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84
제284화
66. 우연이 아니야 (1)
“우선은 이 방법부터 시도해 보자.”
한참 머리만 싸매고 있다 큰 소리를 냈더니 시선이 느껴졌다.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로 휘휘 손을 휘둘렀으나 한 번 들러붙은 관심을 쫓긴 역부족이었나 보다.
윤수호는 기어코 휴식을 취하다 말고 굳이 일어나 내게로 왔다. 그렇지 않아도 체구 차가 나는데. 앉은 자세로 놈을 올려다보니 목이 꺾일 것 같았다. 허리라도 숙여 주면 좀 좋으련만. 녀석은 그대로 꼿꼿이 선 채 말문을 텄다.
“아까부터 뭘 하는 거지?”
“뭐,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제대로 설명해.”
“……살다 살다 너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말주변이 없는 것은 물론이오, 말귀까지 어두운 놈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전혀 객관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내가 너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
이 녀석한테는 본론만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순간 잊었다. 티키타카를 빠르게 포기하고 녀석의 소매를 잡고 죽 아래로 당겼다.
“목 아파. 앉아.”
“고작 이 정도로 통증을 느낀다면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아, 사족 붙이지 말고 어서.”
그래도 언짢아하는 목소리는 알아듣나 보지. 윤수호가 마지못해 미적미적 내 옆에 앉았다. 녀석이 기대어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작아 보이던 꼬마 기차가 더욱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열차 아래로 늘어진 인형사의 손과 방금 내가 꺼낸 어떤 물건을 번갈아 본 윤수호가 이내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들로 뭘 할 생각이지?”
“요샛말로 하면 연어, 라고 해야 하나?”
“……?”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볼 셈이라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그리하여 이해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설익은 결말을 내놓았다.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결말을.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기원을 더듬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문제는 방법인데.’
세계탑의 내부였다면 npc들에게 받은 퀘스트를 차근차근 밟아 가며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 노스텔지어는 필드.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정도를 벗어난 이상, 감수해야만 하는 고난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인형사, 아니 한우연의 마나로드를 확인했다. 나보다 앞서 이곳에 있었던 차시우가 미련 없이 떠난 것으로 보아, 이 장소 자체에는 눈에 띄는 특이점이 없는 듯했으니까.
“지독한 놈.”
속된 표현이지만 목소리는 마나로드를 말 그대로 아작 냈다.
마력을 역류시켜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한우연의 첫 번째 죽음 역시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잠시 두 눈을 감고 애도를 보냈다.
‘대체 왜 이런 꼴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
한우연은 이미 세계탑에서 한 번 스러진 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끓어오르는 마음을 애써 꾹 누르며 그의 마나로드를 더욱 면밀하게 살폈다.
목소리의 간섭으로 마나로드 이곳저곳이 엉망으로 뭉그러지고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게 꼭 좋으리란 법은 없지.’
나를 장인의 길로 이끈, 누가 한 것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대사의 뜻을 이제는 진실로 이해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때때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볼 수 있어.”
[특성, ‘영원불멸의 가호(S)’의 플레이어 윤가호의 의지를 받듭니다.]낯설지만 기꺼운 메시지를 뒤로하고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
수많은 이면을 찾아낸 것은 탐색자의 눈이 아니라 나임을 깊숙이 새기며, 나는 한우연과 손을 맞댔다. 그새 차가워진 살갗에 체온이 옮아가는 것을 느끼며 마력을 뻗었다.
기어코 나서 발을 담그니 한 발 뒤에서 보았을 때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력을 얇게 뽑아 무너진 마나로드의 내밀한 곳을 더듬었다. 눈으로 보았던 것보다 파손 정도가 심했지만, 길을 따라가는 것으로 어렴풋이 원래의 형태를 그릴 수 있었다. 모종의 식으로 인해 어그러졌음에도 한우연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도움이 되었다.
‘위저드들의 마나로드와 유사한 점이 많아.’
그렇다면 이 위화감은, 그를 마수로 만든 변곡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정도로 큰 변화이니 분명 마나로드의 중심과 가까운 곳이리라.
공교롭게도 한우연의 근원은 왼쪽 눈에 있었다. 윤수호가 그를 알아보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된 바로 그곳이었다. 놀라운 우연에 감탄하며 마력을 더욱 깊숙한 곳으로 뻗었다.
“윽, 뭐야?”
분명 근처까지는 별 탈 없이 접근했다. 하지만 마나로드의 중심부에 다가서자마자 마력이 튕겨났다. 반동이 어찌나 세던지 하마터면 내상을 입을 뻔했다.
아무래도 나 같은 이가 접촉하지 못하도록 결계를 씌워 둔 것 같은데. 해제할 방법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접촉 자체가 어려우니, 원.”
이리저리 선회해서 재차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추측하건대 대상자, 그러니까 한우연의 마력과 성질이 다른 기운은 모두 쫓아내도록 설계된 듯했다. 이질감이 기준이라니. 배타적인 것으로만 치면 그간 보아온 것 중에서도 제일이었다.
억지로 아이디어를 쥐어짜던 그때, 불현듯 희미한 노랫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꿈속에서 헤매던 무용수의 노래가 점점 더 커졌다. 서너 마디가 지난 다음에는 윤수호에게도 들렸는지 녀석이 휙휙 주변을 살폈다.
‘뭐, 그런다고 클라라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소용없는 짓 말라고 끼어들기도 전에 윤수호가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기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모로 보나 긍정적인 감정을 담은 눈빛은 아니었다. 이어 뱉은 말도 가관이었다.
“또 너군.”
“뭐?”
“이 노래 말이야. 네가 불러낸 거지?”
아닌데. 왜 갑자기 클라라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 건지는 나 역시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구태여 부정하지는 않았다. 소리의 근원지가 어디, 아니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는 녀석의 짐작이 맞았으니까. 또한 시작을 따지자면 아예 관련이 없지도 않았다.
“우리가 만든 결말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니까.”
윤수호의 의문을 모른 체하며 인벤토리에서 증표를 꺼냈다. 비극과 희극의 경계에서 춤추던 무용수가 선사한 오르골 말이다.
“그리고 그리면 이루어질까요?”
– 어느 무용수의 염원이 만들어 낸 오르골.
– 잊지 못할 추억을 담아 보세요!
※ 효과 발현을 위한 매개를 등록해 주세요. (등록 현황 : 없음)]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사로잡혀 나는 태엽을 돌렸다.
디링, 딩-. 기다림을 메우던 멜로디가 천천히 사방을 적시니. 멸망한 세계의 놀이동산에 때아닌 퍼레이드가 열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라리라, 이것은 꿈속의 카니발. 이제 나와 영원히 춤추오.]흐르는 선율 속, 클라라의 목소리가 섞여 들고 연회장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꽃가루가 펑펑 사방에 터졌다. 뒤이어 흩날리는 색종이 사이, 작은 빛이 어렸다. 곧장 내게로 날아온 빛이 무언가를 요구하듯 위아래로 붕붕 움직였다.
“으음, 왜?”
운 좋게 아이템 설명창에 시선이 닿은 덕에 나는 금방 녀석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마음이 통했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빛이 반짝반짝 점멸하며 춤을 췄다.
“그래, 잘 생각해 볼게. 뭘 매개로 사용할지.”
“……매개?”
“이 아이템을 작동하려면 필요한 물건. 음, 아니다. 이게 뭔지부터 알려 줘야지.”
윤수호에게 간략하게나마 내가 하려던 일과 오르골과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 얻은 오르골이 방금 갑자기 반응하더라고. 날 도와주려나 봐.”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것을 보니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닌 듯한데. 나도 모든 인과관계를 파악한 것은 아니라 설명을 보충해 줄 수가 없었다.
“결계, 이질감, 추억, 그리고 매개라.”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아니, 너무 엮으려 들지 말자. 복잡해지기만 하잖아. 본래 하려던 바를 떠올려 보는 거야.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과 의문들을 밀어 두고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결계는 낯선 존재라는 이유로 날 튕겨 내고 있어.’
그리고 때마침 나의 앞에는 추억을 담는다는 신기한 오르골이 있다. 이를 깨달으니 그간 콱 막혀 있던 발상이 활로를 찾았다.
“이걸 매개로 쓴다면 재밌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어.”
주어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는데도 빛은 내 의중을 알아챈 듯했다. 알겠다는 뜻으로 두어 번 깜박인 빛이 포르르 매개를 향해 날아갔다.
“저걸, 매개로 쓰겠다고?”
“타인이 낯설어서 싫다면, 본인을 데려오면 그만이잖아. 안 그래?”
조금 전까지 내가 붙잡고 있던 손 위에 빛이 안착했다. 그러고는 눈 녹듯이 흡수되어 사라질 무렵,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흔들흔들 인형사’가 매개로 등록되었습니다.] [‘영원을 꿈꾸는 오르골(?)’의 특수 효과, ‘커튼콜’이 발현됩니다.]문구를 미처 다 읽기도 전, 눈앞이 가물가물 어두워졌다. 그러나 애써 저항하지는 않았다. 클라라의 노래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클라라의 선율이 정점에 치달은 그 순간.
[필드, ‘노스텔지어(?)’가 특수 효과, ‘커튼콜’과 공명합니다.]나는 새로 나타난 문구를 확인하지도 못한 채 이끌려 갔다. 마지막을 고하는 한낮의 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