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 서이나(1)
“……많이 기다렸어?”
서이나가 먼저 카페에 도착한 재현을 보며 말했다. 재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금방 왔는데. 뭐 마시고 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재현이 능청을 떨자 서이나가 약간 긴장이 풀린 듯 옅게 웃었다.
그녀가 재현의 앞에 착석하며 말했다.
“……사실 어제 고민했어. 네가 물어본 거…… 나한테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거든. 재현이 네 부탁이라도 다시 그 일을 꺼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힘들었어.”
“그렇구나. 그래서 오늘은 거절하려고 온 거야?”
재현이 불쾌하지 않다는 듯 따뜻하게 물었다.
서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말해줄게. 내가 고유 스킬을 각성했던 때의 기억.”
“아까는 말 안 해줄 것처럼 굴더니.”
재현이 웃자 서이나가 조금 풀어진 얼굴로 재현을 똑바로 보았다.
“너를 믿으니까.”
“……그거 되게 부담스럽네.”
재현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서이나가 자신을 믿고 신뢰해 준다는 것은.
허나 이렇게 직접 앞에서 듣게 되니 굉장히 당황스럽긴 했다.
서이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나랑 김유정이 이나를 조금씩 변화시킨 걸까.’
재현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사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재현의 기억 속, 회귀 전의 서이나는 무언가에 쫓기며 힘들어하고 있었고. 언제나 자신을 증오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녀가 했던 짧은 말. 재현은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저는 추악합니다. 제 가족들이 죽을 때 저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어요.]서이나의 무거운 말. 이는 보통의 무게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재현은 알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서이나는 자신의 동료였고, 재현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두고 볼 수 없었다. 겪어온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것 역시 서클장, 아니 동료로서 해야 하는 일이겠지.
또한, 이는 성장이 정체된 서이나의 벽을 깨고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덧붙여 자신에게도 동료의 성장은 이점으로 다가오게 될 터.
게다가.
‘어째서 이나가 고유 스킬을 각성하게 됐는지는 미래의 사건과도 꽤 연관이 있을 거야. 여기서 알아 두는 게 좋을 수도 있어.’
과거 딱 한 번.
서이나가 이성을 잃고 분노해 자신의 스킬로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뻔했던 사건이 있었다.
재현은 이때의 사건을 회상하며,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역린을 건드렸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그 역린은 아마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즉, 그녀의 재각성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으로 이나는 평판이 굉장히 떨어졌었다. 지금 내가 들어준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자신의 성장. 동료의 성장.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고, 헤임달까지 막아내겠다.
그게 현재 재현의 생각이었다.
허나, 서이나로부터 들려온 첫 구절부터.
재현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생각해. 그날 내 가족들은 잘 죽었다고.”
그 말에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과 분노, 고독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재현의 두 눈이 헤이즐넛 색 투명한 눈동자로 향한다.
잠시 멈칫하던 재현이, 이내 재현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
서이나의 흔들리는 동공과 재현의 시선이 맞닿는다.
“나도 찢어 죽이고 싶은 가족이 하나 있거든. 그것도 현재 진행형으로.”
* * *
서이나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분 뒤였다.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것이 어려운 듯 그녀는 한참이나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재현은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해 보았다. 여기서 재촉해 그녀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 재현은 아직도 자신의 혈육이라 믿었던 후긴에 대한 강한 혐오와 적대감을 지니고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 농락하고 이미 한 번은 죽였던 존재.
재현은 후긴을 꼭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조금 떨고 있던 서이나의 마른 입술이 열렸다.
“……내 부모님은 내가 엄청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재현의 미간이 움찔했다. 처음으로 듣는 서이나의 가정사.
이는 서두부터 최악의 형태로 시작하고 있었다.
“……한 다섯 살 때였나, 아마 그때쯤이었을 거야. 그 이후부터 나는 친척 집에서 자라게 됐고.”
서이나가 고개를 들며 이었다.
“……그때부터였어. 내 삶이 망가지고 말수가 적어졌을 무렵이.”
“친척들이 널 괴롭게 한 거구나?”
재현의 말에 서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나는 할머니와 함께 고모 집에 얹혀살게 됐어. 진짜 지옥은 거기서부터였지. 친척들은 사실 부모님의 사망 보험금을 가로채기 위해 할머니와 날 받아준 거였거든.
그걸 알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 그때 알았지. 세상에 내 편은 할머니와 나. 둘 뿐이구나.”
거기서부터 서서히 서이나는 망가져갔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재현이 안쓰러운 눈으로 서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 * *
아주 어린 시절의 나는 말괄량이였다.
서이나. 그게 내 이름이었다.
부모님은 좋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적어도 내 기억 속엔 그랬다.
당시는 즐거웠다. 행복했고, 이 행복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섯 살의 어느 분기를 겪으며, 나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날 잠을 자다 새벽에 깼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단다.
걸려온 전화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전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전해온 것은 고모. 부모님은 함께 여행 중 식중독에 걸린 나를 두고 잠시 외출했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부모님의 사망 소식과 함께 병원에 달려갔던 내게 들려온 곡소리.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직 나는 다섯 살의 아이였을 뿐이었고, 세상을 이해하기는 너무 어렸다.
다만, 그런 나조차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엄마를,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구나.
나는 고아가 됐구나.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단 몇 분으로 충분했다.
그건 직감에 가까운, 일련의 척추 반사와 같은 즉각적인 사고였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 계속 울기만 했다.
마치 내가 불쌍하다는 듯 보이는 표정.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건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이었다.
이후 나와 할머니는 고모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보다 더한 지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 *
조금 시간이 흐르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이후.
내 처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타인에게 벽을 치게 된 것이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동정은 사춘기를 막 겪기 시작하던 내게 견디기 힘든 트라우마로 다가왔다. 늘 내게 따뜻했던 할머니마저 부모님의 제사가 되면 눈물을 훔치며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동정.
그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어둡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었다. 고모와 고모 가족 일가의 언어 폭행, 신체 폭행.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노린 것은 오직 부모님의 사망 보험금뿐.
할머니는 처음 당신의 딸이 지닌 추악함을 잘 몰랐다. 그저 늙은 자신이 나를 돌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부모님의 보험금을 모두 고모에게 주었고, 우리 두 사람의 삶은 점차 부서져 가고 있었다.
돈을 받은 이후부터. 고모는 나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다. 학교 급식비조차 제대로 내지 않아 망신을 당하게 했고, 나는 친구들에게는 손가락질까지 받았다.
왜였을까.
어째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당시엔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 * *
중학교 3학년. 고교 입시를 준비하던 무렵.
[각성자가 되어야 한다.]고모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각성자는 돈을 많이 버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너를 키우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기나 해? 공부도 못하는 네가 그나마 밥값이라도 하려면 각성자가 되는 것밖에 없어.]돈이라. 대체 어디에 돈을 썼다는 말인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로챘던 수억의 돈은 이미 없는 셈 치며, 고모는 자신이 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말했다.
역하고 가증스러웠다.
각성자…… 내게 레이더가 될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는 건 선생님께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각성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 어렸다.
괴물도 무서웠고, 싸우는 것도 싫었다. 그저…… 할머니와 함께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고모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어서 각성자 전문 수업을 들으라 말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적을 올려 레이더가 되라 말했다.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약함 때문이었다.
[레이더가 되고 싶지 않아요.]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의 벽을 친 내게는 친구가 없었고, 할머니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갉아먹었다. 어느새 내 상처는 그렇게, 조금씩 곪아가고 있었다.
[이나야…… 정말 너 그거 될 생각이냐? 레이더인가 뭔가.]어느 날 할머니가 문득 물어왔다.
당시, 나는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가 고모에게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 내 삶은 조금은 달랐을 텐데.
어째서 나는 남들과 다르게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대체 왜.
그날 내 감정의 마모는 한계였고,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내몰린 상황. 할머니의 말은 내 예민한 부분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래서 화를 냈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그래선 안 됐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할머니. 당신이 가장 힘들었을 텐데.
아들과 며느리를 한 번에 잃은 슬픔 속에서도 나를 돌봐주었던 사람인데.
나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그때. 할머니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째서일까. 그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것은.
나는 할머니의 바지춤을 붙잡으며 한참을 끌어안겨 울었다.
* * *
나는 할머니의 말대로 진로를 바꾸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 학교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일반 학교가 아닌 직업 전문학교에 들어가기 원하는 일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할머니는 내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고모에게는 각성자 학교로 진학하려 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아 반려되었다고 말했다.
한동안 고모의 폭행과 폭언이 좀 더 심해졌지만 원하지 않는 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고등학교의 진학을 앞두고, 알바 자리라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별안간 또다시 재앙과 같은 소식이 내 귓가에 전해져왔다.
그 말을 하는 고모의 목소리는 12년 전, 부모님의 죽음을 통보하던 때와 같이 무미건조하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