헤에, 가호 너 내가 없는 동안 많이 보고 싶었나 봐?]입을 꾹 다물었으나 그런다고 속내가 감춰지는 것은 아니었다. 늦게나마 부정할까도 생각했으나 그편이 더 우스울 것 같았다.
이강토와 아라진이 만드는 소음 사이에 때 아닌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아하하, 가호 네가 제발 떨어지라고 할 때까지 사라질 생각 없으니 안심하렴! 인간의 생은 그래 봤자 수십 년이잖니.]“……그래서 말씀하신 문제란 건 뭔가요?”
[여유분으로 남겨 둔 마력을 모조리 써 버렸지 뭐야. 그래서 이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게 힘들어졌어. 회로를 그려 준다거나, 결과에 개입한다거나 뭐 그런 거 말이야.]몇 번이고 끼어들었을 사람이 여태 조용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말하는데도 마력이 드니 최대한 말수를 줄이려고 했다고.
‘그런 것치곤 아까부터 상당히 떠들어 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지금 허락된 한계치로는…… 음, 중간중간 확인해 주는 정도이려나. 그래도 할 거니?]“예, 물론이죠.”
솔직히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올 순간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기에 금방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평생 주어진 답안만 받아먹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좋은 자세! 장인이라면 무릇 그래야지.]남은 것은 실행뿐. 환약을 쥐지 않은 손에 마지막으로 남은 안개 구슬을 불러내 으스러뜨렸다. 조금 트이나 싶었던 시야가 도로 희뿌옇게 변했다.
‘웬일로 이강토도 눈치 빠르게 굴어 주네.’
침소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기척을 감지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를 꾸미고 있단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어느 시점부터 이강토는 아라진을 나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칼리아와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높은 등급일수록 주변에 영향을 주지 않기는 어려운 법이었으니. 아라진은 천요궁이 부서지든 아니든 상관없는 우리와는 입장이 다를 테니 잠시간은 이강토도 상대할만할 거다.
“그래도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니 바로 시작하자.”
우선 가장 등급이 낮은 오읍환부터. 나머지 환약들은 인벤토리에 넣은 뒤, 맑은 청색의 환약을 손에 꾹 쥐었다.
아이템 설명에 따르면 본래 이 환은 섭취한 자에게 눈물을 쏟아 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아라진이 펑펑 우는 꼴도 볼 만 하겠지만 그런 걸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고칠 생각이니?]“환약을 폭약으로 바꿔볼까 합니다. 저자가 얌전히 저희가 내민 걸 먹어 줄 리도 없으니 말입니다.”
아슬아슬 합격점에 들긴 했는지 칼리아는 짧은 평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걸 만든 사람, 살아있긴 한 건가? 그렇다면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데.”
회로를 살피다 보니 절로 이 약을 만든 의원이 궁금해졌다. 세 환약에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환약을 ‘아이템’으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
사람을 치료하고, 기운을 북돋는 ‘약’의 관점에서는 평이 달라져야 마땅한 법. 회로 곳곳에서 의원이 얼마나 정성껏 재료를 다듬고, 조합하고, 또 연구하였는지가 선연히 드러났다.
“회로만 봐도 보통 꼼꼼한 사람이 아니었단 걸 알겠네.”
재기발랄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해 다스리는 칼리아와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그보다는 사려가 깊은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스승님이 나와 자신은 다른 유형의 장인이 될 말했던 것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갔다. 아마 같은 효과를 내는 물건을 만들더라도 이 의원과 칼리아는 전혀 다른 과정을 거치겠지.
“어찌 됐든 수고를 덜어서 다행이야.”
재료의 특성을 추출하고, 엮어 둔 모양새에선 작은 실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연륜의 영역인지라 내가 했더라면 이 정도 완성도는 나오지 않았으리라.
어찌나 깔끔하게 처리했는지 몇 군데만 고치면 될 듯했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이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도 모두 해내지 않았는가. 근래의 경험들로 덩치를 불린 자신감이 망설이지 말라며 등을 떠미는 듯했다.
가장 먼저 안전장치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지워 냈다. 부작용을 염려하여 상반되는 재료를 병용한 듯했으나 한 번에 폭발적인 힘을 내길 바라는 지금, 이런 것들은 모두 방해였다.
‘아, 배 위에서 본 유리 대포. 그것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시기 좋게 적절한 예제가 떠올랐다. 워낙에 우악스러웠던 회로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심 언저리, 추출한 특성을 발현하게끔 하는 부분으로 손을 옮겼다.
“힘을 응축시켰다가 한 번에 폭발시키려면…….”
균일하게 효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짜인 부분을 살짝 비틀어 특정 상황에서만 중심으로 힘이 역류하게끔 회로를 수정했다. 그러곤 중심부의 출력을 제어하는 회로를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무너뜨렸다.
확인을 위해 칼리아를 부르자 그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때와 달리 상기된 어조로 외쳤다.
[뭐야, 뭐야! 예측보다 더 재밌는 걸 만들었네?]“이대로 가도 되겠습니까?”
[기왕 하는 거 좀 더 무모한 게 좋지 않겠어? 거기 좀 더 깎아 봐!]“여기서 더요?”
여기서 더 불안정해지면 환약의 형태 자체가 부스러질 수도 있는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으나 칼리아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다시 손을 댔다.
작업을 마쳤을 무렵에는 오읍환의 외양이 처음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아예 다른 아이템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환약의 바깥 부분은 색을 모두 빼앗겨 투명해졌다. 반대급부로 중앙부의 색은 진해져 짙은 푸른색 기운이 동그랗게 뭉쳐 있었다.
왜인지 촉감도 말랑말랑해져서 무의식적으로 주무르려던 찰나, 팝업이 튀어 올랐다.
[‘오읍환(B)’에 적용할 효과를 선택하세요.– 선천 : 배수지진의(A)]
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