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59
258화 그림자 너머(1)
―액티브 스킬 《냉혈한》을 발동합니다!
―사용자가 일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둔해집니다.
재현은 스킬을 발동해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말소시켰다.
과거 주원과의 싸움에서 영웅을 동경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재현은 자신의 감정을 지울 수 있는 냉혈한이라는 스킬을 습득했었다.
재현은 이를 사용해 지금과 같이 감정을 지워낸 것이다.
그것은 다른 레이더가 결코 해낼 수 없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적이 자신의 두려움을 먹고 강해진다면, 그래서 상대하기 어렵다면. 나의 감정을 지워내면 된다.
그러면 그 어떤 두려움도, 공포도 이 싸움의 성패를 가르지 못하게 될 테니까.
재현은 이어 마력을 전개해 손에 응집시켰다.
―액티브 스킬 《마도구의 형상화》를 발동합니다.
―장비 아이템 《마검 티르빙(신화)》를 제작했습니다.
재현은 손 끝에 걸리는 가볍고도 고도의 기술이 응축된 마검을 쥐었다.
마검 티르빙.
그것은 소유자를 계속해 타락시키려 드는 무기였다. 재현이 냉혈한을 사용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 지속 가능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겠지.
최대한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검에 먹히게 될 것이다.
재현은 호흡을 골랐다.
“어둑시니라고 했나. 너에게는 익숙한 마력이 느껴진다.”
태초의 마력을 제하고도, 어둑시니로부터는 재현에게 아주 익숙한.
마치 오래도록 곁에서 지켜보았던 존재의 것으로 느껴지는 마력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재현은 이미 그 마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어, 재현이 망설이지 않고 검을 쥔 손목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퍼엉!
머리를 향한 정확한 찌르기 자세와 함께, 적의 머리가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그림자가 흩어졌고, 하늘 위로 검은 조각이 파편이 되어 쏟아져 내린다.
어둑시니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재현보다 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재현에게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못했고, 그로 인해 되레 작아졌다. 때문에 재현은 그를 가볍게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 《어둑시니》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어둑시니》의 그림자 파편이 《심연의 갑옷》에 스며듭니다!
―《심연의 갑옷》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스탯 포인트 5를 획득하셨습니다.
공동의 레이더 전원은 그저 망연한, 또 기겁한 표정으로 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레이더. 그는 자신을 검은 로브라고 밝혔다.
사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대유적 도굴 사건 이후, 그를 사칭하는 레이더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진짜는 단 하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도. 일본도 더는 그를 쫓지 않는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며, 그 정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한데, 그가 한국에 나타났다.
그것도 전례 없는 최대 규모의 재앙. 레드 게이트에 말이다.
이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 저 괴물을 일격에…!”
“정말… 검은 로브란 말이야? 저 남자가…!”
“하지만 어째서 그가 이곳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적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사실 유럽 연합이 그의 추적을 멈췄을 때부터 그가 악인이 아닐지 모른다는 소문 자체는 돌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카더라에 지나지 않았기에 믿는 자는 없었다. 어쨌든 도굴을 당한 것은 맞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악인이라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편견은 조금씩 걷혀가기 시작했다.
야마타노 오로치를 토벌했을 때부터 여론이 급히 반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연합의 수장 모리야 렌키는 기자를 비롯한 갖은 언론인들을 모아둔 자리에서 그가 악인이 아님을 천명했다.
모리야 렌키는 검은 로브가 일본 연합에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야마타노 오로치의 토벌을 수행했으며. 이로 인해 죽을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검은 로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검은 로브는 악인이 맞나?
아이슬란드의 대유적을 공략한 데도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단신으로 S급 마수를 토벌할 수 있는 레이더는 세상에 없었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상에는 그와 같은 영웅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의 눈앞에는 처참히 부서져내리는 마수의 사체가 보인다.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저 남자는 검은 로브가 맞다.
* * *
검은 로브가 재현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이재신과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현은 강하다. 그것은 머리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대유적을 공략하고, 갖은 사건에서 얼굴을 비췄던 이가 바로 옆에 있는 친구였을 줄이야.
그들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재현에게 다가가 뭔가 물으려던 때.
재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워프 스톤을 사용해 여기서 나가십시오. 아직 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그러고 보니 아직 던전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검은 로브… 당신은 뭔가 알고 있는 겁니까?”
신지훈. 수련의 길드 마스터가 물어왔다.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해드릴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재현의 말에, 각 길드의 길드장은 더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아냈다.
지금은 자신들이 그에게 무언가 물을 자격은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까지나 대등한 관계에서만 질문은 효용성을 갖고, 때로 강제성을 지닌다.
하지만 지금 자신과 그 동료들은 검은 로브에게 구해진 입장이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이것저것 캐묻는 것은 도저히 예의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모두 철수한다!”
각 길드의 길드장들이 하나둘, 워프 스톤을 사용해 공동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재현의 동료들 역시 그가 해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스톤을 사용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이나는 걱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지금은 재현 이외에 그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
여기서 막지 못한다면 죽는 것은 같다.
그의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수백 개의 빛무리가 모두 걷히고.
레드 게이트의 공동에는 재현이 홀로 남아 서 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언제까지 뒤에서 숨어 마수만 조종할 생각이지?”
“…여기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짙게 깔린 어둠. 구름처럼 피어오른 연기가 모여 탑을 쌓는다.
그곳으로부터 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후긴.
재현의 숙적이 그곳에 있었다.
* * *
처음 후긴이 이 던전의 설계자라는 것을 깨달았던 때는, 이곳 게이트에 태초의 마력 외에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 당시에 재현은 생각했다.
‘이곳에서 후긴의 마력이 느껴진다. 그 녀석이 여기 있는 거야.’
명분도 확실했다.
오딘의 까마귀 중 하나인 후긴은 타인의 감정을 갖고 노는 마수였다.
그는 과거 주원의 감정조차 빼앗아 그를 괴물로 만든 적이 있었다.
이번 레드 게이트에서 보았던 트라우마의 환영.
이를 준비한 것이 그라면 모두 설명이 된다.
후긴이 재현에게로 걸어오며 말했다.
“그간 쭉 너를 지켜봤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얻었지. 너는 역시 위험요소다.”
“그래. 그렇겠지.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니까.”
재현은 후긴의 말을 그대로 받아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조금 전 상대했던 어둑시니. 그 역시 S급을 아득히 초월하는 마수였지만, 지금 상대하는 까마귀에 비하면 그리 강하지 않다.
후긴은 까마귀 중에서도 유독 강하다.
헬라는 그렇게 말했었지.
[재현 군. 조심해야 합니다. 그는 지금 진체의 모습으로 이곳에 강림한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죠?] [헤임달 때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물론 제약이 있으니 마음대로 힘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3할 이상의 힘을 꺼낼 가능성도 있다는 겁니다.]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3할의 힘을 지닌 신. 이제 그에게 이는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일이 그리 쉽게 풀릴 리 없지.
그들 역시 계속해 강해지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예언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재현은 잘 알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 이 힘이 모두 닳아버리면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겠지.
‘그렇게 둘 생각 따윈 없지만.’
재현은 감정이 얼어붙어 무표정한 얼굴로, 신격을 담은 마력을 쏘아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식을 구축하고, 변환해 그대로 터뜨린 것이다.
―액티브 스킬 《빙결의 대지》를 발동합니다.
필드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기술. 하지만 이는 범위를 채 다 확장하지 못하고, 적의 공격에 가로막혔다.
어느새 검을 쥔 후긴의 손짓 한 번에 얼음에 균열이 생겼다.
쩌적!
쾅!
폭발음과 함께 얼음이 터져나가며, 그를 공격하던 마력이 흩어졌다.
“이 정도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재현은 재빨리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동요하지 않는다. 당황은 자신을 약하게 만든다.
후긴, 재현은 그를 이곳에서 멀쩡히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헬라. 도와주십시오. 파피 너도!”
크릉!
“알겠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헬라가 헬헤임의 문을 열어 병사들을 소환한다.
파피 역시 브레스를 통해 후긴의 검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후긴과 재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챙!
불꽃이 튄다.
검과 검 사이. 그곳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 기세를 확장해 나간다.
재현은 검을 비틀었다. 궤도를 틀고, 적의 어깨를 노린다.
키잉!
허나 재현의 검은 그가 두른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튕겨나갈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깊은… 그림자?
‘그림자로 된 갑옷을 갖고 있군. 나와 같은 물건은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하는 순간, 후긴의 손이 반사적으로 휘둘러졌다.
검을 다룬 시간은 후긴이 좀 더 길었다. 재현이 빠르게 성장했다고는 하나, 두 존재의 검술 성취는 비슷했다.
재현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타고 올라오는 검을 쳐냈다.
후긴이 거리를 벌리며 문득 운을 뗐다.
“나는 네가 던전의 환영에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그 안에 갇혀 영영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한데 아니었다.”
후긴이 목에 힘을 주어 이었다.
“말해라. 너는 어떻게 매순간 나아갈 수 있지?”
검을 맞부딪힌 채 물어오는 후긴.
재현이 차가운 얼굴 위에 부러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억울해서.”
채앵!
검을 튕겨낸다. 재현의 왼편의 눈이 금빛으로 물들며, 검에 마력이 깃든다.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거든.”
“무슨 소리지?”
“여기서.”
재현의 손끝에 가느다랗게 뻗어 나온 마력이 실처럼 번져가며 기세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인챈트. 과거 헬라에게 배웠던 것으로, 아티팩트에 특정 속성의 마력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현이 여기서 선택한 것은 신성 속성의 마력. 그는 신성의 힘을 도신에 잔존시켜, 스스로 회전하게 했다.
츠츠츳…!
찰나의 순간, 재현의 검이 후긴의 왼팔을 향해 그대로 그어진다. 이윽고. 후긴을 두르고 있던 그림자 중갑이 헤쳐지기 시작한다.
후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가 바로 물리, 마법에 모두 강한 그림자 갑옷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적자는 대체 어떻게 나의 갑옷을 뚫어낸 거지?
그는 몰랐다.
재현 역시 그림자 갑옷을 갖고 있고, 그 약점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이런.’
후긴은 채 입 밖으로 탄성을 질러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검이 살점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드높이 피 분수가 솟구쳤다.
재현이 건조한 표정으로 후긴을 바라보며 이었다.
“청산하게 해 주겠다는 거야.”
촤아아앗!
“역시 신성 속성 마법이 약점이었군.”
재현이 냉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후긴의 표정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지만, 그의 신체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재현은 후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왼팔이 정확히 날아가 있었던 것이다.
재현이 이번에는 검을 바꾸어 들었다.
니드호그의 송곳니. 단검으로 변칙적인 검을 섞어 그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냉혈한의 효과로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였지만, 아마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재현은 틀림없이 그럴 거라 생각하며 손에 쥔 후긴의 왼팔을 보았다.
그가 말했다.
“전에 네가 말했었지. 내 사지 정도는 받아가겠다고. 이젠 내가 되돌려줄 차례야.”
재현이 검을 세웠다.
“자, 이제 세 개 남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