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시각의 금제(1)
―방울을 모두 터뜨리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두 번째 금제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금제를 치를지, 시련을 종료할지 결정해주십시오.
“허억… 다음으로 간다.”
재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처음 퀘스트를 받았을 때, 최대한 많은 금제를 극복할수록 더 많은 보상을 준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재현은 지금까지 자신의 비약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메인 퀘스트. 그리고 시련.
자신이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때.
그것은 시련을 치를 때였다.
시련은 언제나 재현을 경이로운 속도로 성장시켜주었다.
한데, 더욱 강해질 기회를 날리라고?
아무리 시련이 자신을 귀찮게 한다고 해도 그건 손해였다.
특히 요르문간드에게서는 최대한 많은 것을 뜯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걸 위해 그의 아재 개그까지 참았던 게 아닌가.
“그건 정말 끔찍했지.”
재현은 다음 금제로 향하는 포털 앞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윽고 새파란 포털을 지나, 이어 재현이 도착한 곳…은.
재현이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뭐지? 전송은 제대로 된 거 같긴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포털은 자신을 다른 장소로 데려다 놓았다.
한데, 어째서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지?
지금 재현의 눈앞은 그야말로 칠흑이었다.
보이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렇게까지 되니 뭔가 문제가 벌어진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요르문간드가 시련을 대충 준비한 게 아닌가 생각하던 때.
시스템 음이 들려왔다.
―요르문간드의 두 번째 금제 《시각의 금제》가 적용됩니다.
재현은 귀를 의심했다.
뭐? 시각의 금제?
자신이 들은 게 맞다면, 그것은 시각을 차단한 채 이번 스테이지를 치르게 한다는 의미였다.
재현은 어이가 없었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각을 봉인해라?
허나 금제의 클리어 조건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시련의 숲》에서 금제를 건 채로 마수를 사냥하고, 7일간 살아남으십시오.
갑작스레 생존 게임이 시작되었다.
재현은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런 시련을 주는 이유가 뭐지?
시각의 금제.
그것은 이름부터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인간에게는 무수히 많은 감각이 있고. 재현은 신격을 얻어 반신의 경지에 도달했다지만, 여전히 반은 인간이었다.
지금의 금제는 이를 극복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감(五感).
초월적 존재는 이를 온전히 통제하고, 자신의 경지를 개척한다고 한다.
허나, 아직 해방 3단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재현에게 이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진다.
‘딱 봐도 이번이 방울 터뜨리기보다 몇 배는 더 어렵겠는데.’
보이는 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인간은 좌절하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안도한다.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관용구가 그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침착해야 한다.’
재현은 이제 버릇이 된 혼잣말조차 삼키며 그렇게 생각했다.
시각의 금제가 걸려 있는 상황이다. 소리를 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당연지사.
언제 어디서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이니까.
때문에 재현은 사고를 거듭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금제 덕분에 먼 거리를 움직인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조금 앞으로 갔을 뿐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보를 유추하는 것은 가능했다.
‘일단 여기는 숲이다. 발에 밟히는 나뭇잎 소리를 들었을 때, 추정되는 시기는 가을이나 겨울의 초입.’
공교롭게도 배를 굶주린 짐승 형 마수들이 들끓는 타이밍이었다.
―액티브 스킬 《마력 감지》를 발동합니다.
재현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정보를 파악한다. 그리고 다가올 위협에 대비한다.
재현을 지난 시간 동안 레이더로서 살아남게 해 주었던 감각이 빛을 발하며, 그의 신경을 집중하게 한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시켜 주고 있었다.
크르르르….
그리고.
재현이 뭔가를 알게 된 시점부터, 어디선가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낮게 깔린 울음.
거기서만큼은 재현도 간만에 섬짓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신격을 지닌 존재가 아닌, 마수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액티브 스킬 《마도구의 형상화》를 발동합니다.
재현은 공격 범위가 넓은 대검, 발뭉을 소환했다.
파괴력 자체는 신화급인 니드호그의 송곳니나 티르빙이 더 뛰어나지만, 지금처럼 시각이 금제된 상황에서는 리치가 긴 편이 더 유리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재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법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빙결의 대지 Lv 5》를 발동합니다.
콰드드드득!
재현이 단번에 적을 쓸어버리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을 때였다.
―사용자의 마력에 신격이 섞여 있습니다!
―첫 번째 금제 《무게의 금제》가 적용됩니다.
재현의 몸이 휘청거린다. 그제야 시스템이 말했던 한 가지 사실이 상기된다.
[시련을 치르는 동안, 모든 금제는 중첩됩니다.]* * *
나인의 일원들은 서울의 아공간으로 모디와 마그니를 유도했다.
과거 선상 파티가 벌어졌던 곳보다도 몇 배는 더 규모가 큰 장소.
이곳이라면 아무리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시련을 빠르게 치르고 재현이 돌아온다면 더욱 상황은 좋아질 테고.
“너희에게 이렇게 무거운 짐을 맡겨서 미안해. 우리도 최선을 다해 도울게.”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해볼게요!”
유성은의 미안하다는 듯한 말에 김유정이 쾌활히 대답했다.
유성은은 잠시 김유정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저런 밝은 아이가 자신의 동료를 위해서 희생하려 했단 말인가. 겁도 많은 저 아이가.
새삼 세상이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더라는 이름으로 세계는 수많은 아직 어린아이들을 도구로 삼고 있다. 자신의 방어책으로 다루고, 이를 정치적으로까지 활용하는 것이다.
최근 세계 레이더 연합의 연설만 들어도 그렇다.
그들은 대적자와 나인을 영웅으로 묘사하며 자신들을 지키는 울타리로 사용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 역시 내심 짐작하고 있겠지. 영리한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아마 이들의 상냥함과 지켜야 할 사람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유성은이 뼛속까지 레이더라 해도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팠다.
S급 레이더에 오른 뒤에는 이런 일을 겪은 적이 거의 없었던 그녀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감정은 커졌다.
“너무 무리하지 마.”
“저희도 죽을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재현이가 올 거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겠죠. 우리 선에서 저들을 처치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아직 저희는 이제 걸음을 뗀 것뿐이니까.”
안호연이 차분히 말한다.
그는 결코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았다. 최근 강한 힘을 얻으며 S+급이라는 최고 신설 등급을 받은 이들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차분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다.
‘많이 바뀌었어. 이 아이도.’
유성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안호연의 흔들리는 잿빛 머리칼을 보았다.
과거 유성은은 안호연은 연화의 영입 리스트에 올려놨다가, 취소한 경험이 있다.
레이더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그가 심각한 결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멘탈. 그게 약한 이에게 더 높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호연이는 재능만큼 성장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지. 지금 그는 나보다도 강해.’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재현의 존재. 그것이 모두를 강하게 성장시켰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유성은은 자신의 제자의 현 실력이 이제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재현은 명실상부 최상위 레이더였고,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다만, 그녀는 그가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지 않길 바랐다.
그 강함이 얼마나 됐든, 그는 자신의 제자다. 고생하는 것을 보는 것은 스승으로서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여기 있어 봐야 방해가 되겠지?”
유성은의 말. 나인의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이 조금 과한 감이 있지만, 사실이었다.
지금 이들에게 다가오는 적은 S급 레이더로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유성은과 박성재는 뒤에서 이들을 서포트하는 쪽이 훨씬 나았다.
“뒤에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긴 저희가 어떻게든 막아볼게요.”
김유정까지 그렇게 말했고, 서이나도 동조했다.
“…재현이가 없는 지금은 이게 최선이에요. 저흴 믿어주세요.”
“당연히 믿지.”
유성은이 화사하게 웃었다. 박성재는 뒤편에서 슬슬 느껴지는 극렬한 적의를 느꼈다.
그것은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이어서.
다그닥. 다그닥.
현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말을 탄 두 남자가 이쪽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유성은과 박성재는 이미 전투 현장에서 조금 떨어졌다. 그들은 먼 곳에서 이들을 보조하는 역을 맡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재신과 다른 레이더 연합의 멤버들은 다른 곳에서 발생한 거대 게이트들을 막는 중이었다.
최근 6개월간, 이런 레드 게이트 때와 마찬가지로, 대형 게이트의 출몰이 잦아졌다.
정말 라그나로크의 도래를 의미하는 일이었다.
“저건… 틀림없어. 헤임달과 비슷한 마력을 지닌 녀석이야.”
권소율의 말이었다.
그녀는 과거 야외합숙 당시 헤임달에게 직접 공격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이는 그들의 마력을 가장 선명히 느낄 수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서이나 역시 긍정했다.
“…맞아요.”
“너희가 대적자들의 동료들인가?”
앞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던 모디와 마그니가 이들의 앞에선 채 말했다.
말이 힘차게 투레질을 한다.
그로부터 불꽃이 튀며 척 보기에도 그 말이 명마임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뇌신 토르의 아들들이다. 대적자를 처치하기 위해 미드가르드에 친히 당도해 주었다.”
“…재현이를 공격할 건가요?”
서이나의 말에 두 존재는 곧바로 긍정했다.
“물론이다. 그는 에시르의 적. 그것도 예언이 점지한 대적자니까. 하지만 그 전에.”
“너희를 먼저 처치하기로 했다.”
모디와 마그니는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어 굉음과 함께 지축이 파인다.
쿠웅!
땅이 여러 개의 조각으로 갈라지고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진다.
마그니가 피식 웃었다. 그가 말에서 내리며 잠시 생각했다.
‘인간 치고는 강하다. 능력도 있어. 하지만 제대로 성장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모두 부질없는 일이지. 헬헤임에서 나를 원망해도 그때는 이미 늦었다!’
마그니의 몸이 그대로 김유정을 향해 쏘아진다. 그러나 나인의 멤버들은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안호연이 김유정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유정아!”
“알았어!”
그 순간, 마그니는 충격적인 광경을 보았다.
콰아앙!
인간이… 감히 순수 완력으로는 아버지인 토르와 비견된다 전해지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아무리 손속에 자비를 두었다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그때 들려온 시스템 음.
―액티브 스킬 《소울 링크》를 발동합니다.
―파티원 4인(1명 부재중)이 공격을 함께 감당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체력이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갔을 때.
때를 맞춰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재상이 재빨리 포션을 마셔 HP를 회복했다.
그러자 이재상의 체력이 회복되는 것과 함께, 다른 이들의 HP 바의 게이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약한 놈은 나름대로 발버둥 치는 방법이 다 있는 법이거든.”
안호연이 그렇게 말하며 씩 웃어 보였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할 수 없다면,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겠다.
재현이 없는, 또 약한 동료들이 싸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