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34
334화 시나리오(1)
‘이상해… 이나를 보는데.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 거지?’
재현의 얼굴에 진심으로 당혹이 물든다. 그는 지금 자신의 감정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 들려왔던 시스템 메시지.
아마 그게 원인일 테지.
―시구르드와 브륀힐트 사이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등장인물과의 동기화율은 현재 10퍼센트입니다.
―등반자가 맡은 배역의 주인 《용살자》가 사랑의 노래를 시작합니다!
동기화율. 시나리오.
재현은 과거 이것과 같은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때는 주원과 싸우기 직전, 책 속에서 그의 기억을 보았을 때였다.
재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생각했다.
‘퀘스트는 늦게 클리어할수록 등반자가 기억을 잃는 페널티가 있다고 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동기화율이 상승할수록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식이겠지.’
재현은 당시 주원의 기억에 점차 동화되어 소년이 될 뻔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고.
‘물론 이번엔 나도 성장한 만큼 그 정도까지 휘둘리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이나는 달라. 동기화를 겪는 건 처음이야. 어떻게든 빠르게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한다.’
재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라타토스크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가 플레이해야 하는 첫 번째 시나리오의 내용. 그건 뭐지?”
“…잠깐만, 재현아. 그 전에 네가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부터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서이나가 재현을 여전히 애정이 담기 눈으로 보며 말했다.
재현은 어째선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재현은 그로부터 약 십여 분 동안 자신이 어떻게 그녀를 찾았는지 대략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건 모두 라타토스크 덕분이었다.
라타토스크는 조금 전 재현이 그녀의 상태에 관해 물었을 때,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지지지―지금은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요. 아마 우우―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듯해서 그게 좀 걸리긴 합니다만―.] [움직이지 못한다고?] [그―그렇습니다요. 시구르드와 브륀힐트가 사랑에 빠질 무렵에 오오―오딘이 브륀힐트에게 저주를 내―내렸거든요!]곧바로 이해는 안 가는 말이었다.
기본적으로 발키리라면 오딘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오딘이 자신의 수족에게 저주를 내린 거지?
[그녀는 와와와―왕국 간의 전쟁에서 오―오딘의 명을 거스르고, 다른 왕국의 승리를 선언해서 오오―오딘의 눈 밖에 나 버렸습니다요.]대략적인 사정은 이러했다.
오딘은 인간 세상에 이것저것 간섭하며 그들을 제 입맛대로 조종했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두 왕국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최종 승전국을 결정하던 게 바로 브륀힐트였고, 그녀는 오딘이 승리했으면 했던 왕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때문에 오딘은 그녀에게 벌을 주었다.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쓴 채 산의 정상에서 깊은 잠이 들어, 자신을 깨운 상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벌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때 잠들어 있던 브륀힐트를 깨운 것이 바로 시구르드.
이러한 연유로, 두 사람의 로맨스 서사가 메인인 이 퀘스트의 시작점에서는. 그녀가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일 것이라 유추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돼서, 내가 네가 있는 정상까지 뛰어온 거야.”
“…그랬구나.”
서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현은 계속해서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감각. 서이나가 어떻게 이를 견뎌내고 태연한지 신기할 정도였다.
“이나야. 너는 괜찮아?”
“…응?”
“이 시나리오 때문에 그… 감정이 약간 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나는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의외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재현은 당황했지만, 자신만큼 서이나의 정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판단하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무리 아파도 티를 잘 내지 않고 묵묵히 제 일을 하는 그녀다. 자신에게 힘든 내색을 할 리가 없긴 했다.
“그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첫 번째 시나리오의 내용은 뭐지?”
재현이 말하는 시나리오라는 것.
그것은 즉, 강제 진행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게임에서의 컷 신처럼 개입의 여지 없이 진행되는 부분.
과거 치렀던 테마 던전이나, 주원의 기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됐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이 퀘스트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단 한 번, 시나리오의 한 부분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정도겠지.
“아아아―아마 첫 번째 시나리오는 지금 끝난 것 가―같습니다요. 마―만남, 그것 이상의 시나리오는 없으니까요!”
“그런가. 그럼 다음 시나리오는 뭐가….”
재현이 말을 하려던 때. 두 번째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서로의 혼약을 약속하십시오.
재현은 어이가 없어 라타토스크를 바라보았다.
그는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 재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시―시스템의 이야기가 맞습니다요! 시구르드와 브륀힐트는 처음 만난 이후 사랑에 빠져 서―서로 결혼을 맹세했습니다요!”
“…….”
“…….”
재현과 서이나의 시선이 잠시 부딪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청혼을 하라고?
* * *
―이그드라실 나선탑의 《제3계층: 그림자와 극복의 층》으로 등반자를 전송합니다.
다른 멤버들은 재현과 이번에도 다른 내용의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림자와 극복의 층.
지금 이들은 이그드라실에 들어온 이래 가장 힘든 전투를 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랑 싸우라니… 대체 이게 뭔 일이냐고….”
김유정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하며 스태프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액티브 스킬 《어스퀘이크》를 발동합니다.
현재 그녀가 발동한 어스퀘이크는 상위 마법으로, 지속성의 공격력이 매우 뛰어난 스킬이었다.
허나, 반대편에 상대하고 있는 적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그녀와 정확히 같은 스킬로 김유정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아 씨… 이걸 어케 깨라는 거야!”
“하, 이번에는 아무리 나라도 방법이 바로 생각 안 나는데.”
김유정의 푸념에, 권소율까지 동조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다른 멤버들 역시 거의 같은 상태였다.
심지어는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강한 헬라까지 당황한 모습.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건너편의 그림자 형상을 한 적.
그것은 모두 자신들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인형들이었으니까.
“개개인의 모습뿐만 아니라 쓰는 스킬이나 스탯까지 싹 다 복사한 적이야.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위험해.”
안호연이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헬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입니다. 심지어 적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존재. 마력만 흘려 넣으면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저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그럼 어떻게 하죠?”
김유정이 물었으나 답은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인의 멤버들은 최근 재현의 곁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을 거듭했다.
더욱 빠르게 등급을 끌어올리기 위해 발락과 카밀라 등에게 계속 지도를 받았고, 유성은에게도 이것저것 도움을 받았다.
재현이 6개월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도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한데….
지금의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 실력을 꾸역꾸역 끌어올렸더니, 나를 본떠 만든 적을 상대하게 한다고?’
실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적은 강하다.
지치지 않고, 이들의 한계가 어디인지 시험하는 듯하다.
가장 두뇌 회전이 빠른 권소율과 김유정 역시 당장 쓸만한 답은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의 장기화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고 말이다.
“일단은 침착하자.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방어하고, 그러면서 각자 방법을 생각하는 거야.”
권소율의 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그것은 결국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적든 많든 시간을 끌면 계속 체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들에게 승리를 거둬야 한다.
그것은 바뀌지 않는 진리다.
하지만….
“나한테 생각이 있어.”
이재상이 말을 꺼낸 건 그 순간이었다.
챙!
“큽!”
그 순간, 안호연은 자신의 모습을 본뜬 그림자의 검을 막아내며 짧게 신음했다.
그가 겨우 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 방법이라는 거 뭐예요. 형?”
“호연이와 헬라, 유정이 네가 뒤로 빠지고 소율이랑 내가 앞으로 나서는 거야.”
“…네?”
“뭐라구요?”
“너 실성한 건 아니지…?”
동료들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재상의 두 눈은 한없이 침착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다는 확실한 표현이었다.
* * *
“…그래서. 갑자기 여기서 청혼이라도 하라는 거야? 우린 친구라고, 그런 거 낯간지러워서 할 수 있을 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재현의 말에 서이나가 약간 달아오른 얼굴로 그렇게 말해왔다.
재현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떨어지는 검은 머리칼, 두 헤이즐넛 색 눈동자를 보는 순간 어째선지 심장이 옥죄어오는 듯했다.
“하하하―하기 싫으신 마음은 잘 압니다만― 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곳에서 이이이―이그드라실의 양분이 될 겁니다요! 여기서 어떻게든 해야―.”
재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서이나를 보며 마음을 굳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어쨌든 위로 올라가야 하니까. …그럼 할게.”
“…응.”
서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그레해진 얼굴을 재현의 바로 앞에 붙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약간만 다가가면, 두 사람의 얼굴이 맞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 내뱉는 숨결조차 서로에게 선명히 들리는 상황에서.
재현은 졸지에 전생에도 해 본 적 없는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상한 기분이야.’
재현은 계속해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과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생각들을 겨우 진정시키며 서이나를 보았다.
처음 그녀와의 만남이 선명히 상기된다.
아직 서로에 대해 의심하고 있던 당시.
신입생 사냥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고, 지금까지 함께했다.
재현은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애써 지워내며 떨리는 입술을 조금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한데 그 순간, 그는 갑작스레 몰려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낀 두려움과는 사뭇 결이 다른 감정이었다.
아무리 시나리오와 2계층이 영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는 해도.
지금 사랑한다는 말을 뱉어 버리면, 그게 진실이 될 것 같은.
그런 알 수 없는 기분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힘들지만 하지 않을 순 없어. 어떻게든 해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어 서서히 결심을 마친 재현의 입술이 마저 열렸다.
“이나야. 아니, 브륀힐트. 저는 당신과….”