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07. 바다의 울음소리를 아시나요 (3)
냉기가 감도는 작은 집.
아테라의 기억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테라는 무쇠 문으로 가로막힌 한 뼘 짜리 세상에서 자랐다. 거대한 문은 때맞추어 식사를 가져다줄 때나, 종종 중년 남성이 방문할 때만 열렸다.
달이 차고 기울 때마다 찾아오는 사내는 매번 아테라의 턱을 잡고 아테라를 뜯어봤다.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문 곳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두 눈이었다.
욕심으로 눈을 번뜩이던 것도 잠시, 남자는 아테라의 검은 머리칼을 보며 혀를 찼다.
“쯧, 이래서 반쪽짜리는.”
남자는 말을 배우지 못해 옹알이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달라붙는 아테라를 매몰차게 떼어 냈다.
“귀한 상품이니 잘 간수하도록.”
차가운 돌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날이면 아테라는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쏴아아-
울창한 침엽수가 가득한 숲속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두 눈을 꼭 감고 집중하면 무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면 시큰거렸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느 날, 목을 잡아 뜯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갈증이 시작되었다.
하루 한 번 제공되는 물 주전자를 통째로 비웠지만, 그럼에도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아테라는 조금이라도 갈증을 달래고자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흐……. 으우…….”
자신의 상태를 알릴 길이 없어 아테라는 주전자를 집어 던졌다. 하지만 시종은 주전자를 뺏어갔을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갈증은 점점 심해졌다. 언제나 마음을 가라앉혀 주던 소리도 이제는 달갑지 않았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목이 더욱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아테라가 목욕통의 물에 고개를 처박은 다음에야 시종은 이상을 감지했다. 처음으로 달이 동그래지기 전 사내가 찾아왔음에도 아테라는 목을 긁어 대기 바빴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잘 간수하라고 했을 텐데!”
큰손으로 유명한 이 사내는 불같은 성미로도 이름이 높았다. 어마어마한 부호인 사내가 아무도 몰래 숨겨 놓을 정도로 중요한 상품이다. 죽기라도 하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시종이 혼절했다.
“당장 의사를 불러와!”
그날부터 매일같이 의사들이 방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갈증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의사들은 하나 같이 이런 병증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온갖 약과 치료법을 시도했지만 아테라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아테라는 온종일 물동이에서 입을 떼지 못했다. 식사를 거르기는 일쑤요,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괴로움을 호소하며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작았던 몸이 피골이 상접할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기묘한 냄새가 나는 사내가 내던져지듯 방에 들어왔다. 힘없이 바닥에 늘어져 있던 아테라가 코끝을 찌르는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온몸에 흉터 자국이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어디서 맡아 본 적 있는 냄새…….’
그런데 사내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아테라의 눈을 본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손끝을 떨었다. 이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사내가 자신을 끌고 온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정신입니까? 이런 곳에 어린 바다사람을!”
“팔아 버리지 않길 잘했군. 고쳐 놓도록.”
건방지게 주인에게 고함친 대가로 호위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사내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퇴색되었던 눈동자가 맹렬히 빛났다.
멍하니 사내를 바라보던 아테라는 저 이상한 남자의 냄새가 가끔 창밖에서 맡았던 냄새와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아테라는 사내, 파르안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는 마법 같은 솜씨로 아테라를 괴롭히던 갈증을 쫓아내 주었다.
바닷가가 가까운 첨탑으로 거처를 옮기고, 매일 해수로 몸을 적셨을 뿐인데 지독했던 갈증이 사라졌다. 그가 신기한 곡조로 노래를 들려 줄 때면 몸에 온기가 돌았다.
먹지도 자지도 못했던 아테라는 점점 건강을 되찾았다.
“저것은 바다이다. 따라 해 보아라. 바다.”
“바-다?”
“그래, 바다. 메디나께서 계시는 저곳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요람이다.”
뿐만 아니었다. 파르안은 아테라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성심껏 가르치기 시작했다.
뭍사람들의 말과 글부터 바다사람들의 신화, 바닷속에서 대화하는 법, 바다꽃의 노래까지. 아테라는 물먹은 스펀지처럼 파르안이 부어 주는 지식을 빨아들였다.
그중에서도 아테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다를 지키는 메디아의 이야기였다. 그런 아테라를 위해 파르안은 매일 밤 메디아의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빛이 드는 고운 날을 떠다 네게 주랴, 두 손 가득 이 밤별을 퍼다 주랴.”
“파르안.”
“응? 잠이 오질 않는 건가?”
“으응……. 아까 책에서 본 건데 엄마 아빠가 뭐야?”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파르안이 숨을 멈췄다.
“종일 동화책에 고개를 박고 있더니…….”
그가 대답을 미루자 아테라가 파르안의 품에 안기며 되물었다.
“파르안도 모르는 거야?”
“자신을 낳고 돌보는 존재를 부모라고 부른다. 그중 여성을 엄마, 남성을 아빠라고 한단다.”
“그럼 파르안이 내 아빠야?”
아테라가 파르안의 팔을 때리고 꼬집었지만 그는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내 파르안이 한숨을 내뱉듯이 말했다.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그러려무나.”
영리한 아테라는 그것이 부정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아테라는 단둘이 있을 때면 파르안을 아빠라 부르곤 했다. 소리 내어 아빠, 라고 발음할 때면 긴 밤을 지새우게 만들었던 외로움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 아빠! 요람, 요람이랑 바다꽃 이야기해 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아테라는 열 살이 되었다.
가엾을 정도로 초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홀쭉했던 두 볼은 둥글어졌다. 덤불 같았던 머리는 물결처럼 찰랑거렸으며 애정을 듬뿍 담은 보석안은 아름답게 빛났다.
파르안 역시 많이 변했다. 죽지 못해 살아가던 바다사람은 아이를 돌보며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빛바랬던 푸른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날이 갈수록 선명해졌다. 희미해졌던 오색 광택 역시 예전의 빛을 되찾았다.
지독히도 외로웠던 두 바다사람은 서로를 만나고 안정을 찾았다. 바다에서라면 장정 서넛 정도는 너끈히 상대하는 파르안을 경계하여 첨탑 꼭대기에 갇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곧 경매를 열어도 되겠군.”
평안했던 나날은 불쑥 찾아온 사내의 한마디에 깨졌다.
시간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바라기를 해야 하는 어린애들을 무자비하게 사냥하던 놈들이었는데 너무 방심했다.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를 팔아치우다니.”
파르안이 입술을 짓씹었다.
아테라만큼은 구해야 한다. 구할 것이다.
“절대, 절대로 뭍사람들을 믿어선 안 된다. 네 눈을 보여서도 안 된다. 열흘에 한 번은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잊지 말고.”
파르안이 아테라가 주의해야 할 것들을 읊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아테라에게 건넸다.
“딱 한 번 아스트로나를 부를 수 있는 목걸이다.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그를 불러라.”
파르안은 바다정령이라는 말에 폴짝거리는 아테라를 안아 들었다. 천진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에 가슴이 사무쳤다.
방법은 하나. 이렇게 어린아이를 혼자 보내자니 속이 미어졌다.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아테라만큼은 확실하게 탈출시킬 수 있다.
파르안은 아테라에게 처음으로 쉘라의 진실을 알려 주었다. 이상함을 감지한 아이가 칭얼거렸다. 이를 본 파르안의 눈이 가라앉았다.
영특한 아이이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살아남아야만 한다. 파르안은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빠도 같이 가. 응? 여기 있으면 안 된다며.”
“아테나, 울지 말아라. 내가 한 말 다 기억하고 있지?”
눈시울이 붉어진 파르안이 아테라의 등을 도닥였다. 한참을 칭얼거리던 아테라는 밤이 깊어서야 잠이 들었다.
잠든 아테라를 끌어안은 파르안이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 드넓은 물 아래 잠든 나의 아이야. 산호 그림자 아래 몸을 기댄 우리의 아이야.
깊은 밤, 또 하나의 바다사람이 소원을 빌었다.
탐욕스러운 신들은 샐쭉 웃으며 그의 간청을 수락했다.
아름답던 눈동자와 머리칼이 희게 바래고, 두 바다사람은 물거품이 되어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