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52
251화 어느 연금술사의 사정(2)
“……다른 애들은 괜찮은 걸까?”
어둑한 그림자가 깔린 던전을 걷던 세 사람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서이나. 그녀는 지금 안호연, 권소율과 함께 있었다.
이들은 조금 전, 던전의 바닥에서 솟아오른 가벽에 의해 미로가 된 이곳을 수색하는 중이었다.
참고로 세 사람은 처음 같은 자리에 떨어졌으며, 트라우마의 환영을 이미 탈출한 뒤였다.
이들은 모두 과거 재현 덕분에, 자신이 갖고 있던 트라우마를 깬 적이 있었다.
서이나와 권소율은 자신을 이용하려 들었던 사람들로부터의 해방을.
안호연은 레이더로서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그 이유를 찾으며 성장했다.
재현의 존재가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재현은 무심한 듯했지만, 이들의 아픈 곳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매 순간 그는 자신의 동료를 살피며 그들이 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
방향을 잃을 때마다 길을 알려주진 않아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렴풋이 가르쳐 주었다.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준 것이다.
또한, 그게 지금 이들을 여기까지 성장시킨 원동력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재현은 때로 교관보다 더 혹독하게 자신들을 지도했다.
나인의 멤버들에게 재현은 언제,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확실히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료.
실제로 나인의 멤버들은 재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왔었다.
때문에 그들은 생각했다.
더욱 강해져서 언젠가 재현의 곁에 서고 싶다고.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던전에서 보여주었던 트라우마의 환영.
그것의 극복이었다.
허나, 자신들이 트라우마를 무사히 탈출해낸 것과 별개로.
지금 세 사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곳을 걷는 중이었다.
조금 전 서이나가 말했던 다른 동료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냉정히 말하면… 이재상은 전투 능력이 전무한 수준이라 전장에서 뭔가 기대하기는 어려워.
유정이의 경우는 전투에서는 무리가 없지만… 길을 너무 못 찾지. 던전 속에 홀로 버려져 있다면 정말 큰 일이야.”
권소율을 비롯한 일행 전원은 김유정의 가장 큰 단점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길을 잘 찾지 못한다는 것.
지독한 길치들은 레이더 계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언제든 마수를 사냥하다 보면, 혼자가 되는 상황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곁에서 함께 레이드를 하던 동료가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레이더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판단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은 동료를 버리고 살길을 찾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비난을 받을지언정 살 수 있기 때문.
밀레스 아카데미의 교본 역시, 사람을 살리는 방법보다는 자신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더 자세히 가르친다.
응급처치? 이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회귀 전 재현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이명호를, 또 다른 수많은 레이더들을 버리며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었다.
애석하지만, 그것 또한 레이더의 본질이니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서이나에게서 결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우리 멤버들을 믿어. 틀림없이 모두 살아나갈 수 있을 거야. 재현이가 알려준 대로만 잘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해.”
그녀의 말에 두 사람 역시 동의했다.
그래. 재현은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상정해두고, 동료들에게 미리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최근 공략을 거듭했던 튜토리얼 던전. 거기서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던가?
이제 현직 레이더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까지, 이들은 성장했다.
되레 지나치게 두려워하다 보면. 해낼 수 있는 것조차 해내지 못하게 된다.
탁.
그들이 생각을 정리하던 때. 별안간 던전 내부를 걷던 멤버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추었다.
탁 트인, 허나 무거운 어둠이 깔린 장소.
“이건 대체…….”
눈앞의 거대한 무언가를 본 세 사람의 동공이 동시에 수축했다.
숨이 막혀오는 형언할 수 없는 마력 속, 서이나가 작게 읊조렸다.
“……위험해.”
“거대한…… 그림자?”
권소율 역시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들의 앞에 드러난 것은 숨 막힐 정도의 공포를 유발하는, 아주 끔찍하고 거대한 그림자였다.
그 순간, 들려온 메시지.
―던전의 보스 몬스터 《어둑시니》와 조우했습니다.
* * *
“지금 내게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바로 너다.”
“대답해라. 너…… 도대체 정체가 뭐지?”
재현은 이어지는 이재신의 물음에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생각해 보면 그로서는 자신을 경계하는 게 당연하긴 했다.
세간에 이름을 떨치고는 있지만, 재현은 어쨌거나 아직 아카데미의 생도 신분이다.
그런 그가 지금과 같은 무력을 갖출 수 있다고?
이는 이재신으로서는 충분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최근 재현의 등장과 함께, 대한민국의 최연소 레이더 기록이 모두 깨지지 않았던가. 신입생 사냥, 모의던전에서의 일, 구자인 건까지.
최근 벌어진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또한, 그렇다는 것은.
‘민재현이 머지않아 한국에 파란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의미지. 거기다 그는 우리의 적일 가능성도 크다.’
이는 이번 레드 게이트 공략에 참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재현은 이미 생도 수준을 벗어나 자신과 견주어도 호각,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할지 모르는 상대다.
“나는 지금 여기서 네가 적인지 아닌지 알아야겠다.”
“발락과 같은 말을 하는군.”
챙!
재현이 조소하며 그의 검을 완전히 쳐냈다.
그의 근력과 민첩 스탯은 아무리 이재신이라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미 정상의 경치를 보기 위해 나아가기 시작한 자. 시스템의 제약에 사로잡혀 성장 제한이 걸린 인간이 상대하기에, 재현은 지나칠 정도로 괴물이었다.
후웅!
이재신은 즉시 전력을 다해 덤벼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재현에게로 쇄도하는 검.
―액티브 스킬 《신속의 길》을 발동합니다.
‘처음부터 그걸 쓰는 건가.’
신속의 길.
이재신의 고유 스킬이자, 그를 S급 레이더 중에서도 정상에 올려준 스킬이었다.
이는 일반인은 보이지 않는 바람의 방향과 길을 읽어내, 공격의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기민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야말로 범용성 면에서 따를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의 사기 스킬.
재현은 입술을 다문 채 검을 곧추세웠다. 아무리 자신을 공격해온다고는 해도, 이재신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이재신은 지금 레드 게이트 내부에 들어와 있다.
이곳에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모르고 들어왔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가 자의로 레드 게이트에 발을 들였다는 것.
‘거기다 조금 전 이재신이 했던 행동… 그것은 분명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재현은 알았다.
이재신은 무뚝뚝하고 제멋대로지만, 분명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는 재현으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재신은 무정할지언정 악인이 아니야.’
재현은 마음속으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에 대한 미약한 호감이 생긴 셈이었다.
……물론 이재신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했지만.
‘위험 요소가 있다면 제거한다.’
이재신의 눈이 번뜩이며 섬광처럼 빠른 몸이 쏘아진다.
성공한 레이더들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을 비롯해 길드에 뭔가 악한 영향을 끼칠만한 존재라면 주저 없이 제거한다.
그게 이들이 무너지지 않고 정상의 자리까지 도달한 원동력이었다.
촤앗!
적의 검이 자신의 목 끝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재현이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사이를 파고들어 오는 검을 비스듬히 고개를 젖혀 피해내고, 사각으로 이동한다.
재현은 단검을 쥔 반대 손으로 그의 명치에 정확히 주먹을 꽂았다.
쾅!
그 순간, 이재신이 검을 쥔 손의 궤적을 틀어 공격을 막아냈다.
“흐읍!”
이재신의 입에서 피 가래가 터져 나온다.
힘을 조절한다고 했는데도, 그 정도가 S급을 아득히 뛰어넘어 데미지를 입힌 탓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이재신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이제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레이더보다도 쾌속을 자랑하는 검. 그것의 발락의 것보다 힘은 부족할지언정 속도는 우위였다.
하지만.
채앵!
재현은 손에 쥔 단검으로 적의 공격을 완벽히 쳐낼 뿐이었다.
이재신이 계속해 쏘아내는 검.
그 결은 타 레이더들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지만, 단 한 자락도 재현에게 닿지 않았다.
이재신의 미간이 일그러지며 머리가 차게 식는다.
민재현… 그는 강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제 알 텐데. 당신이 날 이길 수 없다는 거.”
“…인정할 것 같으냐.”
재현의 말에도 이재신은 여전히 독기를 품은 채였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으나, 어떻게든 재현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재현은 정체가 불분명한 존재였다.
저의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그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다.
이재신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지금 여기서 그를 보낼 수는 없다.
확고한 의지가 검에 깃들며, 재현의 목을 정확히 노린다.
재현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자신 역시 이를 맞받아칠 준비를 했다.
그는 몸 전체에 잔류하는 마력을 끌어 서서히 힘을 증폭시켰다. 대기와 사물 중에 존재하는 마력을 응축시키고, 이를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킨다.
신격.
인간에게 사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상처 없이 그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를 일부 꺼내는 것이 좋았다.
이재신은 인간 중에서는 강한 상대니까.
재현은 생각했다.
이번 한 번의 공격으로 힘의 격차를 제대로 보여주겠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그라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겠지.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만은 확실히 묻고 싶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의 아들 이재상에 관한 거다.”
“…얼마든지 물어도 좋다. 다만.”
이재신이 그렇게 말하며 검을 재현을 향해 겨누었다.
“나를 쓰러뜨린다면 말이지.”
이재신의 검이 서서히 빛을 발한다.
고유 스킬의 힘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그 궤적, 그리고 이를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마력을 본다.
그리고… 쏘아낸다!
이재신의 검이 처음보다도 훨씬 빨라진 속도로 재현을 향해 날아든다.
하나, 이는 재현 역시 이미 예상하던 것이었다.
재현이 단검을 세웠다.
그는 검을 비스듬히 든 채, 마력을 끌어올려 이재신이 쏘아내는 검을 찬찬히 관조했다.
이윽고.
‘찾았다. 빈틈.’
재현의 왼편의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재신이 쏘아내는 검의 틈으로부터 마력의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현의 옅은 미소와 함께, 쥐고 있던 검에 푸른 빛이 머금어진다.
이어, 적의 공격이 재현을 향해 정확히 휘둘러지는 그 순간.
콰앙!
마력을 머금은 니드호그의 송곳니가 적의 검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마력의 운용. 그것은 S급 레이더라 해도 쉬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잠시 후.
이재신의 무릎이 굽혀졌고 재현의 검이 그의 목 바로 앞에 닿았다.
휘몰아치는 폭연 속에서, 재현은 선언하듯 말했다.
“내가 이겼어. 그럼 약속대로 한 가지 물어봐도 되는 거겠지?”
“…알겠다. 죽기 전이라 해도, 약속은 지키겠다.”
그 말에, 재현은 차갑게 내려앉은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은 왜 아들인 재상이 형에게 유독 엄격하게 구는 거지?”
전부터 궁금하던 부분이었다.
이재신. 처음부터 그가 자식에게 엄격했던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아들에게까지 이렇게 엄격하지는 않았다.
재현은 조금 전, 이재신과의 싸움에서 확신했다. 잘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재현이 내린 결론이었다.
한편, 이재신은 재현의 물음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연합, 혹은 정부의 적이 아니었던 건가?
어째서 갑자기 자신의 막내아들에 관한 것을 묻는 거지?
하지만 이미 한 약속을 어길 정도로 이재신은 명예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잠시 후. 그가 느리게, 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겐 내가 가진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여자가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그녀는 죽었지. 마수의 공격으로 말이야.”
이재신은 이를 악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약했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