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잠깐의 휴식(1)
“그래서. 저 교관님이 대체 누군데?”
안호연의 물음에 재현이 팔짱을 끼며 답했다.
“김지연 교관. 마법계 신인 교관이야. 참고로, 레이더 관리본부의 스파이지.”
“스, 스파이?”
김유정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재현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의 던전 사건 때 구자인 심복답지 않게 생도들을 챙기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레이더 관리본부랑 접점이 있더라고.”
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짧게 과거를 회상했다.
사건은 다시 며칠 전. 레이더 관리본부와의 첫 대면으로 돌아간다.
[밀레스 아카데미의 새로운 이사장직에 누구를 앉힐 생각입니까?]당시, 송지석과 대면하게 된 유성은은 이렇게 물었다.
송지석은 그녀의 물음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시죠. 그 부분 역시 이미 생각해 뒀으니까요. 들어오라고 해.]목소리와 함께 들어온 존재.
재현은 그녀를 보며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어? 기, 김지연 교관님?]송지석이 밀레스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점찍은 존재는, 다름 아닌 김지연이었다.
일전에 모의 던전 사건 당시.
신입 생도들을 통솔했던 장본인이자, 테마 던전 이후 재현을 불러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려 노력했던 사람.
사실 재현은 처음에 그녀가 구자인의 심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니었다.
김지연은 구자인의 심복은커녕, 레이더 관리본부에서 구자인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파견한 스파이였다.
재현은 레이더 관리본부의 선택에 만족했다.
연화가 밀레스를 장악하는 것은 외부에서 보기에 썩 좋지 않은 그림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연화가 구자인을 몰아냈다는 누명을 쓸 수도 있기에, 여기서는 뒤로 조금 물러서서 원하는 것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레이더 관리본부가 나서서 더러운 일을 처리해 준다면 좋지.’
김지연 교관의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레이더라는 직업이 세간에 대두된 지 채 수십 년이 되지 않았고, 주요 관직에 앉은 이들의 나이 역시 대부분 젊었기 때문이었다.
‘뭐, 어차피 김지연 이사장은 레이더 관리본부가 임시로 파견해 둔 허수아비에 불과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있던 당일, 본인 역시 그렇게 말했다.
[임시 이사장직을 맡는 것뿐이니 실질적으로 권한은 크게 없겠지만……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재현은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 밀레스 아카데미는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지연. 그녀는 레이더 관리본부 소속이다. 필연적으로 재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 재현이 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20대에 밀레스의 이사장이라니. 대단하긴 하네.”
안호연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른 교관들은 싹 다 물갈이 대상이었거든. 털어서 뭐 안 나오는 사람은 김지연 교관이 유일했어. 본부 소속이라 믿을만한 것도 있고.”
재현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동의했다.
단상의 김지연이 생도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새롭게 임시 이사장직을 맡게 된 김지연 교관입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재현과 동료들은 그녀의 짧은 연설을 들은 뒤 기숙사로 돌아갔다.
피곤한 몸을 달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몸에 피로가 꽤 쌓여 있어. 지금 좀 쉬어둘 필요가 있다.’
재현은 한동안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했다.
구자인의 몰락을 위한 전초를 마련하고, 계획을 세운 뒤, 실행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 및 필요 아이템의 수급까지.
재현은 세워 두었던 목표를 모두 이뤄내며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는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가볍게 숨을 내뱉은 뒤, 호텔로 향했다.
다음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 * *
다음 날부터 2주간은 밀레스 아카데미의 휴식 기간이었다.
이사장이 교체된 후.
학원 역시 안정기로 접어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재현 일행은 간만에 꽤나 긴 휴식을 얻게 되었다.
“진짜 오랜만에 쉬네…….”
재현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해 보니 정말 오래간만의 휴식이다.
마지막으로 쉬어 본 게…… 아마, 입학 하루 전이었던가?
“참 슬픈 인생이다…….”
재현이 넋두리를 하며 침대에 누워 있던 그때.
돌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뭐야? 아침부터.”
미간을 좁히며 시계를 보았다. 현재 시각은 오전 아홉 시.
택배를 시킨 적도 없고, 룸서비스도 기억에 없다.
딱히 올 사람은 없을…….
‘없진 않네.’
재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시간에 갑자기 쳐들어올 사람은 걔밖에 없지.”
“야! 빨리 문 안 열어?!”
밖에서 들려오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김유정이었다.
재현은 다시 한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 쉰 뒤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나 옷 좀 입고 나갈게.”
적당히 대꾸한 뒤, 외투를 걸치고 문을 열어주었다.
밖으로 나서자, 서아현을 제외한 일행 전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김유정이 게슴츠레 눈을 뜬 채 재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약속 안 잊어먹었지? 중간고사 끝나고 다 같이 노래방 가기로 했잖아.”
재현은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작게 중얼거린 뒤 입술을 뗐다.
“뭐,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거 같기도 하고…….”
“거짓말하고 있네.”
김유정이 비웃으며 말했다.
역시 소꿉친구답게, 금세 재현의 거짓말을 간파한 듯 보였다.
스킬이라도 사용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놀라운 정확성.
재현은 새삼 감탄하며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마침내 기억을 떠올려냈다.
‘……맞다. 예전에 중간고사 치기 전에 약속했었지.’
중간고사를 치르기 전. 안호연과 서이나의 이론 수업을 봐줄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 시험공부를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김유정이 ‘노래방 쏘기’를 걸었던 기억이 났다.
“걱정 마! 부지 내 노래방 중에서도 제일 좋은 곳으로 예약했으니까.”
안호연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재상 역시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재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갈 테니까. 아래 로비에서 기다리지? 우르르 몰려와서는…… 미리 말이라도 좀 해 주든가.”
“문자 보냈는데 못 본 건 너거든? 그리고 새삼스럽게 비싸게 굴래? 내가 언제부터 너한테 연락하고 찾아왔다고. 아 맞다. 안에 마실 거 있지?”
김유정이 당당하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오자, 재현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대꾸하지 못했다.
잠시 후. 퍼뜩 정신을 차린 재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좀 따져! 야! 잠깐만! 어딜 들어와! 당장 안 나가!?”
김유정이 먼저 집 안으로 들어오자, 나머지도 슬금슬금 재현의 눈치를 보다가.
“미안!”
“……실례할게.”
“미미미, 미안해!”
냅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재현은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행은 이미 재현의 냉장고와 침대방, 옷방을 뒤지는 중이었다.
결국, 그는 샤워를 포기하고 빨리 옷만 갈아입으며 생각했다.
‘저것들…… 내가 꼭 복수한다.’
* * *
금세 옷을 갈아입은 재현은 이들의 손에 이끌려 밀레스 부지 내. 첨단(?) 노래방에 도착했다.
잠시 후.
“늦은 이 밤↗ 그대 괜찮다면↘”
“…….”
“…….”
“…….”
재현 일행이 들어온 방 내부에 깊은 침묵이 깔렸다.
스피커로부터 노래인지 고성방가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가운데, 복도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시발. 개놀랐네. 무슨 노래를 저렇게 하는 새끼가 다 있어?!”
“저런 놈은 노래방 출입 금지 시켜야 하는데. 후…….”
“음정이…… 진짜 사람이 아닌데.”
“쯧, 저 따위로 노래하는 거 보니 딱 봐도 얼굴도 못생겼겠네.”
김유정은 주변을 살피다 재빨리 안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쳤다.
안에서 새어나가는 노래-였던 것- 덕에 자신의 얼굴까지 팔리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재현이도 사람이구나….”
노래를 듣던 서이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안호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 역시 사람은 다 완벽할 수는 없는 거야. 신도 재현이한테 요리 실력이랑 노래만큼은 뺏어 간 거지. 암, 역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 김유정이 쿡쿡 웃으며 끼어들었다.
“원래 쟤 노래는 엉망이야. 중학교 때 얼굴 덕분에 밴드 동아리 입부 스카우트 받았었는데, 부장이 노래 한 번 듣더니 거기서 먼저 까 버렸잖아.”
“왜왜왜, 왜 그래…… 나, 나는 괜찮은 것 가, 같은데…….”
이재상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김유정이 발끈했다.
“오빠는 너무 관대해서 탈이에요. 저게 어떻게 노래를 잘하는 거예요?”
“형,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안호연까지 질색하며 말하자, 이재상은 금세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참고로 김유정과 안호연은 노래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가수급이다, 탈 일반인이다, 뭐 그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어디 가서 노래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재상은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지 않아 패스했고.
노래가 끝난 뒤. 재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땀을 닦았다.
김유정과 안호연은 내심 노래가 끝나서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다시는 민재현한테 노래 안 시킨다.’
‘앞으로 재현이한테 노래는 시키지 말아야지.’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 누구야?”
재현이 일행을 향해 묻자, 서이나가 주춤거리는 목소리로 손을 들었다.
“……나야.”
“자, 마이크.”
재현은 서이나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서이나는 재현이 건넨 마이크를 잡으려 재빨리 손을 뻗었고.
그러다, 잠시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았다.
“……엇!”
서이나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마이크가 바닥에 떨어지려던 순간, 재현이 재빨리 마이크와 함께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너도 김유정 닮아가나 보다. 웬일로 덜렁거리고.”
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마이크를 서이나의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그 순간, 서이나는 자신의 심장이 반복하며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 열기가 피어오르며 저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약간 굽혀졌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재현이 묻자, 서이나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잠시 그의 얼굴을 봤다.
“……괜찮아. 잡아줘서 고마워.”
곧이어 전주가 들려오고, 서이나는 일행을 둘러보며 작게 말했다.
“……나 노래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니까 기대하지는 마.”
“에이. 민재현 노래도 들었는데 뭐. 이제 뭘 듣던 고막이 씻겨나갈걸?”
김유정이 너스레를 떨자, 재현이 미간을 좁혔다.
“너 말이 좀 심하다?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내가 노래를 못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듣는 귀가 없어서 그런 거야. 나 정도면 들어 줄 만한 수준은 되거든?
안 그래. 호연아?”
“어? 어, 어…….”
재현의 말에 안호연이 얼버무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재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이내 서이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회귀 전에는 이나 목소리 들어 본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노래를 다 들어보다니…….’
재현은 새삼 감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못 불러도 손뼉 쳐 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지, 약 10초 뒤.
재현은 전혀 다른 생각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쟤 노래 왜 이렇게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