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
2화 운수 좋은 날(2)
―에시르 시스템이 다운되었습니다.
―상태창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진짜 안 되네.”
이미 몇 번이나 같은 시도를 해 봤지만 역시 결과는 같았다.
‘상태창이 열리지 않는다.’
―일부 손상된 파일이 있습니다.
―안전 모드로 프로그램의 복구를 시도합니다.
프로그램의 재부팅 시작과 함께 시스템음이 다시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재현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각성자가 된 열 살 무렵부터 17년 동안 시스템이 다운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재부팅이니 뭐니 하며 시스템을 복구한 적도 물론 없었고.
‘들려온 목소리…… 그게 시스템 다운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분명 시스템은 ‘알 수 없는 이형의 존재’가 시스템에 잠입했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현재로서는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이형의 존재’의 침입과 다운된 시스템. 의문의 목소리가 전해 온 불빛을 따라가라는 메시지.
재현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자신을 앞서는 하얀 빛을 주시했다.
‘각성자 게시판 어디서도 시스템이 다운되었다는 글은 읽은 적 없다. 그렇다면…… 에시르 시스템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에시르 시스템은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생체 시스템의 일종이었다.
오딘과 토르를 비롯한 아스가르드 신을 일컫는 말. 에시르(Æsir)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스템은, 절망의 끝에 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자 보루였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재앙의 해라고 불리던 2011년.
태평양에 한가운데에 높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다.
하루아침에 싹을 틔우더니 단 9일 만에 자라나 하늘을 뒤덮은 나무.
어떤 이들은 지구 멸망의 신호, 어떤 이들은 축복의 나무라고 부르던 이 나무의 진짜 이름은 이그드라실. 신화에 등장하는 세계수였다.
그리고 꼭 나무가 다 자라난 9일째 되던 날.
비극은 시작되었다.
전 세계에 ‘몬스터’라고 불리는 전례 없는 규모의 재앙이 창궐한 것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과 용을 비롯한 갖은 괴수들. 그 모든 것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류의 절반은 목숨을 잃었고, 다시 거기서 절반은 기근과 역병으로 명을 달리했다.
몬스터는 어떤 전염병, 전쟁보다 많은 시신을 만들어냈다.
인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몬스터는 지나치게 강했다. 화기를 비롯한 과학의 산물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대부분의 국가 군대가 몬스터에 의해 괴멸되었다.
이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인류에 작은 희망이 태동했다.
바로 ‘각성자’라고 불리는, 신의 권능을 지닌 인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각성자들은 신의 권능.
즉‘에시르 시스템’을 바탕으로 몬스터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각성자. 그리고 그중에서도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들 레이더. 인류의 영웅인 그들이 다루는 가장 강력한 무기.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 어떤 존재가 고안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시스템.
그게 바로 에시르였다.
그런데.
‘만약 에시르 시스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어느 쪽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긴 어려워.’
재현이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탁!
분주히 걷던 재현의 발이 불시에 멈췄다. 허공을 떠돌던 빛이 한 자리에 머무르며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재현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곧 충격에 빠진 몰골이 되었다.
“거대한…… 문?”
자신의 눈앞에는 녹이 슨 거대한 철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는.
정체 모를 오래된 벽화가 새겨진 문.
“이건…… 설마?!”
재현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곧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트레저 게이트다!”
* * *
트레저 게이트.
상위 던전에서 매우 낮은 확률로 등장하는 보물이 숨겨진 방. 대개 특별한 아이템 혹은 명약이 되는 재료인 아이템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트레저 게이트의 아이템은 최소 1억을 넘어간댔지. 아마?’
재현은 환희에 젖은 얼굴로 문에 손을 얹은 뒤, 심호흡했다.
‘여기서 A급 이상 장비 아이템만 나와 준다면…… 이 지긋지긋한 생활 당장에라도 그만둘 수 있어!’
일반적으로 A급 장비 아이템의 가격은 10억을 훌쩍 넘어간다. 대한민국에서 적당한 전셋집을 구해 남은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기엔 충분한 금액.
“제발…… 신이 있다면. A급 이상 장비가 나오게 해 주세요…….”
녹슨 문에 얹힌 재현의 손에 힘이 실리더니, 곧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반쯤 열린 문틈으로 트레저 게이트의 내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재현은 조심스럽게 게이트 내부로 발을 내디뎠다.
“던전 안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TV에서 떠들어 대던 게 도시 전설이 아니구나.”
벽 면면을 밝히는 불꽃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제단.
제단에는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작은 구체의 형상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아이템인 것 같네.”
재현의 입꼬리가 사정없이 올라갔다.
“그럼.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해 보실까?”
재현은 망설이지 않고 제단으로 향했다.
위이이이잉…….
투명한 빛을 뿜으며 회전하는 구체로부터 모터 같은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현은 작게 심호흡한 뒤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침내 재현의 손이 구체를 파고드는 순간, 청량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시스템의 일부 기능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장비 아이템을 습득했습니다.
―습득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때마침 일이 착착 진행되는구만.”
시스템마저 적절한 상황에서 복구되었다. 좋은 일은 한 번에 겹쳐 온다고 했던가?
재현은 설레는 마음으로 떠오른 상태창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
아이템의 설명을 읽던 재현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곧 그의 표정에 당혹이 물들었다.
재현은 눈을 비비고 다시 허공에 뜬 상태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비 아이템]이름: 오딘의 잃어버린 눈
등급: 신화
에시르 최고 신 오딘이 미미르의 샘에서 지식을 얻기 위해 포기한 한쪽 눈.
장착 시 룬 문자를 터득하게 되며, 마법을 역산해 해제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
*전 세계 유일의 신화급 아이템.
*주의! 장착 시 귀속!
[효과]1. 스킬 《절대 연산(絕對 演算)》을 습득한다.
2. 룬 문자의 완전한 이해로 캐스팅 없이 온전한 위력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3. 블랭크 카드를 소모해 상대의 스킬을 카피할 수 있다.
*스킬을 카피할 때, 그 페널티는 함께 적용되지 않는다.
*단, 스킬 습득 시 블랭크 카드를 한 장 소모한다.
소유 중인 블랭크 카드: 1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신화급 아이템.
감히 값어치를 매길 수조차 없는 아이템이 바로 재현의 손에 들어왔다.
재현은 경악에 빠진 몰골로 뇌까렸다.
“……실화냐?”
다시 보고 또다시 봐도 여전히 같은 설명이었다.
―등급: 신화
‘이제까지 경매에 나온 아이템 중 가장 등급이 높았던 건 S급. 그마저도 경매장에 등록되자마자 수백억을 가뿐히 넘겼다. 특히 마법 관련 아이템인 경우엔 부르는 게 값인데…….
뭐? 신화급 아이템?! 그것도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하…… 하하…….”
재현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제 더는 그런 개고생 안 해도 돼. 다른 길드에 무시당할 일도 없고, 던전에서 고기 방패가 될 일도 없어!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뭐든 가질 수 있다고!”
기쁨에 젖은 재현은 《오딘의 잃어버린 눈》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자신에게도 봄날이 온 것이다.
재현은 벅차오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 얻은 김에 한번 껴 보기라도 할까? ……그래. 내가 언제 신화급 아이템을 껴 보겠어?”
자고로 레이더라면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갖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더 높은 등급의 아이템은 레이더의 자존심이 되기도 하고, 던전에서의 생명을 담보하기도 하니까.
재현은 마음을 굳히고 아이템을 장착하기 위해 상태창을 조작했다.
그때.
―주의! 《오딘의 잃어버린 눈》 아이템은 장착 시 귀속됩니다. 장착하시겠습니까?
“아, 아니! 당장 취소해! 당장!”
신화급 아이템이란 말에 홀려 주의 사항을 읽지 않았던 재현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하마터면 기껏 얻은 신화급 아이템 날려 먹을 뻔했네.”
재현은 다시 인벤토리에 《오딘의 잃어버린 눈》을 집어넣으며 식은땀을 닦아 냈다.
“이건 내가 장착할 이유가 없지. 그냥 팔기만 해도 수천억이 넘을 텐데.”
무려 신화급 아이템이다. 굳이 장착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재현은 지난 7년간 레이더로 살아오며 무수히 많은 적과 대면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도, 실제로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
그에게 레이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 애착이 있어서 이 일을 계속해 온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재현은 《오딘의 잃어버린 눈》을 절대로 착용할 계획이 없었다.
‘넓은 집에, 외제차에…… 이제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어!’
재현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트레저 게이트를 나섰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하, 민재현 씨는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좀 있으면 다시 공략 시작해야 하는데.”
“아마 금방 올 겁니다. 잠시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입니다.”
이명호는 필사적으로 둘러댔다.
“하…… 이것 참.”
공대장 박찬혁은 특수 처리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한 티를 냈다.
그렇지 않아도 길드 예산이 모자라 인원이 부족한데, 한 명이라도 빠지면 전력 손실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후위에 선 이들은 근접 공격에 취약한 마법사들.
몬스터가 조금만 거리를 좁혀 와도 우왕좌왕하며 진영이 무너질 터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 아! 저기 오네요. 재현 씨! 빨리 오세요. 곧 공략 출발한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재현이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박찬혁은 한숨을 내 쉬며 타일렀다.
“이렇게 개인 행동하시면 곤란해요. 다음부턴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재현은 다시 한번 사과를 건넸다.
다행히 박찬혁 역시 더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저, 재현 씨.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응?”
“하하, 아니에요. 형님. 저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소주는 제가 사겠습니다. 맨날 얻어먹기만 할 수는 없죠.”
“어? 어…….”
이명호는 예상과 전혀 다른 재현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이 스물일곱에 드디어 실성한 건가?’
한 손에 방패를 꽉 쥐며 대열을 맞추는 재현은 어딘가 밝은 표정이었다.
‘후…… 일단은 넘어갔나.’
재현은 트레저 게이트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이곳은 던전 안.
어떤 일이 일어나도 외부에 알려지는 법이 없는 무법지대다.
여기서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곧 죽겠다는 의미나 다름없고, 재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예정대로 던전 공략을 다 끝낸 뒤에 아이템을 팔아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쓸데없는 의심을 사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이명호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자신도 방패를 집어 들고 전열을 맞췄다.
공대장은 다시 맞춰진 전열을 바라보며 균열이 없는지 확인한 후 소리쳤다.
“자, 그럼 전열도 다시 갖췄으니 다시 공략을 시작하게…….”
콰쾅! 콰콰콰콰!
강렬한 폭발음이 귀를 찢어발긴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