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3
제23화
06. 홀로 남은 바다 (1)
이 비늘의 주인은 어디에 있을까.
진상은 차차 밝혀질 것이다. 일단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바닥에 그려진 회로를 살폈다.
공간과 전이의 식을 중심으로 구성된 매듭 위에 보호 술식이 덧씌워져 있었다.
규모로 보아하건대 한 번에 스무 명 정도는 가뿐히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탐색자의 눈을 안 켰으면 나도 그냥 지나쳤을 거야.’
바닥에 음각으로 진이 새겨져 있기는 했으나 상당히 마모된 탓에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의 통찰력을 칭찬하며 마나회로에 손을 댔다.
이어 마력을 순환시켜 상태를 체크했다. 세월의 흐름을 못 이겨 몇몇 부분이 끊어지긴 했지만 조금만 손보면 작동할 것 같았다.
칼로스라면 모를까 능력치가 그리 높지 못한 내가 이런 대형 회로를 그리는 데는 마석이 필요하다. 인벤토리에서 C급 마석 여러 개를 꺼냈다. 길드 창고에서 상급 마석을 챙겨오긴 했지만, 회로 수리엔 이 정도면 충분했다.
마석에 마력을 주입했다. 결정 형태의 마석이 찰흙처럼 말랑말랑하게 변했다. 마석을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단 것도 칼로스에게 처음 배웠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대단한 솜씨네.’
칼로스가 보여 준 책에서 비슷한 회로를 본 적 있어 손을 댈 수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애 좀 먹었을 것이다.
꽤나 오래전에 만들어졌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놀라웠다.
‘으음…… 이 정도면 됐나.’
가운데 있는 겹쳐진 원 모양을 끝으로 임시 보수가 완료되었다.
제작자의 취향이 반영된 듯 유독 독특한 부분이 있었는데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그곳만큼은 도무지 손을 댈 수가 없어 적당히 얼버무려 놓았다. 그래도 작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 획을 완성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유서 깊은 술식을 복원했습니다. (사용가능횟수 : 3)] [손재주가 1 상승합니다.]‘이렇게도 능력치가 오르는구나.’
생각지 못했던 보상에 눈이 크게 뜨였다.
새로 얻은 특성이 아니었다면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고, 이걸 발견했더라도 그냥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꽃잎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곧바로 마나회로에 손을 얹어 회로를 활성화시켰다.
“윽, 이거 장난 아닌데?”
내 안의 마나가 죄다 회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급격히 마나가 빠져나간 반동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우웅-
오랜 시간 아무도 찾지 않았던 낡은 회로에 마력이 깃들었다.
발밑에서 작은 진동이 일고, 회로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회로와 공명하는 듯, 잔잔했던 호수에 파문이 일었다. 호수 안이 온통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주변 풍경이 물 위에 반사된 것처럼 일그러지더니 돌연 시야가 암전되었다.
현기증이 가실 무렵 천천히 눈을 떴다.
***
저 너머까지 뻗은 아름다운 산호 숲과 에메랄드빛 바다.
해안 동굴 속 호수 아래에서 산호 숲 한복판에 떨어졌다.
‘여긴 또 어디야?’
바닷물의 빛깔부터가 방금까지 있었던 곳과는 달랐다. 햇빛이 비치는 걸 보니 수심이 깊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이 근처 일대를 모두 둘러싼 커다랗고 반투명한 반구. 그리고 내 발밑 마나회로 옆에 써진 보라색 글씨.
‘윽, 공용어가 아니잖아.’
세계탑 내에는 계층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 시스템의 도움으로 플레이어들은 해당 계층의 공용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밖의 언어는 제약이 걸린다.
‘즉, 이 언어는 내가 못 읽는다는 거지.’
돌아가는 대로 언어 계열 스킬을 가진 헌터에게 해석 의뢰를 맡기고자, 헌터워치로 글씨를 찍었다.
바닥에 쓰인 글씨는 무엇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볼수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 모를 찜찜함을 뒤로하고 산호 숲을 벗어났다.
‘아무래도 엄청난 실력의 장인이 이 근처에 살았나 본데.’
필드 전체를 둘러싼 반구는 남은 시간동안 모두 살펴볼 수 없을 만큼 넓었다. 짐작건대 일종의 보호 마법 같았다.
이렇게 광활한 지역 전체를 보호하는 술식이라니. 깊고도 넓은 마도공학의 세계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선 저쪽으로 가볼까.’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으레 이런 상황에서는 중심부를 살펴야 하는 법. 반구의 중심을 향해 헤엄쳤다.
다행히 중심부는 이곳으로부터 멀지 않았다.
[해저 도시 바다꽃]반구의 중심에 가까워지자 지명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보호 술식의 중심부를 차지한 것은 흰색 건물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도시, 바다꽃.
물속에 지어진 건물이라서일까, 네모 반듯한 쉘라의 건물들과 달리 건물들의 생김새는 자유분방했다.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도시 중앙의 탑을 겹겹이 둘러싼 건물들의 모습이 한 송이 꽃 같았다.
‘해저 도시라……. 아마 인어들의 거주지겠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도시는 가까이 다가가니 폐허나 다름없었다. 영롱한 흰빛을 자랑했을 도시. 바다꽃은 이곳저곳이 삭아 본래의 빛을 잃었다.
넓은 도시 그 어디에도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물고기들만이 유유히 도시를 지나갔을 뿐이었다.
고요한 도시에서 나 홀로 움직이자니 어딘가 기분이 묘해졌다.
“저기부터 가 보자.”
범상치 않아 보이는 탑부터 살펴봐야겠다. 꽃술처럼 보이는 탑 쪽으로 헤엄쳤다. 탑 아래 난 문이 잠겨 있어 테라스를 통해 탑 안으로 들어갔다.
산호 같은 가지가 둘러싼 원통 모양의 탑은, 중심부가 뻥 뚫려 있어 자유롭게 위아래를 오갈 수 있었다.
중앙의 빈 공간을 축으로 가장자리에 방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개수가 너무 많아 전부를 살필 순 없었다. 정상부에 중요한 시설이 있을 확률이 높았기에 꼭대기부터 탐색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맨 위층의 문은 재질부터가 유독 고급스러웠다.
벌컥 문을 열었다.
‘아, 나 여기서 까막눈이었지.’
무슨 용도의 방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부에는 여러 종류의 서류들이 가득했다. 문제는 내가 이 서류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벤토리에 서류를 집어넣으려고도 해 봤지만, 불가하단 메시지가 떴을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의욕이 생겼다.
‘이게 안 된다는 건 어딘가에 사용 가능한 아이템이 있단 뜻이지.’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나는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설마 헛짚었나?’
이 방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기운이 빠져 주저앉은 그때,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익숙한 형태의 비늘.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것과는 달랐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위태했던 회색 비늘과 달리 이 비늘은 신비로운 청록색이었다.
아니, 청록색이 아니었다.
오팔과 같은 광택이 도는 투명한 비늘 속에 주변의 바다와 꼭 닮은 액체가 담겨있어 청록색으로 보였을 뿐이다.
: 신들조차 앞다퉈 탐냈다고 전해지는 비늘. 비늘의 주인이 나고 자란 바다에 따라 빛깔을 달리한다. 어린 바다사람을 양육할 때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필드의 진명이 공개됩니다.] [특수필드, 바다사람의 요람(A+)]
바다사람? 이 계층의 명칭이잖아. 항구도시인 쉘라의 npc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게 인어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바다사람이 뜻하는 게 인어라면 의미가 아예 달라진다.
메인퀘스트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이 계층명.
바다사람이 뜻하는 게 인어라면 의미가 아예 달라진다. 그 말은 플레이어들이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지. 그렇다면 어떻게 계층을 클리어했겠어.’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탑을 떠나야 했다. 우만타 꽃잎의 효력이 다되었기 때문이다. 탑 안에서 시간을 허비해 정말 아슬아슬했다.
해안 동굴로 이어진 회로가 있는 곳까지 갈 여유도 없어서 곧장 수면 위로 헤엄쳤다.
보호 술식이 걸린 반구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다행히 별 저항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비는 다른 곳에서 왔다. 아직 물 위로 올라가려면 제법 올라가야 했는데 꽃잎의 축복이 다한 것이다. 내 어설픈 수영 솜씨로는 턱도 없는 거리였다.
햇빛이 이렇게나 가깝게 보이는데 이대로 끝나는가 싶은 순간이었다.
문득 마법사가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황급히 활을 소환했다.
‘3번 슬롯 ‘응집’을 적용.’
[스킬 ‘속성 부여(C)’가 활성화됩니다.– 3번 슬롯 : 응집 (잔여횟수 5)]
마력으로 만든 거대한 화살이 시위에 매겨졌다. 수면을 등진 채 화살을 발사했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화살이 청록색 바다를 갈랐다.
지면을 단단히 딛고 있는 평소와 달리 반탄력으로 몸이 밀렸다.
다시 한 발! 두 번의 발사 끝에 몸이 패대기쳐지듯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급히 공기를 들이마셨다.
“하, 살았다…….”
저 멀리 희미하게 쉘라로 추정되는 곳이 보였다.
“저기까지 언제 가냐.”
걱정되는 한편, 히든퀘스트의 단서를 얻었다는 뿌듯함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발신인 : 한차현바다사람이 인어였다니. 놀랍군요.
첫날부터 단서를 찾을 줄 몰랐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내 주신 사진은 길드에 전달하겠습니다.
수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헌터 역시 요청해 두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연락드리죠.]
한차현답게 깔끔한 답장이었다.
종일 이강토와 다녔으니 피곤하실 텐데 힘내십쇼. 마음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바다꽃이 있는 지점부터 쉘라까지 제법 거리가 있던 탓에 몸이 축축 늘어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영했던 적이 있던가. 비각성자였다면 헤엄치는 도중에 탈진했을 것이다.
차태양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에야 돌아왔다.
“먼저 와 계셨네요?”
“태양아, 인사! 다녀왔습니다 인사해야지!”
“다녀왔습니다!”
이상한 구석에서 고지식한 도깨비가 오늘도 차태양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어딜 다녀온 건지 차태양의 머리 위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도깨비와 차태양 뒤에 서 있는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깐만, 소녀?’
열세 살쯤 될까 싶은 어린 여자아이가 차태양의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테라, 너도 인사해야지!”
“아테라?”
검푸른 머리의 여자아이,
아테라가 내 시선을 피해 차태양의 뒤로 숨었다.
각성자 특별법에 의해 만 15세 미만 청소년의 세계탑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아테라는 npc다.
아이고, 골이야. npc를 주워 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고 말았다.
이런 내 속을 모르는 차태양이 허리에 손을 얹고 환하게 웃었다.
“내가 데려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